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천주교 묘원을 가다
1. 2021년의 마지막 답사는 걷기 대신에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용인 천주교 묘원을 찾았다. 느낌으로는 별로 멀지 않지만 차량 정체 관계로 항상 2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짧지 않은 시간이 그 곳을 찾는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추억을 떠오르게 만든다. 용인을 찾는 시간은 추억과 애도 그리고 현재의 나를 확인하는 의례의 시간이다.
2. 부모님을 만나러 가지만 사실 이 코스에는 S와의 더 많은 추억이 담겨있다. 아버지가 1996년 돌아가시고 용인에 안장된 이후, S와 나는 최소 일 년에 두 번씩 이곳을 방문했다. 지금은 납골당으로 바뀌었지만 과거에는 봉분으로 이루어진 무덤이었다. 우리는 벌초를 하고, 술을 올렸고 헌화하였다. 묘한 인연으로 S의 아버지도 이 곳에 모셔져 있었다. 우리의 방문은 자연스럽게 두 명의 아버지를 방문하는 시간이었다. 확 트인 공간에 만들어진 꽃과 돌 그리고 무덤의 연속적이고 기하학적인 배치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가다듬는 기회를 주었다.
3. 용인 천주교 묘원을 찾을 때 이용하던 ‘수서-분당 고속국도’는 2017년 더욱 빈번하게 방문하게 되었다. S의 병이 악화되어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하게 되자 마지막 희망으로 찾게 된 곳이 뇌수술의 권위자가 있던 분당 제생병원이었고, 중간에는 의사의 전원으로 분당 차병원에서 두 번의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 곳은 S가 마지막으로 삶의 희망을 품었던 공간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녀를 방문하기 위해 정체된 도로를 지나 달려갔다. 하지만 수술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내가 살고 있는 파주의 호스티스 병동으로 옮겼다.
4. 죽음을 직접 목도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남는 것일까? 그것도 단독으로 경험했다면 그 순간이 주었던 강렬한 인상은 살아있는 시간을 지배하는 기억이 될 것이다. 어머니와 S의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다행하다고 해야 할까? 그것은 두 사람의 삶 속에서 나와의 관계를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믿었고, 나를 의존했던 두 사람이 가쁜 숨을 쉬고 서서히 힘을 잃어가면서 끝내는 숨을 멈춘 죽음의 과정은 인간이 지닌 육체와 정신의 합일과 분리에 대한 생생한 장면이었는지 모른다. 죽음과 함께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소멸되는 순간인 것이다.
5. 어쩌면 두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기에 나의 죽음 때 누구도 배석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하지 않을 자신을 얻었는지 모른다. 죽어가는 순간에는, 가장 깊은 삶을 교환했던 사람만이 같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단지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충분히 깊고 절실하게 나누었던 사람이 죽음에 배석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나의 죽음에 배석하지 않아도 슬퍼하거나 외로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 삶의 고독을 선택했다면, 죽음의 고독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6. 갈 때 들었던 감상적인 노래가, 돌아올 때는 조금 지루해졌다. 현실 속에서 조금은 이성적인 시선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용인의 방문은 살아있을 때 지속될 ‘의례와 애도’ 그리고 누군가가 영원히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한 과거와의 연결이 현재의 나를 부당하게 찌질하거나 소외된 사람으로 변모하는 것을 막아준다.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라 ‘자유’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고독마저 자유로 만들어주는 오래된 경험이자, 현재로 전환된 시간이다.
첫댓글 - 기억의 장소로 만나게 된다. 삶을 떠난 죽음은 없고, 죽음을 떠난 삶도 없다. 삶과 죽음은 함께하는 존재이기에 시공간의 분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은 영원함의 존재이며, 나의 존재 부재 또한 그러할 것이다. 삶이 있는 한 기억은 지속될 것이며, 그 기억이 나의 삶을 지탱해 준다.
- '메멘트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같은 점 하나에 들어있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있다가 없어지는 것, 살다가 죽는다는 것 또한 같은 점 하나에서 일어나는 표상일 뿐이다. 삶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가볍게 보는 것도 아니다. 삶과 죽음에 무슨 무게가 있겠는가? 살아가는 자의 생각의 차이일 뿐, 삶과 죽음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비중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 스스로 선택한 자유와 고독 앞에서 무의미한 삶에 대한 반항감을 느끼게 된다. 부조리한, 던져진 삶에 대한 저항 의식이 나를 감싼다.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움직임 속에서 꿈틀거리게 된다.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의 리듬 소리에 맞추어 춤추며 살아가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