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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종 교수가 펴낸 『제국의 시대』(2022)를 읽었다.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과 견주어 읽을 수 있어 좋다. 이 책은 로마제국에서부터 21세기 미중패권경쟁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움직이는 힘과 원리를 찾고자했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오늘날 모두가 염려하는 기후위기, 생태적 재앙 같은 문제도 결국은 인간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현란한 이론이 아니라, 역사를 이끌어간 인간의 활동과 사상이다.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우리는 역사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고 했다. 역사를 이끈 인간 활동과 그 동인(動因) 중심으로 제국의 시대를 보고자 한 것이다.
1.
인류역사상 초강대국으로 처음 등장한 게 로마제국이다. 고대 로마는 무려 700년에 걸쳐 지중해 일대를 호령했다. 저자는 로마의 흥망사를 보면서 두 가지 면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단다. 그 하나는 시민의 권리를 유난히 존중한 사회였다는 게다. 다른 하나는 공리주의적 실용정신이 광대한 로마를 유지하게 했다는 게다. 역사상 처음으로 시민의 권리와 국가권력의 한계를 법으로 명시한 게 로마인이었다. 로마의 법과 제도는 오늘날에도 그 유용성이 논의될 정도다.
로마제국을 이끈 가장 큰 힘은 군사력이었다. 강철 같은 로마 군단은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비롯해 근동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로마 군단은 전력이 최적화되어 있었고, 규모도 컸지만 조직도 훌륭했다. 역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재패하고 최강대국으로 성장하자, 로마 귀족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되었다. 부의 축적에는 언제나 위기가 따른다.
로마인은 건축과 도로건설에 비상한 능력을 보였다. 로마인이 약 450만 제곱킬로미터의 광대한 영토를 효과적으로 다스린 데는 사회간접자본의 역할이 컸다. 저자는 “로마의 공학과 기술을 말할 때면, 그들이 만든 도로와 그물망처럼 연결된 도로망을 제일 먼저 칭찬하고 싶다”고 했다. 로마제국은 도로망을 활용해 우편제도도 만들었다. 소식과 정보가 빠른 속도로 제국의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주요 도로 곳곳에는 이정표가 있어서,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알 수 있었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 로마의 멸망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기후변화와 전염병이 로마멸망에 한몫을 했다는 게 우리의 주목을 끈다. 로마인의 사망원인 가운데 제1위가 전염병이었다. 로마제국은 전염병균이 번식하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로마는 고도로 도시화되어 인구밀집을 초래했다. 특히 비위생적인 음식물과 오염된 식수가 큰 문제였다. 로마의 도로망은 전염병균도 제국의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가게 했다. 게다가 기후위기로 로마 말기에는 농업생산량이 줄었고 굶주림도 만연했다. 그에 따라 출산율도 낮아졌다. 로마공화국 말기에는 소득 불균등이 극심했고, 이민족에 대한 혐오증도 심했다.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에서 강대국의 힘이 상승할 때 영토를 무리하게 확장하다 보면 경제적 부담이 과중해져 끝내는 멸망에 이른다고 했다. 역사가들은 4세기 로마의 군사비는 총예산의 80퍼센트나 되었다고 한다. 어떤 제국이라도 이런 재정 부담을 장기적으로 감당할 수는 없다. 군사력이 경제력을 약화시키면 어느 나라든지 오래 버티지 못한다. 게다가 로마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암투와 부패가 심각했다. 로마제국 말기의 황제들은 모두 선동적인 정치가였다.
2.
13세기에 몽골은 기병 전법을 무기삼아 세계정복에 성공했다. 로마제국도 마차로 거대한 영토를 지배했지만, 몽골제국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태무진 칭기스칸(1162-1227)은 몽골기병을 앞세워 2,300만 제곱킬로미터의 영토에 1억 명의 인구를 거느린 대제국을 일으켰다. 이것은 한반도의 100배도 넘는 영토였다. 몽골은 1480년까지 유럽공략 대신에 러시아와 헝가리를 통치했고, 중국과 고려를 비롯해 페르시아까지 그들의 힘을 뻗쳤다. 하지만 칭기스칸이 권좌에 오른 지 162년 만인 1368년에 원나라는 멸망했다. 칭기스칸은 단기간에 몽골을 통일했고, 역사상 어느 왕조와도 비할 수 없는 거대한 제국을 등장시켰다.
그는 잔인하지만 관대하고, 단호하지만 포용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동지를 구할 때는 혈연과 종교에 구애받지 않았다. 기술의 힘으로 신무기를 도입하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공학 기술자만은 반드시 살려 두어서 제국의 귀중한 인적자원으로 삼았다. 한마디로 칸은 용기와 개방적인 성격, 비범한 능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몽골제국은 동서양을 연결하는 국제교역에 관심이 컸다. 비단길을 따라 상품만 오간 것이 아니라, 지식과 기술 그리고 종교도 퍼져 나갔다.
몽골제국은 간선도로를 효율적으로 관리했다. 대략 30-40킬로미터마다 역참을 설치해, 역마와 숙소를 이용하기가 편리했다. 대규모 역참에는 항상 400마리의 말이 대기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런 역참이 제국의 영토 안에 모두 1,500개나 설치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교통제도였다. 로마와 몽골 모두 교통과 통신 분야의 혁신이 제국의 원천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한국도 세계 최상급의 나라다.
저자는 14세기 유라시아 최강국 몽골이 급속하게 무너진 이유를 네 가지로 든다. 첫째는 지배층의 분열이다. 쿠빌라이에서 후계자를 뽑는 몽골의 전통적 지도자 선출방식에 맹점이 있었다. 둘째는 흑사병으로 인구가 대폭 감소하였고, 교역활동도 크게 위축되었다. 인구가 줄어 조세가 크게 감소하고, 이로 인해 재정위기를 맞았다. 셋째는 한족을 심하게 차별한 결과 그들의 반발심을 일으킨 게 화근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주원장이 신무기로 총포를 이용해 대승을 거두자 승마의 위력은 쉽게 무너졌다. 총과 대포를 앞세운 신무기가 역사를 바꾸는 원동력이 된 게다. 게다가 지배층은 망할 때까지 권력다툼의 내분에 휩싸였다.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3.
우리에게 이슬람은 분쟁지역의 대명사로 입력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이슬람 세계가 시대의 주역인 때도 있었다. 오스만제국은 우리가 잘 몰랐던 제국의 역사다. ‘오스만’은 이 제국을 창건한 오스만 1세(1258-1326)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로부터 오스만은 제국의 이름이자 그들의 지배계급을 일컬었다. 1288년에 오스만은 스스로를 ‘술탄’이라 했다. 이것은 아랍어로 ‘이슬람 세계의 통치자’를 뜻한다. 이후 오스만은 무려 600년간 제국의 위상을 유지했다.
오스만제국을 가장 괴롭힌 것은 러시아였다. 1768년에서 1774년까지 벌어진 러시아-터키전쟁을 겪은 다음부터 제국의 위상이 추락했다. 그로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만제국은 동서남북 어디서나 영토를 대거 잃었다. 마지막으로 오스만제국은 독일제국과 손을 잡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완패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오스만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오스만제국의 군주정이 붕괴한 다음에는 터키공화국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오스만제국 역시 전쟁을 통해서 성장했다. 뛰어난 전략가 메호메드 2세뿐 아니라, 문예부흥을 주도한 술래이만 1세도 정복군주였다. 그러나 종교를 너무 중시한 게 뼈아픈 실책이었다. 이슬람화가 깊숙이 진행되자 학문과 예술이 도리어 낙후했다. 게다가 군주들의 정복욕이 지나쳐 군사비용의 과다지출을 초래했다.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안으로 지배층의 내분이 겹쳤다. 이 무렵 이웃 유럽대륙에서는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 날로 혁신되었으나, 오스만제국은 도리어 침체에 빠졌다.
메호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풀을 이스탄불로 개칭하고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메호메드 2세가 전쟁에 승리한 병사들에게 콘스탄티노풀을 사흘 동안이나 약탈하게 한 것은 너무 끔직했다. 콘스탄티노풀 함락은 유럽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역사가들은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유럽 각국이 앞 다투어 대포를 만들었고, 이로부터 말안장 위의 권력이 지배하던 중세가 종말을 고했다고 평한다.
오스만제국의 지배자는 이슬람 문화를 대표하는 사령탑 노릇을 했다. 1530년 술레이만 재위 초기부터 이슬람화가 급속히 추진되어 신자라야 책임 있는 지위에 오를 수 있었고, 이교도는 각종 차별과 제한을 받았다. 1648년 유럽 각국은 베스트팔레에서 평화조약을 맺고 30년 간 계속된 종교전쟁을 끝냈다. 그 뒤 30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미 노쇠해진 오스만제국은 서서히 종말을 맞았다. 그러는 사이 유럽에서는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에 이어 시민혁명이 차례로 일어났다.
마침내 한 때 서구사회를 떨게 했던 대제국의 위력이 서구의 위력 앞에 꼼짝하지 못하게 되었다. 오스만제국은 남유럽과 중동지역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했으나, 유럽전역에 비해 크게 뒤졌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오스만제국의 심장부인 이스탄불의 인구는 25만에서 3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17세기 초반 영국 런던의 인구는 10만 명, 스웨덴의 스톡홀름은 1만 명 정도였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서구적 근대화를 경험하지 못한 오스만제국은 좌절의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1855년 크림전쟁이 일어나기 전 러시라 황제 니콜라이 1세가 오스만제국을 가리켜 ‘보스포루스의 환자’라고 하였다. 회생 불가능한 정도로 노쇠한 대국이란 뜻이다. 그 표현이 나온 뒤 69년이 지나 오스만제국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오스만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이민족들이 제국의 해체를 촉구했다. 그 결말은 슬라브주의의 등장이었다. 마침내 제국은 완전히 붕괴되고 터키공화국이 그 뒤를 이었다. 오늘날 터키는 중동과 남부 유럽의 강국이지만, 서구의 강대국에 비하면 여전히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성기에 오스만제국이 보여준 개방성과 종교적 관용으로 터키공화국이 거듭 나야 할 것이다.
4.
영국은 영토로 보나 인구로 보나 그 규모가 한반도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18세기 후반을 거쳐 19세기에는 군사적으로 만이 아니라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대영제국은 모국인 영국과 그 통치를 받는 여러 식민지로 구성되었다.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은 서인도 제도를 포함해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적어도 20세기 초까지는 탁월한 기술력과 우월한 도덕성이야말로 대영제국을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영국의 과거 역사에는 수치스러운 그림자도 많았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무려 3세기에 걸쳐 영국은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매매하는 무역에 매달렸다. 그들은 모든 식민지에서 원주민을 박해하고 그들의 고유(토착)문화를 여지없이 파괴했다. 17세기부터 유럽의 강국은 서로 팽창의 갈등과 경쟁을 벌리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영국은 제국으로 계속 팽창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프랑스와 스페인이 가졌던 식민지가 영국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그에 이어 신대륙에까지 식민지 확장이 이어졌다. 18세기 중엽 동인도회사를 앞세워 인도에서 영국의 독점적 지위가 공고해지자, 마침내 영국은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영국은 국내산업과 국제무역을 비롯한 식민지 확장을 통해 유럽에서 최강국으로 올라섰다. 그들은 지구상의 모든 해로를 장악했다. 저자는 영국이 이처럼 발전한 원동력으로 두 측면에 주목한다. 하나는 영국이 근대적 통일국가였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여전히 국토가 사분오열되어 강대국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막강한 경제력이었다. 당시 영국은 국내산업도 급속히 성장했고, 해외교역도 활기를 띠었다. 신대륙에서 미국독립전쟁은 영국역사에 하나의 획을 그었다. 하지만 영국은 미국이라는 큰 식민지를 잃은 대신 멀리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호주와 뉴질랜드를 식민지로 얻었다.
영국은 19세기 이후 1세기 동안(1815-1914) 2,600만 제곱킬로미터나 되는 광대한 영토를 확보했다. 이 때 대영제국의 인구는 총 4억 명에 달했다. 1924년에 열린 대영제국 전람회 때는 지구 총면적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특산품을 보내왔다. 1840년에는 구세계의 최강국인 중국을 상대로 아편전쟁을 일으켜 홍콩을 조차지로 삼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중국의 여러 항구를 한꺼번에 개방시켰다. 이로써 중국조차 영국의 반식민지로 전락했다. 아프리카에서도 영국은 카이로에서 남아공의 케이프타운까지 연결되는 식민지를 확보했다.
대영제국은 근대적 제도와 함께 기독교를 앞세워 식민지의 토착적 풍습을 야만으로 내몰았다. 영국식 생활방식은 언제나 옳은 것이고, 그들의 식민통치는 야만인에게 근대국가를 배울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합리화되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은 전승국이 되었지만, 국력이 극도로 쇠약해져 거대한 제국을 유지할 힘을 상실했다. 게다가 양차대전을 거쳐 약소민족의 자결권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영국의 식민지는 독립국가로 탄생하기에 이른다.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가져온 힘은 강력한 해군력과 과학기술에 힘입은 산업혁명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영원한 제국은 없다. 대영제국의 추락은 새로운 강대국으로 미국과 소련, 독일과 일본이 부상하면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였다. 하지만 영국의 영광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대영제국은 해체되었으나 지금도 금융도시로서 런던의 위상은 막강하다. 그들의 모국어인 영어는 여전히 ‘세계인의 혀’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제국의 화려한 역사는 아직도 영국인에게 유무형의 유산으로 남아 있다.
5.
독일은 어찌 보면 신기하면서도 불가사의한 나라다. 독일은 다방면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음에도 정치적으로 어두운 역사를 지닌 나라다. 그럼에도 독일은 유럽의 중심국가로 우뚝 섰다. 오늘날 독일은 고도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산업국가인 동시에, 핵발전소를 포기하고 에너지 전환을 통한 기후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나라로 주목 받는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은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1919년에 출범한 바이마르공화국 운명은 비극적이었다. 벅찬 전쟁 보상금에 시달리는 와중에 1920년 말에 밀어닥친 세계경제공황으로 사회경제적 혼란이 극심했다. 그런 와중에 극우 선동가 아돌프 히틀러가 나치당을 앞세워 정권을 잡았다. 나치의 군국주의와 인종주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심각했다. 나치는 유럽전역에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집단학살했다. 가장 악명이 높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적어도 100만 명 이상 희생되었다.
저자는 독일 역사에서 다음 두 측면에 특히 주목한다. 그 하나는 종교와 교육 등 문화적 수월성을 토대로 산업과 경제가 발전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20세기 전반까지도 독일의 정치적 역량은 미약했지만 비스마르크의 등장으로 독일은 오랜 분열의 시대를 마감하고, 근대적 통일국가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독일은 산학협동이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독일식 직업교육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그들은 원가절감에 매달리기보다는 상품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였다. 오늘날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가 고품질의 대명사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독일의 재통일을 선사한 헬무드 콜(1930-2017) 총리는 비스마르크 이후 16년간의 최장수 총리가 되었다. 그는 동독과 조약을 맺어 화폐 교환과 사회통합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였다. 콜 총리는 1990년 독일을 재통일한 공적 하나만으로도 역사적 인물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2021년 12월까지 독일 총리로 재임한 앙겔라 메르켈은 동독 출신으로 콜 총리가 발탁한 인물이다.
2020년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135개국 시민에게 각 나라의 주요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물은 결과 3년 연속 독일이 1위를 차지했다. 2019년 현재 독일을 신뢰하는 비율은 44퍼센트로 나타났다. 유럽 시민을 대상으로 근년에 조사한 결과에서도 비슷했다. 미국의 지도력에 대한 유럽시민의 지지도는 24퍼센트에 불과했지만, 독일의 지도력에 대한 지지는 56퍼센트나 되었다. 독일의 상승과는 대조적으로 냉전시기의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러시아)에 대한 신뢰도와 지지도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21세기 역사의 한 축으로 우리는 독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6.
저자는 현대 제국의 탄생으로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에 주목한다. 주지하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국은 명실공이 미국이다.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열었다. 지금도 미국은 부동의 세계 1위 강국이다. 그러나 세계사의 중심축이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로 이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지구의 시계가 중국을 비롯해 동아시아의 나라들(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러시아의 위력도 점차 부상하고 있다. 그들은 유럽연합의 안전을 위협하는 막강한 군사강국이자 미국의 세계전략을 노골적으로 방해할 힘을 지니고 있다.
중국은 지난 한 세대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이 25배나 증가했다. 1970년대의 중국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지만 지금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21세기는 중국에게 어떤 세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지위와 영향력은 취약해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강대국으로서 중국은 아직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저자는 미국의 위기를 암시하는 징표로 다음 세 측면에 주목한다.
첫째는 군비지출이 과도해짐에 따라 국가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 준다는 점이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약 50년 전부터 시작되었는데, 국채의 대부분은 중국과 일본 등 외국 정부의 수중에 있다. 둘째는 인종차별과 계층 간의 불평등이 심화됨에 따라 사회통합이 깨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국제사회에서도 도덕적인 우위를 점차 상실해 가고 있다. 21세기는 강대국 간의 신냉전 체제로 이어질지 아니면 다극체제로 힘의 다변화 양상을 보일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7.
책의 결론 부분으로 넘어간다. 저자는 “과연 무엇이 역사를 움직이는가?”라고 묻는다. 그는 역사를 추진하는 힘을 다음 여섯 가지로 든다. (1) 전쟁의 위력: 모든 제국은 대규모 전쟁에서 승리한 끝에 초강대국이 되었다. (2) 지정학적 위치: 지정학적 위치는 미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예전만큼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게다. (3)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종교와 정치사상: 정치이념과 종교는 대체로 세계역사에 긍정적 변화를 초래 했다. 마르크스는 혁명을 ‘역사의 기관차’라 했다. 역사적으로 혁명을 일으킨 힘은 정치이념과 종교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미래에도 불변의 진리일 테다.
(4) 지도자의 역할: 모든 점에서 두루 뛰어난 지도자는 찾기 어렵다. 역사적 상황은 언제나 일회적이고, 거기에 적합한 지도자가 따로 출현하기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를 열어갈 지도자가 어디선가 꿈을 키워 갈 것이다. (5) 위대한 시민: 역사를 이끄는 진정한 힘은 깨인 민중에게서 나왔다. 해서 민심이 천심이랬다. (6) 전염병과 기후변화: 역사적으로 치명적 전염병은 제국의 몰락을 초래한 주요변수로 작용했다. 지금 인류는 기후위기로 지속 가능한 미래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위의 여섯 가지 변인 가운데 기후위기와 위대한 시민의 힘, 그리고 지도자의 역할이 역사를 추동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고 본다. 특히 기후위기는 인류가 공멸하느냐 생존하느냐의 갈림길이 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소망하는가?”라고 묻는다. 인간은 무지를 이유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류미래는 달라진다. 저자는 오늘날 세계는 다극화의 단계에 진입하는 추세에 주목한다. 일국체제의 초강대국 출현이 전쟁방지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인류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다극화 속의 상호견제와 협력이 중요하다. 그는 미래세계의 전망에서 다음 세 측면에 주목한다.
(1) 생태주의 세계관: 기후위기에 즈음해 인류의 일상생활은 생태주의로 재편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2) 에너지 전환의 시대: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녹색 기술’이 지구를 살리는 과제로 떠오른다. (3) 강소국의 활약: 지금은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 일어나는 중이다. 세계를 상대하면서도 자기 지역의 특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경향이다. 미래세계에는 몸집이 큰 초강대국이 아니라, 영토는 작아도 소프트 파워가 강한 나라가 세계를 이끌 것으로 본다.
저자는 장차 스위스, 네델란드, 스웨덴과 노르웨이, 한국 등의 역할에 주목하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 했다. 강소국의 ‘스마트’한 나라에 주목하자는 게다. 강소국이 세상의 중심에 설 때 지배와 복종이 아니라, 상호이해에 의한 정의로운 역사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만큼 세계 속의 한국과 한반도의 위상이 중요하다.
첫댓글 이제 서평 글을 읽었습니다. 평촌 선생의 다른 글들을 읽을 때 맛본 느낌과는 차이가 도더라진다고 감히 말하고 싶은데 혹 기분 조금 상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독을 했습니다. 글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정리해주셔서 좋았고 ‘역사를 이끈 인간활동과 그 동인을 중심으로 제국의 역사를 보고자 했다’는 저자의 논지를 그대로 살려 요점 서평 하신 것이 좋았습니다. 서평만으로 그 논지를 저의 언어로 따로 노트해두었습니다. 저가 쓰고 있는 작은 책의 의도와도 통하는 것 같고, 착은 책 글의 의도를 좀 더 선명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도자의 전략적 사고와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역사흐름에 전환의 기운을 불어넣는다는 결론적 언사, 그것이 지금 우리 운영위와 지리산책의 배경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선 정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역사의 정치적 흐름에 등한한(무지한) 것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맘먹고 읽었습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곧 우리 조합의 힘이자 내 자신의 상승 자원이 될 겁니다.
글을 해독하는 혜안이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