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산 우이령 오봉 석굴암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의 보문사라는 절 뒤에 마치 소의 귀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있어 이를 우이암(牛耳岩), 즉 쇠귀바위라 불렀다. 그리고 우이령(牛耳嶺)은 본래 우이암 근처에 있는 작은 고갯길을 가리켰으나 지금은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에서 경기도 양주시 송추로 넘어가는 큰 고갯길을 가리킨다. 우이령은 예닐곱 사람이 담소하며 걸을 수 있는 넉넉한 산책길이다.
예전에는 서울과 양주 사이에 북한산과 도봉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사람들의 통행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근 사람들이 에둘러 가는 큰길을 피해 북한산과 도봉산 사이의 가장 낮은 고갯길로 다니기 시작했으니 곧 우이령이다. 그리고 지금도 고갯마루에 대전차장애물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아 아마도 예전에는 길마에 짐을 실은 소가 넘나들었을 법도 하다.
우이령은 예전에 양주와 서울을 오가는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1969년에 벌어진 1·21사태 때 북한 무장공비들이 이 길을 지나서 서울에 침투했기에 그 이후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우이령길이 폐쇄됐다. 그러나 양주 사는 사람들이 서울에 가기 위해서는 의정부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계속되자 정부에서는 2009년에 탐방객 수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우이령을 개방했다.
우이령 들머리에 있는 송추계곡(松楸溪谷)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산기슭에 있는 계곡으로 산골짜기에 소나무(松)와 가래나무(楸)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그리고 오봉산은 도봉산의 한 줄기로 다섯 개의 바위 봉우리가 능선을 따라 나란히 줄지어 서 있어 붙은 이름이다. 오봉산은 송추계곡을 품고 있으며, 송추계곡과 더불어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송추계곡은 대학교 다닐 때 과우들과 함께 교외선 열차를 타고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뒤로 한 번도 가지 않다가 50년 만인 4년 전에 한 번 찾은 적이 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교외선은 의정부와 양주 등 경기 북부 주민들이 서울로 가기 위한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하지만 서울외곽순환도로가 놓이면서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어 결국 운행을 중단했다.
송추계곡은 그 이름처럼 계곡 주위에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비롯하여 갈참나무, 당단풍나무, 물푸레나무, 함박꽃나무가 뒤섞여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계곡에는 사패산과 오봉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골을 타고 4km에 걸쳐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계류를 따라 천천히 산길을 걸어 올라가다 우이령을 넘으면 바로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에 닿게 된다.
우이령길은 송추계곡에서 고갯마루에 이를 때까지 길이 고르고 넓어 여럿이 어울려 걷기 편하다. 그리고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미리 입산 신청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으나 탐방객 수를 제한하는 바람에 산길이 무척 호젓하다.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면 바위로 이루어진 다섯 개의 봉우리가 우뚝우뚝하고 걷는 동안 계곡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청량감을 더한다.
고갯마루에서 송추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오봉전망대 앞에 자그마한 크기의 <노변사방사업개요비>가 서 있다. 이 비석에는 1966년에서 1967년에 걸쳐 많은 인원을 동원해 우이령에 나무와 풀을 심는 사방공사(砂防工事)를 실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따라서 예전에는 우이령에도 나무와 풀이 없어 비가 많이 내리면 산사태 등 홍수 피해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봉전망대에서 다시 20여 분을 걸어 내려오면 군부대의 유격장 앞에 석굴암(石窟庵)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관음봉 중턱에 자리 잡은 석굴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을 만큼 오래된 사찰이며, 고려 공민왕 때 왕사였던 나옹화상이 3년간 수행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석굴암 중수기>에는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원당이었다고 적고 있다.
석굴암은 창건 뒤 여러 차례 폐사되길 반복하다가 1935년에 중창했는데, 나한전으로 개수한 조그만 석굴에 석조지장보살좌상을 안치했다. 석조지장보살좌상은 19세기 후반 불화승이 제작한 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석굴암은 암반 아래 조성한 나한전 석굴로 인해 불자들에게 나한기도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 오봉 석굴암에는 대웅전 뒤편의 암벽에 부조로 석불을 조각하는 불사가 진행 중이다. 짐작하건대 여느 사찰처럼 법당 안에 불상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대웅전 뒤편의 벽을 터 유리벽 너머 암벽에 새긴 마애석불에 불공을 드리려고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 초파일에 석불 점안식(點眼式)을 하기 위해 공사를 서두는 것 같았다. 마애석불 조성 공사가 마무리되면 많은 불자들이 석굴암 마애석불을 보기 위해 우이령을 찾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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