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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1장9-11절 높음 낮음 220724 원주희 목사
야고보서 1장 9-11절 높고 낮음 원주희 목사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이 말씀의 축복을 이루어 가는 여러분의 가정 되고 또 우리 교회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 안에서도 높다. 낮다 이런 것들이 계층이 지어지기도 합니다.
세상 속에서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쥔 사람도 있고 못 쥔 사람이 있고 돈을 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어서 무전유죄 유전무죄 돈 있는 사람은 빠져나가고 돈 없는 사람은 그 법에 된통 걸려가지고 이제 징역 살고 그런 일들이 세상에 더러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세상의 모습이 교회 안에도 들어와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권합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무엇을 자랑하고 높음을 자랑하고…….
이 당시 야고보서가 쓰인 이 시대는 천민이 있고 또 귀족이 있는 신분제 사회입니다.
신분이 있어요. 그 신분에 따라서 양반이 있고 이렇게 노예가 있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회적 신분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무엇을 자랑하고 높음을 자랑하고 높은 게 뭐 있습니까?
사회적 신분이 비록 낮아도 예수 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높은 은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할렐루아!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고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한 자는 자기의 무엇을 자랑할지니 낮아짐을 자랑할지 교회에 돈 좀 있다는 분들 권력을 좀 가졌다는 분들은 자신의 무엇을 자랑할지니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왜 낮아짐을 자랑하라는 것입니까?
자기 위에 누가 계시다고요 한 번 따라 고백합시다. 예수님이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주님 앞에 나도 한 명의 성도이고 한 명의 겸손한 한 피조물로서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낮아짐을 자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신 물질은 뭐가 되는 겁니까?
그러면 돈은 있고, 있는 돈 가지고, 갑질하지 않고 있는 돈 가지고 뭐 하겠습니까?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쓰는 사람으로 그래 사는 것입니다.
그래 쓰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님의 물질을 그렇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속 무엇을 더 하시냐? 주님은 재정의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할렐루아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말씀을 실천할 때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낮은 사람은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고 높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하고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는 것들에 중심을 두지 아니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그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됩니다. 뭐가 된다고요? 사랑의 공동체…….
시편133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아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렐루아 여러분 사랑을 이룬 공동체에 하나님이 주는 특별한 은혜가 있는데, 교회의 영광이 회복됩니다. 가정의 영광이 회복됩니다.
옛날에 한참 영성훈련 받을 때, 열심히 기도하고 아 그냥 초지일관 교회 한 번 부흥시켜보겠다고 은사 좀 더 받아서 기도의 능력을 더 받아서, 그냥 불의 종이 돼서 그렇게 교회 한 번 이렇게 세워보겠다고 그냥 눈이 초롱초롱해서 그냥 불철주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밤에 생철야 하고 이제 아침에 모여가지고 예배하고 있는데 멘토 목사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교회가 부흥하기 원하냐 이러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를 더 많이 해라 이런 말씀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에 가서 사모님하고 싸우지 마라 이렇더라고 집에 가서 사모님하고 싸우지 말래요
왜 가정사를 얘기하나 그게 교회 부흥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까닭을 풀어주시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이 시133편을 읽으면서 깨달아졌습니다.
교회 부흥은 어떻게 오는가?
시133편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 고 거기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데 보배로운 기름이 신비한 성령의 기름 복음이 아론의 옷깃에 이렇게 적셔지는 것 같이 주의 종과 목회를 하는 지도자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그렇게 충만하게 임하고
양떼들은요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려져서 목초지를 풍성하게 하여 양들이 풍성해지고, 목자는 기름부음으로 풍성하고 양은 살쪄서 풍성하고 할렐루야!
그 복이 어디에 있느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 고 여기에 있습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가페 사랑은 아름답지만 그 사랑이 이루기까지는 희생과 인내와 기다림의 여정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도 아름답지만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여정은 고통과 인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섬기면서 느끼는 것은
다들 사랑충만하고, 잘 섬겨주고, 허물을 덮어주며 중보해주는 교회를 목사도 성도도 바라지만 그 공동체를 피차 만들어가야하다는 진실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고, 그런 사랑의 공동체를 유지해가는 노력과 과정들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선언합니다.
바울사도의 이 고백은 그런 교회공동체를 위해 어떤 희생도 인내도 감당하겠다는 결단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을 때 양반이 있고 쌍놈이 있던 때 아닙니까? 전라도에 가면 금산이라는 동네에 금산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 양반 나리도 교회를 다니고 그 집에 종살이 하는 노비 생활하는 머슴도 교회를 다닙니다.
교회에서 장로님을 선거하는 선거를 하는데 공교롭게도 양반인 신앙이 좋고 인정받는 그 양반 어르신이 장로님이 된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그 집에 머슴살이하는 머슴이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양반 어르신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하루 종일 기분 나쁠 수 있죠. 그지요 사람인데 근데요.
양반 되시는 그 분이요 자기 집에 머슴은 장로가 되고 자기는 그냥 장로에서 떨어진 겁니다.
이 분이요 깍듯이 집에는 여전히 머슴이에요.
집에선 여전히 머슴인데 교회 가면 우리 장로님 우리 장로님 그렇게 존중해 드리는 것입니다. 존중해 드리고요. 그리고 어 그 신앙이 좋은 머슴 장로님을 신학교로 보냅니다.
신학교로 보내서 조사를 삼았다가 목사님을 삼아서 목회자가 되게 하고 당신은 장로가 되어서 금산교회를 참 아름답게 성장시키고 부흥시켰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어릴적 친구들이랑 축구를 하면 이른바 동네축구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은 공을 보고 쫒아 다닌다는 것입니다.
공가진 사람에게 우루루 몰려다니다 보면 그만 사람을 놓치고, 공간을 내주고 골을 먹고 맙니다.
축구를 잘하는 팀은 개인기와 팀웍도 좋지요.
좋은 팀은 특별히 수비를 할 때 사람을 놓치지 않는 전략과 공간을 비우지 않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반면 좋은 공격수들은 수비수들을 따돌리기 위해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공에 상대방이 몰리게 합니다.
이와 세상사는 비슷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돈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촛점을 두기보다 돈에 권력에 초점을 빼앗기기 십상입니다.
그가 가난하든 부하든 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돈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권력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왜요 권력은요? 하나님이 확 불어버리면 끝입니다. 시편는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어떻고요 헛방이고 꽝이야 애들 말로 하면 허빵이다. 헛되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이 깨어 있는 것이 뭐 하다 그것도 헛되다는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요 시128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그의 손이 수고한 것을 거두게 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들은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는 것이 어떨 수 있는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네가 네 손이 수고한 것을 거두게 하리라 그리고 너의 가정의 안방에 내실에 너의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고 이 상에 둘린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도다 할렐루야 여러분 세상에 돈이 뭡니까 하나님이 불어버리면 다 날아갑니다.
우리는 IMF때 그 잘 나가는 대기업이 대마불사 하면서 절대로 안 무너진다고 했던 게 넘어지는 것들을 봤습니다.
근데요. 앞으로 시대가 또 어떻게 지금 바뀌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다가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패권 다툼을 하는 시대에다가 세계의 산업기지가 이동을 하거든요.
자본이라는 측면에서 세계의 경제는 두가지 논리가 있습니다.
자본의 경제냐 노동의 경제냐
노동하는 사람이 돈을 버는 노동 경제가 있고요 돈을 굴리는 사람이 돈을 버는 자본의 경제가 있어요.
여러분 누가 돈 법니까 노동하는 사람이 돈 법니까? 돈 굴리는 사람이 돈 법니까? 누가 돈을 벌어야 됩니까? 열심히 땀 흘려 노동하는 사람이 돈 벌어야 됩니까? 돈굴리는 사람이 돈 벌어야 됩니까?
여러분 땀 흘리는 사람이 돈을 벌어야 되는데 이 전 세계가 지금 어찌 돌아가냐 하면요.
돈을 굴리는 사람이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입니다.
미국의 근로자들이 임금이 높아지니까 미국에서 돈굴리는 사람들이 어디 저임금 노동자가 없나 눈에 이래 보니까 일본이 보입니다.
일본 저기 공장지으면 저 저임금 쪽쪽 빨아가지고 물건 만들어가지고 미국 땅에 팔아가지고 우리는 돈 벌 수 있겠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근대 금융자본주의가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일본 애들이 점점 더 돈을 벌더니 일본의 임금수준이 높아져요.
심지어 노동하는 사람이 돈 더 달라고 자꾸 대모해요.
그랬더니 야! 이제 일본 단물 다 뽑아 먹었다. 어디로 가자 대한민국으로 가자, 대한민국에도 공장짓고 저임금 쪽쪽 빨아먹으면서 돈은 누가 챙기고, 증권가에 있는 큰 손들이 챙기면서....
이게 금융 자본주의와 노동자본주의가 결탁하여 장소를 이동해가며 우리가 지나왔던 시대입니다. 우리도 혜택을 많이 입은 셈이지요.
이 과정을 지나며 산업기지가 계속 이동해 왔어요.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어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지금 베트남에서 인도로 간다네요.
여러분! 그렇게 이동해 가는데 줄 잘못 서버리면요.
한 방에 훅 날아가 버리다 대구에서 의류가 얼마나 잘 나갔습니까 한 방에 확 날아갔어요.
우리나라 텔레비가 얼마나 잘 팔렸습니까? 여러분 텔레비전 그 패널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현대전자가 부도가 나면서 현대전자가 중국의 BYE 그룹에 인수되면서 기술을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 테레비 패넬시장을 중국 티비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여러분 총없이 싸우는 경제 전쟁이 지금 펼쳐지면서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위태롭게 서있는 것입니다.
근데, 앞으로 또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요 환율이 뛰고 집값이 떨어지고 노령화가 되고 임금은 상승하고, 산업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지는데, 그런데, 우리가 정말 알아야 될 것은 뭐냐 하면 한번 따라 고백합시다.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데, 그 하나님은 역사를 어떻게 주관하시느냐 돈 있는 사람에게 권합니다.
너희의 무엇을 자랑할지 낮아짐을 자랑할지 가난하고 없다는 사람한테 주님은 권합니다.
자신의 무엇을 자랑하라 높음을 자랑하라.
한번 따라 합시다.
내가 이래봬도 하나님의 자녀다 여러분 자신의 처지가 부족하다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권세가 있어요. 그 권세는 익수시아
자녀의 권세 자녀의 권세를 계속 사용하다 보면요.
어느 순간에 거기에 성령의 능력이 더 입혀집니다.
자녀의 권세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자녀의 권세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바뀌는 거예요.
이게요 아 얼마나 오묘한 줄 몰라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다 똑같아요. 저도 한 표 여러분도 한 표 있듯이 선거권이 있듯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다 똑같아요.
근데 이걸 자꾸 사용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살다보면요.
이 자녀의 권세가 성령의 능력으로 바뀌는 겁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사람마다 받은 은사가 달라지고
사람마다 자기 전문 분야가 생겨납니다.
대구의 순복음교회 이건호 목사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어린 시절 새 엄마 밑에서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거 신앙 안에 뛰어넘지 못할 때는 손이 덜덜덜덜 떨리는 수전증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학교 1학년 됐는데 대학교 1학년 MT가서 다들 이게 사발식이라고 했습니다.
대학 들어가면 옛날에 그런 거 했거든요.
막걸리 한 사발 부어놓고 그거 이렇게 먹는데 한 잔 받아놓고 애가 손이 덜덜덜덜 떨립니다.
먹지도 않았는데 들고 떨고있는 거예요. 선배들이 말합니다.
너 병원에 한번 가봐라 손을 왜 그렇게 떠냐 그래서 고려대학교 경영과 다니는 애가 병원에 갔더니 병원 의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는 외과에 올 게 아니고 신경과로 가야 된다.
신경과로 가보니까 신경 약을 주는데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약봉다리 이만큼 들고 살아가는 약봉지 들고 학교를 다니다 보니, 그 옆에 있는 순복음 교회 다니는 친구가 그거 예수 믿으면 낫는다고 전도했습니다.
예수 믿고서 방언 받고 불 받고 막 그런 데 막 쫓아다니는 그 은혜 받으면 좀 좋은 것 같은데 여전히 손은 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그러다가 예수전도단에서 나온 마음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테이프를 하나 소개받습니다.
소개받고 그 테이프 듣다가 깊은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 테이프에서 한번 따라 합시다. 죄가 있으면 기억나게 하시고, 상처가 있으면 떠오르게 해주세요. 근데 상처가 있으면 떠오르게 해달라고 막 기도하다가 자기는 절박하니까! 그걸 따라 하다 보니까 어린 시절에 엄마로부터 상처받았던 것들이 확 떠오릅니다.
그 떠올라 가지고 그거를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는데요.
그게 용서가 안되고 그러니까요. 밖에 보니까 말고 방망이가 가서 야구 방망이를 들고 새엄마 때려죽인다고 안방으로 가 보니 새 엄마는 시장에 장 보러 가고 없습니다.
근데, 새 엄마가 시집올 때 혼수라고 자개농 하나 해 온 거 보이는 그거를 방망이로 깨부수는데, 다 깨부수고도 씩씩거리고 화가 안 풀려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불쌍하다. 불쌍하다. 불쌍하다.
불쌍하다는 주의 음성이 자기를 불쌍하다고 하는 줄 알고 듣다가 보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톤이 다른 겁니다.
자기를 보고 불쌍하다 하시지 않고, 자기 새 엄마가 불쌍하다 카는 거야 새 엄마가 왜 불쌍하노 내가 불쌍치 엄마 사랑 못 받고 새 엄마도 구박받고 살아가는 내가 불쌍하지 그런데 새 엄마의 인생을 하나님이 그냥 슬라이드처럼 이렇게 보여주시는데 제처로 들어와서 전 남편 소생의 아이들을 친정에 맡겨놓고 일 년 지나고 하나 데려오고 또 한해 지나고 또 하나 데려오고 시어머니 모시고서 옛날 자기가 낳은 아이와 지금 전 부인 소생의 아이와 속에서 엎치락뒤치락 감당해나가는 그 새 엄마의 인생이 불쌍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이건호 목사님 무너져요. 확 무너지고 펑펑 울고 용서하고 뛰어넘는데 그때부터 그 분의 두나미스 그 사람의 두나미스가 생겨났어요.
그래서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보면 이 분은 마음을 치료하는 성령의 특별한 능력이 주어지는 거예요.
할렐루야!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다 똑같아요.
그러나 성령의 능력은 사람마다 하나님 앞에 그가 무엇을 뛰어넘었느냐에 따라서 다 달라지는 것입니다. 안 뛰어넘으면요. 그 상처 속에서 그냥 살아가야 될 사람들이 예수 복음 안에서 그거 뛰어넘었더니 대한민국에 수많은 상처 받은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이 분이 모퉁이돌 선교회랑 함께 탈북자의 내적치유사역을 감당했는데요.
탈북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상처받고 성폭행 당하고 그런 사람들을 회복시키는데 그의 인생을 들어서 그렇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렇게 사용하시더니, 하나님이 때가 되어서 축복하셔서 대구에 대구 순복음 교회 제법 큽니다 1500명쯤 될 겁니다.
1500명 교회의 담임 목사로 하나님이 딱 안내해 주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있습니다.
낮다고 생각하십니까?
자녀의 권세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인장 도장을 찍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익수시아가 두나미스 성령의 능력으로 바뀌면서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풀어지고 그 은혜가 풀어질 때 어떤 사람은 마음을 치료하는 은사가 오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은요 네 죄인을 회개시키는 은사가 오고요 어떤 사람은요 질병을 치료하는 은사도 오지만 또 어떤 사람은 따라 합시다. 돈을 푸는 은사도 옵니다.
아닌 것 같습니까? 물권자의 축복이 재정을 풀어주는 그런 축복도 와요.
여러분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씨름하든지 하나님 눈에 합격하는 순간에 그 낮아짐 속에 높으심의 역사를 순식간에 일으키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가 풀어지는 할렐루야!
그렇데 높아졌다고 해서 기고만장해가지고 그러면요, 하나님 또 낮추십니다.
여러분 지나가는 물질인 거예요. 지나가는 물질이고
하나님의 승리 앞에서 이 물질에 대해서 겸허하지 않으면 그 물질이요 온 가정을 돌이켜 온 인생을 망하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면요.
그렇게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낮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높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모든 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제대로 사용하면……. 뭐 하면요. 제대로 사용합니다.
제대로 사냥하면 모든 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뭔가 주신 게 있습니까? 돈을 주셨습니까 은사를 주셨습니까?
좋은 권력을 주셨습니까? 여러분 오래 못 갑니다.
오래 가고 싶습니까? 주신 물질이 오래 가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무엇을 자랑하라 낮아짐을 자랑하고
그리고 낮아짐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주되심 앞에 겸허하게 청지기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재정의 축복도 그에게 계속 더하시는 은혜를 주세요.
할렐루야!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의 가정과 삶에 함께하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남은 인생 살아가는 중에 하나님 노후 생활의 모든 자금도 책임져 주시고 살아온 모든 여건 안에서 하나님이 공급자가 되시는 아름다운 은혜가 있게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높은 게 뭐겠습니까 낮은 게 뭐겠습니까 주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것을 고백합니다. 그저 내가 예수님 앞에 거듭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령을 내게 주신 그 은혜 아래에서 겸비하게 살기로 소망합니다. 성령님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이끌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복되고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가고 그런 가정을 세워가는 은혜가 있기를 우리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믿음으로 심은 것마다 복으로 거두어서 우리의 자녀 손들 안에서 풍성한 것들을 거두는 은혜가 있기에 축복하여 주시고, 예수님 안에서 재정의 축복도 은사의 축복도 기도의 축복도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도록 가득히 채워 주장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성공의 모든 성도들의 가정과 삶의 모든 자리마다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