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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의 시점이 언제인지가 중요하다.
눅 16:19-31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부자는
좋은 옷을 입으며,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나사로는 가진 것이 없는 거지였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가 먹고 나서 상 아래로 버린 음식 찌꺼기로 배를 채우려고 했고,
개들은 나사로에게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헬라어-퀴나리온)이 아닌 주인 없는 개들(퀴온),
즉 배고픈 들개들이 몰려와서 나사로의 병 걸린 피부를 핥은 것으로 보아
동작이 빠른 들개들이 나사로가 먹고자 했던 음식 찌꺼기마저 선점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엘리에셀’에서 유래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자’라는 뜻이며,
예수님께서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에게 이름을 붙이신 경우는 나사로가 유일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자’라면
가난하지 않고, 특별한 질병 없이 건강하며, 뭇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크고 화려하게 감당하거나
높은 신분의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자, 나사로는
가난하기로는 짝이 없을 정도로 극한의 거지였으며, 개들에게까지 시달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 사상에 의하면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님께로부터 벌을 받고 있는 죄인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자’라는 이름으로 예를 든 사람이
육신적으로는 가장 불쌍한 처지에 놓인 거지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인생이 끝나기까지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다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지나고 난 후에 결국 죽음을 맞이했고,
나사로는 천국에, 부자는 지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부분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단순히 부자의 부유함 자체가 죄이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여) 넘치는 부를 누리고 있었으면서도
구제를 하지 않는 이기적이고도 사랑이 없는 악한 마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굳은 마음의 불순종,
자신에게 일시적으로 맡겨주신 재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지 않고,
자신만을 사랑함으로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한
일종의 횡령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긴 독식)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또한 나사로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나중 보상으로서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중에도
그것과는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사랑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대한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초점은 이 부분이 아니었기에 예수님께서 길게 설명하지 않으신 겁니다.)
마 25:44-45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지옥에 떨어진 부자는 눈을 들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거지를 바라보면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면서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는다. 그리고 서로 건너갈 수도 없다.“
라고 답변합니다.
이 부분에서 ‘얘’(테크논)는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녀를 부르는 호칭으로서
“아들아.”, “딸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특권이
구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도 (오늘날 교회에 오래 다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각 사람이 가진 자유의지를 가지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의 여부로,
다시 말해 자신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서 어떻게 증명했는지의 여부로
선악 간에 심판을 받아 영원한 생명과 사망이 결정된다는 의미를 내포하신
예수님의 비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말씀에 기록된바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에
회개한 뒤로도 여전히 불순종하여 육신을 따라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마 16:27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고후 5:10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요 8:11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자신이 당하고 있는 지옥의 고통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부자는
아직 살아있는 자신의 형제들이라도 구해보기 위해
나사로를 다시 현세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이는 부자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증거를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부자는 가난했던 나사로를 하찮게 생각하면서
자신이 종으로 부려도 되는 존재쯤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더불어 그저 자신의 형제들에게만 지옥의 위험을 전하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지옥에 가서도
현세의 부유와 가난의 차이로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오만함과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 가족만 잘 챙기면 그만이지.’하는 사랑 없는 마음,
즉 자기와 자기의 가족들만 사랑하는 이기적인 배타심을 끝까지 버리지 않은
교만한 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죽었다가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권함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답변하면서 부자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그들에게 들을지니라’에서 ‘들을지니라’(아쿠오)의 원문의 뜻은
단순히 귀로 듣기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깨달아 이해하여 들은 바대로 순종해서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로 바리새인들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부패가 진행되어
냄새를 풍기기까지 했던 나사로(다른 나사로)가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난 사실을 확인했으면서도 끝내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으며,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도 그 사실을 숨기기에만 급급했을 뿐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여 돌이키지도 않았습니다.
회개와 돌이킴의 중요성,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복종,
가난한 자들을 구제해야 할 의무 등을 끊임없이 강조했던
모세와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듣지 않는 교만한 자들은
육신적이고도 이기적인 삶의 방식 속에서 마음의 양심이 딱딱하게 굳은 채
이미 마귀에게 점령되어버렸기 때문에
설령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가 하는 말이라 해도
듣지 않고 거짓말로 치부해버리며, 끝까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일 것이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선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히 6:4-8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딤전 4:1-2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묵상하며,
지금 저와 여러분들은 음부에 떨어진 부자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자’ 나사로에 가까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질을 너무 쉽게 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처음 깨달았을 때, 뜨겁게 찬양하며 예배를 드린 직후,
하나님께서 주신 설교를 들으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과 은혜를 느꼈을 때,
더불어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들을 깨달아 눈물을 흘리며 회개기도를 했을 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님께로 향하는 뜨거운 마음은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그 짧은 순간마저 잃은 채
점점 더 악해지고 강퍅해지는 세상의 풍조와
돈과 쾌락을 가장 사랑하는 분위기를 따라
세상의 것들과 욕심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모습으로
영적으로 점점 어두워지며, 육신적인 것들을 가장 사랑하거나 갖가지 염려를 하면서
영의 눈이 멀어버린 모습이 되거나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괴로워하는 이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모든 일에 순종하기 위해 힘쓰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장성함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다시 와주심을 준비하고 있는, 준비해야 하는 이 마지막 때에
알곡과 가라지가 확연히 구분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 즉시 세상으로 돌아가 눈을 들어 돈과 쾌락을 쫓고,
자신만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슨 일을 맡기실 지에 대해 생각하며,
기도하여 순종하려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계속해서 불순종 가운데 음부로 향하고 있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한 번 잘 생각해보십시다.
이미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서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극한의 고통에 사무쳐
기괴한 괴성을 지르고 있는 사람들이
‘아~ 부자가 되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조금만 더 노력해볼 걸...’
하며 후회를 하겠습니까?
또한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행복하게 평안의 안식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아~ 더 행복해지고 싶다. 세상에 사는 동안 최소한 뭐는 좀 이루어보고 올 걸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후회된다...’ 하겠습니까?
사람이 이 땅에서 품는 모든 육신적인 고민과 욕구,
출세와 성공을 향한 야망, 정치적 신념과 이념 등은
말 그대로 이 땅에서만 유효한 ‘없어질 헛된 것들’이 맞습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신념을
무려 ‘복음’이라고 말하는 심히 타락한 자들까지 등장했습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자꾸만 새롭게 각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멍하게 지내다보면
금세 마음이 어두워지고 온갖 것들에 미혹되며,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본질을 잊은 채
세상의 것들만 생각하게 되는 어리석음에 가속이 붙습니다.
세상의 것들에 이미 온 마음과 생각과 시간을 다 빼앗겼으면서도
자신의 신앙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는 심각한 상태가 되어갑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께로 돌아오기가 힘들어집니다.
시 62:5-6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지금 가난해도 괜찮습니다.
몸이 약하거나 병들었어도 괜찮습니다.
누가 봐도 초라한 인생이라 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며, 그 분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존함으로 회개하고 돌이켜서 이제 다시 하나님과 화평해진 자,
매일 사랑하는 하나님과 기도로서 깊은 교제를 나누며 새 힘을 받아
삶속에서 모든 일에 순종하기를 힘쓰는 자,
그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해주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순종하여
현재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자’로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의 이 인생은 두말 할 것 없이 최고로 성공한 인생이며,
머지않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할 진짜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다시는 아프거나 죽지 않을 부활의 새로운 육체(영생)’,
그리고 ‘천국에서 영원토록 이어질 진짜 인생의 시작(구원)’에 우리의 모든 소망을 두고,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모습으로 부디 끝까지 흔들리지 마십시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꼭 추구해야 할 이 모습은
잠잠히 돈과 출세를 바라는 모습, 잠잠히 건강을 바라는 모습,
즉 자신이 원하는 육신적인 만족을 다 채운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바라보겠노라는 조건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어떤 환경이나 조건 속에서도 그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등장하는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자’, 거지 나사로의 삶이 성공한 인생이고,
음부에 떨어진 부자의 삶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사는 동안 늘 잊지 마십시다.
롬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앞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그 날까지
각자에게 남은 시간동안 저와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서 드리기를 힘써서
하나님께서 받아주실 만한 영적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권속들이 다 되십시다.
이 세상의 풍조가 어떻든지, 주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든지
제발 그것들을 본받지 말고, 매일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말씀으로 분별하십시다.
롬 12:4-15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오늘 설교의 주제는 게으르고 나태하게 지내서 거지가 되어 가난해져도
신앙생활만 잘하고 있다면 천국에 가게 될 것이니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들을
최대한 성실하게 함으로 순종하면서 살아가고,
또한 세상의 것들에 자꾸만 시선을 빼앗기게 되는 영적위험을
수시로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성실하게 담당하는 태도가 되어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은 섬기는 일을 열심히 하고,
가르치는 자면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지 않기 위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바르게 공부하여 가르치며,
위로하는 자면 힘들어하는 자와 함께 우는 진실한 사랑으로 위로하고,
구제하는 자는 탐심을 버리고 성실함으로 하며,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하라고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것들을 부러워하면서 자꾸만 따라가려는 마음을 경계하고,
돈과 쾌락의 노예가 된 생활습관도 온전히 내버리며,
이 땅에 거하는 동안 매일 눈을 들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으며,
각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해주신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지혜를 얻어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지 말고,
새롭게 시작될 진짜 인생의 시작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눅 18:17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이 땅에 잠시 머무는 동안 매일 ‘눈을 들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순종하며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진짜 인생을 시작하기를 바라십니까?
아니면 쏜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이 인생에서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치중하는 어리석은 모습으로 온갖 욕심을 품고 살아가다가
(오늘 비유의 말씀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 지옥에 떨어진 부자처럼)
불속에서 ‘눈을 들어’ 부러운 눈으로 천국을 바라보면서
영원히 고통 가운데 존재하는 불쌍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늙고, 한 명도 빠짐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죽은 이후에는 손에 아무 것도 쥐지 못한 채 맨몸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살아가십시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진리를 가르쳐주신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부자가 음부에서 눈을 들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있는 거지 나사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실제 지옥에 가게 되면 천국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나중에 이 부분에 대해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위치에서 확인할지는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돈과 명예만 쫓는 삶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
건강하기까지 한 유명한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한다면
‘쳇, 자기는 부유하고 건강하니까, 먹고 살만하니까 저런 말을 쉽게 하겠지...
나 같은 상황이 돼봐. 당장 힘들다며 불평할 걸?’하며 들을 자가 많지 않겠지만
저 같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계시기에
여러분들이 들을 때 꽤나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인생의 행복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게 주고 계신 말씀들을 성령의 감동을 따라 그대로 받아 적어
여러분들에게 전달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이것 외에는 사실상 즐거울 일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인사를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가는 이 길은 부와 명예의 길이 아니며, 십자가와 고난의 길이라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미리 여러 차례 말씀해주신 것은 언급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확정한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눈을 들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각성과 개혁을 가진 사람들만이 매일 깨어서 새롭게 될 수 있고,
더불어 온갖 마귀의 궤계로부터, 죄와 욕심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영적으로 점점 무뎌지며,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가지 근심과 염려와 불만과 질투와 욕심과 음란과
다른 사람을 향한 비난과 정죄와 미움과 분노 등 각종 악한 죄들에 마음을 빼앗겨
결국 마귀에게 침투되어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자신은 완전한 자라고 자부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한 사람씩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그 날을
계속해서 준비시켜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 크신 은혜를 흔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감사하면서 귀하게 여기며, 각자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순종하는 사람들만이
심판의 날에 아무런 후회 없이 영생을 위한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마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매일 새롭게 각성하여 정말로 깨어있기를 소망하면서
계속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인식하는 지혜로운 모습으로
매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매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많고 크신 놀라운 사랑,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나를 지옥에서 구해주시기 위해 대신 당해주셨던 그 모든 일들,
나를 방치하듯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 그 엄청난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우리가 매순간 잊지 않고 기억할 때에 우리는 영적으로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마귀와 귀신들의 궤계, 죄악, 죄의 속성을 가진 자신의 옛 자아와 싸워서
자기를 부인하며,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다 지나가고 난 후에는,
즉 우리 각 사람이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이 되거나 심판의 날이 이르면
그렇게 살고 싶어도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고 계신 은혜의 기회가 남아있을 때
굳게 잡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십시다.
이 설교를 읽고, 마음에 새기신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순종하여 끝내 구원에 이르시기를 중보기도 하며, 축복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각자의 삶에 적용함으로서
‘눈을 들어’ 바라보게 되는 그 시점의 중요성을 깨달아
지옥에서 눈을 들어 천국을 바라보며 부러운 눈으로 영원히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우매한 눈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아직 이 땅에 거하는 동안 매일 눈을 들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똑바로 바라봄으로서
세상의 유혹과 모든 죄를 물리치고, 이제는 세상과는 완전히 구별된
하나님의 권속으로 확정되기를 소망하여
매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하며,
기도한대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순종하려는 순전한 모습이 되어
각자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동안, 각 사람에게 맡겨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아름다운 열매를 최대한 많이 맺기를 힘쓰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께서 다시 와주실 그 날에 환하게 웃으며 구름 속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살전 4:17-18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5.07.13.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256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
1.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 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고
2.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죄를 대속하신 주님 선한 일꾼 찾으시나 대답할 이 어디 있나 믿는 자여 어이할고
3.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살아계신 주 하나님 약한 자를 부르시어 하늘 뜻을 전하셨다
생명수는 홀로 예수 처음이요 나중이라 주님 너를 부르신다 믿는 자여 어이할고
4. 눈을 들어 하늘 보라 다시 사신 그리스도 만백성을 사랑하사 오래 참고 기다리셔
인애하신 우리 구주 의의 심판 하시는 날 곧 가까이 임하는데 믿는 자여 어이할고
첫댓글 아멘! 말씀 하신대로 매일 눈을 들어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똑바로 바라보기를 간절히 소망
합니다.
앞으로도 단단한 믿음으로
매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시며 위로와 소망을 얻으시고,
천국에서 새롭게 시작될 진짜 인생을 잘 준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물질주의적인 저의 삶을 돌아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내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고,
세상의 것들은 전부 배설물로 여겼던 바울과 같이
늘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시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