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거나 추상적이 아닌 구체적이고 현실 감각이 있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한편의 소나타를 들으면서 인생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듯 서정적으로 그리고저 했다. 서울에서 멀지않은 한적한 교회에 오랫동안 잊혀지다싶이 운둔해 살고있는 한석조 교수의집에 어느날 "월간여성" 서민경 기자가 한교수 부부에 대한 인터뷰를 위해 무작정 찾아든다. 그동안 다른 잡지사들도 몇차례씩 인터뷰를 시도 했으나 특히 한교수의 완강한 거부로 번번이 실패한 터다. 이번엔 한교수 부인의 반 승낙 을 받고 서기자가 찾아온 것이다. 서기자를 통해 한교수의 부부의 현재 와 과거가 서서히 드러난다. 지금은 벌써 예순이 넘어 황혼식에 접어든 한교수. 그러나 그는 한때 자기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망있는 대학교수였다. 그러던 그가 부인으로부터 간통사건으로 고소된다. 상대는 유망주 였던 신진 피아니스트로 스승이자 유부남인 한교수를 사랑하는 하정숙. 결국 떠들썩한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한교수와 정숙은 한만디 변명없이 옥고까지 치르게 된다. 정숙이 바로 오늘의 한교수 부인이다. 그후로 한교수는 모든걸 져버리고 세상과 높은 담을 쌓은채 살아온 것이다. 이제 인생과 사랑의 의미를 매일처럼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는 한교수를 보면서 정숙은 정신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정숙 또한 두사람이 젊은날 그토록 매달렸던 사랑의 의미를 되찾아 보려고 노력 하지만 그럴수록 암울해지기만 하는 두사람의 모습과 분위기. 제자였던 기섭의 결혼주례를 부탁 받던날 한교수는 갑자기 오랫동안 관계를 끊고 있던 아들 찬우를 찾아간다. 서로 이해가 이루어지지만 곧 이민할것이라는 아들의 애기를 듣고 한교수는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오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기섭으로부터 한교수 부부의 과거를 알게된 부모들 의사때문에 결혼주례를 바꾸게 됐다는 걸 알면서 한교수와 정숙은 지금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나눌 수 있는가 물으면서 더욱 침참한다.
[페이지] F03
등장인물
하정숙 (55)
한석조 (63)
한찬우 (35) 석조의 아들
이수진 (32) 찬우의 아내
한현수 (6) 찬우의 아들
하정애 (48) 정숙의 동생
김형섭 (30)
서민경 (24)
최기섭 (30)
아낙 (45)
다방레지 (25)
[페이지] 001
[장] 1장
서울에서 떨어진 한적한 교외에 있는 한석조교수의집 거실. 현관과 마당이 동시에 보여진다.저녁나절 어둠이 엷게 깔린 마당에 한교수가 파이프를 물고 서서 멀리 강변 길을 바라보고 있다. 정숙은 거실에서 전화를 받고 있다. 이윽고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램프에 불을 켠다. 밝아지는 거실. 정숙은 램프가 놓인 작은 탁자서랍에서 약병을 꺼내 몇 알을 덜어 주전자 물 컵에 따라 삼킨다. 무언가 불안한듯 거실을 한 바퀴 돌아보고는 전축쪽으로 가서 파워를 넣고 텐테이불에 이미 올려져 있는 레코드에 바늘을 건다. 베에토벤 피아노 쏘나타 14번이 흐른다. 정숙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쇼파로 가 앉는다. 그 사이 마당에서 거실로 천천히 들어서는 한교수. 정숙은 맞은편 소파에 앉는 그를 조용히 쳐다본다.
[정숙] 차 드려요?
[석조] 아니---
[정숙] 내일 어디 안 나가죠?
[석조] (눈 감은채) 응
[페이지] 002
[정숙] 잡지사에서 온대요
[석조] (눈 뜨며) 뭣 하러
[정숙] 당신 만나러요
[석조] 날 왜?
[정숙] 오면 직접 물어 보세요
[석조] ---
(정숙은 일어나서 침실로 들어간다. 더욱 깊숙이 소파에 묻히는 석조)
[장] 2장
한교수의 집에 이르는 강변 길에 있는 조그마한 식당 간단히 식사를 마친 형섭과 민경이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민경] (정면 보며) 두분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 없으신가요?
[형섭] 글쎄---
[민경] 혹시 후회 같은건 안해 보셨어요? 라고 물으면 대답이 어떻게 나올 것 같아요?
[형섭] (픽 웃고) 난 또 무슨 얘기간 했네, 한석조씨 간통사건 터졌을때 서기자 몇살이었어요?
[민경] 그게 몇 년전 일이죠?
[페이지] 003
[형섭] 이십년은 넘었을 걸요. 한석조 씨가 벌써 예순이 지났을텐데.
[민경] 그럼 나두 세상 사람 이었던것만은 분명 해요.
[형섭] (웃는다)
[민경] 아무튼 대단해요.그시절에 그런 로맨스를 벌리다니---
[형섭] 서기자, 로맨스와 스캔들 의 차이가 뭔지 알아요?
[민경] 글쎄요, 뭐죠?
[형섭] 자기들이 하는건 로맨스고 남들이 하는건 스캔들이래요.
[민경] (웃음으로) 그럴듯 한대요.
[형섭] 두사람 에 대해 귀 동냥은 얼마나 했어요?
[민경] 예 알려진 이야기 정도예요, 한석조씨 부인이 끝내 고소를 취하 안해서 두 사람이 다 형까지 살고 나왔다면서요
[형섭] 그런데 그러구 나오자마자, 두 사람이 보란듯 결혼까지 올리고 진짜 부부가 됐으니, 그시절 현직 대학교수 스캔들로는 세상이 떠들썩 했을 밖예요. 더구나, 상댄 같은 대학 대학원생이었구
[민경] 그때 하정숙씨도 신진 피아니스트로 꽤 유망주 였다던데
[형섭] 그랬대나봐요 국제콩쿨 같은데서도 두각을 보였다니까요?
[민경]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게 한 번 해볼만하긴 한건가봐요
[형섭] 무슨 소리에요?
[페이지] 004
[민경] 사랑하나를 택하기 위해, 그 모든걸 다 버릴수 있다는 건 사랑이 그만큼 대단한게 있다는 애기 아니예요?
[형섭] 아니, 그럼 서기잔 여태 사랑 한번 못 해봤다는 애기 같은데 믿어도 되는 거짓 말이예요?
[민경] 네가 말하는 건 진짜 사랑을 두고하는 말이예요
[형섭] 아니, 사랑에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어요?
[민경] 요즘 사람들 사랑이라는 걸 너무 겁없이 함부로 하는것 같아요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쉽게 말하고 쉽게 행동해요
[형섭]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진짜 사랑이예요?
[민경] 그건 나두 아직 몰라요 해보구나서 얘기해 줄께요
[형섭] (웃는다)
[민경] 그런 행운이 나 한테 온다면요
[형섭] 이제보니 서기자, 애정지상주의 셨네. 그러니까 사랑을 하려거든 한석조 하정숙 커플 정도는 해라.
[민경] 한때 지탄의 대상이 됐을지 몰라도 두 사람이 진실한 사랑을 했다는 것만은 인정해줘야 되는거 아니예요? 인터뷰 취지도 그러구요
[형섭] (농담조) 글쎄, 누가 뭐랍니까 그나저나 인터뷰 따낼 자신은 있어요?
[페이지] 005
[민경] (미소)
[형섭] 다른 잡지사들도 몇차례씩 시도를 해봤다가 번번히 실패만해서 하는 얘기예요. 특히 한석조씨가 완강하다는데요
[민경] 그렇다고 미리 포기할순 없잖아요 일단은 부딪쳐 봐야죠 가죠 그만
(두 사람이 일어서는데 -암전-)
[장] 3장
거실과 현관마당, 그리고 식당이 엇갈려 보여진다 정숙이 현관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형섭과 민경 들어선다
[형섭] 실례합니다
[민경] 안녕하세요, 월간여성에서 나왔어요
[정숙] 아, 네
[민경] 먼저 저희 소개부터 해드릴께요 전 어제 전화드린 서민경이예요
[정숙] 그래요 반가워요
[민경] 이쪽은 저희 잡지사 사진부 기자세요
[형섭] 처음 뵙겠읍니다. 김형섭입니다
[정숙] 네, 거실로 들어가시죠
[페이지] 006
[민경] 네 (형섭과 민경은 정숙을 따라 거실로 들어선다)
[정숙] 우선 좀 앉아계세요 선생님 나오시라구 할께요
[민경] 네
(두 사람은 소파에 적당히 앉고 정숙은 서재로 들어간다)
[형섭] (소근 거리듯) 하정숙씨 여전히 미인인데요
[민경] 언제 뵌적 있어요?
[형섭] 사진으로요
[민경] (들러보며) 근데 피아노가 안보이네요
[형섭] 그러게요, 없을리는 없고 다른 방에 있나--- (하다가 정숙 나오는 기척에 입다문다)
[정숙] (나오며) 이거 어떡하죠, 서재에 계신줄 알있는데 안계시네요
[민경] ?
[형섭] ?
[정숙] 잠깐 바람쐬러 나가신것 같은데 바쁘세요?
[민경] 아니에요. 혹시 서재에 계시면서 우리를 따돌리시는거 아니에요
[형섭] 설마요?
[정숙] (미소 지으며) 그렇지 않아요. 그럼 차나 한잔 하면서 기다리세요, 말씀없이 나가셨으니까 멀린 안 나가셨을 거예요 ((정숙이 주방으로 나간다. 동시에 음식점에 불이 들어오면 가깝게
[페이지] 007
산책나온 차림으로 음식점에 들어서는 석조. 주인 아낙 반갑게 맞는다.))
[아낙] 어이구 어서오세요, 선생님!
[석조] 소주 한자 마십시다
[아낙] 예, 이쪽으로 앉으세요 따근한 국물도 함께 올리까요
[석조] 그러세요 (아낙이 사라지자 석조는 파이프 담배를 재운다. 장면은 다시 거실로 이어진다)
[정숙] (테이블 찻잔을 내려 놓으며) 드세요
[민경] 네
[형섭] 고맙습니다
[정숙] 여기까지 찾아오느라 힘들었죠
[민경] 아니에요, 주변 경치가 좋아서 차타고 오는동안 지루한줄 몰랐어요
[형섭] 서울에서 금방이던데요
[정숙] (미소 지으며 앉는다)
[민경] 우리 김기자는 사모님이 아직도 미인이시라구 감탄인데요
[정숙] (형섭 향해) 초면일 텐데
[페이지] 008
[형섭] 연주회 카탈로그 사진으로 Ꙗ었읍니다
[정숙] 아 그랬군요, 그렇다면 그건 까마득한 얘긴데
[형섭] 그래두 그때 모습하구 별로 안 변하신것 같아서
[정숙] 고마와요, 이 나이에도 여잔 여잔가봐요 듣기 좋은데요
[민경] (형섭과 함께 웃고나서) 선생님께선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정숙] (잠깐 생각했다가) 음, 산책도 하시고, 음악도 들으시구 가끔씩 찾아오는 제자두 만나시구, 그래도 역시 학문을 하셨던 분이라 대부분의 시간은 독서로 지내세요
[민경] 네
[정숙] 그런데 무슨 취재죠?
(식당. 술잔 앞에놓고 생각에 잠겨있는 석조)
[아낙] (다가와서) 술 드릴까요? 선생님?
[석조] (그래서야 시선 거두고) 아, 아닙니다. 됐습니다
(석조가 천천히 일어서는데 -암전-)
[장] 4장
거실. 소파에 앉아 묵묵히 석간을 읽고 있는 석조
[페이지] 009
[정숙] (흥분) 사람을 그렇게 당황시켜놨으면 뭐라구 한마디쯤은 있어야 되는거 아니예요 당신! 어디 숨어서 기자들 떠나가는것 지켜보다가 들어온 거예요?
[석조] ---
[정숙] 도대체 당신이 그렇게 기자들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뭐예요?
[석조] (신문에 시선 박고서) 무서워서가 아니라는건 당신이 더 잘 알잖아
[정숙] 그럼 떳떳이 못 만나구 왜 피해요?
[석조] 난 그 사람들 만나기로 한 적 없어
[정숙] ?
[석조] (뭔가 폭발하듯이) 약속을 한건 당신이야. 당신 혼자 당신 멋대로 한 약속을 내가 피하고 말게 어딨어 (휑하니 서재쪽으로 가버린다)
[정숙] --- (무엇인가 한방 얻어맞은 기분) 당신 아직도 나하구 사는게 세상사람들 앞에 떳떳치 못한거죠?
[석조] ---
[정숙] 그렇죠? (다그치듯)
[석조] 얘길 쓸데없는 쪽으로 비약시키지마
[정숙] 당신이야말로 피하지말구 대답해요
[페이지] 010
[석조] 그런거 없어
[정숙] (되받듯) 없어요?
[석조] 우린 부부야. 당신이야말로 그런 피해의식에서 그만 벗어나
[정숙] 그런거 없는 사람이 세상하구 담은 왜 쌓구 살아요. 허구헌날 참회자 같은 당신 그 얼굴 뭐구요.
[석조] (감정 폭발로 책으로 책상을 내리치고)그래서 지금 나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 나이에 세상에나가 목청 돋구고 노래라도 부르라는 거야 뭐야?
[정숙] (뭐라고 응수 못하는데)
[석조] 당신이라는 여자, 나하구 이십년을 넘게 살구도 그렇게 날 몰라? 난 번거로운게 딱 질색인 사람이야 그게 하고 싶으면 당신 혼자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구
[정숙] (할말 잃는다. 뭔가 질린 기분)
((석조 일어나서 현관마당으로 나간다. 정숙은 빠른 걸음으로 램프가 놓인 탁자로 가서 약을 꺼내 몇알 삼킨다. 그리고는 전축을 켠다.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거실 어두워지며 수갑을 채운 석조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이어 역시 수갑을 찬 정숙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페이지] 011
[장] 5장
거실. 정숙이 뜨개질을 하고있는데 정애가 들어선다.
[정애] 언니
[정숙] 아니 너 갑자기 웬일이니?
[정애] 웬일은 언니 보고싶어 왔지
[정숙] 그래두 전화나 하구오지
[정애] 들이 닥치면 만날텐데 전환 뭣하러 해, 이 엄동설한에 언니가 어디 집 비울일 있는 사람두 아니구
[정숙] 앉아 춥지
[정애] 됐어 훈훈한데 뭘, 형부는?
[정숙] 서울
[정애] 서울은 무슨 일루?
[정숙] 몰라
[정애] 무슨일로 가신다구도 안해?
[정숙] 내가 안 물었어
[정애] 혹시 아들 만나러 가신거 아냐?
[정숙] 글쎄---
[정애] (차마시며) 언니두 생각을 잘못했어
[정숙] 뭘?
[페이지] 012
[정애] 자식을 갖는건데 말이야
[정숙] (픽 쓴웃음)
[정애] 웃을게 아냐 지금 형부하구 언니 사이에 자식 하나만 있어두 이렇게까진 적적하진 않을 거라구. 젊을땐 몰라두 나이드니까 그래도 자식이 있어야 든든해
[정숙] (화제를 돌리듯) 정아 아빤 잘있지?
[정애] 그 인간 얘긴 꺼내지두마 언니.
[정숙] 왜?
[정애] 내 이나이까지 자식 낯에 그인간 하구 살았지 애들만 아니었음 갈라섰서두 골백번은 더 갈라섰을꺼야.
[정숙] 싸웠니 또?
[정애] 내 참 기가 막혀 말이않나와.
[정숙] 정아 아빠 불같은 성미 잘알구선 니가 좀 참지 않구선.
[정애] 언닌, 자기한테만 성미있구 난뭐 부처님 가운테유, 동창회 갔다가 좀 늦게 들어왔다구 리를 쳐대는데 참긴 내가 어떡게 참아.
[정숙] (픽 웃는다)
[페이지] 013
[정애] 웃지마 언니, 언니가 남편 시집살이를 않당해 봐서 그래. 허구헛날 이건무슨, 의처증 환자하구 사는것 같나구. 슈퍼 가느라 잠깐 집 비운시 전화 해놓구서도 저녁에 들어와선 어딜같느냐 언제들어왔느냐 아니지금 내 나이에 내가 그러구살아야겠수.
[정숙] 그건 정아아빠가 아직도 내게 관심이 있다는 건데 뭘 그래.
[정아] 아이구 언니 꿈 보다 해몽이 좋수 관심 두번만 더 있었다간 문전 출입도 못하겠수.한번씩 그럴땐 정말 남편이 아니라 웬수야 웬수.
[정숙] 그래서 부부는 좋은 인연이 아니랜다.
[정애] 어머나 그런 얘기가 있어?
[정숙] 남자 여자가 부부로 만나 사는건 악연이래.
[정애] 악연?
[정숙] 함께 살면서 항상 뭔가가 불만스럽고 그래서 서로 미워 하고 원망하구.
[정애] (맞장구) 맞다 언니 그거 일리있는 얘기다. 나도 그런생각 한적 있어. 정아 아빠하구 머리 터지게 싸우고 나면 이 인간하구 내가 전생에 원수지싶은 생각이 아니나 다를까 들더라구 나두.
[페이지] 014
[정숙] 그래서 정말 좋은 사람들은 부부라는 인연으로 안맺어진데. 서로멀리있으면서 그멀리있는 그리움으로 그사람에 대해좋은 부분만 커지고 그래서 서로의 가슴속에 영원히 아름다운 사람으로만 기억되고 간직되지.
[정애] 그치만 그건 언니하구 형부한텐 해당 안되는 얘기잖아.
[정숙] (쓴 웃음 짓고)우린 부부 아니니.
[정애] 그래, 나두 네 형부하구 부부인연까진 되지 말걸 그랬나부다. 그랬더라면 아직도 난나데로 네형분 형부대로 우리 둘 다 서로 한테 꽤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됐을텐데.
[정숙] 아니.
[정애] 언니 형부하구 무슨 속상한 일 있었어?
[정숙] 살다보면 그럴때 있잖니 왜 별다른 이유없이 마음 심난해지는거 특히 우리나이엔 그래.
[정애] 그래서 그런지 언니 얼굴 색도 안좋아 보여. 혹시 몸이 않좋아 그런거 아냐?
[페이지] 015
[정숙] 아픈덴 없어. 요즘 좀 울적해서 그래.
[정애] 오랜만에 와서 형부도 못 보고 가는거 아냐?
[정숙] 글쎄---
((암전))
[장] 6장
어느 다방의 한구석 석조가 망연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 찬우가 다가선다.
[찬우] 아버님
[석조] (비로소 고개들고) 응? 어서오너라. 앉거라.
[찬우] (앉으며) 일찍 오셨어요?
[석조] 으응--- 나두 금방 앉았다.
[찬우] 날씨도 찬데 움직이느라 고생하셨죠.
[석조] 고생은
[찬우] 죄송합니다. 제가 찾아뵈어야 하는데
[석조] 아니다. 우리 뭐 마시자.
[찬우] 네 (레지를 향해) 이봐요.
[레지] (다가선다.)
[찬우] 쌍화차 드세요. 아버님.
[석조] 오냐
[페이지] 016
[찬우] 쌍화차 하나하고 난 커피
[레지] (사라진다)
[석조] (아들을 제대로 못보는데)
[석조] 그럼
[찬우] 건강은 좀 어떠세요. (정숙의 안부다)
[석조] 늘 그렇지 뭐.
[찬우] 더 심하진 않구요.
[석조] 응.
[찬우] ---
[석조] (화제 돌리듯) 현수랑 에미도 잘있구?
[찬우] 네.
[석조] 현수 그새 많이컸지?
[찬우] 네.
[석조] 아우 소식은
[찬우] 없읍니다.
[석조] 현수가 벌써 여섯인가 그렇치
[찬우] 네.
[석조] 그럼 아우 볼때가 지났는데.
[페이지] 017
[찬우] (조심스레) 저, 아버님.
[석조] 응?
[찬우] 저희--- 이민 갑니다
[석조] ?
[찬우] ---
[석조] 이, 이민이라고 했냐 지금
[찬우] 네
[석조] ---(충격적으로) 이민이라면 (말이 잘안 이어지듯) 갑자기 어떻게
[찬우] 오래전부터 준비해오고 있었읍니다만 아버님껜 결정이 난 뒤에 알려드리려고 그동안 말씀 못드렸읍니다.
[석조] --- 어디냐?
[찬우] 미국입니다
[석조] ---
[찬우] 죄송합니다
[석조] 아니, 아니다. 그럼 떠나는건 언제---
[찬우] 어제 비자가 나왔읍니다
[석조] ---
[찬우] ---
[페이지] 018
[석조] 그, 그럼 언제든 비행기만 타면 되는 게냐
[찬우] ---네
[석조] (시선 떨어뜨린다)
[레지] (차 내온다)
[찬우] 드세요, 아버님
[석조] 으응, 그래 (안보며) 그래 떠나는 날은 정해진거냐
[찬우] (시선 내리며) 네 오는 이십일로 잡고 있읍니다
[석조] (끄덕이며) 이십일이면--- 보름밖엔 안 남았구나
[찬우] 네
[석조] 그래. 이왕 떠날 작정을 했으면 빠른게 좋지
[찬우] ---
[석조] 현수녀석--- 이젠 미국 사람이 되겠구나
[찬우] ---
[석조] (찬우 건네다 보는 눈에 물기)
((-암전-))
[페이지] 019
[장] 7장
찬우의 아파트 거실. 노크소리에 수진이 문을 연다
[수진] 어머나 아버님. 어서 들어오세요 아버님
[석조] 오냐
[수진] 이쪽으로 앉으세요
[석조] 으응, 현수는
[수진] 태권도 배우러 갔는데 곧 올거예요. 잠깐만 앉아계세요 아버님
[석조] 오냐
(수진 주방으로 나간다. 석조는 씁쓸한 느낌으로 방안 주위를 둘러본다)
[수진] (주방에서 쥬스를 따르며) 아범한테 전화 넣을까요 아버님?
[석조] 아니다, 지금 만나고 오는 길이다.
[수진] (쥬스 내오며) 어머 그러셨어요
(초인종 소리가 난다)
[석조] 현수 아니냐?
[수진] 그런가봐요 아버님
[석조] 놔두고 어서 문부터 열어
[수진] 네
[페이지] 020
((초인종 계속 눌러대는 소리))
[수진] 그래 나간다 (수진이가 문을 연다)
[현수] (뛰어 들어오며) 엄마 달려라 삼총사
[수진] 할아버지 오셨어
[현수] (거실로 뛰어 들다가 석조 모습에 멈춰선다)
[석조] 어디보자 우리현수
[현수] (멀뚱히 보는데)
[수진] 뭘해 현수야, 할아버지께 인사드려야지
[석조] 우리현수, 할애비 얼굴을 잊었구나 괜찮다, 그냥 이리와
[현수] (수진향해) 엄마, 이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야?
[수진] (민망해서) 애가, 그럼 어서 인사 못드려
[석조] 괜찮대두
[현수] (고개 꾸벅하며) 안녕하세요
[석조] 오냐 그래, 할애비한테 와봐
[현수] (머뭇거리는데)
[수진] 어서
(현수가 마지못해 석조 한테로 다가간다)
[석조] (앉으며) 우리현수 할애비가 못본사이에 아주 씩씩해졌구나
[페이지] 021
[현수] (몸 빠지면서) 나 달려라 삼총사 볼래요
[석조] 응? 오냐 그래
[수진] (나무람) 현수야
(현수는 상관없이 텔레비젼 쪽으로 몸 날린다)
[수진] 제가
[석조] 놔둬라 (하면서 이미 텔레비젼 화면에 열중해있는 현수 애정 어린 눈으로 보는데)
[수진] 쥬스 드세요 아버님
[석조] 오냐
[수진] (어렵게) 어머님은 안녕하시죠
[석조] 응? (돌아보고) 으응
- 암전-
[페이지] 022
[장] 8장
찬우 아파트 거실. 찬우는 막 들어온 길이다.
[찬우] 아버님이?
[수진] 저두 깜짝 놀랬어요
[찬우] ---
[수진] 낮에 당신 만났을때 여기 오신다는 말씀 없었어요?
[찬우] 없었어
[찬우] 저녁은 드시고 가셨어?
[수진] 아뇨 늦었다구 그냥 가셨어요
[찬우] (화내는) 날씨도 찬대 빈 속으로 가시게하면 어떡해
[수진] 잡숫구 가시래두 한사코 가시겠다는걸 전들 어떡해요
[찬우] 차비는 드렸어?
[수진] 안받으시려는거 포켓에 넣어 드렸어요
[찬우] (착잡한)---
[수진] 이민 간다고 말씀드리니까 뭐라세요?
[찬우] ---
[수진] 당신한테 그 얘기 듣고 아무래도 현수가 생각나서 오신것 같아요. 그런데 현수 녀석은 낯이 서니까 할아버질 따라야 말이죠 옆에두 안가구 만화영화만 보구
[수진] (그대로 누워) 난 아버님을 생각할때마다 그래두 아버님이 꽤 용기있는 분이 셨다구 생각돼요
[찬우] (이마에 팔 내리고 돌아본다) 무슨뜻이야 그게?
[수진]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할수 있는것도 큰 용기에요 더구나 그때 아버님이 갖고 계신 사회적위치, 신분에선 말이예요
[찬우] 그럼 당신은 내가 딴 여자하구 바람을 피우고 들어와 솔직히 털어놓기만 하면 날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하겠군
[수진] 옛날 잡지에서 아버님 기사를 읽은적 있어요
[페이지] 024
[수진] 그때 아버님은 기자들 앞에서나 누구 앞에서든 지금 어머니 하고의 관계를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한마디 변명없이 처음부터 솔직히 시인하셨어요. 돌아가신 어머님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사랑을위해 사회적 매장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셨어요. 결국 간통죄로 고소 당하셔서 감옥에까지 가시게 되구 보통 남자들이라면 그러기 쉽지 않아요. 사랑을 사랑으로 말함으로서 자신한테 가해질 해 때문에 사랑을 사랑으로 말하지 않고 변명하는 걸로 지키려 하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지 않으려 하죠, 사랑을 사랑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예요.
[찬우] 그래서 당신은 그 잘난 사랑놀이에 자식까지 팽개치고 우리 아버지를 존경이라도 한다는 거야 지금?
[수진] 아버님이 당신을 버린건 아니잖아요
[찬우] 꼭 고아원에 갖다 버렸다고 버린것 만은 아니야
[수진] ---
[찬우]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우리 어머니 살아 계시는 동안 내내 나한테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는것만 가르치다 돌아 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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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 ---
[찬우] 그래서 난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어도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 방법을 몰라
[수진] 알아요 당신마음. 아니 현수 너 자다가 왜 나와
[현수] (눈 비비며) 쉬 마려
[수진] 쉬 마려우면 화장실로 가야지
[찬우] 자 아빠가 화장실 데려다 줄께
[수진] (현수를 화장실로 데려 가는 찬우를 물끄럼이 보면서) 아버님도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셨을 거예요
(정숙 조용히 석조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석조는 돌아보지 않는채로 자신의 어깨위에 올려진 정숙의 손을 꼭 잡아준다.)
[정숙] 안추워요?
[석조] (돌아보면서)
[정숙] 자요. 이거라도 걸치세요.
[석조] 견딜만 한데 뭐(받아서 입고나면)
[정숙] 엊그제까지 강물이 꽁꽁 얼러 부었더니 오늘은 많이 풀렸네요. 당신이 당신 아들을 만나서 오는 날은 그게 언제든 당신이 얘기 하지 않아두 표시가 났어요. 내 육감이나 직감때문이 아니라 그런 날이면 당신모습이 유난히 더쓸쓸해 보여서요.
[석조] (쓴 미소)
[정숙] 그럼 당신을 보면 나는 또 나데로 쓸쓸하고 서글퍼져서. (말 끓고 피식 웃는다)
[페이지] 028
[페이지] 029
[정숙] ---
[석조] 당신 춥겠어. 그만 들어가 나도 곧 들어갈께.
[정숙] 내일 서울 좀 다녀 올께요.
[석조] 왜?
[정숙] 나두 만날 사람이 있어요.
[석조] (피식 웃는다)
정숙을 침실로 향하고 석조는 그대로 앉아있다.
-암전-
[페이지] 030
[장] 10장
거실과 현관 마당. 석조가 현관으로 나오는데 기섭 들어선다.
[기섭] 안녕하셨어요 선생님.
[석조] 이게 누군가, 기섭군 아닌가?
[기섭] 네 선생님 최기섭입니다
[석조] 어서오게 (두 사람 거실로 들어간다)
[석조] 앉게.
[기섭] 선생님 혼자 계셨군요
[석조] 응, 집사람은 서울갔어
[기섭] 네에
[석조] 잠깐 앉아있게 ,내 차 끓여올세.
[기섭] 그래도 집에 온 손님인데 그럴수 있나.
[기섭] 됐습니다 선생님 그보다 이거 먼저 봐 주십시요 (봉투를 내민다)
[석조] 뭔가
[기섭] 저 이번에 장가갑니다 선생님
[석조] 오, 그래? 청첩장이로구먼
[기섭] 네
[페이지] 031
[석조] 축하하네
[기섭]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번 결혼식에 선생님을 주례로 모시고 싶어 이렇게 찾아 뵙습니다
[석조] ?
[기섭] 선생님께서 시간만 허락하신다면 꼭 좀 부탁드리겠읍니다
[석조] (좀 망설이며) 글쎄,주례라는걸 서 본 적이 없어서 내가
[기섭] 그러니까 저로선 더 영광이죠 선생님
[석조] ---
[기섭] 날짠 여기 적힌대로 이달 23일 입니다. 시간은 오후 2시구요 승낙 하시는거죠 선생님
[석조] (선뜻 대답 못하고 미소)
[기섭]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럼 전 다른 급한일 때문에 그만 올라가 봐야겠읍니다
[석조] 오 그러게나
(석조와 기섭 현관으로 나온다)
[기섭] 곧 다시 뵙겠읍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나간다)
(석조가 아직도 손에 들려있는 청첩장을 다시 들여다 보다가 바쁘게 나가려 할때 정숙이가 들어온다)
[페이지] 032
[정숙] 날 마중 나오는 거예요?
[석조] 제자가 다녀갔어. 올때가 된것 같아서 지금 배웅하러 나가려든 참인데
[정숙] 제자 누구요?
[석조] 최기섭이라구, 당신도 보면 알기야 학교 다닐때 꽤 똑똑했던 친군데 이번에 결혼한데
[정숙] 그래서 청첩장을 가져 왔군요
[석조] 응, 주례도 부탁하구
[정숙] 당신 한테요?
[석조] (그대로 앞보며 걸으며) 응
[정숙] 그래서 당신이 뭐랬어요?
[석조] 뭐라긴
[정숙] 승낙 했어요?
[석조] 그런 셈이 돼버렸어
[정숙] 양복 한 벌 장만해야 겠군요
[석조] 양복은 왜
[정숙] 주례 보심려면요
[석조] 입던거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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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 입을만한게 없어요 모두 구식이에요
[석조] 구식이면 어때, 괜찮아 참 서울에 갔던일은 잘 된건가? 무슨일인지 모르겠지만
[정숙] 최박사님 병원에 갔었어요
[석조] 그래 최박사가 뭐랩디까?
[정숙] 많이 좋아졌데요
[석조] 하지만 수면제 먹으면 안된다는 얘긴 없었나?
[정숙] 요즘엔 안 먹잖아요
[석조] 나한테 숨기서 뭘 한담 (석조 서재로 향한다)
[정숙] 여보 이제 며칠 안 남았어요
[석조] ---
[정숙] 현수 안 보고싶어요 당신?
[석조] (대꾸 없이 서재쪽으로 움직이는데)
[정숙] 현수아빠 여기까진 안 내려 올 거예요
[석조] (멈춘다)
[정숙] 당신이 가 봐요
(석조는 아무 대답없이 서재로 돌아간다)
-암전-
[페이지] 034
[장] 11장
거실과 현관마당. 현수가 현관마당에서 뛰어 다니며 놀고 있다 마당 한켠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석조와 찬우. 정숙과 수진은 거실에있다
[석조] 뜻밖이구나 고맙다
[찬우] 별말씀을요, 진작에 찾아 Ꙗ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석조] 아니다
[찬우]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이시는데 어디 불편하신건 아니세요?
[석조] 으응 딱히 어디가 안좋은건 아니구 불면증이 좀 있어 그래서 그럴거다 아마
[찬우] 네에 (석조 포켓에서 담배를 꺼내는 데 찬우 재빨리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준다)
[현수] (다가와서) 아빠, 할아버지 집 참 크지?
[찬우] 으응
(현수는 찬우와 석조를 번갈아 보고는 밖으로 뛰어나간다)
[찬우] 현수야 너무 멀리 가지마
(석조는 미소를 머금고 나가는 현수의 모습을 보고있다)
[찬우] 아버지 저두 이제 나이 먹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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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 (시선들어 먼데 보며) 제가 현수보다 조금 컸을때 제 곁을 떠나시면서 아버님께선 그러셨죠, 이다음에 나일 먹으면 아버질 이해할수 있을거야
[석조] ---
[찬우] 그땐 아버지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첨들어 어른이 되는 동안에도 내내--- 어느날 갑자기 나하구 어머닐 버린 아버질 난 이해할수 없었고, 또 이해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젠 세상 모든것이 변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변해가고 그래서 세상을 향한 흔들릴수도 깨어질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해돼요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세상을 정직하게 살아오셨다는 생각이 들구요
[석조] ---
[찬우] 적어도 마음은 마음으로 둔채 어머니 곁에서 거짓으로 사는건 안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어머닌, 그게 아니셨던가봐요 마음속에 다른 사람의 그리움을 안고라도 아버지가 당신의 남편이길 더 원하셨던것 같아요
[석조] (쓸쓸한 회한으로) 나 역시 그럴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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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 (천천히 돌아보며)
[석조] (먼 산 바라보며) 그렇게 살다보면 마음속의 그리움은 차차 엷어지고 퇴색되고--- 다시 한 사람의 성실한 남편으로 자릴 지켜 갈수도 있으리란 생각--- 하지만 그러질 못했어 네 말대로 마음은 마음으로 둔채 네 어머닐 지키기가 내겐 힘들었어 아니--- 내가 언젠가 다시 네 어머니의 성실한 남편의 자리로 돌아가질 것에 자신에 없다는 얘기가 더 정확하겠구나
[찬우] (시선을 돌려 먼데 본다)
[석조] 네 어머닐 생각하면 난--- 영원히 죄인이다
[찬우] 이런 얘길 들어 보셨어요 아버지? 이 세상에 용서될 수 없는 사람은 없답니다. 어머닌 끝까지 그걸 인정 못하고 돌아 가셨지만요
[석조] ---
[찬우] 그래서 현명하지 못하셨구요
(현수 뛰어 들어온다)
[석조] 현수 춥지 않았니?
[현수] 하나두 안추웠어요 할아버지
[석조] 그래 (껴앉다)
[페이지] 037
(찬우는 천천히 거실로 향한다. 그동안 거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던 정숙과 수진 두사람 일어난다)
[정숙] 자 이제 식사를 해야지?
[수진] 미리 전화라도 드렸어야 되는데 갑자기 찾아와 번거롭게 해드리는것 같아요
[정숙] 별 소릴 떠나기 전에 이렇게 찾아와 준것만도 얼마나 고마운데 내가 식구들을 불러오지
(수진은 주방으로 나간다. 현관으로 나오던 정숙 마침 혼자서 거실로 들어오는 찬우와 마주친다)
[정숙] 고마워
[찬우] ?
[정숙] 이렇게 와줘서
[찬우] (엷게 미소지으며)
[정숙] 추워 들어가 어서 식사도 해야하고
[찬우] 네
(찬우 거실로 들어서고 정숙은 마당으로 나간다. 현수를 껴안고 있는 석주에게 다가가는데)
- 암전-
[페이지] 038
[장] 12장
거실에서 정숙과 정애 얘기하고 있다. 식당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는 석조 동시에 보인다.
[정애] 형부 어떡하구 계셔
[정숙] 그냥 평소대로야
[정애] 하긴 형부 성격에 내색할 분이 아니지 그래두 속으론 많이 허전 하실거야 그 아들이 형부한테 세상에 단하나 있는 살붙인데--- 그래서 난 형부가 그 충격으로 주례 서시기로 한 거까지 그만두나 했어 이 양복 괜찮지 언니?
[정숙] 글쎄
[정애] 형부는 워낙 틀이 근사하셔서 이런 색조도 잘 소화하실거야
[정숙] 그래도 너무 밝지않니?
[정애] 괜찮아 언니 아무리 그래도 신랑보다는 주례 선생님이 안 젊어 보여
[정숙] (미소)
(식당. 기섭이 나와 석조에게 다가가 인사한다)
[페이지] 039
[석조] 웬일인가
[기섭] (예매한 표정) 네
[석조] 결혼식 준비로 한창 바쁠 사람이 여긴 웬일이야? 식이 내일 아닌가
[기섭] 네 선생님
[석조] (표정 살피고) 왜 무슨일이 있는건가
[기섭]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말씀 드려야 할지
-암전-
[페이지] 040
[장] 13장
거실. 정숙이 전화를 받고 있다. 무대 한켠에 공중전화 박스
[정애] (공중전화) 여기 예식장인데 와보니까 주례가 형부가 아니구 딴사람이지 뭐야
[정숙] 그게 무슨 소리니 너 아침에 떠나셨는데
[정애] 여기 얘기 들어 보니까 주례가 바꿨다면서 형부 한테는 아침에 연락 드렸다는데 언닌 몰랐어?
[정숙] (수화기 든채로 믿어지지 않는 얼굴이다가 차차 뭔가 짚이면서 공중전화박스 사라진다. 정숙 천천히 수화기를 놓는다. 그녀는 소파로 와서 멍하게 앉는다. 잠시후 정장을 한석조 현관에서 들어온다. 정숙은 인기척을 느끼고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다. 석조는 아무 말 없이 거실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향한다)
[정숙] 서울엔 아에 가시지도 않으셨군요
[석조] ---
[정숙] 왜 그렇게 됐어요?
[석조] (멈춘다)
[정숙] 갑자기 주례를 바꾼 이유 말이에요
[석조]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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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 정애가 당신 만난다고 예식장을 나갔었데요. 방금 전화가 왔었어요
[석조] (허탈하게) 갑자기 내가 주례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었나부지 (소파에 앉으며) 커피나 한잔 줘
[정숙] 우리 과거 때문이에요
[석조] ---
[정숙] 그건 최군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얘기잖아요?
[석조] ---
[정숙] 그럼 애초부터 당신에게 그런 부탁을 왜 했대요 그사람
[석조] 주례를 바꾼게 최군이 아니라 최군 부모님이야
[정숙] ---
[석조] 최근 부모님은 우리의 결혼경위에 대해 얼마 전에야 알았구
[정숙] 그래서 그걸알구 당신을---
[석조] 부모 입장으로선 그럴수 있어
[정숙] ---
[석조] 그 점까진 미처 생각 못하구 승낙을 한게 잘못이지
[정숙] ---
[석조] 커피 안 줘
[정숙] 약주 많이 하셨어요?
[페이지] 042
[석조] (대답한다)
(정숙 천천히 주방으로 가는데)
-암전-
[장] 14장
거실. 석조는 소파에 앉아 파이프를 피우고 앉아있다
[정숙] 당신 지금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나 알아요?
[석조] 무슨 소리야
[정숙] 당신 나하구 눈맞춰 본 것 언젠지나 기억해요?
[석조] ---
[정숙] 언제부터 그렇게 됐어요
[석조] 뭐가?
[정숙] 나하구 눈 맞추기 싫어진거 말에요
[석조] 당신 나이가 지금 몇인줄이나 알아? 낼 모래면 예순이야 환갑이라구
[정숙] 그래서야? 그럼 난 당신에게 이젠 아무 의미도 없다는 얘기예요?
[석조] 그런 대화를 나누기엔 당신도 나도 너무 늙었다는 얘기야
[정숙] 우리의 사랑은 어디 갔어요?
[페이지] 043
[석조] 사랑하지. 어디 까지든 함께 같이 갈--- 그러나 우리 서로가 이젠 사랑에 대한 기대를 갖기엔 피차가 너무 많은 나이야 (사이) 그만 자자구
(정숙은 탁자로 가서 약병을 꺼내 몇알을 삼킨다. 석조는 그러한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서있다. 정숙은 이윽고 전축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가서 레코드를 집어든다. 여전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석조가 그녀에게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