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 부처님은 자신 마음 속에 있어
‘대동영선’의 ‘증운공유마경’ 시제
공산은 심적한 마음 밝히는 표현
내가 없는 경지는 무심의 경계
경계 이르면 자아 참모습 찾게 돼
울산 석남사 극락전. / 글씨 탄허택성(呑虛宅成) 스님.
阿彌陀佛非聾漢 念念彌陀奈爾何
아미타불비농한 염념미타나이하
空山雨雪無人境 驀地相逢是自家
공산우설무인경 맥지상봉시자가
(아미타 부처님은 귀머거리가 아니라서/ 생각을 끊이지 않고 염불하면 그대 어이 할 수 있으랴/ 빈산 눈 내려 인적마저 드문 곳에/ 별안간 서로 만나면 바로 본래 자기일세.)
주련의 내용은 ‘대동영선(大東詠選)’의 ‘증운공유마경[강추금](贈雲公維摩經[姜秋琴])’이라는 시제(詩題)에 나오는 일부분이다. 운(雲)은 스님의 법명이며 강추금은 경기도 광주 출신의 강위(姜瑋, 1820~1884)를 말한다. 강위의 호는 추금(秋琴) 외에도 자기(慈屺)·청추각(聽秋閣)·고환당(古懽堂) 등이 있다. 김택영(金澤榮, 1850~1927), 황현(黃玹, 1855~1910)과 함께 구한 말 3대 시인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대동영선’은 우리나라와 중국 역대 게송과 시를 수록한 책으로 조선 말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수행하였던 보정(寶鼎 1861~1930) 스님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가려 편찬했다. 일부 사람들이 이 시문의 출처를 나옹(懶翁) 스님으로 알고 있으나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강위의 문집으로 1915년 발간된 ‘고환당수초(古歡堂收艸)’ 권2에 ‘마하연운공신여유마경일부(摩訶衍雲公贐余維摩經一部)’라는 시제로 실려있다. 강위가 금강산 마하연에서 운 스님으로부터 ‘유마경’ 질문을 받고 답으로 썼다는 의미다. ‘대동영선’에서도 ‘강추금의 시’로 밝히고 있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민중에게 ‘염불’하면 육자염불로 널리 알려진 ‘나무아미타불’이기에 내세웠다. 농(聾)은 귀머거리를 말하고 한(漢)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굳이 해석할 필요가 없다. 농한은 귀머거리 아미타 부처님을 말하기 때문이다. 비(非)는 부사로 쓰여서 주어와의 관계를 부정해 ‘무엇이 아니다’라는 표현이다.
염념(念念)은 일념(一念), 전심(專心)과 같은 표현이다. 염불하는 것을 일념미타(一念彌陀) 또는 일념염불(一念念佛), 염념상속(念念相續)이라 한다. 조선 후기 추파홍유(秋波泓宥 1718~1774) 스님의 최후 말씀에는 “오직 일념으로 아마타불을 잘 따르면 곧장 서방 극락세계 다리를 건널 것”이라 했다. 고덕(古德)이 이르길 “사물에 지극하면 물고기도 용으로 능히 변하고, 도 닦는 정성 지극하면 돌부처도 절로 영험이 생긴다”라 했다. ‘奈’ 글자는 ‘어찌 내(奈)’가 아니라 ‘어찌 나(奈)’라는 의문 조사로 ‘여하(如何)’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특히 공산(空山)이라는 표현을 명확하게 알아야 이 시문을 이해할 수가 있다. 공산을 산이 비었다고 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사람 없는 산중이라고 한다면 이미 시를 짓는 이가 있기에 이 역시도 어폐가 있다. 여기서 공산은 그윽하고 소소한 산림을 말해 정(靜)과 적(寂)을 드러내어 심적(心寂)한 마음을 밝히는 표현이다. 우설은 눈과 비도 되고 눈이 내리는 것으로 보아도 관계없다. 공산은 허허로운 상태, 눈비는 수없이 밀려오는 망상과 번뇌를 비유한 것이다. 내[我]가 없는 경지는 무심의 경계라고 할 수 있다.
맥지는 갑자기, 느닷없이 이러한 표현이다. 위에서 설명한 경계에 이른다면 별안간 서로를 만나게 된다고 하였으니 이는 자아(自我)의 참모습을 찾게 된다는 표현이다. 이를 선종에서는 견성, 불교적으로는 성불이라고 한다. 자가(自家)는 본질, 본체, 본위를 나타내 그렇게 찾던 아미타 부처님이 ‘아미타경’에서는 서쪽으로 10만 억 불국토를 지나 극락세계에 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자심(自心)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자심을 찾는 과정은 10만 억만큼이나 멀지만 깨닫고 보면 코앞이 10만 억일 뿐이다. ‘화엄경’에서도 ‘한 생각에 무량겁을 다 본다’라고 해 ‘일념보관무량겁(一念普觀無量劫)’이라 했다.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