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碧玉의 세월, 모슬포 항에서
13년 전으로 거슬러, 2005년 이맘때였다.
이제 며칠이 지나 6월 말일이 되면, 내 그동안 31년 9개월을 몸담았던 검찰을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바로 그 나의 떠남을 기념해서 당시 검찰의 수장인 정상명 검찰총장께서 점심 밥자리를 만들었다.
이재영 대검찰청 사무국장을 비롯해서 검찰 간부들이 여럿 함께한 그 밥자리에서의 일이다.
이런저런 사사로운 대화를 나눈 끝에 정 총장께서 고등어 이야기를 꺼냈다.
“요새는 고등어도 양식이 된다고 하네요.”
다들 의아한 눈초리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서 가두어서 키우는 양식은 안 되는 줄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한 목소리로 이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요?”
정 총장께서는 그 되물음에도 태연했다.
“그렇다네요. 나도 고등어는 성질이 뭣 같아서 양식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안 그렇데요. 양식이 된데요. 그것도 민물에서 양식을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을 이었다.
그 답에, 우리들 한 번 더 의아한 눈초리여야 했다.
“에이, 그럴리가요. 더군다나, 민물에서라니요.”
역시 다들 그렇게 되받았다.
“아니라니까요. 내 친구가 고등어 양식을 성공시킨 주인공이거든요. 안동댐에서요. 그래서 거기서 염장해서 나오는 고등어가 ‘안동 간고등어’라는 겁니다. 사료를 하도 잘 먹여서, 그게 그리도 맛있다는 거지요.”
정 총장께서 이어 간 설명이 그랬다.
그쯤에서 실실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 총장께서 우스개로 한 말로 치부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신분이 검찰총장인데다가 하나 웃지도 않고 평이한 말투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나로서는 진짜로 그런가 했다.
그래서 정색으로 그 주위를 향해 이렇게 한마디 던졌다.
“왜들 웃으세요? 총장님께서 괜한 말씀 하시겠어요?”
내 그 말에, 이제는 말을 꺼낸 정 총장께서도 실실 웃고 있었다.
그때서야 내 눈치를 챘다.
안동 간고등어가 하도 유명하다 해서, 정 총장께서 농담 삼아 한 말을 나는 진담으로 알아듣고 있었던 것이다.
한 순간의 해프닝이긴 했지만, 내게 있어서는 얼굴 뜨거워지는 부끄러움의 시간이었다.
진짜로 고등어 양식이 있었다.
좁쌀만 한 노르웨이 산 치어를 수입해서, 제주바다에서 가두리로 양식한다는 것이었다.
제주 모슬포항의 ‘미영이네 식당’을 들러서, 내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결혼 40주년 기념으로, 오늘은 내가 저녁을 삽니다. 고등회를 잘하는 집이 있어서 그리로 안내하겠습니다.”
‘Add Korea’농장의 주인인 내 친구가 그렇게 저녁을 사겠다고 나서는데, 이를 뿌리칠 재간이 없었다.
내세우는 그 명분을 내가 알려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저녁을 얻어먹으려고 작정하고 나와 아내의 결혼 40주년을 알려준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얻어먹음으로 더 두터운 정이 쌓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아니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상으로 차려질까 하고,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었다.
산방산을 끼고 돌아 달려간 곳이, 고등어 전문이라는 바로 ‘미영이네 식당’ 그곳이었다.
큰 접시로 하나 가득 고등어회가 얹혀 있었다.
씹을 것도 없이, 입안에서 살살 녹고 있었다.
석양의 모슬포항에서 생전 처음으로 맛보는 고등어 회, 친구의 마음씀씀이가 너무나 고마운 내 인생의 감동적 이력으로 치부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