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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 Letter(100) 2007. 9. 29
주안에서 사랑하는 문대헌 형제 부부에게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13:22)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우리 주님의 존귀하신 이름으로 안부를 전합니다. 그동안 모두들 잘 지내고 있는지요? 그렇게도 무덥던 지난 여름도 다 지나가고 풍성한 결실의 계절, 가을이 다가 왔습니다. 이제 아침 저녁에는 제법 쌀쌀한 기온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변화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때론 곤고할 때도 있고 형통할 때도 있습니다. 즐거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주님을 위한 헌신과 수고와 고난과 인내에 감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드디어 100번째의 선교 편지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격려에 감사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 제 마음에는 100 회까지 작정하였습니다. 마음의 작정한 바를 성취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8년의 세월을 조금 지난 기간동안 그래도 성실하게 계획한 바를 이룰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격려하여 준 여러분에게 또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느니라”(잠13:19) 비록 큰 일은 아니라 할지라도 스스로 목표한 바를 성취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주님을 위한 큰 사명과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일생을 헌신하면서 수고한 결과 마침내 그 목표한 바를 이룬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요!
바울은 일생동안 그렇게 살아왔고 그 사명을 완수하였습니다. 그리고 환희의 마음으로 주님께서 주실 면류관을 바라보며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시작할 때의 계획한 바를 이제 마무리하고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합니다.
편지보다는 구체적으로 함께 사역에 필요한 성경공부 자료들이나 workshop material들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때로는 여러분들에게 과제를 부과하기를 원합니다. 함께 공부하며 토의하면서 실제적인 사역 가운데 어떻게 적용하여 나갈 것인가를 서로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계발한 좋은 자료들도 보내어 주면 좋겠습니다. 이곳 사역에도 적용하여 그 결과를 평가하여 보고 싶습니다. 지난 24-25일 추석연휴에 실제적으로 사역을 인도하고 있는 인도자를 중심으로 사역의 Essence를 중심으로 6 session을 나누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 시간에 나눈 <하나님의 사람, 다윗>에 대하여 함께 나눔으로 피차 은혜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김헌열형제 부친께서 74세를 일기로 지난 10일에 소천하셨습니다. 위로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효과적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꾸준한 운동과 적절한 영양섭취를 통하여 건강한 체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각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박 남규 부부 서신
하나님의 사람, 다윗(David)
○렘3: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행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삼상13:13-14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 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향하여 최고의 찬사를 보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품으신 뜻을 다 이루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윗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혹적인 환경에 넘어져 실족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났습니다. 반드시 인격적으로 완전하기 때문에, 온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는 다윗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하나님의 영적 교훈과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할 수 있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을까요? 함께 생각하여 보기를 원합니다.
(1) 시27:4, 시63:1-3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근본이유는 하나님과의 날마다 친밀하고 깊이 있는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도하는 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의 생각하는 바의 의향과 뜻을 잘 분별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깊이 있는 대화를 가져보아야 합니다. 디모데는 자신의 영적 아비와 스승이신 바울과의 오랜 세월동안 긴밀한 의사소통과 교제와 본을 통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바울의 의향을 잘 알았습니다.
딤후3:10-11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똑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오랜 세월동안 깊은 교제를 통하여 보다 하나님의 마음의 품으신 뜻과 의향과 경륜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바쁘고 긴급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과의 교제에 최우선을 두었습니다. 자신이 누릴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는 수많은 것 가운데서도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장 좋아하였습니다. 시편27편4절은 다윗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실제 삶 가운데 행하였던 것에 대한 간증이며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27:4)
다윗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자신의 삶 가운데 최우선순위에 두었던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그는 하나님 자신이 힘의 근원이 됨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많은 전쟁과 원수들의 피난 속에서 하나님만이 자신의 능력과 힘의 근원으로서 자신을 언제나 구원하여 줄 수 있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전쟁과 생사의 험난한 골짜기를 벗어나고 난 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로써 자신의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삼하22:1-7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시18:1-2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둘째는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하심에 강권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인자와 위로와 자비와 선하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의 삶 가운데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중요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을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시63:1-4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그는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사랑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깊이 신뢰하였습니다. 그가 범죄 하였을 때 하나님께 즉각적으로 나아와 회개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은 인자와 사랑과 긍휼과 용서하심에 너그러우심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스스로 범죄하여 징계를 선택할 때에도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적인 징계를 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삼하24:14)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었던 것은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성공하였을 때나 범죄하였을 때나 언제나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을 의지하며 찬양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의 주님으로 이해하였기에 그는 실패 가운데서도 성공적인 믿음의 삶을 마칠 수 있었지만, 가룟 유다는 주님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 무섭고 두려우신 분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주님께로 나아와 주님의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기보다는 스스로 목매어 자살하는 부끄러운 일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잘 알고 있었고, 항상 하나님의 의향과 목적과 경륜에 따라 행하고자 노력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온전히 의지하여 일평생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역을 위해 애쓰고 수고하기 전에 먼저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며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결과로 맡겨주신 사명, 즉 충성된 일꾼들을 길러내는 일에 효과적으로 쓰임받을 수 있게 됩니다.
딤후2:1-2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2) 삼상16:11-12 삼상17:34 <그는 목자(목동)로서 섬김의 훈련기간을 가졌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양을 키우는 목동으로서 섬김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양치기 소년으로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양치는 일은 결코 신나는 일은 아닙니다. 또한 그렇게 즐거운 일도 아닙니다. 그는 또한 전쟁터에 나가 있는 형들을 위해 도시락을 전달하여 주는 심부름꾼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종의 도를 배우고 몸에 익히고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섬김의 부탁을 받았을 때 반응은 어떠합니까? 특권으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자존심이 상합니까?
주님의 일꾼이란 섬김의 사람을 말합니다. 일꾼은 섬기는 제자(Serving Disciple), 사역하는 제자(Ministering Disciple)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은 섬김입니다. 우리를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일평생 우리를 섬기시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우리를 섬기기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마가복음을 종합적으로 공부하여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0장45절을 중심으로 전반부는 섬기기 오신(Service) 예수님을 볼 수 있고, 후반부는 희생하기 위해 오신 (Sacrifice)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Service)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Sacrifice) 함이니라”
우리도 다윗처럼 주님의 양을 먹이고 치는 목자입니다. 요21:15-18에서 이 사실을 잘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양을 먹이고 잘 돌보기를 부탁하셨습니다.
요21: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주님의 어린 양을 먹이고 돌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코 신나는 일도 아닙니다. 섬기는 일입니다.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일입니다. 특히 우리가 하는 제자 삼는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영적인 어린 자녀를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세우는 일은 참으로 수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수고와 섬김과 희생을 통하여 영혼들은 성장합니다. 눈물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때론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아픔이 따라야 합니다. 마침내는 베드로처럼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하는 희생도 각오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의 인격 속에 섬김의 훈련이 이루어질 때 가능합니다. 다윗이 자기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양들을 마음의 성실함으로, 손의 공교함으로 기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목동 시절에 몸에 익힌 섬김의 훈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섬김의 훈련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지도력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계발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지도자로서 일생동안 성장하기 위해서는 섬김의 훈련, 섬김의 인격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Wheaton Edman은 “우리의 할 일은 종들을 훈련시키는 일이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지도자를 선발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3) 삼상24:1-8, 삼하9:1-8 <복수하기보다는 감동을 주는 은혜로운 마음의 소유자이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어떠한 경우에도 복수하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감동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왕으로 피택되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의 위치에 오를 때까지 무려 16년의 긴 세월을 인내해야만 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사울에게 쫓기고 광야생활과 이국 땅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온갖 고초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 왕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결코 자기 손으로 복수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의 자손을 돕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항상 같은 상에서 먹게 하는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방인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다하는 이방인보다 무엇인가 더하는 것(The More)을 통하여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마5:46-47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한 우리는 도덕적으로나 율법적으로도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보다 더 나은 것(The Better)이 있어야 합니다.(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방인보다 인격적으로 남에게 더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도 흠이 없고 더 깨끗하고 선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나는 육신의 감정대로 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따라 순종하려고 하는가? 주님의 제자는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따라 순종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품 가운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자연적인 성품입니다.(natural character) 또 한가지는 경건한 성품입니다.(godly character) 자연적이 성품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본성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에 굴복되어 형성되어진 경건한 성품이 우리의 참된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롬8:12-14)
(4) 삼하1:1-15, 삼하4:1-12 <선한 동기로 도와주려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으면 거절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적으로 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뜻에(마음에)맞으면 누구나 좋아합니다. 아무리 선한 동기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인도자는 자기 감정에 충실하여서는 안 됩니다.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또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워 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도울 때 자기 감정에 편안함에 우선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책망하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일입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나면 불편합니다. 책망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인도자의 감정은 편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자기에게 아무리 충성하고 기쁘게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때는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자기 감정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충성하고자 하는 동기로 죽어가는 사울과 대적 이스보셋을 죽이고 온 아말렉 사람과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를 죽였습니다. (삼하4:8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고하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인간의 정은 찾아볼 수 없고 아주 매정하게 느껴졌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충성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공의가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왕으로서 다윗은 자신을 그토록 저주하는 시므이에 대하여서도 감정대로 행하지 않고 그를 관대하게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친히 원수갚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삼하16:5-14) 하나님께서는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롬12:19)
(5) 시1편, 시19편, 시119편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차고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풍성하게 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 차고 넘쳐야 합니다. 특별히 사람들을 인도하는 인도자의 삶은 더욱 그렇습니다.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딤후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인도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풍성히 거하여 말씀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인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시119:147-148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여호수아 1장8절은 영적 어린아이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지도력 이양하고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지도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을 명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지도자로서 형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며 밤낮으로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지켜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32절 말씀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떠날 때 자기가 세운 영적 인도자들에게 권면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하며, 우리가 말씀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은 지속적으로 견고하게 되며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행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6) 시141:5, 시55:12-13 <책망을 기꺼이 받아드리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들로부터 오는 비난과 책망도 기꺼이 받아드리는 겸손한 태도를 가졌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오는 비난은 참으로 참기 어렵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비난을 받게 되면 우리는 더욱 상처를 받게 됩니다. 다윗은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꺼이 받아드리려고 하였습니다.
시55:12-14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同類),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안에서 다녔도다”
책망과 충고를 어떤 태도로 받아드리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책망과 충언을 겸손하고 은혜롭게 받아드리게 될 때 우리의 장래는 우매한 자의 멸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사건에서나 영적 교훈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聖君(성군)이라고 일컫는 왕들은 신하들이나 종친들의 충고나 책망을 겸손하게 받아드리고 순종하였던 임금들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왕들은 모두 폭군으로 그들의 말로가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연산군은 책망과 충고를 전혀 받아드리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충언을 한다든지 잘못을 상소하는 신하들은 모두 죽였습니다. 마침내는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게 되고 王에서 君으로 강등되어 역사적인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생애 마지막까지 위대한 왕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언제나 책망을 자신의 삶에 유익한 방향으로 받아드렸기 때문입니다.(시141: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지라 저희의 재난 중에라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그 결과 그는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받으면서 살다가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아름다운 생애의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 까닥은 다윗의 생애 가운데 소년시절에는 사무엘 선견자의 충고와 책망을, 장년시절에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과 충고를, 노년시절에는 갓의 책망과 충언을 잘 받아드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책망과 충언을 은혜로 여기며 머리에 붓는 향기로운 기름같이 보배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대상29:26-30 “이새의 아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치리한 날짜는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을 치리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치리하였더라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다윗 왕의 시종 행적이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또 저의 왕 된 일과 그 권세와 저와 이스라엘과 온 세상 열국의 지난 시사가 다 기록되니라”
(7) 시38:3,4,18 삼하24:17 <문제의 근원을 자기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드렸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문제의 근원은 자기에게 있음을 알았습니다. 인도자가 종종 느낄 수 있는 유혹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기보다는 다른 사람이나 환경의 탓으로 돌리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변명이나 합리화나 책임전가를 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자신은 아무 잘못은 없고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하는 핑계거리를 찾고자 합니다.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부하들에게 돌렸습니다. 사무엘이 책망하였을 때 변명과 책임전가로 일관하였습니다. 사탄의 전략은 우리로 하여금 책임을 전가하도록 부추기며 그 결과 서로를 이간하게 합니다. 신뢰를 깨뜨리게 합니다. 결국에는 좋은 관계와 팀웍이 파괴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힘을 잃게 되며 분열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모두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특히 인도자는 강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항상 내 책임이다. 내 잘못이다. 내 실수라고 하는 책임의식이 있을 때 따르는 사람에게 존경과 신뢰를 얻게 됩니다. 변명과 책임전가는 결코 충성심과 따르고자 하는 동기를 얻을 수 없습니다.
다윗은 이런 점에서는 아주 분명하였습니다. 물론 자기 자신의 잘못이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왕으로서 얼마든지 핑계거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시38:3-4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시38:18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삼하24: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사람을 인도하는 위치에 있는 지도자는 모든 책임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의도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교훈을 배울 수도 있고 또한 따르는 사람들로부터도 존경과 신뢰를 얻게 됩니다.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8) 삼상23:1-4, 10-12 삼하5:17-25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뢰하였습니다>
영적 승리의 최고의 전략은 <하나님과 상의>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한 결과 그는 가는 곳마다 승리하였습니다. 언제 실패합니까? 하나님과 상의하지 않고 스스로 독단적으로 자기 지혜나 명철이나 경험을 의지하여 행할 때 우리는 실패하게 됩니다. 여호수아 군대의 실수는 어떻게 할 것을 하나님께 묻지 않고 행함으로 나중에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올무가 되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수9:14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기브온 거민과 화친한 결과로 나중에 사울의 후손들 가운데 7명이나 죽임을 당하는 환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사울 또한 하나님께 묻지 아니하고 자기 열심으로 기브온 백성들을 죽인 결과입니다. 사무엘하 21:1-14 까지 그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아니한 결과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였습니다. 반면에 다윗의 승리의 비결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여쭙고 의논함에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 하리이까, 치리이까, 올라가리이까, 어찌하리이까 하면서 상의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그는 가는 곳마다 승리하였습니다.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삼상23:1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삼하2: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하나님과 상의하면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그는 승리할 수 있었고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잠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9) 삼상17:36-47 <다윗의 모든 동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한 이유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선한 목적을 가졌습니다. 다윗의 삶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므로 어떻게 하나님께서 승리를 이루셨고 선한 결과를 나타내어 주셨는지에 대한 간증입니다. 또한 자신의 실패와 범죄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자와 긍휼과 자비와 용서를 베풀어 주셨는가 하는 것에 신앙 고백입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의 선한 목자가 되어서 최선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 것에 대한 찬양과 감사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찬양이 넘치고 있습니다.
시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다윗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전쟁의 승리를 통해서도 하나님만이 온 세상 가운데 진정한 통치자이시며 주권자이시며 참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높이 세워주셨고 그의 하는 모든 일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어 승리와 형통함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다윗의 마음의 중심의 선한 동기를 보셨던 것입니다.
삼상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
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10) 시78:71-72 <성실한 마음과 능숙한 방법-기술-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시78:71-72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양을 치는 목장에서 불러내어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고 지도하고 통치하는 지도자로 세워주셨을 때 그는 맡은 사명과 책임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것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그는 먼저 마음의 성실함을 갖추었습니다. 또한 그들을 잘 인도하기 위한 능숙한 방법(Know-how)을 구비하였습니다.
어떤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Heart)의 성실함이 중요합니다. 얼마나 방법을 잘 알고 있느냐, 좋은 기술을 소유하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 마음의 성실한 태도와 자세가 먼저 필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방법과 기술을 소유하고 있어도 마음의 성실한 태도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먼저 온전한 마음을 들여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성실한 태도, 충성스러운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그가 가진 기술이 효과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은 어떤 능력이나 기술이나 방법보다도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마음입니다.(Heart for God & People) 또한 하는 일에 합당한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Character Developing) 그 이후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향상 시켜나가야 합니다. 공교한 손길(Skillful Hands)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하며 가르치며 지도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Know-how)입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유능한 자질을 구비해야 합니다.
렘3: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 하리라”
지식(Knowledges)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진리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원리입니다. 자동차를 운행할 때에는 운전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운전을 잘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기술과 방법(skill과 기본원리)을 알아야 합니다. 부부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서적인 부부에 관한 지식(원리)을 따라야 합니다. 성서적인 원리나 지식을 무시하고 살게 되면 불행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는 하나님의 양을 어떻게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것인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명철(Understanding)
이 있어야 합니다. 명철이란 포괄적인 이해력, 즉 지혜나 총명이 있어야 합니다. 전반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전체적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동기를 부여하여 주어진 사명을 달성하는 추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전반적인 비전과 전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의 있는 바를 깨닫고 그 뜻을 이루고자 하는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원리를 따라 하나님의 마음에 품고 계신 바를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여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 같은 자라고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눈 교훈들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아름다운 칭찬을 듣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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