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숙소를 출발했다. 숙소를 출발하면서 해안도로를 지나고 산악도로를 지나가기도 했다. 우리들은 여기저기에 돌로 둘러 쌓여 있는 무덤들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조상을 숭배하는 뜻으로 쌓아놓은 것으로 무덤가의 `산담`이라 합니다. 제주도의 전통 상례로서 우선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분묘의 형태라고 하는데 제주의 무덤들은 대부분 밭 한가운데 위치해 있고, 봉분 사방으로 네모나게 산담을 두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산담이 옹기종기 흩어진 모습이 매우 이색적이었다. 산담으로 두른 분묘는 밭 등 경작지 안에도 들어앉는 경우가 흔하지만 이른바 오름이라는 기생화산의 등성이에도 숱하게 눈에 띄고 있었다. 산담을 쌓는 일은 제주의 상례에 있어서 만만치 않는 고역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산담은 장례 당일에 쌓는 경우도 있고, 장례를 치르고 나서 다른 날에 쌓기도 한다고 한다. 제주도가 비록 돌이 아주 많은 고장이긴 하지만 분묘를 네모로 두르는 산담의 기원을 알 수 없다고 하나 말이나 소가 함부로 분묘를 훼손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든가, 산불이 번졌을 때 그 불길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의견도 있다는 얘기를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서 들었다.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에 위치한 일출랜드는 전날 만났던 제주분재예술원과 마찬가지로 개인에 의해서 개발이 되고 조성된 공원이라고 한다. 미천굴은 제1굴의 길이가 400여m 이고 제2굴은 약 1320m라고 한다. 굴의 입구는 천장함몰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비교적 천장 두께는 얕고, 동굴을 형성한 현무암류는 동굴의 지표면상에 유동방향을 나타내는 로피구조가 발달하였다고 한다. 입구는 참 인상적이었다. 제주도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55만 제주도 상주 인구의 수에 맞는 55만 여 개의 돌멩이로 돌벽과 탑 그리고 동굴의 안전시설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상징성과 노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바닥은 흙으로 이뤄져 있었고 특이한 것은 동굴 안에서 식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하동굴에서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가를 확인할 수 있는 생태 체험 공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바로 천장에 매달려 살고 있는 고사리류의 식물이었고 그것은 만장굴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것이었고 신선한 충격이 되었다. 25만년이 소요된 종유석과 거꾸로 자라는 신비한 석순 등을 만나면서 계속 개발을 통한 제주관광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것에 놀라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동굴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아열대 식물을 만나면서 이국적인 정취에 젖어들었다. 기념촬영을 하고 산책을 하며 선인장 하우스에 들어갔는데 그 곳에서는 선인장, 파인애플, 바나나 등 열대 식물을 볼 수 있었다. 공원에서 온갖 나무들을 만날 수 있으며 특히 무성한 야자수 그늘 밑에서 맛보는 특별한 야외 삼림욕과 제주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남국의 정취도 함께 느끼실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일출랜드는 공원 전체가 수목원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동백, 철쭉, 팽나무, 후박나무, 담팔수, 소나무등 총 30만 본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고 했는데 공원 그 자체가 훌륭한 휴식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일정에 쫓겨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 곳을 지나서 우리들이 찾은 곳은 바로 마상쇼를 하는 곳이었다. 몽골리안 마상쇼는 몽고사람들이 유목생활을 하면서 말과 하나가 되어서 살아가면서 터득한 개인기 혹은 말을 타고 행하는 쇼라고 생각이 들었다. 관람장은 1,000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들이 입장을 했을 때도 반쯤은 채웠는데 쇼가 시작되었을 때는 관람석을 모두 채웠다. 입장료도 만원이나 되어 싸지 않았는데 한 번 공연을 하면서 매출액 천만원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의 서커스와 말을 타고 벌이는 징기스칸의 절개와 충정이 서린 마상무예의 진수를 볼 수 있었다. 말을 타면서 이뤄지는 진기 명기가 벌어졌고 아슬아슬한 순간이 펼쳐지기도 했다. 네 살 때부터 말을 탄다는 몽고의 아이들이어서 인지 어린아이들이 말을 타고 벌이는 묘기는 신기에 가까웠다.
마상쇼 관람을 마친 후에 우리들은 표선 민속마을로 갔다. 남제주군 표선면에 위치한 민속마을에 갔다. 성읍은 오백년의 긴 세월동안 문명을 멀리하여 제주섬의 독특한 풍물과 옛 마을 본래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해온 향토색 짙은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한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을 청년 중 한 명이 우리들을 안내했다. 감물을 들인 한복을 입었는데 오래되어서 색깔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한 민가에 들어갈 때 정낭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대문이 필요 없던 제주에는 우마의 출입을 막거나 사람이 있고 없음을 알려주는 구실을 하는 정낭을 집 입구에 걸쳐놓았었다고 한다. 정낭은 정주목이나 정주석을 양쪽에 세워 걸치도록 하는 통나무로 세 개를 걸쳐놓으면 주인이 멀리 출타중인 것을 나타내 주고, 두 개를 걸치면 어른은 없으나 아이들이 근처에 놀고 있다는 표시이며, 하나를 걸치면 잠시 이웃이나 부근에 갔다는 뜻으로 이 고장 미풍양속의 유산이라고 하는데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심심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마을은 유형, 무형의 많은 문화유산이 집단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옛 마을 형태의 민속 경관이 잘 유지되어 있어 중요민속자료 제 188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고 한다. 이 성읍마을은 제주도 동부 중산간지대 마을의 특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으로서 유형의 문화 유산으로는 돌과 진흙, 초가 지붕으로 된 3백여 채의 민가군을 비롯, 향교, 정의현청이였던 일관헌, 돌하르방, 성터, 연자매, 옛 관공서 터, 옛 비석 등이 있다고 한다. 한 민가에 들렀는데 그 집은 실제 주민이 살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여름에는 교대로 한라산에 올라가서 일을 한다고 하는데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그 대상이 된다고 했다.
제주도의 중산간 지역에는 비가 올 때 지붕이나 나뭇가지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먹기도 했다고 하는데 지붕 위에 내린 빗물이 처마를 통하여 떨어지는 물을 `지신물(지샛물)`이라 하며 나무 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받은 물을 `촘받은 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나무 줄기 둘레를 띠로 엮어 밑으로 물이 흘러내리도록 줄을 만들고, 항아리(촘항)를 마련하여 물을 채워 두었는데 받아놓은 물은 몇 년씩 묵히기도 했습니다. 샘물을 길어다가 저장해 두면 여름에는 일주일이면 변질되나 빗물을 받아서 석 달 이상 묵혀두면 샘물 이상으로 맑고 물맛이 좋다고 합니다. 고인 물의 질을 알아내기 위해서 개구리를 길러 식수와 썩은 물을 구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들이 보았던 항아리에도 올챙이가 자라고 있었다.
제주 해안지역에는 지하에서 흐르던 물이 솟아나는 용출수들로 인해서 이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바닷물과 접근해서 솟아나는 용출수에서 식수를 구해 운반하는데는 물허벅이 필요한 존재였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물허벅은 운반 도중에 물이 넘치지 않도록 부리는 좁게 만들었는데 손으로 집어 올리기에도 알맞게 되어 있습니다. 둥그런 몸체가 빗살무늬로 장식되어 있으며, 불룩한 형태의 물허벅을 등에 지고 다닐 수 있도록 대를 쪼개어 평평하게 만든 받침이 깔린 물구덕에 놓고 등에 지고 다닌다고 한다. 물을 부어 넣을 때는 그 물동이를 지고 선 채로 두세 사람이 물동이를 손 하나 댐이 없이 어깨 너머로 숙여지게 해서 항아리에 부어 넣었습니다. 참고로 한반도 내륙에서는 물동이 같은 것을 보통 머리에 이고 다니지만 제주에서는 머리에 이고 다니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했다. 결혼생활을 하다가 살기 싫으면 물구럭을 깬다는 말을 들었다.
그 곳에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간 곳은 제주도에서 생산한 토산품을 파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는 말뼈가루, 동충하초, 꿀, 산수유 등을 팔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주도 한라산에서 주민들이 직접 채취한 것이라고 한다. 몇 동료들이 물건을 샀는데 전 날 서귀포에서 구입을 한 관계로 많이 구입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들은 점심식사로 돼지불고기로 하고 좁쌀막걸리로 목을 추겼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들이 제주 시내에 들어섰을 때 마침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농산물 직매장에 가려다가 교통통제에 걸려서 한참을 돌다가 겨우 진입을 할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하우스 감귤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줄 제주도 산 향수와 감귤양갱을 구입했다.
탑승 수속을 한 후 대합실의 한 판매점에 들렀는데 귤 값이 거의 두 배가되었다. 하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과일인 만큼 구입을 해서 나와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에서 김포까지 도 역시 운이 좋아서 창 밖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구름 층으로 인해서 제주에 갈 때는 볼 수 없었던 지역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맑은 날씨의 덕분이었다.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을 했고 버스에 몸을 실을 때 다음의 여행을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