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
언제부턴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아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무슨 띠예요?”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그냥, 무심코 넘긴다. 이제껏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자주 반복되는 “무슨 띠예요?”는 결코 단순한 과잉 언어에 불과 할까?라는 아주 작은 미동이 일었다. 우연히 외부의 자극에 의한 인식.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우연히 아니라 자신의 사유의 개념과 형상일 수도 있겠다.
이처럼 우연이겠지,라고 여기던 어떤 말들 그리고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작은 사건들이 느낌으로 다가오고, 미세한 떨림(직감)이 잔잔히 마음으로 스며들면서 순간의 화들짝 놀람?, 이때, ‘우연’은 ‘필연’으로 매듭지어져 원인과 결과 ? 어쩌면 그 직감이 상상력이며 창의성의 바탕일 수도? 그렇다면?
해서, 그 아이의 질문을 의식적으로 기다린지 보름하고도 하룻만에
“무슨 띠에요?”
“뭐하게?”
“선생님, 1955년 양띠. 55살”한다. 내가 55년생 임을 어떻게 알았을까? 신기하고 놀랍다.
“어떻게 알았어?”
“금방 알았어요. 달력 보면 알아요. 계산해 보면 알아요.”한다.
그러더니 “58년 개띠, 59년 돼지띠, 60년 쥐띠, 99년 토끼띠. 61년 소띠” 자연스럽게 노래하듯 술술 말한다.
“머리 속에 무엇이 있어?”
“96년 쥐띠, 머리 주머니”
“머리 주머니에서 무엇을 해?
“수학, 빼기. 더하기, 나 빼기 할 줄 알아요.” 한다.
머리주머니의 계산을 공책에 써 보라고 하니,
그 아이는 1955 ~ 2009
1세 55세 , 라고 나타냈다.
“머리 주머니에서 계산을 할 때 무슨 수에서 무슨 수를 뺐어? 머리주머니의 속에서 한 계산을 그대로 해 봐”
그 아이는 283
- 83 = 160,이라고 나타냈다. 일 자리 0을 가리키더니 “쥐띠다” 했다.
이어서 “161 소띠. 165 뱀띠”한다.
“띠가 뭔데? - 12신마는 우리나라 연도를 나타내요”
“12신마?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하는데? -조견표를 만든다. 조견표에 12신마 나온다.”
“그걸 어떻게 이용 해? 띠를 어떻게 알아? -조견표를 알아야 한다. 조견표를 외워야 한다.”
“외워 봐.- 다음에 외워야 해요”
“왜? - 부끄러워--- 으으으응으” 하며 딴청부린며 있던 장소를 이탈하더니 다시 제 자리 로 돌아와 놀리듯 크크거리더니 큰 소리로
“1700년 조견표, 1742년은 무슨 띠냐면” 하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개띠예요”한다.
“머리 주머니에서 어떻게 계산했어?”
“금방 알았어요. 내 생각대로. 나는 고학년이 시작될 때 태어났어요”
“머리속에서 무슨 수와 무슨 수를 더했어? 그리고 무슨 수와 무슨 수를 뺏어?”
그 아이는 264
- 83 = 171, 이라고 내 수첩에 써 주고 다음 통합 수업을 위해 도우미와 함께 교실로 갔다.
그 아이의 머리주머니(생각 혹은 사유)는 확실하고 정확한 률이 있는 듯 했다. 그것은 감각이나 느낌을 넘어선 어떤 체계가 과학적으로 개념화 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이 체계를 내가 이해하고 있었다면 대화는 분명 가능했을 것이다. 아쉬웠다.
중심이 나에게로부터인가 아니면 남으로부터 일 수도 있다는 우리들의 다양한 시선, 그 시선이 우리 아이들의 삶과 관계 지어지기를 바래본다. 평소에는 자신의 신변정리 곤란으로 늘 긴장하게 하는 아이. 말의 유창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확한 정보의 전달도 어려운 아이지만 소통은 꼭 말이 아니어도, 이처럼 수학으로도 충분함이 증명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