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최석영- 2부 작 두 9회 의식을 찾은 연기가 꿈속에서 본 사건들을 설명하자 백 형사가 사진을 보여줬다. 피살된 오충일 도의원이었다. 꿈속에서 본 국회의원이 이 사람이냐고 묻는 것이다. 연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행 하게도 연이가 꿈속에서 본 사건들은 사실 이었다. 수사진이 알아 낸 가족사는 꿈속에서 보다 더 참혹했다. 행방불명이 된 김 씨의 아내는 노숙자를 상대로 매춘을 하며 거리의 여자가 되어 있었고 가출을 한 딸은 매춘과 절도 혐의로 안양에서 수영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 “오충일이가 천안에서 박성일 이라는 이름으로 버진킬러(처녀사냥) 짓을 할 때 오충일에게 처녀들을 공급해 준 복기선 이라는 잔데 김씨의 딸을 복기선이가 데리고 있었습니다.” “연이 씨가 꿈속에서 봤다는 국회의원과 오충일과의 관계는?” “연이씨가 꿈속에서 본 사람은 현재 정계에서 은퇴를 한 J씨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오충일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운봉 파출소 소장의 말로는 J씨가 정계를 은퇴 하면서 그 조직을 오충일에게 넘겼답니다.”“조직을 넘기다니?”“노점상 들이 장사 잘되는 길목에 노점을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노점상 자리를 돈을 받고 매매하듯이 정치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조직을 정치인들끼리 매매를 한다는 겁니다.” “그럼 오충일도 J가 한 짓을 똑같이 따라 했겠군?” “아마도….” “정치인이 그런 짓을 하고도 표를 얻을 수 있다니 놀랍군.” “코를 꿴거죠. 충성도가 떨어진 사람은 김 씨 처럼 대출 연장을 안 해 주고 그러면 부도가 나는 거니깐 요.” 아이러니 하게도 J씨는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오 모 의원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다. 그들은 대통령후보로 거론되는 거물급 정치인 O와 그리고 그 조카 오충일 오충일의 딸 승혜가 얽혀 있었다. “연이야….” “고 선배?” 고일령이었다. 어찌된 일일까? 어떻게 풀려났지? 연이가 반가움에 고일령을 끓어 앉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정말 고일령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된 거야?” “피해자가 우리 차가 아니라고 진술을 번복했어.” “백 형사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피해자 알리바이를 캤더니 바로 꼬리를 내리던데….” “그 보다는 오충일이가 죽어서 일겁니다.” 백 형사가 씩 웃었다. 이미 모든 걸 예상 했다는 투다. 고일령이 유치장에 있는 사이 사건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는 순간이다.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버린 임 형사는 아연실색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살면서 두려움 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는데 임 형사는 지금 두렵다. 오충일 도의원이 죽다니…. 어쩐다…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해쳐 나간다? 안절부절 못하는데 서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장… ! 임 형사는 한가닥 희망의 줄 이라도 붙잡은 양 화색이 돌면서 서장실로 달려갔다. 무능력 해 보이고 둔해 보이는 서장 이지만 수완 하나만은 좋은 사람이지 않은가. 분명 이 위기를 넘길 방법이 있을 것이고 자신은 서장 옆에만 바싹 붙어 있으면 될 일이었다. 서장은 한가롭게 골프 연습 중이었다. 관내 에서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터져 어수선 한데 서장이라는 사람이 골프 연습이나 하고 있으니 무슨 일인가 싶지만 또 그게 꼭 그렇지 만도 않은 것이 수사권이 없는 서장으로서는 그저 물 건너 불 구경이기 때문이다. “부르셨습니까 서장님.” “고일령이 일을 왜 그딴 식으로 해결 해?” “예?” “풀려난 고일령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그놈이 피해자 뒷조사를 하는데 오충일 의원마저 없으니…. 그저 없던 일로 잘 마무리 짓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이런 멍청한 놈. 오충일이 없으면 우리 모가지 붙들어줄 사람이 없을까봐? 잔소리 말고 그 년 놈을 남원에서 쫓아 낼 방도나 궁리 해 봐.” “그런데 꼭 그 년 놈을 내쫓아야 할 이유라도?” “너는 머리를 너무 쓰는 게 탈이야. 머리를 쓰지 말고 시키는 것만 해! 알았어?” 임 형사가 골프채로 한 대 얻어맞을 것만 같은 분위기에 눌려 허리를 숙여 대답하는 임 형사의 입에 미소가 담겼다. 어제 까지만 해도 자기와 마찬 가지로 낙담해 있던 서장이 다시 이렇게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는 오충일과 같은 단단한 줄을 잡았다는 말이고 그 줄이 있는 한 자신도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이… 그년은 왜 자꾸 꿈을 꾸는 걸까? 그것도 사건과 연관이 있는 꿈을…” 서장은 꿈으로 과거를 본다는 연이에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약점을 잡힌 사람에게 느끼는 두려움 같다고 할까? 서장은 쓰고 떨떠름한 한 기분을 떨치기라도 하듯 공을 톡 건드려 홀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구십 도로 허리를 숙인 임 형사를 본본 채 한 서장 이지만 임 형사 심정을 모를 리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장 역시 임 형사와 같은 신세였으니까. 그분에게서 직접 전화가 오다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서장인가? 나 O야” “예?” “놀라기는… 서장이 그러면 내가 무안하지. 앞으로 자주 전화 할 텐데…. 이 봐 서장.” “예 …,” “우리 조카일 말이야. 참 안됐어. 어쩌다 그리 됐는지 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자네가 잘 알아서 정리를 좀 해줬으면 싶어서. 사람들 입이 하도 무서워서 말이야. 하하 …” 서장이 알아서 할 일. 그것은 집안사람인 오충일 도의원이 개인적 원한이나 정치적 원한에 의해서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못된 범죄자에 의해 피해를 당했다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정치적 소신을 지키다가 피해를 당한 피해자로 밝혀지기를 바라는지도 모를 일이다. 비굴하게 보일 정도로 허리 숙여 인사를 한 임 형사가 서장실을 나서며 눈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쳐 죽일 연놈들을 그냥….”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고급 승용차가 동천교 다리를 건너 산덕리 쪽으로 미끄러지듯 올라갔다. 마을 사람들은 낯설지 않은 승용차의 출현에 저마다 자기들 끼리 수근 거리는데 고급차는 다시 마을 위 폐가와 다름없는 집에 멈췄다. 그리고 훤칠한 키에 약간 살집이 있는 남자가 스치로폼 박스를 들고 내렸다. “형… 형…” 지능이 모자라는 덕구가 남자를 보자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른다. 덕구의 머리를 쓰다듬은 남자는 방안을 기웃 거렸다. 하얀 머리에 듬성, 듬성 이가 빠진 노인, 그 노인은 바로 귀신을 본다는 치매기 있는 할머니였다. “이노마 인간 백정 짓 그만 혀!” “예 할머니. 여기 고기 좀 맛있게 해서 드시고 건강 하세요.” 노인이 입술을 실룩이며 젊은이가 내려놓은 스치로폼 박스를 끌어 앉았다. 유달리 고기를 좋아 하는 노인은 젊은이가 가끔 가져오는 고기를 애지중지 하였다. 덕구 몫으로 사온 과자를 꺼내 준 남자가 차에 올라 다시 미끄러지듯 동네를 빠져 나가자 마을 사람들이 다시 수근 거렸다. “참 좋은 시상이고 좋은 사람이여.” “자식보다도 났구먼.” “났재. 어떤 자식이 저렇게 좋은 차 몸성 저렇게 좋은 짓을 허것어?” “읍사무소에서 연결시켜 준 후원자 람성?” “그렇다만, 저 집에 또 괴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허것네.” “저집 할매 참 히안 해 이. 개고기를 어떻게 구워 먹을까?” “개고기? 개고긴 줄은 어떻게 알어? 가서 무거 봤는갑제?” “아 냄새가 나잔에… 누릿한 누릿 내.” 보통 집 같으면 빵 부스러기 떨어진 곳에 새 날아들 듯 어떤 것을 선물했느냐며 호들갑스런 여편네들이 몰려들 법도 하건만 신기 있는 할머니 집에 범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무슨 험한 말을 들을지 모르기 때문 이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미 불행이 닥칠 걱정에 명줄이 쫄아 들어 죽을 지경이기 때문이다. “우라질 놈. 이렇게 기름끼 많은 놈을 잡아서 무슨 맛으로 먹으라고….” 마당에 불을 피운 덕구는 뒷겯 담장에 비스듬히 세워 두었던 돌판자를 불 위에 올려놓았다. 한 두 번 해본 일이 아닌 듯 능숙한 덕구 곁으로 비척 비척 걸어온 노파가 칼로 썩 벤 고깃점을 달궈진 풀판 위에 던져 기름으로 돌판을 닦았다. “어떤 놈인지 배때기 기름이 꽉 찬 놈인가 허연 기름이 칼도 안 들어가네. 썩을 놈. 이놈아. 니놈 살 구워지는 꼴이 그렇게 보기 좋냐? 그러고 쳐다보게. 우라질 놈. ” -> 계속 |
출처: 최석영이의 이야기 보따리 원문보기 글쓴이: 최석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