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만 해도 이곳엔 한가로운 산천, 그리고
별로 눈길 주는 이 없던 무수한 총탄자국들만이
무심한 세월을 잡아두고 있었는데...
그 사이 '평화공원'과 '역사박물관'이 세워져 우리를 맞아주었다.
맞아주신 관장님과 인사를 나눈 후 영상실로 가 내력을 듣다.
당시 7세 나이로 비극을 몸소 겪으신 분의 증언을 직접 들으니
그날의 처절함이 더욱 생생히 느껴지기도...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나서는 안 되고...
무고한 양민에 대한 학살은 더더구나
반인륜 범죄라는 교훈을 잊지 말자고
이 평화공원을 만든 겁니다..."
당시 인민군 종군 기자들이 현장을 발견하고 보도한 내용이라고... (↖)
비극의 현장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겨 가는데...
여기가 쌍굴다리 현장입니다...
"지금은 이처럼 도로가 나, 2m쯤 높아져 있는데
당시에는 그냥 도랑 뿐이었어..."
"와, 이게 다 무슨 자국이어요?"
"여기 우물 정(井)자가 있는 자리가... 당시엔 쫄쫄 샘물이 솟아나와서,
굴다리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목이 마르면 물 먹을까 하고 나왔다가
무수히 총에 맞아 죽었던 바로 그 자리..."
물 먹으러 나온 사람들에게 저 쪽에서 총질을...
꼬박 사흘 동안 무차별 난사한 자국들...
동그라미는 탄착점만 남은 자리
세모는 지금도 탄알이 박혀 있는 곳...
"근데 미군들이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왜 그랬어요?"
"그러게... 그 걸 알 수가 없단 말이거든...
미국에도 기록이 없다면서 안 내 놔서 알 수가 없어...
아마 자기네들끼리 전달이 잘 못 됐는지...
당시 대전에서 인민군에게 대패한 뒤로, 계속 쫓겨 내려가면서 양민들에게 보복을 한 건지...
인민군과 양민들을 구별하기 어렵다고 그런 건지..."
지금도 박혀 있는 M1 총알 (세모 안)
"6.25동란이 난 뒤 한 달쯤 지났을까...
경부가도 옆 주곡리에 소개령이 내려졌다.
"이 동네가 전쟁터가 될 테니 다들 피란 가라!"고...
해서 마을 사람들은 피란 짐들을 이고지고 더 산골짝인 임계리로 들어간 거여.
그런데, 이틀 쯤 지나자 거기 웬일로 미군하고 군인이 와서는
여기도 위험하니께 더 남쪽으로 피란을 가라네...?
해서, 젊은 사람들은 아예 더 안쪽 산너머(양산)쪽으로 간 이들도 있었지만
임계리와 주곡리 대부분의 늙은이와 아녀자들은 그대로 따른 기라...
다시 짐들을 싸 그날 저녁 출발혔는데, 얼마 못 가고 대로변에서 노숙을 한 거여.
다음 날이 되니께, 피란 행렬을 인도하던 미군들이 웬 일로 높은 철둑길로 올라서 가라네?
얼마나 갔나?... 웬 정찰기 몇 대가 우리 위를 돌고 가는 거여... 사람들은 뭔 구경거린가 혔지.
근디, 좀 지나 다시 더 큰 비행기 소리가 왱하고 나더니...
어허, 사방에 포탄을 퍼붇는 거여!
벼락겉은 소리가 나고, 소고 짐이고 뭣이고 사방에 찢겨 흩어지고
철길은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비명이고 뭐고 흙먼지가 날려 한여름 대낮에 아무 것도 안 보이는디...
아비규환이 난 거여. 열 몇 살 짜리 여식아는 한쪽 눈알이 빠져나와 엄마 이거 좀 떼 줘 하니
엄마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제 손으로 덜렁거리는 눈알을 떼야 하질 않나...
또 어떤 사람은 등짝이 뜨끈해서 보니 어린애 머리가 날아와 붙었더라는 거여...
그 판에 어째어째 죽음을 면한 사람들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살자고 피해서 몰려간 디가 바로 '쌍굴다리'여.
양쪽 굴다리 안에 피신한 사람만도 몇 백 명이 될란지...
근데 그라고 나니께, 인제 굴다리 이짝저짝서 총질을 해대는 거라.
그로부터 사나흘을 내리... 죽어라~ 하고.
그 새, 그 안에서 난 아이만도 둘이나 되고, 그 안에 애들도 많았는디
겁에 질린 애덜이 울음을 안 그치니께 동네 사람들이
저 놈 땜에 우리 다 죽는다고 핏발 선 눈으로들 볼 밖에!
그러니 그 애비가 지 손으로 자식을 물속에 처박아 넣는 지경이 안 될 수가 없었던 거거든...
전쟁이란 기, 바로 그런 거여~"
쌍굴다리 현장을 둘러보고 평화공원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 덜 걷힌 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유독 평화공원을 향해...
역사의 무대위에서 우리의 눈길을 묶어두고자 하는
'스파트 라이트'인 양...
비극의 현장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이렇게 잔혹한 전쟁 범죄도
지극히 평범하고 선량한 얼굴을 한 자에 의해 무심코 저질러지는 것...'
- 이라는 깨우침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