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빌2:5~8절, 고전4:14~15절
소주제2: 스승이십니까? 아비이십니까?
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우리나라는 1965년에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5월 15일에 맞춰서 스승의 날로 제정을 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을 우리나라에 큰 스승으로 여기고 정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땅에 있는 사람을 스승이라고 하지 말라..
너희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왜 이리 선생이 많습니까? 배가 산으로 갑니다.
야고보는 너희는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말이 심판이 있다고 합니다.
(약3:1절)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는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학생들을 다양하게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라도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선생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작은 일로, 작은 실수, 작은 감동을 통해서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남의 좋은 일을 보면 또 배우게 됩니다.
실수 속에서도 배우게 되고 성공 속에서도 배우게 됩니다.
세상은 모든 것이 선생이고 스승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했는지 문제는 말! 인거 같습니다.
말로 때릴 수도 있고 말로 죽일 수도 있고 말로 나쁘게 할 수도 있고 말로 거짓말도 할 수 있습니다.
제일 잘하는 거짓말이 제일 표 안 나는 거짓말이 말! 입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말로 다합니다.
선생이 되면 말은 많지만 삶의 행동이 따르지 않으니까 많이 스승 되지 말라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일만 스승이 있지만 아비가 없다..
여러분은 아비입니까? 스승입니까?
바울은 나는 스승이 아니고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 나는 아비이다..하고 말합니다.
선생한테 가르침을 잘 받아서 훌륭하게 된 사람도 있지만 더 많은 것은 부모의 삶을 바라보고 부모가 사는 것을 보고 훌륭하게 된 사람이 더 많다는 겁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아이들이 대부분 잘 자라고 잘된다고 어른들은 말합니다.
경륜을 통해서 좋은 말씀도 많이 듣고 또 사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을 어려워하지 않고 접근도 잘하고 인사도 잘하고 대화도 잘합니다.
대가족이 함께 살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배우 김영호 간증)
친구들도 많고 잘 생기고 좋은 학교도 나왔는데 암에 걸렸습니다.
이리 가서 말을 듣고 저리 가서 말을 들어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보라고 했답니다.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 빌어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에 부처에게 빈다는 것은 석연치가 않더랍니다.
예수님을 믿어보라고 한 말이 마음에 닿아서 예수님이 계시면 내 병을 좀 고쳐달라고 했답니다.
내 병을 고쳐주면 교회에 가겠습니다.
그런데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답니다. 자기를 보고 웃어서 이 배우도 너무 좋아서 눈을 뜨니까 꿈이더랍니다.
내 병이 나았다고 생각하고 병원에 갔는데 그대로랍니다.
그래서 순간 원망을 했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면 내 병을 고쳐주세요. 그러면 교회에 잘 나가겠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또 자기를 보고 웃더랍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암이 다 없어졌답니다.
교회를 가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창피해서 모자 쓰고 마스크 쓰고 교회를 갔답니다.
그런데 교회를 나가면 나갈수록 은혜를 받았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지 안계신지 잘 모른다는 소리만 해도 자기가 이야기를 한답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났다..
왜 우리는 인생의 쓴맛을 해결하지 못하나..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데 만나지를 못한 겁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납시다”
1. 바울은 스승이 되지 말고 아비가 되라고 합니다.
바울이 스승은 많지만 아비가 없다고 합니다.
스승은 이권관계입니다.
좋은데 가야 좋은 스승을 만납니다. 또한 잘 되려면 자기 자랑을 합니다.
제자가 잘되면 자기 제자라고 자랑합니다. 으쓱합니다.
좋은 스승도 많지만 아버지 어머니 아비는 자기의 어떤 이익이나 자신의 어떤 명예보다는 자식을 위해서 이익 상관없이 이해타산 따지지 않고 진심으로 대하고 진심을 이야기 합니다. 부모가 돈은 없지만 진실하게 사시는 그 모습을 보고 자녀들이 감동을 받아서 내가 자라서 부모에게 잘해드려야지.. 정말 그렇게 됩니다. 잘합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성도를 낳았으니 자기를 아비라고 합니다.
스승으로 가르치는 자 만 되지 말고 삶이 그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는 행위가 삶에 나타나는 아비가 되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지식으로 가르치면 끝나는 겁니다. 진한 마음으로 아비가 아이를 대하듯이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스승이라고 말하지 않고 아비에 비유를 하면서 내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으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아비는 자녀에 대해서 어떤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자녀가 잘되는데 진심을 담아서 말을 해줍니다. 자녀에게 본이 되려고 삶에서 행위로 본을 끼칩니다.
목사님은 아비의 마음입니다. 스승의 마음은 아닙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친다.. 라는 스승의 생각은 못해 보고 솔직한 심정으로 아비의 마음, 어미의 마음으로 목회를 했습니다.
바울은 스승보다 아비를 원했습니다.
2. 바울이 말한 예수님을 보면서 진정한 스승을 보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아비인지 스승인지 우리의 영원한 스승 되시는 예수님을 본을 보면서 한번 체크해 볼까 합니다.
1)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빌2:5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레미야 17장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부패한 곳이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교회 어떤 사람이 부패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자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 외는 다 인간이 마음이 부패합니다. 우리 서로 똑같습니다.
어느 때는 정직하게 보이고 어느 때는 진실하게 보이지만 다 비슷합니다. 부정직합니다.
다 진실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상황 속에 정직하게 진실합니다.
우리 다 똑같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스승 되시고 인도자 되시고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제자와 스승이라면 제자는 스승의 마음을 닮아간다고 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영원한 스승입니다. 한분밖에 없는 스승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스승의 마음을 배우고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서 행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나의 스승이라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교회는 스승보다 아비의 마음이 많아집니다.
아비는 어느 자식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돈을 많이 버는 성도나 작게 버는 성도나 목사입장에서는 다 측은하고 안스럽고 귀합니다.
아비의 마음입니다.
스승의 마음은 잘한 아이들은 상주고 못하는 아이들은 상을 안줍니다.
교회는 이렇게 안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먼저 품어야 합니다.
2) 높은 마음을 품지 않고 겸손합니다.
(빌2: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높은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잘난 척 하지 아니하고 아비와 똑같다고 겨루지 아니하고 있는
척 하지 하지 않습니다. 아비는 초등학교 나오고 아들은 서울대 나와서 아비가 뭐라고 하면 아버지가 뭘 안다고 나에게 그러십니까..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동등 됨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스승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잘난 척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배워도 부모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왜 부모를 무시합니까? 부모가 기초를 다 깔아줬습니다. 부모가 뒷바라지를 다 했습니다,.
3) 특권을 다 버리고 종이 되었습니다.
(빌2:7절)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예수님은 자기의 모든 특권을 다 버렸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와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분들이 스승입니다.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다 버리고 무조건 헌신하는 겁니다.
안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특권을 다 버리고 목사님이 하라고 하는 대로 다 합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다 버리고 철저하게 자기를 버려 종이 되었습니다.
종이 안 되니까 헌신을 못합니다. 종이 안 되니까 희생을 못하고 가르칠려고만 합니다. 말만 잘합니다. 잘난 척 합니다. 가르친다고 훌륭하게 됩니까? 삶에 본이 안 됩니다.
우리가 자식을 키울 때 부모가 희생하고 헌신하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는 그 어머니의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우리 자녀들은 부모에게 잘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손을 보십시오.. 여러분들을 위한 헌신과 희생의 손입니다.
유대인 중에 유명한 랍비 아키반이 있었습니다.
아키반이 원래 무식하고 배운 것도 없고 집안도 안 좋습니다.
그런데 여자를 잘 만났습니다.
여자가 귀족이고 부자고 똑똑합니다. 그런데 이 남자를 보니까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부모가 반대해도 결혼을 해서 여자가 이 랍비를 가르칩니다.
나중에 유명한 스승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모든 조건이 있지만 다 내려놓습니다. 철저하게 내려놓습니다.
종의 모습으로 섬깁니다.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는 것이 싫다는 것은 예수님보다 더 높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나는 섬기러 왔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일하기 싫다는 사람은 예수님보다 더 높습니다.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는 사람은 주여 주여 잘합니다.
주님도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스승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본을 보는 사람이 스승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 되시고 우리의 영원한 스승 되시는 주님이 내가 이 땅에 올 때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내가 섬기러 왔다.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섬기려 하지 않고 섬김을 받으려고만 하십니까?
여러분은 귀한 성도입니다. 종은 아닙니다. 나이가 많으면 노인이 됩니다.
그러나 노인중에서도 어른이 있습니다.
노인 중에 어른은 존경받는 사람이고 본이 되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도 스승이라는 이름이 두 가지입니다.
랍비~ 보통스승을 말합니다.
성경에 한분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동산에서 동산지기인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마리아야.. 그때 마리아가 예수님을 라보니아.. 당신은 나의 가장 위대하고 내가 사모하고 존경하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나의 스승 라보니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세요.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자녀고 예수님의 제자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의 마음을 품고 그의 가르침대로 그를 따르고 그렇게 행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새 부대 교회 이런 제자가 많이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