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에 한번씩 만나는 '오늘의 교육' 읽기 모임은 한여름밤 대청마루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흑백영화 같습니다.
한낮의 뜨거움이 아직 다 사라지지 않은 고즈넉한 저녁. 조그만한 거실에 놓인 탁자 앞에 3명의 남녀가 앉아 있다. 소리없이 돌고있는 천정의 선풍기는 선선함을 더해준다. 당근이 많이 들어간 김밥과 함께 차를 마시며 나누는 2시간 동안의 책이야기.
어떠신가요? 마치 롱테이크로 찍은 영화같지 않나요? 게다가 출연자들의 대화는 학교 안밖의 다양한 이야기에 모임 참석자 각자의 경험이 보태지면서 한껏 생동감 있게 펼쳐집니다. 그 속에서 교육문제 해결의 단초를 발견하기도 하고요.
가령, 교사 시절 문제 학생과의 진심을 다한 대화를 통해 학생 스스로 진실을 말 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는 참가자의 말은 교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교사에게 사실을 말해도 될 것이라는 '학생의 믿음'이 교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학생인권이 학생을 학생으로 존중하겠다는 믿음에서 시작한 것처럼 말입니다.
한편으론, 내신 등급이나 수능시험 점수가 학생과 학부모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이 학교를 정글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데 믿음, 신뢰라는 말이 너무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학교를 정글로 만든 제도와 사람들이 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교육이 이대로 가서는 안되는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한동안 학생인권과 교권이 회자되고 각종 제도와 정책이 시행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구성원의 목소리가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오늘의 교육' 특집 코너를 읽고 든 생각입니다.
이번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글은 서한영교 선생님의 '복수의 교육학'입니다. '단수', '복수'에서 '복수'가 아닌 avenge 로써의 복수!
도처에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넘어서고, 지배 권력의 세상을 전복시켜 나가는 '복수의 교육학'은 마치 꾹꾹 눌러 쓴 절규이자 반성문이며 마침내 도달한 삶에 대한 단단한 다짐의 글 같습니다.
복수의 교육학은 스물한 살에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고 미등록 노점상 단속으로 왼쪽 다리마저 부러진 최정환 열사가 자신의 몸에 시너를 붓고 불을 붙이며 남긴 유언 "복수해 달라" 라는 말에서 시작됩니다.
'말없이 죽어가야 했던 인간/동물/식물/미생물/사물/정령 들의 마지막 말일 수도 있'는 '복수'를 운명처럼 받아 든 글쓴이는 노들야학 교사로서 힘없는 것들을 마치 없는 것처럼 대하는 현 시대의 무도함에 대한 경고, 그리고 죽음에 맞서 살아내는 과정으로의 교육학을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교육이 자연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면 '복수의 교육학'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주위를 살펴야하는 당위를 제공합니다.
이준수 선생님의 '양양에서 태어나 양양에서 사는 게 뭐 어때서' 는 14개 시군 중 10개 지역이 인구소멸지역으로 분류된 전라북도의 상황과 유사하여 공감되는 점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노력하는 선생님을 응원하게 됩니다.
한여름밤의 롱테이크 영화는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났습니다. 그러나 End 가 아닌 Comming soon입니다. 다음 가을밤이 있으니까요. 오늘의 교육 제 76호가 기다려집니다.
첫댓글 학생 인권이 학생을 학생으로 존중한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는 말씀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