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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산호(居山好)Ⅱ
-김관식(金冠植
오늘, 북창을 열어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은 뜻은
사람은 맨날 변해 쌓지만
태고로부터 푸르러 온 산이 아니냐. ▻산을 향하여 앉은 뜻
고요하고 너그러워 수(壽)하는 데다가
보옥(資玉)을 갖고도 자랑 않는 겸허한 산.
마음이 본시 산을 사랑해
평생 산을 보고 산을 배우네. ▻산을 보고 배우는 삶
그 품안에서 자라나 거기에 가 또 묻히리니
내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에
아아(峨峨)라히 뻗쳐 있어 다리 놓는 산. ▻영원한 안식처로서의 산
네 품이 고향인 그리운 산아
미역취 한 이파리 상긋한 산 내음새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꿈같은 산 정기(山精氣)를 그리며 산다. ▻산 정기를 그리며 사는 삶
-창작과 비평(1970)
* 북창 : 북쪽으로 낸 창
* 장거리 : 장이 서는 거리, 세속에 찌든 삶.
* 아아(峨峨)라히 : 산이나 큰 바위가 우뚝 솟은 위엄 있는 모양
* 미역취 : 엉거시과의 다년생의 풀
* 사람은 맨날 ~산이 아니냐 : 무한한 자연과 유한한 인간사의 대조
* 보옥 : 보석. 산에 있는 꽃, 나무, 바위 등을 뜻함.
* 내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에 : 평생 동안에, 영원히
● 핵심정리
▶성격 : 탈속적, 동양적, 자연 친화적
▶특징
① 유한한 인간사와 자연의 영원성 대조
② 반문명적, 반세속적인 소박한 생활관 제시
③ 안빈낙도, 유유자적하는 관조적 삶의 모습
▶구성
① 기 : 산을 향하여 앉은 뜻 (1∼4행)
② 승 : 산을 보고 배우는 삶 (5∼8행)
③ 전 : 영원한 안식처로서의 산 (9∼11행)
④ 결 : 산 정기를 그리며 사는 삶 (12∼15행)
▶제재 : 세속을 초탈한 삶
▶주제 : 자연과의 동화(자연 귀의)
▶ 표현상의 특징
①자연 친화적인 삶의 태도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함.
②변덕스러운 인간사와 불변하는 자연을 대비함.
③역설적 표현으로 주제를 강조함.
● 연구문제
1. 이 시에서 '산'의 속성과 대조되는 시어 둘을 찾아 쓰라.
▶장거리, 사람
2. 화자가 산을 사랑하는 이유를 이 시를 근거로 하여 3∼4행 (1행 35자, 띄어쓰기 포함) 정도로 쓰라.
▶사람은 변하지만 산은 태고로부터 항상 푸르러 변함이 없다. 산은 고요하고 너그러우며 영원히 존재한다. 꽃, 나무, 바위와 같은 아름다운 보물을 가지고도 자랑하지 않으며 겸허하다는 점에서 화자는 산을 사랑한다고 하였다.
3. '평생'과 의미가 같은 구절을 찾아 쓰라.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
4. 이 시에서 화자의 위치는 어디인가? 본문의 시어를 이용하여 25자(띄어쓰기 포함) 내외로 쓰라.
▶장거릴 등지고 북창을 열면 산이 보이는 곳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세속을 벗어나 유유자적하는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김관식 말년의 대표작이다. 일찍이 한학(漢學)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시인은 초기 시에서 어려운 한자어를 많이 구사하여 유학자적 풍취를 짙게 드러내는 한시풍의 시를 주로 창작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지조 높은 선비의 자세를 동양적 달관으로까지 승화시켜 표현한 작품을 썼다.
이 '거산호(居山好)Ⅱ'는 시인이 요절하기 몇 달 전에 발표한 작품으로 시인이 평생 동안 추구한 동양 정신이 작품 속에 용해되어 높은 서정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자연은 동화와 순응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다. 즉, 그의 시의 '자연'은 동양 정신 그 자체인 셈이다.
이 시의 제 1∼4행까지는 장거리(장이 서는 번화한 거리)로 대표되는 세속의 찌든 삶을 등지고 산을 바라보면서 유한한 인간사와 변함없는 자연을 대비시키고 있다.
제5∼8행에서는 동양 정신의 정수를 의미하는 산 자체를 평생 동안 추구하는 시인의 탈속적, 고전적 감각이 드러나 있고, 제9∼11행은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이라는 전생애 동안 무욕(無慾)의 경지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 제12∼15행까지는 미역취에 취한 화자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제시하면서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는' 심화된 경지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화자는 분명히 세속 안에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는' 역설이 가능하고 '꿈 같은 산 정기를 그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평생 가난과 병고에 시달린 시인의 생애를 떠올리게 된다. 또한, 그러한 삶 속에서도 치열하게 자기 세계를 굳게 지켜 나간 시인의 내면 의지에 감동을 받게 된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물질과 권위에 가득 찬 세속을 벗어나 노장(老莊)의 무위(無爲)에 가까운 경지를 추구하는 시인의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반문명적이고 반세속적인 무욕(無慾) 의 삶의 자세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출제목록
-08년 10월 3학년 전국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