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6장 21-28절 생명을 구원하는 십자가 길.
세상에는 많은 크고 작은 길, 그리고 넓고 좁은 길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로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길을 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목적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당장 도착할 목적지로 가지만 어떤 사람은 인생의 먼 꿈을 향한 목적지를 행해 나아가는 길을 갑니다. 예를 들어 옆집으로 놀라가는 사람의 목적지는 금방 도착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큰 꿈을 향해 길을 가는 사람의 경우는 몇 십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인생길을 가고 계십니까?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는 “나같은 노인이 무슨 꿈을 꾸겠어요”하는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나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무슨 꿈을 꾸겠어요”하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생각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장 17-18절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구약 성경인 요엘서의 말씀 가운데 하나를 인용하여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실 것인데 그렇게 되면 앞일에 관심도 없고 소망도 갖지 못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미래에 대하여 예언하게 되고, 미래에 대하여 환상을 갖지 못하던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고, 꿈을 포기했던 노인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갖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남녀노소 구분없이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 다 하나님이 주시는 장래에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예언하면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 길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예수님이 앞서 걸으시고 수많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생명의 길이며, 또한 생명을 살리시는 길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 눈으로 볼 때는 생명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며, 소망의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로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따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죽음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이요, 고난의 길이 아니라 소망의 길로 보입니다. 누구의 눈이 잘못된 것일까요? 왜 불신자들 뿐 아니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조차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길이 사망의 길처럼 보이고, 소망의 길이 고난의 길처럼 보일까요? 반대로 왜 어떤 사람들 눈에는 사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이 보이고, 고난의 길이 아니라 소망의 길로 보일까요?
그것은 거듭나지 못했거나 거듭났거나 하는 다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 나라를 볼 것이며, 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님의 길이나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천국의 길은 인간의 눈으로 보여지는 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을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가르쳐주셔서 알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전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우실 교회에가 가질 권능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갈어가야 할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2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비로소 나타내셨다는 것은 이제까지는 말씀하지 않고 숨겨두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을 부르시자마자 자신이 가야할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의 신앙이 어느정도 영적으로 자랐을 때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깜짝 놀란 제자들이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금방 자신이 고백한 예수님과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의 길은 결코 조화롭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계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또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십자가에 다려 돌아가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모순 아닙니까?
베드로 생각에는 이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자신들은 뭐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큰 소리로 힘주어 항변하면서 말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는 아직도 땅의 신앙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3절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에게 그 사실을 알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사탄이 베드로의 마음 속에 들어가 베드로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을 불어넣고 흔드는데는 매우 도가 텄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속적인 은혜 없이는 사탄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공격하는 지도 모르게 공격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했던 베드로가 사탄에 의해 흔들리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4-25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생명의 길을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볼 때 그것은 마치 사망의 길로 보입니다. 십자가는 곧 죽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은 십자가를 질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명예와 부귀와 권세와 향락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키워서 자기의 이름을 내고자 하는 사람도 역시 자기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자기 부인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만이 가능합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십자가를 지는 것도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나를 따르려면 제 목숨을 잃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찾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같은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찾는 것입니다. 마치 백만원을 투자한 사람이 수십억의 돈을 벌게 된 것처럼 예수님을 위해 자기 생명을 포기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과 면류관과 상급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영생을 바라보면서 이 땅의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영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26절에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는 다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이것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귀가 온 천하의 영광을 다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무릎 꿇고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다 너에게 주겠다”고 유혹했을 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대답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셨을 때 이 땅에 남아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게 될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걸고 약속하십니다. 27절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예수님을 위해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나는 날이 옵니다. 에수님께서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시는 그 날입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그런 영광을 어찌 이 땅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28절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향하신 말씀이라기 보다는 앞으로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수많은 고난 속에 있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죽기 전에 예수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것을 볼 자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재림 직전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고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여러분! 이 땅은 잠시있다가 떠나야만 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살면서 예수님과 동행하고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고난의 길처럼 보이고 사망의 길처럼 보이는 길을 가지만 결국 그 길이 생명의 길이며, 기쁨의 길이며 영원한 복락의 길임을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런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영생과 더불어 하늘의 영원한 면류관과 상급을 주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온전히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복된 믿음의 길을 가시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