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샛별이 유난히 초롱한 이른 새벽.
사군명은 열 한 필의 말이 매어진 마구간 앞에 서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표국에서 오랜 세월 마구간지기로 일한 까닭에 명마를 구별하는 안목이 남다
른 그는 지금 이제껏 없던 눈 호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굵고 단단해 보이는 다리에 비해 어깨가 넓으며 짧고 억센 갈기가 눈에 띄는
네 필의 말은 대완구(大玩駒)가 틀림없었다.
지구력과 힘이 좋아 중무장한 병거(兵車)를 끌고도 가파른 산등성이를 평지처
럼 달린다는 대완구.
뿐인가.
나머지 일곱 필은 몽고족이 자랑하는 명마 쾌재풍(快哉風)이었다.
체장(體長)이 길고 속보능력이 뛰어난데다 주인의 뜻을 읽는 영특함이 있어
마상 전투에 더없이 적합한 품종으로 원 황실(元皇室)에서 엄격히 관리하여
유출을 통제했다는 쾌재풍이 그의 눈앞에서 기운차게 콧김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사군명이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소중하게 말을 쓰다듬는 것을 보며 위사무
가 입을 열었다.
"이틀전 국주가 보낸 거지."
남모르게 항주 일대의 마방을 뒤져 명마를 구하고 상허촌까지 보내느라 애쓴
석백송의 노고는 적지 않았다.
"외진 마을에서 이런 명마나 고급스런 마차는 눈에 뜨일 텐데요……?"
쥐눈을 반짝이며 말꼬리를 흐리는 서수림의 걱정은 타당했다. 흑마방의 이목
을 피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흐흐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을사람들에게는 절강성 도독부(都督府)에
서 마구(馬具)를 주문하며 말에 꼭 맞도록 해달라는 명을 내렸기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지. 마차바퀴 축을 갈아 달라는 일거리도 함께 말이지. 이래봬도 솜
씨 좋은 대장장이로 소문난 덕에 관부에서도 종종 일을 맡기는 편이거든."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
상허촌 출신으로 도독부의 부장(部長)으로 출세한 자가 자신의 상관에게 천거
했을 만큼 위사무는 솜씨 좋은 대장장이였다.
"이러다가 날이 밝겠습니다."
마음이 급하기는 고승후뿐이 아니었다.
넋을 잃고 이리저리 말을 살피고 쓰다듬던 사군명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마차에 말을 매고 짐을 꾸려주십시오. 준비가 되는 대로 출발하겠습니다."
사군명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내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제각기 마음에 드는 말을 골라 짐을 실었고 마차를 몰기로 한 구태열은 명마
가 끌기에 격이 떨어지지 않는 마차에 네 필의 대완구를 능숙하게 맸다.
준비를 점검한 사군명이 안채로 걸음을 옮기려 할 때 해연을 앞장세운 설운경
이 문을 열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
다소곳이 목례하는 설운경에게 일행의 눈길이 쏠렸다.
그들은 문제의 표물을 처음 보는 것이다.
"흐, 흐음……."
"허어, 참!"
어스름한 미명을 받고 서 있는 설운경의 미모를 확인한 사내들이 당황한 기색
을 감추지 못하고 헛기침을 한다, 공연히 서 있는 말고삐를 잡아챈다 하며 수
선을 피웠다.
봉래도의 군주라는 말에 어지간한 미인은 되리라 예상했지만 미인이 많다는
항주에서 적지 않은 세월을 보낸 그들이 보기에도 설운경같은 미인은 처음인
까닭이었다.
하나 아쉽게도 그들의 어색하고도 황홀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흥!"
최소한 왕충삼이 안달하는 금연루의 기녀 수련(水蓮)이 만큼은 아름답지만 지
금은 보름달 앞에 반딧불에 지나지 않는 해연의 냉랭한 코방귀가 사내들의 가
슴에 때아니게 불어닥친 훈풍을 멀리 쫓아낸 것이다.
"군주님, 아직 바람이 찹니다. 어서 오르세요."
도착하던 날부터 정성껏 쓸고 닦은 마차를 가리키며 해연이 설운경을 안내했
다.
표물의 정체를 알게된 석백송이 급하게 수소문해 구한 마차였다. 절강성을 다
스리는 안찰사(按察使)의 내당에서 쓰던 물건답게 명장의 솜씨가 녹아있는 든
든하고 고급스러운 마차는 해연의 정성덕에 대갓집 규방 못지 않은 안락함까
지 갖추게 된 것이다.
밉지 않은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거리고 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해연을 향해 버
릇없는 자손을 혼내듯 짐짓 두 눈을 부라린 위사무에게 사군명이 깊숙이 허리
를 숙였다.
"일을 마친 후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허허, 글쎄다. 무슨 일이든 기약할 수 없다는 게 세상사는 재미일 수도 있지
……."
뜻 모를 소리에 사군명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위사무가 길쭉한 보자기를
건넸다.
"받거라. 네가 쓰는 청강검보다는 나을 게다."
무심결에 건네 받아 흰 무명으로 둘둘 말아놓은 물건을 꺼낸 사군명이 탄성을
발했다.
"아……!"
검이었다.
다소 투박해 보이는 검신에 서늘한 한광(寒光)을 흘리는 한 자루의 장검.
"그 검으로 하고자 했던 일이 있었으나 검은 제 모양을 갖추었으되 마음이 변
했으니 내게는 쓸모 없는 물건이다."
패배의 좌절이 불러온 방황을 끝내고 다시금 금천후에게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후 제일 먼저 구한 것이 한철괴(寒鐵塊) 한 덩이였다.
작은 목침(木枕)만한 쇳덩이를 밤낮으로 달구고 두드리며 씨름한지 오 년.
마침내 쇳덩이는 예리한 검이 되었지만 날선 검처럼 외곬이던 위사무의 집념
은 거꾸로 무뎌지고 말았다.
승부의 덧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무도를 이루는 길이 내 마음에 있으니 누구와 겨루고 승부를 내는 일이 무상
하다는 깨달음.
그런 사연을 알리 없는 사군명은 위사무의 혼이 서린 듯 맑게 빛나는 검을 들
고 어쩔 줄 몰랐다.
무인된 자로 어찌 명검을 아끼지 않겠는가.
은자 일곱 냥짜리 청강검을 사들고 천하를 얻은 양 기뻐하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제게는 과분한 검입니다."
"암, 과분하지! 한때는 하늘을 베려했던 검이거늘……."
아쉬움인가, 초탈함인가.
위사무의 주름진 얼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마음을 베는 것이 하늘을 베는 것보다 어려운 까닭이리라.
"검법이 서투르니 검이라도 좋은 놈을 써야지 않겠느냐? 크흐흐흐."
위사무는 일행을 재촉했다.
"뭣들 하는 게냐? 이 마을의 농부들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네 놈들이 모르는
게로구나. 어물거리다 사람들 눈에 띄면 좋을 일이 없을 테니 어서들 떠나거
라."
사군명은 더 이상 사양하지 못했다.
검을 전하는 위사무의 뜻을 헤아리며 고마운 정을 가슴깊이 새길 뿐.
"그럼……."
백 마디의 인사, 천 번의 절보다 진실한 감사의 염이 담긴 깊은 눈길을 보낸
사군명이 날렵하게 말 등에 올라타고 손을 쳐들었다.
"출발!"
촉촉이 이슬이 내린 황톳길로 말을 달리는 사군명 일행이 멀리 산모퉁이를 돌
때까지 석상처럼 서 있는 위사무의 전신을 서늘한 새벽안개가 어루만졌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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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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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야 될낀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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