▶ 진행 : 변상욱 대기자(CBS 라디오 '시사자키 변상욱입니다')
▷ 출연 :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오진탁 소장오늘(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했습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해칠 수 있다며 식물인간 상태인 70대 여성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도록 판결을 내렸습니다. 존엄사에 대한 법안도 발의돼서 준비중이고,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제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문제를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오진탁 소장과 함께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지난해 2월부터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가족들이 세브란스 병원을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입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 제거 등 청구소송에서 결국 가족이 승소하면서 존엄사가 인정을 받았는데요. 이 판결이 타당하다고 보십니까?
▷ 오진탁 소장> 저는 기본적으로 존엄사를 자연사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입장에서 받아들이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존엄사 법제화의 시작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죽음문화를 성숙시키기 위한 사회적 모색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법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한 인간의 실존적인 차원에서 존엄사에 의해 생명을 마감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 오진탁 소장> 일단 죽음과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인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법적인 논의 이전에, 실존적 차원에서 자기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임종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책임 있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그런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이, 혹은 우리 사회 전체가 그런 모색하는 시간을 좀 더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저의 바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죽음의 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좋지 않다고 보거든요. 죽음의 질이 향상되지 않은 상태에서 존엄사가 법제화된다고 한다면, 오히려 생명경시풍조를 양산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존엄사 법제화와 함께, 혹은 그 이전에 죽음의 질 향상, 그리고 성숙한 죽음문화 향상을 위한 사회적 노력을 함께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개념정리를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안락사와 존엄사가 있고, 안락사도 때로는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로 나누던데요. 이 개념을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 오진탁 소장> 안락사와 존엄사의 차이는 자기 의사가 분명히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존엄사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자기의사가 분명히 있을 때, 이를 존엄사라고 얘기하는 것이고, 안락사는 자기의사와 관련 없이 의사나 가족이 진행하는 거죠. 이번에 대법원 판결도 70대 여성이 본인이 구두로는 가족들에게 표시했지만, 서류상으로는 만들어놓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서류로만 만들어놨으면 보다 확실하게 자기의사를 인정해줄 수가 있는데 그게 안 됐기 때문에 법적으로논란이 되는 거죠. 그리고 안락사의 경우에도 소극적 안락사는 치료를 하지 않음으로써 죽게 만드는 것이고, 적극적 안락사는 어떤 적극적인 의료행위, 약을 투입한다거나 독극물을 주입한다든가 그런 걸 통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존엄사와 안락사는 구분해서 생각했으면 하는 거죠.
▶ 진행/변상욱 대기자> 종교계 쪽에선 걱정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치료행위를 중도에 너무 쉽게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 오진탁 소장> 타당성이 있죠. 지금 우리나라의 죽음의 질이나 죽음 준비나 죽음의 이해에 대한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존엄사를 법에 의해 해결하겠다고 몇몇 변호사나 의사들이 노력하고 있는데, 법 이전에 그 기반으로서 생명존중이나 죽음에 대한 태도의 성숙은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종교계에서 반대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번 대법원 판결을 존엄사 법제화를 빨리 가속화시키는 그런 계기로 삼는다고만 한다면, 생명경시풍조는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존엄사를 법제화하는 것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의 질 향상, 성숙한 죽음문화 모색을 해야만 종교계의 반대도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성숙한 죽음문화 바탕 위에서 존엄사 법제화는 가능한 것입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이 환자를 치료하던 병원의 담당의사는 아쉬움이 있는 모양입니다. 환자를 강하게 자극하면 환자가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보이니까 아직은 아닌 것 같은데, 판결은 이렇게 내려졌지만 그럼 산소 호흡기를 떼는 시점을 언제로 잡아야 하느냐, 환자마다 상태가 다 달라서 그런 모양인데, 병원 내에서 이런 논의들이 그동안 충분히 있진 않았겠죠?
▷ 오진탁 소장> 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죽음이나 생명이라는 것은 의학이나 법학 이전에 보다 포괄적인 생명적인 개념이지요.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혹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 우리 사회는 충분한 고민이 없어 보입니다. 의사나 변호사가 중심이 돼서 의학적 죽음이나 법률적 죽음에만 초점을 맞춰서 존엄사 법제화, 연명치료 중단 논의가 진행되는데 그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전체적인 생명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고 거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리고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심장이 언제 멈추고 호흡이 언제 멈추고 뇌가 언제 멈추고, 또 연명치료를 언제 중단하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거든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식의 논의는 본말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문화의 성숙, 죽음의 질 향상을 위한 종교, 철학, 생사학적인 죽음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 또 의사와 간호사들에 대한 웰다잉 교육, 그것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존엄사 법제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고, 생명경시 풍조의 확산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우리 사회가 그동안 죽음을 너무 터부시해왔기 때문에 논의 자체가 별로 진행된 게 없는 것 같군요?
▷ 오진탁 소장> 그렇죠. 제가 최근에 일본에 갔다 왔는데 일본 같은 경우는 도시 가운데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유럽도 그렇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우리 삶의 중심부로 끌어들이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법제화 이전에 죽음을 우리 삶의 일상대화 속으로도 끌어들이고, 죽음이나 임종방식에 대해서, 혹은 연명치료 중단이나 존엄사 문제까지 포함해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들이 우리 삶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만 우리 삶이 건강해지고 생명존중 풍조도 확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우리나라의 죽음의 질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수준이 어떻습니까?
▷ 오진탁 소장> 자살률이 OECD 국가 가운데 1위 아닙니까. 그것이 우리 죽음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 중의 하나이고, 자살률 1위뿐 아니라 자살 충동률을 보면 청소년상담원에서 청소년들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약 50%가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고, 약 10%가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합니다. 노인들의 경우는 약 80%가 자살충돌을 느낀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지요. 또 한 가지는 우울증 발생률이 여러 차례 조사했을 때 약 50% 이상 나옵니다. 그러니까 존엄사 법제화라고 얘기하지만, 그 이전에 더 심각한 것이 우리 사회가 죽음의 질입니다. 죽음의 질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나라 중의 하나라는 걸 솔직하게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겠지요. 죽음과 삶의 질같은 문제를 법에 의해 해결할 수는 없겠지요.
▶ 진행/변상욱 대기자> 논의의 시작은 노인들이 임종을 맞을 때 어떻게라는 문제였는데 그보다 더 심각하고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 문제군요. 이번에 존엄사도 사회에 방점을 찍는 게 아니라 존엄에 방점을 찍어서 생각해볼 사안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오진탁 소장> 그렇죠. 연명치료 중단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죽음의 죽엄, 삶의 존엄, 그리고 인간의 존엄에까지 확대하는 문제의식이 절실합니다.
CBS < 시사자키 변상욱입니다 > 2009년 5월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