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 포함 포유류의 조상 찾았다.
중생대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 같은 거대한 육식 공룡이다. 그만큼 중생대라고 하면 일단 공룡부터 떠오르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사실 중생대에는 매우 다양한 생명체가 번성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중에는 물론 인류를 포함한 포유류의 조상도 있다.
포유류가 현재처럼 항온성. 머리털. 효율적인 치아 구조. 횡격막 등 여러 특징을 진화(進化)시킨 것은 중생대 시기였다. 공룡이 번성하던 시절에 포유류는 작은 크기였지만, 미래를 위한 진화(進化)를 착실하게 준비했던 셈이다. 마드리드 대학, 본 대학, 시카고 대학의 과학자들은 최근 스페인에서 삼돌기치목(triconodonts)에 속하는 중생대 포유류의 완벽한 화석을 발견해 저널 네이처에 보고했다.
이들이 발견한 화석은 대략 1억 2,500만 년 전의 것으로 중생대 시대의 화석이다. 이 시기의 포유류 화석은 아주 드문 건 아니지만, 이번에 발견된 화석은 그 완벽한 보존 상태여서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도 남는다. 왜냐하면, 털은 물론 내부 장기의 흔적까지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피놀레스테스 세나스로수스(Spinolestes xenarthrosus)라고 명명된 이 포유류는 꼬리를 포함해서 몸길이 24cm 정도이며, 체중은 50-70g 정도로 현재의 설치류와 비슷한 크기와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골격 주변에는 털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는데, 이를 전자 현미경을 포함한 현미경으로 관찰한 과학자들은 현생 포유류와 놀랄 만큼 비슷한 구조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학자들을 더 놀라게 만든 부분은 골격 내부에 장기의 흔적이었다. 이 부분을 화학 조성을 미세 관측한 과학자들은 철분이 풍부한 부분이 과거 간이 있었던 위치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 위에서 폐 밑에 횡격막의 흔적으로 보이는 구조도 발견했다. 이렇게 내부 장기의 흔적까지 보존되는 화석은 매우 드문데, 포유류 화석 가운데서는 이번에 발견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번 발견으로 분명해진 사실은 중생대 포유류가 이미 1억 2,500만 년 전에 상당히 현대적인 진화를 이룩했다는 것이다. 현생 포유류와 닮은 털의 구조와 횡격막의 존재는 스피놀레스테스(Spinolestes)가 이미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항온 동물로써 상당히 진화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는 열을 보존하고 후자는 에너지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도록 산소 공급을 돕기 때문이다.
중생대의 주인공은 물론 포유류는 아니다. 하지만, 다음 시대의 주인공이 될 준비는 이미 이 시기에 어느 정도 마쳤던 셈이다. 여전히 공룡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존재지만, 현재의 우리를 가능하게 한 진화(進化)는 공룡과 함께 살았던 포유류의 조상들에 의해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와 현생 포유류들은 그 결과를 지금 누리는 셈이다. (서울신문, 입력: 2015.10.19일)
■ 과연 인류는 어떻게 진화(進化)해 왔을까?
★ 포유류(哺乳類)에서 하등 영장류가 진화(進化)되어 출현 (7400만년 전) → ★ 타이하르디너(Teilhardina), 가장 오래된 하등 영장류(靈長類) (5,600만년 전) → ★ 하등 영장류(靈長類)의 집단 생활 시작 (5200만년 전) → ★ 다위니우스 마실라에 [4,700만년 전. 일명 이다, 하등 원원아목(原猿亞目)] → ★ 하등 원원류(原猿類. procimians. 매우 작고 꼬리 달린 원숭이) 출현 (4500만년 전) → ★ 에오시미아스 (4,000만 년 전)[꼬리없는 고등 영장류(靈長類)인 유인원(類人猿)] → ★ 간레아 메가카니나 (3,800만년 전) → ★ 이집토피테쿠스 (3,500만년 전) → ★ 프로플리오피테쿠스 (3,200만년 전) → ★ 프로콘술 (2,500만년전. 원숭이와 사람과(人科)의 중간 형태) → ★ 드리오피테쿠스 (2,300만년 전) → ★ 플리오피테쿠스 [2,000만년 전. 사람상과(人上科)(Hominoidea)의 유인원] → ★ 아노이아피테쿠스 (1,900만년 전)→ ★ 라마피테쿠스 (1,500만년 전. 원숭이와 사람과(人科)의 중간 형태) → ★ 케냐피테쿠스 (1,400만년 전) → ★ 플리오바테스 카탈로니에 (1,160만년 전. 일명 라이아) → ★ 오레오피테쿠스 [900만년 전.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인간 등의 사람과(人科) 조상] → ★ 인간. 침팬지 분화 (800만년전) → ★ 투마이 (700만년 전) → ★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440만년 전. 일명 아르디) → ★ 아르디피테쿠스 아나멘시스 (420만년 전) →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390-290만년 전. 일명 루시) → ★ 최초의 사람(homo), 호모 속(屬) 인류 (280만년 전) → ★ 호모(homo) 하빌리스 (230만년 전) → ★ 호모 에렉투스 (50만년 전) → ★ 호모 사피엔스 (현생 인류. 동양 28만년 전, 서양 20만년전) → ★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8-4만년 전)
● 호모 사피엔스 (동양 28만년 전, 서양 20만년전) : 현생(現生) 인류 출현
1) 동양의 호모 사피엔스 (28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생각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1986년 중국 요녕성 요동(遼東) 반도 잉커우(營口)현 서남쪽, 발해만에서 30㎞ 떨어진 금우산(金牛山.진뉴산)에서 28만년 전(前) 현생(現生) 인류 화석이 발견되자 학계는 흥분했다. 한반도 북부 발해만에서 현생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뒤집는 선사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현생 인류의 기원은 28만년 전에 아시아 동북에 존재했던 금우산인(金牛山人)으로 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우산인(金牛山人)부터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로 돌입했으며, 현생(現生) 인류의 기원은 28만년 전의 한반도 북부의 발해만(渤海灣)이라는 것이다. 동북(東北) 아시아에서는 호모 사피엔스 (20만년 전)의 유적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4만년 전)의 유적이 함께 발견되고 있다. 적어도 한반도 북부 발해만(渤海灣)의 발해 문명(요하 문명)과 한반도 일대의 고대 유적에서는 고(古)인류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음 보여주고 있다.
2) 서양의 호모 사피엔스 (2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생각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s)이 이에 해당한다.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s)의 화석이 독일·프랑스·벨기에·이탈리아 등에서 발견되었다. 키가 작고 건장하며 힘이 세었다. 이들의 두개골은 무거운 이마뼈, 큰 이빨과 작은 광대뼈를 가지고 있었다. 두 발로 걸어 다녔지만 그 모양이 현대인과는 달랐다.
●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동양 8만년전, 서양 4만년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는 ‘현명한 인간’이란 뜻이다. 런던대 연구진은 2015년 중국 남부 후난(湖南)성 융저우(永州) 다오(道)현에서 현재의 인류와 비슷하게 치아를 47개 가진 8만년 전 인류 화석을 찾아냈다. 동북(東北) 아시아에서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유적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의 유적이 함께 발견되고 있다. 적어도 한반도 북부 발해만(渤海灣)의 발해 문명(요하 문명)과 한반도 일대의 고대 유적에서는 고(古)인류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음 보여주고 있다.
4만년 전 크로마뇽인(Cro-Magnons)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모습을 새기거나 조각상을 만들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에 있는 크로마뇽인의 동굴에서 발견된 동물의 그림은 매우 아름답다. 이 그림들은 크로마뇽인들에게 주술적 의미를 가졌던 것 같다. 최초로 예술을 시작한 인류는 바로 이들이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는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는 사람과의 영장류이다. 추상적인 생각, 언어(言語) 사용, 자기 반성, 문제 해결을 할 수 있고, 감정(感情)을 느낄 수 있는 고도로 발달한 두뇌를 지니고 있다. 팔을 이용해 다른 종보다 훨씬 정교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언어(言語)와 문자(文字)를 이용한다.
■ 28만년 전 발해만에서 구석기 인류가 살았다.
1986년 중국 요녕성 요동(遼東) 반도 잉커우(營口)현 서남쪽, 발해만에서 30㎞ 떨어진 금우산(金牛山.진뉴산)에서 28만년 전(前) 현생(現生) 인류 화석이 발견되자 학계는 흥분했다. 한반도 북부 발해만에서 현생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뒤집는 선사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금우산(金牛山) 화석이 베이징 원인(猿人)(68만-78만년전) 보다 발달한 인과(人科)임이 확인되면서 학계는 금우산(金牛山)인의 존재를 현생 인류 진화(進化)의 큰 과정으로 설명해 놓고 있다. 베이징 원인(猿人)은 1923년 중국 베이징 남쪽 저우커우뎬(周口店)에서 발견된 68만-78만년전의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를 말한다. 금우산인(金牛山人)은 호모 에렉투스(200만년 전)와 호모 사피엔스의 사이, 즉 초기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진화하는 과도기적 단계를 이끈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저명한 인류학자인 자란보(賈蘭波)는 “베이징인이 살고 있을 당시, 베이징인 보다 진보적인 특징을 가진, 즉 원시 부엌까지 갖춘 금우산인(金牛山人)이 있었다”면서 “금우산인부터 초기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시대로 돌입했다”고 말했다. 요서(遼西) 구릉과 요동(遼東) 산간 지역에서 구석기(舊石器) 시대의 전기. 중기. 후기 유적이 두루 관찰되고 있다.
현생 인류의 기원은 한반도 북부의 발해만(渤海灣, 보하이완)에서 탄생한 발해 문명(요하 문명)이며, 28만년 전에 아시아 동북에 존재했던 금우산인(金牛山人)으로 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우산인(金牛山人)부터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로 돌입했으며, 현생 인류의 기원은 28만년 전의 한반도 북부의 발해만(渤海灣)이라는 것이다.
■ 구석기에서 신석기까지 발해만에서 끊이지 않고 살았다.
중국의 궈다순은 발해만 유역에서 나타난 체계적인 구석기 문화의 연계성을 설명한다. 즉 발해만 유역에서는 금우산인. 먀오허우산인. 거쯔둥인. 샤오구산인 말고도 음미할 만한 구석기 유적들이 많다는 것이다. 즉 압록강 하구인 둥강(東港)시 첸양(前陽) 동굴 인류 화석과 젠핑인(建平人), 젠셴(錦縣) 선자타이(沈家台) 유적, 링위안(凌源)의 시바젠팡(西八間房) 유적 등이다. 그는 “요서(遼西) 구릉과 요동(遼東) 산간 지역에서 구석기 전기. 중기. 후기 유적이 두루 관찰된다”면서 “이는 고(古)인류가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1973년 평남 덕천군 승리산에서 ‘덕천인(10만-4만년 전)’과 ‘승리산인(4만-3만년 전)’이 잇달아 발견됐다. 1977년엔 평양시 력포 구역 대현동에서 력포인이, 1980년에는 평양 검은 모루 동굴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의 인류 화석(룡곡인)과 석기가 확인됐다. 또한 같은 해 평양 승호 구역 만달리에서는 ‘만달인’ 화석이 나왔다.
남한에서도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유적에서 7만년 전(前)의 구석기 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올 뿐만 아니라, 4만년 전(前) 충북 청원군 가덕면 노현리의 흥수 아이 유적지에서는 옛코끼리(Elephas antiguitas) 상아가 발견되었으며, 한반도에는 70곳이 넘는 구석기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선문대 이형구 교수는 “예컨대 1980년 발견된 평양시 상원군 용곡리의 룡곡 1호 동굴 유적의 경우 구석기는 물론 신석기 인류 화석도 나왔다”면서 “이것은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시대까지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살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 꼬리 없는 유인원(類人猿),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이동
1995년 05월, 약 4,000만년 전에 살았던 유인원인 에오시미아스(Eosimias) 화석이 중국 산서성(山西省) 황하(黃河) 유역 일대에서 발견됐다. 이 화석은 고등 영장류의 초기 진화가 아시아에서 일어났다는 증거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자료를 보면, 인류가 아시아(Asia)에서 기원해 아프리카(Africa)로 이동했을 것임을 시사하는 새로운 증거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인간과 긴팔 원숭이, 침팬지 등을 포함한 꼬리 없는 영장류를 지칭하는 유인원(類人猿)들은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 지배적인 학설이었지만, 반대로 이들이 아시아(Asia)에서 기원해 아프리카(Africa)로 이동했을 것임을 시사하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고 사이언스 데일리와 뉴욕 타임스가 2010.10.29일 보도했다.
프랑스 푸아티에 대학의 장 자크 예거 교수가 이끄는 미국. 프랑스 연구진은 리비아(Libya) 중부의 두르 아트 탈라 단애 지대에서 발견된 3천 900만년 전 유인원(類人猿) 화석들이 3종류의 분명히 다른 종이며, 몇몇 유인원(類人猿) 종들이 약 3천900만년 전 다른 대륙 즉 아시아로부터 건너와 아프리카에서 대량 서식하게 됐다는 것을 네이처(nature)지에 발표했다.
미국 카네기 자연사 박물관의 고생물학자 크리스토퍼 비어드는 "이처럼 다양한 화석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유인원들이 아시아(Asia)에서부터 아프리카(Africa)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매우 큼을 말해준다. 아프리카에서 이전의 화석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들 유인원들의 최초 진화지로 주목할 곳은 아시아(Asia)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장 자크 예거 교수는 발견된 유인원 화석들이 모습은 오늘날의 영장류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몸무게는 100-480g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이 중 최소한 한 종은 아시아 미얀마(Myanmar)에서 발견된 3천 800만년 전의 아시아 유인원(類人猿)인 간레아 메가카니나(Ganlea megacanina)와 유연 관계에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아시아(Asia)에서 아프리카(Africa)로 유인원의 이동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아프리카(Africa) 인류 기원설은 폐기되고 있다.
1987년 버클리의 유전학자들인 앨런 윌슨과 레베카 칸, 마크 스톤킹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발표한다.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 분석을 통해 지구촌에 살고 있는 60억명 인류의 조상은 지금부터 약 15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어느 여성이라고 입증해낸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서 일종의 세포 전지 구실을 한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에는 1만 6500개의 독특한 DNA가 존재하고 있다. 이 DNA의 염기 서열은 사람마다 아주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미토콘드리아를 어머니의 난자에게서만 물려받는다는 점이다. 정자는 염색체만을 전달하며, 약간의 미토콘드리아를 갖고 있지만 수정 과정에서 팽개쳐버린다. 윌슨 등 과학자들은 바로 이 점에 착안했다.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30억명의 여성에게 있는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 DNA를 계속 역추적하면, 윗세대 여성으로 올라 갈수록 수십억에서 수백만, 수천, 수십, 한자릿 수로 줄어들게 된다. 이 결과 과학자들은 현생 인류의 조상을 15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자매인 두 여성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여인에게 붙은 이름이 바로 ‘미토콘드리아 이브’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이브의 후손 중 일부는 약 10만년 전 아프리카를 탈출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간다. 이것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학설이다.
한편, 1986년 중국 요녕성 요동(遼東) 반도 잉커우(營口)현 서남쪽, 발해만에서 30㎞ 떨어진 금우산(金牛山)에서 28만년 전 인류 화석이 발견되자 학계는 흥분했다. 한반도 북부 발해만에서 현생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 뒤집는 선사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15만년 전 아프리카 두 여성 보다 13만년이나 앞선 28만년 전의 금우산(金牛山)인이 발견된 것이다.
■ 흑피옥, 인류 문명사를 새로 쓸 비밀 열쇠이다.
2006년 8월 하순 중국 북부 내몽고(內蒙古) 자치구 우란차푸(烏蘭察布)시 외곽의 풀이 무성한 초원 지대에서 김희용씨는 비밀의 문물(文物)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흑피옥(黑皮玉)이다. 흑피옥이 발견된 주변에는 신전(神殿), 벽돌식 무덤 등 고대 문명의 흔적이 역력했다. 주변 일대에는 또 다른 여러 기의 분묘가 눈에 띄었고, 인근 산꼭대기에서는 신전(神殿)의 흔적과 비슷한 터도 발견된다. 그가 그 동안 중국 현지에서 수집해 소장 중인 흑피옥은 수백여 점에 달한다. 크기는 작게는 수십cm의 소형 조각상에서 크게는 1m를 훌쩍 넘는 대형 조각상까지 매우 다양하다.
서울대 기초 과학 공동 기기원에 흑피옥(黑皮玉) 1점의 시료를 채취해 탄소 연대 측정을 의뢰한 결과, 흑피옥의 제작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1만 4,300년 전(前)쯤으로 추정된 것이다. 이는 구석기 시대 후반에 해당되며, 기존의 세계 4대 문명(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황하. 인더스)보다 거의 1만 년 이상 앞서는 것이다. 기존의 인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대사건이다.
흑피옥 조각상의 정교함으로 미뤄 1만 4,300년 전 인류 사회가 결코 미개하거나 야만적인 상태가 아니었으며, 상당한 정도의 문명 사회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 나아가 흑피옥 문화를 ‘초(超)고대 문명’ 또는 ‘제1차 인류 문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흑피옥은 배달(倍達 BC 3,897-2,333)의 홍산(紅山) 문화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옥기(玉器)들과 모양이 비슷하다. 김희용 씨는 흑피옥 출토지 발견 이후 중국(中國) 당국에 자신이 소장한 흑피옥 전부를 기증하는 대신 한국과 세계 각국 학자들을 포함시킨 조사단의 공식 발굴을 제안한 바 있다.
중국 북부 내몽고(內蒙古)의 흑피옥(黑皮玉) 문화와 요서(遼西) 지역의 배달(倍達 BC 3,897-2,333) 홍산(紅山) 문화를 정점으로 하는 요하(遼河) 문명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요하 문명을 주도한 세력은 바로 우리 민족인 배달(倍達) 민족 사람들이었다. 흑피옥(黑皮玉) 문화가 요하(遼河) 문명이 시간차를 두고 계승되었으며, 흑피옥 문화 → 요하 문명 및 홍산 문화 → 한반도(韓半島)로 흐르는 이동 경로 설정이 가능해진다.
■ 나반. 아만, 아담. 이브는 최초의 인간이 아니다.
이황(李滉) 선생의 제자가 이황 선생에게 ‘태초에 인간이 1-2명 나왔습니까?’ 물었다. 이황 선생이 대답하기를 ‘봄에 농부가 1-2개만 뿌리더냐!’ 라고 했다. 태초에 인류 최초의 인간은 1-2명의 조상에게서 출발할 수는 없고, 태초에 다수의 최초 인간들이 함께 나왔다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시어간(始於艮) 종어간(終於艮)이라고 적혀있다. 모든 만물의 시작과 끝이 간방(艮方)에서 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간방(艮方)은 한반도 일대를 말한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三聖記)에 인류의 조상을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이라고 했는데, 이름을 처음 사용했던 족보(族譜)상 최초라는 것이지, 그 이전에 인류가 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이름’을 썼던 사람은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인 것이다.
그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 그 누구도 이름을 만들어 부르지는 않았다. ‘나반’과 ‘아만‘이 처음으로 이름을 만들어 호명(呼名)했다. 그리고, 그 후 그렇게 ‘이름’을 서로 만들어 부르다가 인류 최초로 성(性)씨를 정하고, 결혼(結婚) 제도를 정한 사람은 배달(倍達 BC 3,898-2,333) 5세 태우의 환웅의 12번째 아들인 ‘태호복희(太昊伏羲)’이며, 그 후 강(姜)씨가 인류 최초의 성(性)씨가 되었고, 그 후에 점점 족보(族譜)를 따지게 된 것이다.
노아(Noah)의 홍수 때, 노아 가족 이외의 인류는 모두 멸망당하였다고 적혀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노아(Noah)의 홍수 때와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지구의 다른 지방에서 인류가 살고 있었다는 증거가 세계적으로 발굴된 고고학적 자료와 유물 및 서적들에서 수없이 발견되고 있다. 서양의 노아(Noah)의 홍수가 B.C 2,348년경에 발생했다. 그리고, 서양사람들이 그들의 시조로 믿고 있는 아담(Adam)과 이브(eve)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상류에서 6,000년 전에 살았던 실존 인물이며, 서양에서는 최초로 ‘이름’을 사용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은 족보(族譜)상 서양 사람들의 시조(始祖)가 되는 것이지, 그들이 인류의 최초의 인간은 아니다.
■ 우리 민족의 역사는 무려 9,200년이나 된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환국(桓國 BC 7,199-3,897), 배달(倍達 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 마한.변한.진한.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인류 최초의 나라 환국(桓國 BC 7,199-3,897)이 바이칼호(Baikal lake)와 천산(天山) 산맥 일대에 세워졌었고, 그것의 국통(國統)을 이어서 북만주 일대에 배달(倍達 BC 3,898-2,333)이 세워졌었다.
인류의 문명은 북만주 일대에 위치해 있던 배달국(倍達 BCE 3,898-2,333)의 문명이 인류 4대 문명을 낳아 생겨 났다.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紅山)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 3,500-2,600년). 이집트 문명(BC 3,100년경). 황하 문명(BC 3,000-2,500년). 인더스 문명(BC 2,5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 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반도는 북방계 문명인이 남동쪽으로 이주해 오기 전에 이미 남방계 토착민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었다. 배달(倍達 BC 3,898-2,333) 환웅께서 문명 개척단을 이끌고 북만주 일대에 나라를 세우기 이전부터 토착민(곰족. 호족)들은 살고 있었다. 또한,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 단군께서 나라를 세우러 내려오기 전부터 토착민들은 역시 살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인의 유전 형질을 분석해 보면, (조용진 교수, 얼굴, 한국인의 낯) 넓적한 북방계와 오밀조밀한 남방계가 함께 혼합해서 섞여 있다고 한다.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견된 탄화 볍씨는 15.000년 전(前) 세계 최고(最古)의 것으로 학계에 보고되어 있으며, 세계 피라미드 무덤 양식의 기초가 되는 석관묘(고인돌)는 세계에서 한반도가 가장 많다. 그리고 신석기 및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석관묘)은 한반도 중에서도 호남 지역이 세계 최대로 밀집 분포되어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전라북도 고창에서 발견된 것이 최남단의 것이며, 남방식 고인돌은 전라도 지방에 주로 밀집 분포하며, 한강 이남 지역에서 발견된다.
인류의 문명이 바이칼호(Baikal lake)와 천산(天山) 산맥 일대의 환국(桓國 BC 7,199-3,897)을 거쳐 북만주 일대의 배달(倍達 BC 3,898-2,333)의 홍산(紅山) 문화와 발해만(渤海灣)의 발해 문명(요하 문명)을 꽃피웠는데, 그 무렵 이미 한반도에는 토착민들이 정착해 살고 있었고, 그런 바탕 위에 한반도북방계의 배달(倍達 BC 3,898-2,333), 고조선(古朝鮮 BC 2,333-238)이 세워진 것이다.
B.C 2200년경부터 쓰여진 우리 민족 최초의 자료집인 산해경(山海經)에는 많은 지리 풍속들이 기록되어 있고 정확한 내용이 상세하게 나열되어 적혀있었기 때문에 한(漢)나라 때 유명한 역사학자 사마천 까지도 사기(史記)를 쓰면서 제일 많이 인용한 책이 산해경(山海經)이었다.
우리민족의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은 지혜로운 민족으로 금속을 제일 먼저 다루었다고 하여 철(鐵)자의 옛날자인 ‘철(銕)족’이라 하였고, 큰 활을 잘 쏘는 민족 이라 하여 큰 대(大)자에 활궁(弓)을 합하여 ‘이(夷)족’이라고 하였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동이족(東夷族)을 중국 사람들이 ‘오랑캐 이(夷)’라고 억지로 낮추어 표현 하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