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유를 가로막는 건 외부 사황이 아니라 신경계에 새겨진 긴장이므로, 이것만 제거하면 무한한 의식으로 점프할 수 있다는 티베탄 펄싱, 그 새로운 세계의 문을 두드려본다.
‘티베탄 펄싱’은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명상법이다. 오쇼명상센터나 정신세계원을 자주 다닌 사람 중에도,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티베탄 펄싱은 인도 뿌나의 오쇼 아쉬람 산하에 있던 산탐 뒤라지Santam Dheeraj가 현대에 되살린 고대 티베트의 명상법이다. 그리고 기안 무니(34)는 우리 나라에 몇 안 되는 티베탄 펄싱 마스터 중 한 명이다. 94년에 티베탄 펄싱을 배우기 시작한 무니는 98년부터 한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그리스, 이태리를 오가며 세션을 열고 있다.
심리 장애는 신경계의 긴장에서 온 것
그럼 ‘티베탄 펄싱’이란 무엇인가? 수천 년 전 티베트와 중국의 사원에는 깨달음을 준비하는 승려들만이 행하는 명상법이 있었다. 이것을 명상 마스터이자 의사였던 산탐 뒤라지가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되살린 것이 바로 티베탄 펄싱이다. 뒤라지는 평생 알콜중독에 시달렸으며 췌장암으로 3번이나 수술을 받을 만큼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마침내 자신의 에고를 변형시키는 티베탄 펄싱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한 생애에서 자신만큼 많은 고통을 체험한 이는 없을 것이라 말했던 뒤라지는, 고통의 극한에서 광명으로 점프한 극적인 삶의 주인공으로 언급되곤 한다.
티베탄 펄싱은 개개인이 지닌 상처와 긴장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한다. 그 사람의 의식 성장을 가로막는 방해물을 제거하여 가능한 최고의 의식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방해물이란, 그 사람의 심리적인 상처와 신체 특정 부위의 긴장을 말한다. 이 둘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신체의 긴장이 심리적 장애를 유발하고 심리적 상처가 신경계의 흐름을 가로막는 식으로 긴밀히 연관돼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면, 골반 부위는 자신을 자신있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능력과 연결된다. 따라서 어린 시절 엉덩이를 많이 맞은 아이는 훗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패션모델과 같이 대중 앞에서 자신을 연출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이에게 골반의 긴장은 치명적인 장애가 될 수 있다. 또한 인체 장기 중 신장腎臟은 사고의 명료성과 연관되므로, 신장에 긴장이 있을 경우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며 즉각적으로 행동하기 어렵다. 쓸개는 자유로움과 관계가 있어서 이 곳에 긴장이 있으면 변화에 소극적이고, 새로운 상황으로 도약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신경계를 흐르는 전기적 에너지가 두뇌에서 의식을 일으키면 ‘생각’이 되고, 가슴에서 대상에 작용하면 ‘감정’이 되며, 단전에서 움직임을 만들면 ‘행동’이 된다.
몸 안의 전기 에너지를 흐르게하라
티베탄 펄싱에서는 신체를 24개 부위로 나누어, 이를 기준으로 개인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24개 부위는 팔 다리 심장 단전 위장 폐 비장 췌장 십이지장 쓸개 간 신장 소장 방광 골반 난소 고환 성기 혀 목 아드레날린 대뇌 뇌교 소뇌 등으로 각각의 기관들은 신체의 한 부분으로서 물리적인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스스로의 고유한 의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현대 의학의 입장과 달리, 두뇌뿐 아니라 팔과 다리, 심장과 방광 등에도 그들 고유의 감정과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특정 부위의 에너지가 막혀서 흐르지 않으면 이에 해당하는 의식의 장애가 일어난다고 티베탄 펄싱은 설명한다.
그렇다면, 신경계는 어떤 과정과 경로를 거쳐 정신에 영향을 미칠까? 티베탄 펄싱에서는 신경계를 흐르는 전기적 에너지Bioelectrical Energy야말로 육체와 정신 활동의 근본적인 동력이라고 본다. 이 에너지가 두뇌를 통해 의식을 일으키면 ‘생각’이 되고, 가슴을 통해 외부 대상에 작용하면 ‘감정’이 되며, 단전을 통해 움직임을 만들어내면 ‘행동’이 된다. 그리고 척추를 통해 작용하면 생각, 느낌, 움직임이 통합된 에너지가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이 네 가지를 균형있게 발달시키지 못하고 어느 특정한 레벨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지나치게 생각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정에 휘말려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는 사람도 있고, 단지 힘만 쓰는 데 치우쳐 즉물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티베탄 펄싱의 목적은 이렇게 한 방향으로 치우친 의식을 조화롭게 하는 동시에 막혀 있는 신경계의 에너지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각자의 의식 레벨과 행동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 리딩Eye Reading을 한다. 사람의 눈은 밖으로 드러난 두뇌와 같아서 그 사람의 성향과 심리적 상처, 신경계의 긴장, 좋지 않은 신체 부위 등이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긴장이 있는 신체 부위에 대해 바디 워크Body Work를 하는데, 이것은 티베탄 펄싱 마스터와 개인적으로, 또는 여러 명이 참여한 그룹 안에서 행해진다. 바디 워크에서는 인간의 ‘심장 박동’을 근원적인 치유력으로 보고, 두 사람 또는 여러 명이 다양한 자세를 통해 심장 박동을 연결하여 인체 내의 전기 에너지를 자극한다. 그러면 여러 개의 전지를 연결한 것처럼 강력한 전기 에너지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오랜 시간 막혀 있던 신경계에 빛의 폭발이 일어나 원활히 흐르게 된다. 인체를 하나의 전지로 보고, 여러 개의 몸을 연결하여 생겨나는 에너지를 통해 의식을 변형시킨다는 것이 티베탄 펄싱의 핵심인 것이다.
인체를 하나의 전지로 보아, 여러 개의 전지를 연결하여 생기는 강력한 에너지로 의식을 변형한다는 것이 티베탄 펄싱의 핵심이다.
무의식을 꿰뚫어 보는 뒤라지에게 엎드려
이렇듯 일반인에게 생소한 티베탄 펄싱을 20대에 시작한 기안 무니. 그는 대체 어떤 인연으로 티베탄 펄싱을 만나게 된 것일까? 1994년, 20대 중반의 기안 무니는 자신이 계획하던 음반 사업 때문에 캐나다로 가던 중, 인도의 오쇼 아쉬람에 들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운명의 마스터인 산탐 뒤라지를 만나 티베탄 펄싱을 전수받게 되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음반 사업을 준비하던 그가 삶의 방향을 180도 전환한 것일까?
뒤라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나는 검은색 로브를 증오한다”는 공격적인 한 마디를 내뱉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뒤라지는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것을 계기로 무니는 뒤라지의 충실한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무니가 ‘검은색 로브(긴옷)’를 증오하게 된 것은 그 자신의 심리적 패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과 분노를 가지고 있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그것을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사회에 대항하는 학생운동으로 분출하였다. 이렇듯 권위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던 그는, 일반 산야신과 구분되는 검은색 로브를 입은 그룹의 리더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이런 무니에게 뒤라지는 민주화 투쟁에 투신하게 된 그의 무의식을 꿰뚫는 한 마디를 던짐으로써 새로운 세계로 가는 관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그날 무니는 모든 종류의 사회변혁운동은 개인적 분노의 변형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스승 뒤라지는 그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뒤라지의 아이 리딩을 받던 순간을 무니는 이렇게 회상한다. “마하가섭이 붓다에게 꽃을 전해받을 때의 심정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저는 너무 떨려서 마이크를 한 손으로 쥘 수도 없었습니다”
무니는 스승의 도움으로 자신의 에고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외부를 향해 내뿜던 분노를 내적으로 변형하기 시작했다. 뒤라지는 그에게 “내가 너의 눈에서 완전한 순수를 발견할 그 날까지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티베탄 펄싱을 계속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던 무니는, 이 말을 되새기며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사회 변혁을 꿈꾸었던 무니에게 뒤라지는 “너 자신이 완전히 순수해진 뒤에야 진정으로 남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함으로써, 의식의 변형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과제임을 알게 하였다.
지금 여기가 바로 의식 진화의 현장
기안 무니는, 의식의 상승과 사회에서의 성공이 결코 둘로 나뉠 수 없다고 말한다. 신경계에 긴장이 없으며 다차원의 에너지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룬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창조하고 현실화하는 데 장애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명상적으로는, ‘깨달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는 무니는 아직 국내에 굳건한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이다. 젊은 나이도 나이거니와 각 집단의 보수성과 폐쇄성, 새로운 것은 무조건 색안경 쓰고 보는 일반인들의 몰이해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무니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상쇄시킬 만큼의 에너지를 나 스스로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솔직히 시인했다.
그는 현재 『Bardo Live』라는 뒤라지의 명상에 관한 책을 번역하고 있다. 국내에 티베탄 펄싱을 널리 전할 때가 되면 이 책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가 앞으로도 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을 계속해 나갈지, 아니면 국내에 정착하여 새로운 명상 문화를 꽃피워낼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어려움이 진화의 도약대라는 것을 이해하는 이에게는, 척박한 땅이야말로 의식 변형의 현장이며 깨달음의 무대라는 사실이다.
* 출처 : 정신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