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그리스야.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분명 J의 목소리였다. 에게해의 바람 소리 같은 잡음이 귓속을 윙윙 맴도는 이십 년 전의 국제전화였다. 배낭여행을 떠나는 젊은이가 그리 많지 않은 시절이었고 J는 배냥여행을 떠난 최초의 친구였다. 예상치 못한 초, 현,실, 적인 전화를 받으며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세차장에서 손세차 아르바이트를 하던 무렵이었다. 거긴 어때? 라고 마치 그리스 인처럼 J가 물어왔다. 망설임 끝에 나온 궁색한 대답은 더워죽겠어,였다. 목이 고장 난 작은 선풍기가 반지하의 그늘 속에서 틱, 틱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구나. 작열하는 태양 밑에서 나는 J와 , 그리스와, 유럽을 떠올리며 세차를 했다. 이곳을 벗어난 인간에게, 이곳에 남은 인간은 결코 "지금 여기 한국이야."와 같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나도 여행을 해야지. 술만 마시면 변혁이니 빈부의 격차 같은 걸 논하던 때였지만, 실은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빈부의 격차가 어떤 식으로 개인의 삶을 좌우하는지, 나에게 여행이 그 얼마나 멀고도 소원한 얘기인지를. 그렇게 이십대가 지나갔다. 나는 언제나 알바에 매달렸고, J는 언제나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발목을 삐거나 손을 다치고, 혹은 땀띠나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다 일을 마쳤고, 몸이 괜찮아질 때즘 여행에서 돌아온 J의 고생담을 들어야 했다. 힘들었겠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나는 중얼거렸다. 말도 마라니까. 땅콩을 집으며 J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이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갔다. 떠나기보다는 나는 늘 이곳에 남아 일을 해야만 하는 인생이었다. 세상을 둘러본 J는 십여 년 전 미국에 뿌리를 내렸고, 간혹 또 거기서도 캐나다나 남미를 여행하며 카드나 엽서를 보내오곤 했다. 지금 여기 칠레야. 지금 여기 나이아가라야.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나이아가라 정도는 가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역시나 나는 남아서 해야 할 일과, 생활과, 숙제가 쌓여 있는 삼십대였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나도 그러니까 나도, 언젠가는 말이다. 언제 LA한 번 들르지 그래? 선명해진 국제전화 속의 목소릴 들으며 나는 담배를 물거나 야근을 하고는 했다. 거긴 어때? 그저 그래.
한동안 잊고 지내던 J에게서 소포가 온 것은 며칠 전의 일이다. 소포의 겉봉엔 화려한 필기체의 메리 크리스마스가 적혀 있었고, 속에는 약간은 사람을 어리둥절케 하는 플라스틱 인형이 들어있었다. 아스트러넛 지저스. 즉 '우주인 예수'란 이름의 인형이었다. 선물 고마워, 라고 이메일을 보내긴 했지만 우주복 차림의 예수님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J의 답장은 짧고도 간결했다. 사실 우리도 전부 우주인이더라구. 언제나 이곳에 남았던 인간으로서, 언제나 이곳을 떠났던 인간의 한마디에 나는 또 한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인도 캐나다 인도, 실은 이 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우주인이다. 한 번도 이곳을 떠나지 못했으면서, 나는 문득 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외치고픈 마음이었다. 지금 여기 한국이야.
예수님도, 돌아가신 내 아버님도,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노래하신 천상병 선생님도 실은 모두 우주인이었다. 우주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여행이자 관문이요, 경로가 아닐 수 없다. 빈자도 부자도 실은 모두 이곳을 여행하는 중이고, 말죽거리도 종로도 그 모두가 낯선(그리스뫄 토성과도 동등한)곳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삶도 죽음도 모두가 여행이란 글귀를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아니나 다를까. 이 삶이 여행이 아니라면 죽은 이들은 대체 어디로 돌아간단 말인가. 또 우리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곧, 아마도 내 아들의 아들의 아들 세대 정도면 배낭 우주여행이 대성황을 이룰 거란 생각이다. 누구는 우주를 나가고 누구는 역시 손세차 아르바이트에 꼼짝 없이 매달릴 세상이겠지만 기억하자. 그때도 변함없이 인간은 모두 우주인이고 인간은 누구나 여행 중이다.
지금 여기 안드로메다야.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문득 그런 전화를 받으면 좋을 것 같은 새벽이다. 목이 고장 난 선풍기처럼 나는 잠시 울컥하겠지만, 설사 아버지가 "지금 여기 말죽거리야." 말한다 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여행 중이고, 말죽거리는 안드로메다만큼이나 실은 멀고 낯선 곳이니까. 어쨌거나 말죽거리는 가봤지만 안드로메다엔 가본 적 없는, 나이아가라도 그리스도 가본 적 없는 - 나는 지금 이곳을 여행 중이다. 안방에서 곤히 잠들어있을 아내가 문득 그립고 그립다. 전화를 걸어볼까? 그러니까 한 사람의 우주인으로서. 여보, 지금 여기 옆방이야.
Traveller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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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부치는 엽서는 홀라당 그곳에 벗어두고 온 껍질 같은 것에게 보내는 안부와도 같다. 그것은 미련일수도 있고, 후회일 수도 있고, 그리움일 수도 있고, 잠시 꺼두었지만 어두우면 다시 켤 등 같은 것 일 수도 있다.
지금 여기와 지금 거기는 같은 곳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둘러싼 것을 잠시 제쳐두고 왔다 하더라도 내가 있다면 말이다.
다만 나는 저기 저곳으로 가는중이다. 지나온 어떤 곳보다 지금, 혹은 저기가 좋다라고 단정지어 말 할 수는 없다. 그건 그냥 ... 단지 ... 서로 다른 여행지일 뿐이다.
첫댓글 글이 너무 와닿고 재미나네요. 박민규 소설가.. 기억하겠어요. 코로나 고마워요. 여기는 양주 백석이야...ㅋㅋㅋ
여기는 하꼬방!!
푸름하나님 병원차리셨남? 아니면 연사마 하꼬방에 놀러가셨남?
박민규 한 번 보았는데(악수 한 번 하고 통성명 한것을 만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당시는 초짜 소설가였는데도 참으로 진실하고, 그리고 선량해보였다. 허리를 깊숙하게 숙여 선배소설가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결코 비굴하지 않았다. 멋진 박민규!! 그의 소설도 짱!!
이런 내공 언제 쌓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