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교육생 두 명과 황토방 기숙사의 보일러실 공사를 마치고 정리를 끝내니
땅거미가 이미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지만 그 동안 미루었던 콩을 베어
타작할 준비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겨우살이 준비를 한 셈이다.
방마다 불을 때는 구들난방이라 해가 지기 전에 불을 지피는데 집 앞 입구에 승용차가
한 대 멈추더니 나이 지긋한 두 분의 여자 손님들이 집으로 걸어들어 오신다.
아마도 송계사에 들렀다가 우리집에 잠시 오시는 분들인가 하고 멀리서 인사를
했다.
남루한 작업복차림으로 선뜻 손님들 앞으로 나서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시골생활이
하루종일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기에 가끔 즐겨입는 생활한복도 나에게는
사치일 뿐이다.
나는 우리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최대한의 정성을 다하려고
한다. 원근각지에서 이 산골까지 찾아주셨다는 것 하나만이라도 감사하기 때문이다.
여자 손님들은 지난 2월에 한 번 오셨던 분들임을 알 수 있었다. 거창에서 교직생활을
마친 분과 현직 교사이신 두 분을 마침 맞바람이 불어서 연기가 가득한 방으로 모셨다.
집사람이 없어서 썰렁하고 정리되지 않은 집으로 기꺼이 들어서시는 두 분에게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 마음에 차를 대접해 드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차맛이 너무 맛있다고 좋아하시는 고마운 인사를 빈 말이라도 해 주니 서로 자연스럽게
마음을 터놓게 되는가 보다.
이미 은퇴하신 선생님은 북상면 소재지에 있는 갈천 선생(은진 임씨) 집안의 작은 종부였
다고 들려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 뿐 아니라 북상면 전체가 그 집안의 소유였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여기 저기 남아 있어서.....땅 등기와 건물 등기가 서로 다른 집들이
많이 있다. 때문에 매매도 되지 않고 다 허물어져 흉물스러운 광경이 눈에 띄인다.
이야기 끝에 선생님은 한 마디 토로하신다. 너무 부자로 사는 것은 그만큼 좋지 않은
업보를 많이 갖고 살아가는 것 같다고.....그 후손들이 그리 평탄한 삶을 살아가지 못했다
는 암시인 듯이 ...... 이제라도 보시를 많이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았다. 그 많은 땅이 이제 다 주민들의 소유로 돌아갔으니 바로 된 것이라는 말
을 하시는 얼굴 표정에서 그 자신도 많은 것을 보고 느끼셨기 때문이리라!
순간 나는 성서에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 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쉽다"는 구절이 진리라고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젊은 시절 아무리 성서를 읽어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지천명(知天命)이라는 나이가 되니 가슴으로 알아듣게 된 것인가 몰라도!
20대의 젊은 시절~ 평탄하지 않았던 집 안 환경탓인지 몰라도 유난히 많은 갈등 속에서
대학생활을 했던 것 같다. 게다가 혼란의 와중 속인 군부독재 하에서 올바른 양심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 그 누구 하나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었기에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고민했었다.
그 때 내게 정신적인 안내자와도 같은 책이 한 권 있었으니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의
역작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였다. 그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인간의
양식은 소유하는 삶의 양식에 속하느냐 존재하는 삶의 양식에 속하느냐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칼 맑스의 이론을 정신분석학에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나 물질 혹은 권력 명예 등을 사랑하면서 과도하게 집착해 그것에서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예속 된다면 그것은 소유하는 삶으로 규정한다. 이 양식에 속하게 되면 삶은 억합과 폭력
그리고 불행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에 비해 존재하는 삶은 이 세상 어느 것이나 사람 심지어 신으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 자체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 그러니까 결과물에 집착하지 않고 그
과정 자체도 존중하는 삶이다. 존재하는 삶이야 말로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준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존재하는 삶은 잊은채 모두 소유하는 삶의 양식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엔 물질의 소유 유무(有無)나 많고 적음에 따라서 삶의 양식이 대별되는 것 같지
만 인간의 심층적인 심리저변에 깔려있는 무의식 세계까지 파고들어가는 내용이었다고 생각
된다. 젊은 시절에 접했던 많은 책 중에 에리히 프롬의 저서들이 가장 오랬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 글들이 그만큼 인간 내면세계에 대한 성찰을 철저히 한 연구의 결과물이
었기 때문이리라!
이런 생각이 나서인가 몰라도 나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현우 외할아버지가 큰
부자로 돌아가셨는데 이번에 송계사에서 49재를 드리게 되었다. 나는 큰 부자의 업보까지
물려받고 싶지 않아서 현우 엄마하고 상의해서 유산상속을 받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사실 내가 노력해서 번 것이 아닌데 받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 마음이 이렇게 자유롭고 평화로울 수 없다는 요즘의 심정도 내비치었더니
어떻게 그런 어려운 결심을 했냐고 하신다. 그 때부터 두 분 손님들이 시골 목수에 불과한
나를 다시 바라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즈음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짧은 게 명약관화한 내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정립해야할 지 고민하며 지내기도 한다. 아들 현우가 아직 어려서 학비도 많이 마련해 놓아
야하고.....노후 자금도 적립해 놓아야하는 가장의 책임도 있지만 존재하는 삶의 양식을 따라
살아가려고 했던 젊은 시절의 결심을 결코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하루 종일 이일 저일하다 보면 몸은 녹초가 되어 일찍 잠자리에 드는
초라한 산골생활이지만 진정 소유하는 삶의 양식이 나를 지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댓글 "존재하는 삶이야말로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준다" ....쉽지 않은일이지만...그래두 진정 행복한삶이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하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인터넷신문 칼럼을 쓰느라고 이렇게 정리하고 있네만.....산다는 게 이론이 아니라 그게 인생인가 보네
치열한 갈등의 순간이 수없이 교차되니
^^* 하늘재 친구님의 깊은 마음.. 헤아림..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참으로 귀한 혜안.. ^^ 멋집니다. 아름다움입니다. 사랑입니다.. 자연입니다. ^^ 가진만큼... 있는만큼 ..지켜 나가야 하기에 더 어렵고 힘든것이 바로 물질이 주는 혜택의 첫 순서란 생각이 듭니다.^^* 허상 허상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매여사는 우리..사람들... 늘 비우고 비우려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올해 들어서 솔내음 친구님을 통해서 만은 가르침을 받았어요 지극한 정성으로 금강경 공부 더 열심히 할께요 ^*
인생을 아름답게 엮어가는 모습.....무엇하나 제대로 해오지 못한 내 삶이지만^ 그래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하루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