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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결과에 치우치지마라
소 주 제: 달란트비유. 열매보다 주인의 마음. 내 지위향상
날자 및 분류: 231119낮 설교 창 조 의 말 씀
성 구: 마25:14-30
저 자: 정 헌정 목사 http://cafe.daum.net/changcho
[본문] 마 25: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거치른. 굴복하지 않은. 어려운 엄격하다 가혹한 완악한 잔인한)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너무 결과에 치우치는 것은 율법적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이고 잘잘못에 치우쳐 도덕과 윤리에서 잘했다 못 했다로 규명하려는 인간적 방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잘했다 못했다는 율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 결과를 추월해서 우리들을 어떻게 자녀로서 킬러가시는 하는 은혜의 방법으로 베풀어 나아가신다, 우리로 하여금 시간 속에서 더 커가기를 원하고 계신다, 부모가 자식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바라보듯이 하나님은 우리들이 더 커 나아가는 상태를 중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오늘의 본문은 천국에 대한 설명이다, 마2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온다, 첫째는 지혜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 신랑을 맞으려 나왔지만 등불은 들고 있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처녀들과 등불과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 그리고 오늘 본문은 달란트비유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의 비유 그리고 마지막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주께 한 것과 지극히 작은 자에게 안 한 것이 주께 하지 않은 것이다, 라는 천국의 어떤 특별한 특성들을 이 비유에게 다루고 있다,
오늘의 본문인 달란트 비유에서는 천국의 특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있고 목적하고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우리 아버지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 대상인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가, 이것이 현실적인 질문이다, 고난은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길러내시고 성숙시키려는 당연한 과정이다.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부모가 자녀들이 원치 않는 공부를 시켜야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공부는 자기를 위해서 하는데도 철이 없을 때는 부모를 위해서 한다, 부모의 말을 들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 어린이는 없다, 그리고 고통스럽다, 언제까지 해야 되는가,
그러니까 기독교는 중요하게 잘 했다, 못했다, 를 판정내리는 즉 잘잘못에 대한 보상과 형벌의 종교가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것같이 철이 들게 하고 성숙시키는 손길이다, 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엡 1:6 이는 하나님이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베푸신 은혜는 우리를 영광으로 데려가며 하나님의 영광에 찬송이 되게 하는 이런 하나님의 목적. 의도들을 모르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잘못하고의 보상관계로 전략시킨다, 오늘 바로 그 말씀이 달란트 비유해서 나오는데 대부분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쉽게 비교를 하는 바람에 충성한 자와 충성치 못한 자. 거역한 자의 보상. 복을 받고 벌을 받고 가 되는데 그런데 본문은 다른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1. 하나님을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바로 믿자,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왜 충성되지도 착하지도 못했느냐. 그는 주인을 엄한 분으로 오해했다, 그래서 잘못하면 벌 받을까봐 잘못하지 않는 방법으로 자기에게 맡긴 돈을 감추었다가 주인이 오자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그런데 이걸 악하다고 하고 이걸 게으르다고 말한 것을 주의해서 봐야 된다,
앞에 있었던 두 종은 주인이 자기들에게 소유를 맡기고 떠났다는 것을 이해한다, 주인이 자기들을 어떤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도 이해했다, 그들이 열심을 부리고 열심히 이익을 남긴 것은 그들이 주인이 자기네들을 대접하는 본인에 대한 지위와 신분에 대한 감격이 있었고 그 감격은 무엇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해야 되는 그 역할 그 지위까지 자기를 끌어올리는 기회로 삼았다,
마치 자기의 재산을 늘리듯이 주인의 재산을 늘려서 주인이 와서 너희들은 나의 기쁨에 참여하라 라는 보상을 받는다, 나의 기쁨 주인의 기쁨 다스리는 자의 기쁨 다스림을 잘 받고 보상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이런 높은 지위에 보상을 그들은 깨우쳤고 그
일을 해냈다, 그것을 시간 속에서 경우 속에서 해 냈고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은 그런 명예와 기회를 전혀 쓰지 못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종종 종교에서 주로 다루지만 기독교와는 상관이 없는 전혀 다른 종교심 속에는 가장 크게 도덕과 윤리가 자리를 하고 있다, 잘하면 상 받고 못하면 벌 받는다가 너무 깊이 인간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가지는 양심에서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이 종이 그런 것같이 잘못을 안 한 게 전부이다, 크라고 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면서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그 아들까지 보내셨다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 사건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지옥가지 않고 천국 간다가 됐고 예수를 안 믿으면 죽어서 지옥 간다가 되었지 살아서 가지는 예수를 믿어서 가지게 되는 신분과 지위에서 주어진 시간과 경우들을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 주를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쓰고 아버지의 기쁨이 우리가 만들어지는 것에 함께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것 그것이 기독교인데 그 사실이 이해되지 않고 있다,,
2. 길러 가시는 하나님
그래서 이 일은 지혜의 문제가 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기르려고 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약속하시고 운명을 약속하시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그 아버지의 뜻을 따라간다는 방향과 거기를 가기 위해서는 길을 찾아가야 된다, 방향을 알아도 길을 못 찾으면 헤매게 되고 길을 알아도 방향이 틀리면 헛수고가 되는 이 문제를 우리는 지혜라고 한다, 지혜란 분별과 선택에 존재이다, 목적과 가고자하는 길에 대한 올바른 깨우침이 없으면 분별을 할 수 없으며 우리는 헤맬 수밖에 없다, 이런 지혜에 관한 일들을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렘 9:23-24.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불위(無所不爲)하지 못하는 것이 어디에도 없다' 하시고 라는 능력의 차원에서는 그렇게 많이 고백하면서도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 할게 없다. 라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은 다만 진심과 보호라는 차원을 넘어 나를 키우겠다, 부모가 자식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를 온전히 주고 희생할 수도 있다, 그게 유일한 부모의 기쁨이고 자랑이고 소원이다. 라는 차원에서의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지혜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구시고 뭘 바라시고 지금 어떤 식으로 나를 인도하고 계시는가는 현실적 신앙생활에 대한 분별의 이해가 많이 부족한 것이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식으로 대접하느냐 하면 자기의 자녀로 대접하여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자녀를 위해서라면 자기가 죽어도 좋다, 그러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며 우리에게 이런 약속을 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이해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모르면 못한다, 모르면 어디로 가느냐하면 도덕이나 윤리로 빠진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신양생활에서 가장 주된 것은 회개밖에 없다, 도덕과 윤리에서 허덕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잘못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잘못한 게 없을 때에는 요즘은 게을렀다, 라고 고백한다, 그렇게 뭐든 흠을 꺼내서 그걸 지워야 신앙행위를 한 것 같고 신앙적으로 어떤 진정성을 가진 것 같아서 그렇게 결벽을 떤다, 모든 신자에게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이 말로 공격하면 모두가 대꾸를 못하는 공격이 하나있다, ‘당신이 요새 교만해’ 그러면 하던 봉사도 손 놓게 된다, 결벽증이 되어있지 나가고 더 나가고 자랑해 기뻐해 고함질러 라는 쪽의 방향 그 자체가 전혀 없는 거다, 그러니 길도 없다, 늘 모든 신앙내용을 대표하는 단어들이 다만 추상명사에 불과하고 그것이 실제로 살아내는데 필요한 현실적인 도구나 현실적인 통찰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 있는 것같이 예수를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보고 나한테 와서 나를 유명하게 해 주세요 나를 유능하게 해 주세요 나를 성공하게 해 주세요 그런 걸로 나를 부르지 말고 나는 어떤 하나님이고 내가 목적하는 자녀들에게 무얼 만들려고 하는 가를 봐라 그게 그 아들을 보내시는 가장 큰 이유이다,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는 뜻은 지옥 가는데서 천국으로 데려가는 문제가 아니라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고집이 딴 대로 가버린. 하나님을 잃어버린.
그래서 허망하게 된 인생을 그 허망과 벌에서 구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원래 가졌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붙잡아 왔어야 되는 것이 십자가이며 부활이다,
이 명예와 영광이 약속되어있는 존재이지만 늘 승리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이 철이 드는 대는 많은 실패와 많은 후회가 있는 게 마땅하다,. 왜냐하면 외워야 하고 소원해야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되어야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지혜는 경험을 해야 생기는 것이다, 잘못 들어가면 엉뚱한 데로 빠져나오게 되고 그러면 거기서 회개를 하지마시고 돌아와 아까는 좌회전에서 망했다 그러면 이번은 우회전을 하자 이렇게 돌아서 끝없이 가서 넘어져서 자빠져서 낙심해서 피곤해서 그런 변덕과 후회들로 흐트러진 여러 점이 서로 이어짐으로 된 기회를 주셔서 내가 크는 것이다, 가야할 길을 직선으로 가면 선 하나이고 헤매면 그 땅이 전부 내께 되게 하는 하나님의 기가 막힌 방법 십자가의 도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 그러니 인생살이는 나는 형통하고 평화로워야 하는데 왜 진심을 갖고 있어도 하나님은 내게 이 답을 주시지 않고 곤고한 날로 나를 겁을 주시는가. 이게 크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의 방법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갑자기 여러분의 처지와 실력과 현실에 대해서 긍정적인 마음이 생겨야 되는데 나를 만드시고 내게 약속하시고 나를 부르시고 목적하시는 이가 이런 분 이런 의지 이런 현실로 나를 이끌고 있다, 라는 이해이다, 그걸 믿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말씀을 보면 우리들의 갈등이 그대로 드러난다,
엡 4:17-19.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그러니까 하나님이 안 계시면 인간이 어떻게 되는가, 가치와 명예를 만들 수가 없다,
인간이 최고로 원하는 것이 뭐냐 하면 안심하는 것이다, 자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으면 체념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어려움을 만나면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죽어버려야겠다. 이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당하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다른 대안이 없다, 막다른 골목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자체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명예와 영광을 만들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말씀은 그들은 총명이 어두워지고 감각이 없고 방탕했다 그런다, 방탕했다는 것은 도덕적인 문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는 언제나 시간을 기회를 낭비하는 것을 말한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말은 그 시간동안 너는 뭐했냐. 맡긴 것 네게 주어진 기회에서 네가 한 것이 뭐가 있느냐 무슨 결과는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네가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주인의 지위에 그 지위가 가지는 명예와 영광에 대해서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너는 묻어놓고 나는 하나도 안 까먹었습니다, 이게 고작이냐.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정성이라는 것은 하루에 성경을 20장 읽는다. 기도를 두 시간한다, 이런 걸 정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러분들에게 정성이라고 할 때는 가야할 길을 열심히 가는 것이 정성이다, 그래서 가야할 길을 알아야 된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모르는 것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계속 헤맨다, 본인은 열심히 다니는데 엉뚱한 곳에 가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축구시합을 하면 골치 아픈 것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11명이 한다, 그러니까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할 줄 모르면 언제나 혼자 딴 데 있다, 예수를 믿는데 하나님이 무얼 하자. 그러는 것을 모르고 자기가 욕 안 먹는 것이 전부인 신앙생활을 한다, 그래서 회개만 하다만다, 제 길을 찾아 나아가야 된다, 허망하고 감각이 없다, 생명이 없기 때문에 죽는다는 말밖에는 없다, 얼마나 적절한 절망의 표현인가,
사람은 다 죽는 게 끝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엡 4:20-24.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도덕적 윤리적인 말씀이 아니라 의와 진리와 거룩 이라는 것은 생명과 가치와 명예와 영광에 속하는 단어들인 것이다,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라 인간이란 이래야 된다. 라는 것에 대한 철이 들어야 된다,
앞에 있는 것같이 세상 사람들이 사망에 잡혀 있는 자들이 절망밖에. 막다른 비명밖에. 분노 밖에 할 수 없는 것과 얼마나 다른가,
위로를 할 수 있고 용서를 할 수 있고 같이 있어 줄 수 있는 것은 우리 밖에 없다,
우리라는 신분이 가지는 운명에 대해 우리가 걷고 있는 현실들이 만들어지는 일에 대해 세상과 같이 너 죽고 나 죽자가 아닌 자폭하는 것이 전부가 아닌 소망과 자라남이라는 것을 배우고 실제로 결실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끌고 가고 있다,
엡 5:15-18.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 충만은 여기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특별한 감격이나 확신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자라나는 것을 말한다, 자라나서 열매를 맺는 것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가 필요하다고 하면 언제든지 성령께서 오셔서 확신시켜주시고 새로운 계기와 격려와 분발을 시키시는 감동으로 오실 수 있다, 그러나 훨씬 보편적으로 모든 성도들에게는 성령이 와 계시고 이 성령은 어떻게 일하시는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적 정황. 경우 조건 속에서 내 선택에 말씀을 자꾸 보태신다, 우리는 겁이 나서 믿음의 선택보다는 그냥 세상에서 보는 생존경쟁의 법과 그리고 체념과 외면의 길을 가장 많이 선택한다, 그래서 그 결과를 보게 된다, 60세쯤 되면 제일 후회하는 게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할 걸 왜냐하면 어느 대학 나왔느냐는 어디를 가도 묻기 때문이다, 이제 그 결과를 보면 잘한 친구가 어떤 결과에 이르렀고 못한 친구는 어떤 결론에 이르렀느냐는 세상이 알고 있는 인과법칙과는 다른 법칙이 신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세상의 법칙에 안주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찬송이라는 자리까지 우리를 끌고 나아가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고달프다, 그래서 복된 길로 붙잡혀 오고 있는 것이다,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생각이 없어지는 시간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술 취하는 것과 성령의 충만을 서로 대조하는가, 하나는 완전히 머리를 비워버리는 것이고 하나는 완전히 믿음에 맡긴 것이다, 믿음에 맡긴다는 것은 책임을 떠 밀어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의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 많은 우회로를 겪는다 그리고 우여곡절들이 그냥 우연히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그때 필요한 도전이며 인도이며 나를 깨우치는 것인데 우리는 그걸 언제쯤 알까? 이 말은 여기 와야 된다. 이런 간단한 말이 아니라 이렇게 과거가 없이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후회가 더 많은 우리의 과거가 이걸 만들어내는구나 라고 알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비유인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무슨 말인지 악하고 게으른 종이 무슨 말인지 우리를 어디로 끌고 있는지 여기 계속해서 어리석지 말라 지혜로운 자가 되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누구고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일하시는지 그것이 어떻게 복된 것인지를 모르면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묻어놓게 되는 것이다, 그러지 마시고 씩씩하게 배짱 좋게 사셔야 된다, 기독교전문 용어로는 믿음가지고 사셔야 되는데 믿음이라고 그러면 추상명사가 되고 만다, 믿음 소망 이렇게 하고 아무것도 안 한다, 배짱 좋게 라는 것은 부닥친 것이 나를 꺾을 수 없다. 나를 곤란하게 할지언정 내 운명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이 그렇기도 하다, 여기가 그만인가보다. 나는 더 못 가겠다 이것까지인가까지 일을 한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인생에서 배우는 그래서 이 사회 속에서 예수를 모르는 사람 앞에서 동일한 조건 속에서 만났을 때 그들과 보이지 않게 분명한 예수 믿는 자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우리의 자랑이고 우리 존재의 특성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며 우리가 간절히 비로소 완성하고 싶은 소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달란트는 고대 서아시아와 그리스에서 쓰였던 질량과 화폐의 단위 대략 26키로에서 32.2키로 사이다 3,000세겔이 1달란트에 해당되고, 중량은 약 34.272kg이었다 6000데나리온 1데나리온은 하루 노동자의 품삯이다, 150000X365X2은 4.380.000
1 달란트는 금34kg
금1kg 80.850.000
금34kg은 2.748.900.000
금 1달란트 27억4천8백9십 만원 당시에도 고관대작들이나 만져볼 수 있는 금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