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전국에 살게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군산은 특별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기름지고 넒은 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해가는 거점도시가 바로 군산이었기 때문이다.
서해바다를 막아서 만든 조선 최대의 간척지에는 일본에서 온 대규모 농업이민이 자리를 잡았고,
군산시내는 농장을 경영하거나 무역업을 하는 일본인들의 터전이 되었다.
군산에는 구석구석 당시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일본인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다.
특히 단체여행으로 많이 찾는 곳이 간척농지인 옛 불이농촌인데,
이번에는 가족 단위로 찾아온 특별한 여행객들을 안내하여 같이 돌아보았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관광지를 중심으로 일정을 잡는데 비해,
고향 방문단은 자신과 인연이 있고, 추억이 있는 곳을 가보고 싶어한다.
특히 군산을 찾는 많은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살던 곳, 학교, 월명공원, 해망굴,
공원 위에서 바라보는 장항제련소의 굴뚝 등을 다시 보고 싶어하며,
실제로 이곳들을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정이 된다.
그런데 이번 방문객은 가장 중요한 일정을 문창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교류하는 것으로 잡았다.

문창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이는 ** 씨
문창초등학교는 옛 불이농촌의 한 가운데에 세워진 학교로 당시에는 일본인들만이 다니던 곳이었다.
방문객 중의 ** 씨는 올해 73살의 노인으로,
63년만에 방문하게 된 옛 모교에서 학생들과 종이접기며 과학 실험들을 함께 하겠다며,
지난 1월부터 6개월째 팩스와 국제전화를 통해 계획을 세우고 고치기를 계속해왔다.
그는 의미있는 방문을 하고 싶다며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그보다는 자신의 방문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한 누군가가 자신을 오래 기억해주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싶다.

2008.6.18.14:00 시에 준공식이 있음을 알리는 프래카드
학교에서는 마침 개축을 축하하는 준공식이 있는 날이어서 무척 바쁘고 경황이 없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감 선생님께서 직접 수업을 참관하면서 도와주시고, 수업이 끝난 다음에는 식사에 초대를 해주시기도 했다.
학생들과 같이 한 식사시간은 그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추억이 될 터인데,
식당에서는 같이 종이접기를 했던 2학년 꼬마가 선뜻 나서서
식사 심부름을 해주어서 노인 방문객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시키지도 않았건만 나서서 손님들의 식사 심부름을 해주던 귀여운 문창어린이
2박 3일간의 일정을 보내면서 3번씩이나 옛 고향마을과 학교를 방문한 손님들에게 기억 속의 군산 뿐만 아니라
당시에 군산이 맡았던 역할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세관의 사진전시실을 보여 주었다.
조선에서 여유롭게 살다가 일본이 패전하여 돌아갈 때 이들은 자신들이 일군 재산을 모두 놓고
한 사람당 천 엔씩만 가지고 돌아가야 했고 그로 인해 일본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조선에서의 넉넉하던 생활을 잊지못하고,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재산을 조선사람들이 거저 차지한 것으로 대부분 오해하고 있다.
자신들이 처음부터 이곳에서 누릴 수 있었던 부와 여유는 조선 사람들에게서 뺏어온 것이고,
그것이 제 자리로 되돌려졌음을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구)세관의 전시실은 훌륭한 역사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찍혀진 자료사진들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까닭이다.
특히 동행하는 일본인 젊은이들에게는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일정이 전시관 방문이다.
손꼽아 기다려온 이번 고향방문을 통하여 오랜 바램을 이루고 새로운 인연과 추억도 만들고,
나아가 지난 자신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므로써,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새로운 미래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