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해수 담수화 시설이 부식된 상태로 방치돼 있다. 2000 억 원을 들여 만들었지만 이곳에서 생산한 담수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될 수 있다’는 괴담성 소문이 돌면서 고철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기장 해수 담수화 시설은 2014년 12월 해수담수화 신기술 개발 등 세계 물 시장 선점을 꿈꾸며 완공됐지만, 여기서 나온 물을 식수로 공급한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큰 반발에 부딪혔다.
고리원전과 11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삼중수소를 비롯한 방사능 물질 우려가 불거진 것이다.
부산시는 당시 삼중수소를 비롯한 방사능 52개 품목에서 식수 적합판 정을 받았다고 홍보했으나, 거센 반발로 인해 2018년 가동을 완전히 멈췄다.
봉대산 자락에 자리 잡은 면적은 4만 5850㎡에 달하고 민간 투자 706 억 원도 들어갔다. 담수화 설비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염분이 섞일 것이란 걱정은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설에서 11km 떨어진 고리 원전이 발목을 잡았다. 2015년 해수담수화 시설을 시험 가동해 만든 담수에선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 물질이 단 한 번도 검출되지 않았다.
그런데 환경 단체 등은 “원전이 가까우니 삼중수소 같은 방사성 물질이 섞여 있을 수 있다”라고 주민 불안을 부추겼다.
‘방사능 물’ ‘핵 수돗물’ 같은 용어가 적힌 피켓이 마을 곳곳에 나붙었다. 주민들 불안도 커지면서 국내 첫 해수담수화 시설은 시범 가동도 멈춰야 했다.
부산시 상수도본부는 담수화 시설로 유입되는 바닷물과 생산한 담수의 수질을 수백 번 과학적으로 검사했다.
그런데 원전 가동으로 만들어지는 대표적 물질인 삼중수소는 주변 바닷물과 생산한 담수에서 한 번도 기준치(리터당 1~1.4베크렐) 이상으로 검출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해수담수화 시설보다 고리 원전에 훨씬 가까운 지역에 횟집도 많고 어업 활동도 활발하기 때문에 ‘방사능 물’ ‘핵 수돗물’이란 주장이 통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했다. 해수담수화 시설에 들어가는 바닷물 자체에서 기준치 이상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는데 어떻게 만든 담수에서 삼중수소 등이 나온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시민 단체는 담수화 시설이 시험 가동되자 “원전 인근 해수 담수 방사능 물 공급 반대” “원전 인근 핵 수돗물 공급 반대” “방사성 물질이 포함됐을 수 있는 물 공급 반대”라고 했다.
정부 측이 담수화 시설을 짓기 전에 주민 의견을 듣고 예상되는 ‘괴담’을 반박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처음 공장을 세울 때 주민 의견을 제대로 듣는 절차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
라며 “만약 다시 수돗물로 쓰겠다고 한다면 ‘제2의 해수담수화 반대’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말 ‘기장 해수담수화 시설 활용 방안’을 위한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올해 12월 활용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계획이지만 현재 공장 재가동은 쉽지 않을 것이다.
국내 검사 결과를 믿지 못한다고 해서 미국에도 열 번이나 검사를 의뢰해 식수로 '안전하다'라는 결과를 받았다.
그런데도 환경 단체 등은 막연한 불안을 계속 조장했다.
결국 이런 괴담에 불안을 느끼는 주민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해 시범 가동도 멈춰야 했다. 怪談이 과학을 이긴 것이다.
해수담수화 시설로 들어가는 바닷물에서 기준치 이상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는데 어떻게 역삼투압 방식으로 처리한 담수에서 삼중수소 등이 나올 수 있나, 불가능하다.
그 바닷물에서 자란 생선 멸치 회와 미역은 마음껏 먹으면서 그 바닷물로 만든 식수는 위험하다고 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선 괴담이 막연한 불안을 부추겨 과학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광우병, 사드 전자파, 세월호 잠수함 충돌 등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