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술작(述作)의 유래
본초는 1274년 니치렌 대성인 53세 때 미노부에서 쓰신 어서입니다. 진필은 상봉(上封), 제1지(紙), 제2지, 제4지, 제5지의 모두(冒頭) 3행의 단간(斷簡)과 4행의 단간이 니시야마(西山) 본문사(本門寺) 등 5곳에 나뉘어 소장되어 있습니다.
본초에 관해서는 이전에, 제1지를 『의식어서(衣食御書)』, 제4지를 『여인 아무개 답서(女人某御返事)』, 그 외에는 각각 다른 단간으로 취급해 왔으나 1994년 『신편어서』 편찬 시, 내용이나 진필 등으로 합병하여 하나의 서(書)로 수록하였습니다.
또한 본초는 수신인 부분이 빠져있는데, 내용으로 보아 대고중은 고(故) 난조효에이시치로(南条兵衛七郎)님의 부인인 우에노(上野) 부인이라 여겨집니다.
1265년 3월 8일에 난조효에이시치로가 서거하신 후, 대성인은 묘소 참배를 위해 특별히 가마쿠라에서 우에노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때 장남인 난조도키미쓰님은 7세로 아직 어렸었고 그후 9년간 난조 가문에서 대성인께 보낸 소식은 없었습니다.
1274년 5월 17일 도키미쓰님 16세 때 대성인이 가마쿠라에서 미노부로 들어가시자, 같은 해 7월 도키미쓰님은 난조 가문을 대표하여 긴급히 공양물을 가지고 미노부에 계신 대성인을 참예하였습니다.
이때의 일에 대해 대성인은 7월 26일 자의 『난조 미망인 답서(南条後家御前御返事)』에서 「가마쿠라에서는 그때만의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잊지 않고 계신 일은 말로 다 할 수 없느니라」(신편어서 p.741)라고, 가마쿠라에서 뵌 일은 덧없는 인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잊지 않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난조 미망인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후 난조가(家)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양드리며 대성인을 외호했습니다. 그리하여 대성인 문하 중에서 가장 많은 40여 통에 달하는 어서를 하사받았습니다. 1274년에는 11월에도 각종 공양을 대성인께 보내드리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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