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스름한 빛깔에 달고 구수한 맛 토종 ;'앉은뱅이밀'> 시인 박목월이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 노래했을 정도로 본래 우리 땅에서 밀밭은 흔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서양의 값싼 밀이 들어오면서 밀 재배는 보기 힘들게 되었고,
국내 곡식 소비량 중 쌀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하면서도 자급률은 단 2%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
그런데 조상 대대로 우리 땅과 기후에 적응해 자라온 순수 토종 밀인 ‘앉은뱅이밀’을 생산하는 곳이 있다.
3대에 걸쳐 앉은뱅이밀을 키우고 이를 도정하여 토종 우리밀을 생산해내는
경남 진주시 금곡면에 위치한 ‘금곡정미소’를 찾았다.
<보리 찧고 밀 빻고 국수 뽑던 '밀가리공장'>
금곡정미소의 3대째 대표이자 금곡우리밀작목반 반장인 백관실 씨.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희뿌연 가루 분분이 날리며 쉼 없이 돌아가는
나무 제분기가 시끄러운 이곳은 100여 년 역사를 지닌 ‘금곡정미소’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토종 우리밀인 ‘앉은뱅이밀’을 생산하는 이곳은 매년 밀을 수확하는 6월부터
그것을 탈곡하고 빻아 햇밀가루로 만드는 8월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50여 년간 이곳에서 밀가루를 생산해온 백관실 대표는
밀가루가 내려앉은 하얀 눈썹 아래 커다란 미소를 걸고 있었다.
Q> 앉은뱅이밀’이라는 이름이 인상적입니다. 일반적인 우리밀과 다른 것인가요?
백 대표
키가 60~80cm까지밖에 자라지 않아 이름 지어진 ‘앉은뱅이밀’은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조상 대대로 내려온 토종 우리밀입니다.
우리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금강밀이 서양 종자를 들여와 개량한 것이라면
앉은뱅이밀은 어떠한 개량도 하지 않은 토종 종자로 개성도 강합니다.
낱알에 붉은 기가 돌아서 제분한 밀가루를 반죽해 요리하면 누르스름한 색을 띠어요.
당도가 높아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남다르지요.
수제비나 부침개 등 우리 향토 음식에 이만한 밀가루가 없어요.
글루텐 함량도 낮아 밀가루 음식인데도 소화가 잘되고 속이 편안해요.
Q> 그렇다면 왜 이제까지 앉은뱅이밀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건가요?
백 대표
한국전쟁 당시 구호물자로 수입 밀이 들어오기 시작해 1960년대에 값싼 수입밀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우리밀은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1980년대까지는 우리밀 자급률이 10% 가까이 되었어요.
그런데 1984년 정부에서 밀 수매를 중단하면서 많은 농민이 밀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 우리밀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때에도 수입 개량종인 금강밀이 채택되고 앉은뱅이밀은 외면당했어요.
대형 제분 공장에서는 수입 밀에 맞춘 제분기를 쓰는데,
수입밀과 비슷한 부피와 성질을 지닌 금강밀은 그나마 같은 기계로 제분할 수 있지만
앉은뱅이밀은 부피도 다르고 찰기도 강해 따로 제작해야 하거든요.
Q> 그렇다면 토종 밀인 앉은뱅이밀을 제분, 생산하는 곳은 전국에서 금곡정미소가 유일한가요?
백 대표
그렇습니다.
정부 수매가 없으니 재배하는 농사꾼이 없어지고, 재배를 안 하니까 정미소마다 제분기를 다 없앴어요.
그런 중에도 앉은뱅이밀이 맛이 좋아서 집에서 먹고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조금씩 농사짓는 사람들은 꽤 남았어요.
근데 제분할 곳이 없으니 앉은뱅이밀용 제분기가 남아 있는 우리 정미소로 농사지은 것을 다 들고 오는 거예요.
전국에 남아 있는 앉은뱅이밀은 다 여기로 모여들었어요.
그중에는 자기가 농사짓고 남은 것을 파는 사람들도 있고,
제가 그것을 다 사들여서 밀가루를 만드니까 앉은뱅이밀가루를 사려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여기로 모여든 것이지요.
어린 시절부터 맛보고 자란 사람들은 계속 찾게 되는 맛이거든요.
그러니까 도시에 나갔던 사람들도 명절 쇠러 고향에 돌아와서는
꼭 와서 밀가루를 사 가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유지해온 거예요.
Q> 그래도 값싼 수입 밀과 경쟁하기에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요.
백 대표
이 맛을 알고 찾아주는 소비자들 덕에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80년대, 90년대 인터넷 쇼핑은 물론 택배도 활성화되지 않던 시절에도 우체국 소포로 받아 가던 소비자들이 있었습니다.
부산을 비롯한 경남 지역의 도시에서는 명절이 되면
아파트 부녀회에서 단체로 구매를 해서 직접 트럭을 끌고 와서 실어갔어요. 오로지 입소문만으로 구매가 이뤄졌지요.
할아버지 때 10톤 생산하던 것이 제가 맡고 나서 50톤으로 늘었고 5년여 전에는 80톤까지 늘었어요.
물론 중간에 우리밀의 인기가 급락했던 때에는 한 포대에 1만원씩 손해 보면서 소먹이로 판 적도 있었지요.
그러다 작년부터 인기가 급상승해서 올해는 200톤을 생산 중입니다.
이 중 100톤 이상이 순수 ‘개미 소비자’ 들과의 직거래로 이루어지니 굉장한 일이지요.
'개미 소비자’들 덕에 대형 마트 등의 유통 체인과 거래 하지 않고 직거래 방식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내년에는 300톤으로 생산량을 늘릴 예정입니다.
<장마 때도 군불 때며 지켜낸 토종 종자>
금곡정미소에서는 앉은뱅이밀로 일반 밀가루와 통밀가루, 우리밀국수 3가지 제품을 생산한다.
국수 역시 방부제나 보존료 없이 만들어 자연 건조한 것으로 씹을수록 올라오는
특유의 구수함이 일품에다 앉은뱅이밀가루의 특성상 잘 불지 않는다.
금곡정미소는 단순히 앉은뱅이밀을 수확, 생산할 뿐 아니라
토종 종자를 보존, 지켜나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달 동안 그치지 않는 긴 장마로 수확해야 하는 보리가 다 썩어 흉년이 들었던 1963년 여름,
백 대표의 어머니는 빗속을 헤치고 홀로 밀밭에 나가 앉은뱅이밀 몇 단을 베어내 대청마루에서
발로 탈곡기를 돌려 낱알을 털어내고, 그 낱알을 온돌방에 널어놓고 군불을 때어가며 말려 앉은뱅이밀 종자를 지켜냈다.
방부제를 치지 않는 대신 일반 밀가루보다 건조율을 백 대표의 조부가 직접 고안해 주문 제작한
높이기 때문에 1년 두고두고 보관해 먹을 수 있다. 기계식 맷돌' 을 아직까지 사용한다.
Q> 생산되는 앉은뱅이밀은 모두 금곡정미소에서 직접 농사지은 건가요?
백 대표
20톤은 직접 농사를 지어요. 그중 2만평 가량이 채종포(씨앗) 농사예요.
그걸 전국에서 앉은뱅이밀 농사를 짓고 싶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팔고,
씨앗을 가지고 가서 키워온 것은 전량 다시 사들입니다.
혹시나 다른 밀이 섞이지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봐요.
그리고 금곡우리밀작목반의 20가구에서 120톤을 수확합니다.
앉은뱅이밀가루는 입자가 곱고 부드러워 같은 중량이라도 지금 막 나온 햇 밀가루가 가득이다.
일반 밀가루보다 부피가 더 나간다.
Q> 이름만 정미소지 농장이자 제분소, 판매처네요. 처음 물려받았을 때도 이렇게 규모가 컸나요?
백 대표
벼도 찧고 밀도 빻고 국수도 뽑는 데다 떡까지 했으니 이름이 정미소였지만
할아버지는 유독 밀가루 농사와 생산에 애착이 강했습니다.
손자 중에 장남인 저에게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켰어요.
어떻게든 물려줘서 정미소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집안 형편이 넉넉했음에도
일부러 제 학비를 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중학교만 졸업하고 16살 때부터 ‘밀가루 공장’ 일을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하루 종일 밀가루 뒤집어쓰고 일하는 게 어찌나 힘들고 서러운지 할아버지를 원망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앉은뱅이밀을 지켜내고 사람들이 다시 찾아주는 오늘날이 되어서야 할아버지가 늘 하시던
'농사가 제일 정직한 일이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되새기게 됩니다.
Q> 작년부터 앉은뱅이밀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백 대표
사람들이 건강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져서 이제는 가격이 비싸도 몸에 좋은 것을 찾잖아요.
수입 밀가루는 재배할 때부터 농약을 많이 치고 수입되면서도 대량의 방부제를 치지요.
앉은뱅이밀은 우리 기후에 적응하고 병충해에 맞서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농약을 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자라요.
그래서 ‘유기농 재배’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농약이나 방부제를 치지 않기 때문에 수입 밀처럼 껍질을 많이 깎지 않아도 되니 영양도 더 풍부하지요.
특히 글루텐 함량이 낮기 때문에 밀가루만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는 이들도 속 편히 먹을 수 있어요.
최근 로컬푸드에 대한 관심으로 앉은뱅이밀이 언론 등에 노출되면서 경남 지역에 한정되었던 인지도가 전국으로 넓어지고 있어요.
최근에는 서울에서 유명한 소규모 베이커리나 젊은 요리사들이 앉은뱅이밀을 사용해 빵 등을 만든다고 가져가기도 합니다.
ESSEN 앞으로도 대형 유통상 등과 거래하지 않고 직거래 위주로 판매하실 생각인가요?
백 대표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 체인 등에서 거래하자고 하는데,
'우리밀’이라고 이름 붙이고 고급스럽게 포장해서 몇 배씩 비싸게 파는 게 맘에 들지 않아요.
지금도 수입 밀에 비하면 가격이 비싸지만 그래도 큰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가격이거든요.
앞으로도 직판만 할 예정입니다. 또 하나 주력하는 게 채종포 생산량을 늘려 더 많은 농부에게 판매하는 것이에요.
앉은뱅이밀은 10월 말, 11월 초 씨앗을 뿌리고 난 뒤에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농부들에게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작물이거든요.
겨우내 그대로 두었다가 3월에 웃비료 한 번 주고 농약 칠 것도 없이 6월 초에 타작하면 끝이에요.
꼭 우리 쪽에서 농사짓지 않아도 앉은뱅이밀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토종 밀을 먹을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Q> 소비자들을 위해 앉은뱅이밀을 맛있게 먹는 법과 보관법을 알려주세요.
백 대표
햇밀가루가 나오는 7, 8월이 밀가루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때입니다.
우리 어르신들은 여름에 밀가루 음식을 즐겨 먹었어요.
서늘한 바람이 불고 땀방울이 식기 시작하는 때가 오면 신기하게도 밀가루 판매량이 뚝 떨어져요.
앉은뱅이밀가루는 일반적인 향토 음식이라면 무엇을 해도 맛있는데 수제비나 칼국수 등을 할 때에는
반죽 후에 일반 밀보다 조금 더 오래 숙성해야 보들보들 부드럽고 찰기가 돌아요.
끓는 물에 넣고 푹푹 삶으면 구수하니 씹을수록 달큼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별다른 양념이 필요 없을 정도예요.
앉은뱅이밀은 농약을 치지 않아 수입 밀처럼 몇 년씩 보관은 못 하고,
다음 해 햇밀가루가 나올 때까지 딱 1년간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두고 먹으면 좋아요.
<출처 - 에쎈 / 글 - 강윤희>
첫댓글 ..
^^
우리나라의 토종 밀(앉은뱅이 밀)로 만든
수제비와 부침개 등이 제일이지요.
그래도 우리 밀을 보존하고 생산하는 분이 계시다하니
몹시 반갑습니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론 토종종자를 지키는 사람이 대우를 받기를 빌어봅니다 요즘 종자회사 외국으로 다 넘어가고 비싼 로열티를 주고 종자를 사서 농사지으니 남는게없어요 농부는 씨앗을 베고 죽으라했는데 농부들도 편한걸 찾다보니 물외씨가지씨 부루씨 다 잃어버리고 클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