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강점기하에서도 글로서 항일 정신을 고취한 심훈 작가
우리 국민들에게 문학으로 일제에 대한 항거의 뜻을 나타냈던 심훈 선생의 대표작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 선생의 일생
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시 3.1운동 가담으로 체포, 투옥
1930 년 ‘그날이 오면’ 시 발표
1935년 ‘상록수’ 등 시, 소설을 통해 항일의식 고취
심훈 선생은 1901년 9월 12일 서울 노량진에서 3남 1년중 3남으로 출생하였습니다.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학문을 쌓았고 1917년에는 왕족이었던 이해영과 혼인하였습니다.
1919년, 심훈 선생은 3.1운동에 가담하였다가 투옥을 당해 4개월간 복역을 한 뒤 이듬해인 1920년에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저우 치장대학에 입학했습니다.
1923년,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한 심훈 선생은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화에 관심이 많았던 선생은 1925년 조일제 번안의 '장한몽'이 영화화될 때에 이수일 역으로 출연했으며192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소설인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습니다.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를 공부하여 '먼동이 틀 때'를 원작부터 각색, 감독까지 맡으며 활동했습니다.
1928년에는 경력을 살려 조선일보에 기자로 입사, '동방의 애인'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으나 검열로 중단되고 그해 항일의 의지가 담긴 유명한 시 '그 날이 오면'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시는 이후 시집으로 출간하려다 검열로 인해 무산되었고 심훈선생의 작고이후 유고집으로 출간되어
세상의 빛을 받게 됩니다.
심훈 선생은 집필에 전념하다 1936년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항일 계몽정신은 길이 남아
정부에서는 그 공훈을 기리어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