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하는 원본 지도로는 조선방역도( 명종2년 1557년 국보 248호 )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조선방역도 보다 150년이나 앞선 동양 최고의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태종 2년 1402년 )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었고 비단에 그려진 컬러지도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 있지 않고 일본 류코쿠대학 도서관에 있다.
길이 164cm에 너비 171.8cm인 혼일강리도는 현존 동양 최고 당대 세계 최고의 지도다.
혼일강리도는 1992년 미국에서 열렸던
컬럼부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전에 출품되어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지도는 문화의 꽃으로 단순한 땅의 그림이 아니고
한 시대의 역사적 사실 문화 과학적 수준 세계관까지 담고 있다.
문화의 꽃인 지도에서 짐작되듯 우리나라는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과학 선진국으로서 천체관측기구인 간의로 위도를 천문용 시계인 혼천의를 원용하여 경도를 측정했다.
삼각측량기구인 인지의를, 십리마다 북을 울리는 거리 측정기구 기리고차를 발명하여 지도를 그렸다.
18세기 후반 들어 지도 형태에 또 한번의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축척법의 등장이다.
정상기는 이전의 지도는 종이의 크기에 따라 그렸기 때문에
실제 가까운 거리를 지도에는 멀게도 그리고 먼 거리를 지도에는 가깝게도 그리는 폐단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최초로 100리척의 축척법을 이용한 동국대지도를 그렸으며 또한 정상기는 팔도분도에서
종이의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 여러 장의 지도를 이어볼 수 있게 하는 분첩 방식을 적용했다.
1861년 마침내 고지도의 결정체 대동여지도가 판각되었고
당대 최고의 정밀지도라는 대동여지도는 그처럼 축적된 기술과 김정호라는 제작자를 만나 이룬 업적이다.
3대 지도라고 하면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이고 3대 지지라면 동여도지 여도비지 대동지지라고 한다.
동여도엔 19140여개의 지명이 있는데 대동여지도엔 7000여개가 줄어든 11760여개의 지명이 들어 있다.
대동여지도는 동여도가 바탕이 된 지도이며 지명이 줄어든 것은 판각의 어려움 때문인 것이다.
1934년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어독본 제5권 제4과에 일제가 창작했던 고산자 김정호의 일대기다.
" 김정호는 황해도 두메산골 쓰러져가는 초가의 소년이다. 지리에 관심이 있어 선생에게 물었으나 타박만 받았다.
벗으로부터 읍지도를 얻어보았으나 정확도가 뒤져 서울에 올라와 궁중의 규장각에서 조선팔도 지도를 한 벌을 얻었다.
정확도가 결여된 보잘 것 없어 김정호는 이처럼 틀림이 많아서야 이로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력으로
정확한 지도를 제작하기로 결심하고 10여년에 걸친 천신만고의 긴 답사여행이 시작되었다.
팔도강산을 세 번 백두산을 여덟 번 드디어 대동여지도의 원고를 완성하고 소설을 지어 얻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10년의 각고 끝에 과년한 딸과 함께 목판의 판각을 완성했다. 그러나 대원군은 나라의 기밀이 누설된다고
압수하고 부녀를 옥에 가두어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
해방되고도 이 내용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국어 읽기 단원에 실렸다. 1997년 5학년 1학기 "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
김정호에서는 내용이 바뀌어 김정호가 오로지 애국심과 애민정신으로 방안에 틀어박혀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로 되었다.
이 또한 왜곡이요 폄훼시킨 일례인 것이다.
조선의 형편 없는 지도 기술과 백성 위에 군림하는 지배층의 횡포 조선을 형편 없는 나라로 만들기위한 계략인 것이다.
아직도 이렇게 왜곡되어 만들어진
우리의 정신은 없는지 곰곰히 생각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잘 들어준 친구들에게 감사드린다.
( 조석준의 " 태백산맥은 없다 "에서 인용 발췌한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