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권현상 동문의 죽음에 부쳐
저는 며칠 전, 아주 가까이 지내던 친구 한 명을 잃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릴 때 저희 동리와 이웃한 마을에 살았기에 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자주 어울렸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 후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그 친구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흔이 훨씬 넘긴 나이에 서울 종로에서 길을 걷다 우연히 그 친구와 마주쳤습니다.
그 친구는 그동안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한 지 몇 해 되지 않으며, 봉제 제품 관련 무역업을 하고 있노라고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의 사무실이 제 직장 사옥에서 백여 걸음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점심때 함께 식사하거나 퇴근 뒤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옛날처럼 자주 어울리곤 했습니다.
그 친구는 심성이 곱고 무척 살가웠습니다. 당시 저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문득문득 삶을 포기하고픈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제가 너무 지쳐 쓰러지려 할 때마다 손 내밀어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위로가 저에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친구와 그렇게 어울렁더울렁 지내기 10여 년, 그런데 그 친구는 일본 거래처와의 사이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겨 큰 손실을 봤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업을 접고 사무실 문을 닫았습니다. 그때부터 그 친구는 말수가 적어지고 사람들을 만나길 꺼렸습니다. 그리고 몇몇 친구와 한 해에 고작 한두 번 만나는 게 전부였습니다.
지난해에는 얼굴을 보고 싶어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로 피했습니다. 또 한 번은 요양병원에 입원한 한옥순 동문을 보고 싶어 하기에 함께 면회 가려 했으나 사정이 생겼다며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말에는 가까운 친구 몇몇이 만남의 자리를 만들었으나 이마저도 성묘를 핑계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실 이때는 친구의 병이 깊을 대로 깊었던 게 아니었나 짐작됩니다. 우리 나이에는 죽음이 서서히 찾아오기도 하고, 느닷없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오늘이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친구의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틀 뒤 친구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그 친구는 살아오는 동안 세상을 겸손하게 대했고, 늘 가슴이 따스했으며, 누구보다도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대함에 있어 늘 한결같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친구의 죽음을 통해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하루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 친구의 환하게 웃는 영정사진을 보며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첫댓글 앞으로는 우리보다 앞서 먼 길 떠난 동문에 관한 글을 올리지 않으렵니다.
즐거운 얘기를 나누기도 모자라는데 슬픈 얘기로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픈 동문들이 자꾸만 늘어납니다.
우리 동문들 제발, 제발 아프지 마십시요.
네ㅡ
그래요
그러나 사는사람들
사는일들이 있어서
애경사라는 말이나온것이 아닐까요
좋은일 슬픈일이있게 마련입니다
좋은일만 있어야되는데요
최소한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은 조심해야 할듯합니다
떠나간 권현상친구
이세상 슬픔과 아픔을 다버리고 떠났을겁니다.
살갑던
친구를 잃은 슬픔 ..
어느 무엇에 다 비할까.
친구의 슬픔 공감으로 함께하며.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