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영 透竹危橋(투죽위교)
-통나무대로 걸쳐 놓은 높직한 다리
골짝에 걸쳤기에 대숲을 뚫었는데
하늘로 둥둥 뜨니 연못마저 빼어나고
높다란 다리 덕분에 속세와는 멀어져
架壑穿脩竹(가학천수죽) 골짜기에 걸쳐서 죽림으로 뚫렸는데
臨危似欲浮(림위사욕부) 높기도 하여 하늘에 둥둥 뜨있는 듯
林塘元自勝(림당원백승) 숲 속의 연못 원래 빼어난 승경이지만
得此更淸幽(득자갱청유) 다리가 놓이니 속세와는 더욱 멀어졌네
* 주자의 무이도가(武夷棹歌) 중에는 도통이 끊김을 단교(斷橋)로 표현했다. 이 시에서는 다리를 놓아 더욱 경치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다. 이는 학도(學道)의 기운이 소쇄원 외에도 세속에까지 이어질 조짐을 암시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단서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시에서 나타난다.
* 청유(淸幽): 속세와 떨어진 조촐하고 고요한 곳.
제10영 千竿風響(천간풍향)
-대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저 멀리 사라졌다 다시 분 청풍이여
바람과 대나무는 원래 정이 없다지만
밤낮 간 울려 퍼지는 생황소리 맑다네
已向空邊滅(이향공변멸) 하늘 가 저 멀리 이미 사라졌다가
還從靜處呼(환종정처호) 다시 고요한 곳으로 불어오는 바람
無情風與竹(무정풍여죽) 바람과 대는 본래 정이 없다지만
日夕奏笙篁(일석주생황) 밤낮으로 울려대는 대피리 소리
* 도통이 잘 이어져 자연의 음악이 울리는 선경이다. 대나무가 높이 자라서 윗부분은 바람에 흔들려 소리가 난다. 이 소리를 선계의 음악으로 듣는다.
* 생황(苼篁) 또는 생우(笙竽):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
제11영 池臺納凉(지대납량)
-못 가 언덕에서 더위를 식히며
남촌은 무척 덥나 여기는 유독 시원
언덕 가 대바람은 열기를 식혀주고
못물은 바위 위 흩어져 잔구슬로 구르네
南州炎熱苦(남주영열고) 남쪽 고을은 무더위가 심하다지만
獨此占凉秋(독차점양추) 이 곳만은 유달리 서늘한 가을
風動臺邊竹(풍동대변죽) 바람은 언덕 가의 대숲에 일고
池分石上流(지분석상류) 연못 물 바위 위에 흩어져 흐르네
* 48영 중에는 여름을 노래한 것이 특히 많다. 소쇄원은 여름을 지내기에 좋은 곳이다. 이 곳을 아끼며 더위를 피하기 위한 제일의 장소로 여기는 이 시에서, 김인후는 양산보에 대한 부러움마저 가지고 있다.
* 납량(納凉): 더위를 식힘.
제12영 梅臺邀月(매대격월)
-매대에서의 달맞이
나무숲 잘라내니 매화대 확 트이고
달맞이 제격에다 구름 걷혀 달 훤해
찬 밤에 매화 비추니 얼음처럼 맑고녀
林斷臺仍豁(림단대잉활) 나무숲 쳐내니 매대는 확 트여서
偏宜月上時(편의월상시) 달 떠오는 때에 더욱 알맞아
最憐雲散盡(최련운산진) 구름 걷혀감이 가장 사랑스러운데
寒夜暎氷姿(한래영빙자) 차가운 밤이라 아름다운 매화 곱게 비추네
* 제11영이 지대를 노래했으니, 그 대구로 매대를 노래했다. 구름을 헤치고 내민 반가운 달의 모습이, 얼음에 비치는 모습에 청초한 선비의 기상을 말할 나위 없이 잘 드러낸다.
* 매대(梅臺): 심어놓은 매화가 자라는 언덕.
* 빙자(氷姿): 氷姿玉質. 옥처럼 맑고 깨끗한 살결과 아름다운 자질. 매화의 이칭.
제13영 廣石臥月(광석와월)
-넓은 바위에 누워 달을 보며
누우니 하늘 말끔 달빛도 밝을 시고
너럭바위 좋은 자리 숲 그림자 운치 뿌려
깊은 밤 잠 못 이루니 이리저리 뒹굴어
露臥靑天月(로와청천월) 나와 누우니 푸른 하늘에 밝은 달이라
端將石作筵(단장석작연) 넓은 바위는 바로 좋은 자리가 됐네
長林散靑影(장림산청영) 주위의 숲에는 그림자 운치 있게 흩어져
深夜未能眠(심야미능면) 깊은 밤인데도 잠 이룰 수 없어라
* 좋은 일이 올 느낌이 들어 바위에서 이슬을 맞으며, 밝은 달을 쳐다본다. 잠을 이루지 못해 ‘애타는 마음’보다, 참 좋은 자연인데도,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예찬으로 봐야 할 것이다.
* 노와(露臥): 비나 이슬을 가리는 물건도 없이 그대로 눕는 것.
* 청영(淸影): 솔이나 대나무 등의 그림자를 운치 있게 이르는 말.
제14영 垣竅透流(원규투류)
-담장 밑구멍을 뚫고 흐르는 물
내딛고 글 읊으니 생각은 더욱 깊어
근원을 찾긴 해도 거슬러 가지 못해
담 구멍 흐르는 물만 부질없이 살피네
步步看波去(보보간파거) 한 걸음 한 걸음 물을 보고 지나며
行吟思轉幽(행음사전유) 글을 읊으니 생각은 더욱 그윽해
眞源人未沂(진원인미기) 사람들은 진원을 찾아 거슬러 가지도 않고
空見透墻流(공견투장류) 부질없이 담 구멍에 흐르는 물만을 보네
* 지금도 담장 밑에 도랑을 내어 예전처럼 물이 흐르고 있다. 계곡물이 흐르는 줄기를 두고 그 위에 담을 쳐놓음은 하나의 신기(神技)에 속한다. 오곡류는 바로 그 아래이며, 좌측으로 오곡문을 지나면 뒷산으로 이어진다.
* 투류(透流): 透墻流. 담을 뚫고 흐르는 물.
* 행음(行吟): 거닐면서 글을 읊는 것.
제15영 杏陰曲流(행음곡류)
-살구나무 그늘 아래 굽이도는 물
지척에 개울줄기 분명히 오곡(五曲)인데
굽이쳐 흐른 물은 세월도 따라 잡기
오늘은 살구나무에서 공자 말씀 찾으리
咫尺潺湲池(지척잔원지) 지척에 물줄기 줄줄 내리는 곳
分明五曲流(분명오곡류) 분명 오곡의 구비 도는 흐름이라
當年川上意(당년천상의) 당년 물가에서 말씀하신 공자의 뜻
今日杏邊求(금일행변구) 오늘은 살구나무 가에서 찾는구나
* 여기서는 '상생(相生)'의 원리를 노래했다. 김인후가 지은 ‘소쇄원주인 안’에서 이라고 한 것을 보면, 물이 굽이쳐 흘러감을 노래한 것으로도 생각된다. 오곡수는 내원의 상류로서 담장 바로 아래부터 시작한다. 물의 흐름을 처음부터 상생으로 축복한 뜻이 있다. 동봉의 살구나무는 약효가 있다는 고사가 있는데, 여기서 행림은 의원을 뜻한다. 불로장생은 누구나 바라는 꿈이다.
* 잔원(潺湲): 물이 줄줄 흐르는 모양.
* 천상의(川上意): 공자가 川上에서 ‘세월은 물과 같아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간 다’고 한 말의 뜻.
제16영 假山草樹(가산초수)
-석가산의 풀과 나무들
큰 힘을 안들이고 가산(假山)을 만들었소
조경(造景)은 형세 좇아 우거진 숲 이뤘기에
아무렴 보기 좋도다 자연 산야(山野) 그대로
爲山不費人(위산부비인) 인력을 들이지 않고 만든 산이지만
造物還爲假(조물환위가) 조물(造物)이라 도리어 석가산 됐네
隨勢起叢林(수세기총림) 형세를 좇아 우거진 숲을 일으켰구나
依然是山野(의연시산하) 역시 산야 그대로 이네
* 광풍각(光風閣) 아래 물가에 생긴 조그만 가산(假山)이 있다. 여기에 작은 화초와 나무들을 심어 산처럼 꾸몄다. 가산은 축소된 자연으로, 인공적인 수식을 가하여 감상하는 우리 조상들의 취미였다.
* 가산(假山): 석가산(石假山)의 준말. 정원 등에 돌을 모아 인공적으로 만든 산.
* 총림(叢林): 잡목이 우거진 숲.
제17영 松石天成(송석천성)
-천연의 소나무와 바윗돌
뫼 높아 굴러 내린 바윗돌 부스러기
뿌리는 얼기설기 긴 세월 꽃핀 솔 몇
기개는 곧고 푸르러 하늘 높이 솟았네
片石來崇岡(편석래숭강) 높은 뫼에서 굴러 내린 조각 바위들
結根松數尺(결근송수척) 뿌리 얽혀 서있는 두어 자 소나무
萬年花滿身(만년화만신) 오랜 세월에 몸엔 꽃을 가득 피우고
勢縮參天碧(세축참천벽) 기세 곧아서 하늘 높이 솟아 푸르네
* 소쇄원 가장자리는 대나무를 심고, 그 안쪽으로 소나무를 심어 풍치를 돋운 것을 알 수 있다. 소나무도 대나무와 같은 시적 상상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
* 천성(天成): 자연스럽고 도리에 맞는 일.
* 숭강(崇岡): 높은 산. 숭산.
* 참천(參天): 공중에 높이 솟아 늘어짐.
이기운 영역 (2023. 4. 4)
<The Natural Pine Tree and Rock>
Sang-Cheol, Han
A weathered stone fragment, tumbled down from the peak in high,
Roots are twining through long years, a few pine trees bloom shy,
Their spirits’re straight and green, reaching up towards the sky.
(Sang-Cheol, Han The anthology of Sijo, From the Soswae-won 48 poems, the 17th poem. The page 162 Translated by Kinsle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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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tural Pine Tree and Rock>
A weathered stone fragment,
Tumbled down from the peak in high,
Roots are twining through long years,
A few pine trees bloom,
Their spirits
Are straight and greenish,
Reaching up towards the sky.
이 시조를 한 번 7행 Sijo로 번역해 보았다.
[출처] <#영역시, Sijo><# 松石天成(송석천성) –천연의 소나무와 바윗돌, The Natural Pine Tree and RocK, 한상철>|작성자 kwoonlee
제18영 遍石蒼蘚(편석창선)
-바윗돌에 두루 덮인 푸른 이끼
바위는 오랠수록 안개에 잘 젖어요
첩첩이 꽃핀 이끼 골짜기 이루었기
은자는 번화(繁華)가 싫어 돌무더기 좋다네
石老雲煙濕(석로운연습) 바윗돌 오랠수록 구름 안개에 젖어
蒼蒼蘚作花(창창선작화) 푸르고 푸르러 이끼 꽃을 이루네
一般丘壑性(일반구학성) 흔히 구학을 즐기는 은자들의 본성은
絶義向繁華(절의향번화) 번화함에는 전연 뜻을 두지 않는다네
* 오를 때 밟을수록 재미있던 이끼가 바위에 덮인 모습을 그윽하게 묘사하고 있다. 김인후는 이 시를 통해, 여기야말로 '도통'이 끊어지지 않은 곳이라고 말한다. 제17영의 ‘송석’에 대(對)하여, 18영에서는 ‘편석’으로 짝을 맞췄다.
* 구학(丘壑): 언덕과 골짜기. 은자(隱者)의 주거(住居) 또는, 그 즐거움의 비유.
첫댓글 지금 병중이라, 양해 바랍니다.
오랜만에 뵈옵게 되네요.
병중이오니 무리는 금물입니다.
어서 떨쳐 일어나시고
새해에는 뜻한 바를 꼭 이루시고
가내에 무탈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