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 귀의
ㅁ 귀의를 하는 이유 (p.165)
- 두려움 : 윤회고통에 대한 두려움
- 신뢰 : 한 개인의 삶에서 영적 길을 따르려는 결심은 대개 세속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서 더욱 믿을 만한 길로 전환할 때 일어납니다. 귀의는 이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 연민 : 윤회의 고통에 묶인 일체유정 각각이 언젠가 한번쯤은 내가 깊이 사랑했던 존재였으며, 나의 이기적인 감정의 요구를 들어주고자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바쳤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서 생겨납니다.
ㅁ 귀의 : 이론 (p. 169)
- "찌든 때로 얼룩진 커피 잔을 닦는다고 해 봅시다..."
. 대부분은 잔을 씻는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정말 그렇습니까? 잔을 씻고 있습니까, 아니면 잔의 얼룩을 없애고 있습니까? ... 잔과 얼룩은 각각 별개입니다. 여러분은 잔을 씻는 게 아니라 얼룩을 씻습니다. 잔을 씻는다면 잔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씻을 수 있는 것은 얼룩이지 잔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 달리 말해, 잔은 본래 깨끗했고 앞으로도 언제나 깨끗하리라는 생각을 가로막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무량겁 동안 쌓여 온 무명입니다.
- 흔히 귀의 수행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물을 때, 그 답은 "귀의자(주체)와 귀의의 대상(객체)가 하나가 될 때까지"라는 것입니다.
- 직메링빠 말씀 (p.171)
. "삼보에의 완전한 신뢰"가 상대적 귀의수행의 최종 경지이며, "여러분의 마음을 삼보 자체로 보는 것"이 궁극적 귀의수행의 최종 경지입니다.
ㅁ 귀의 : 핵심 가르침 (p.171)
- 스승으로서의 붓다(佛), 길로서의 다르마(法), 도반으로서의 승가(僧)에 귀의하는 것 또는
- 붓다로서의 스승, 다르마로서의 스승, 승가로서의 스승에 대해 완전한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 (귀의수행을 할 때) 스승을 왜 관상합니까? 그냥 석가모니 부처님 모습을 관상하고 그가 석가모니라고 믿으면 안 될까요?
. 이 질문에 대한 매우 타당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인간들은 불성이 자신들처럼 평범한 유정에게 존재한다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 스승은 우리에게 부처와 같은 분입니다.
. 스승은 우리를 꾸짖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쉴 새 없이 화나게 만들고 실망시켰으며, 부서지기 쉬운 우리의 아만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아상을 뿌리 뽑으려는 교묘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우리의 모든 피상적인 미망을 파괴함은 물론이고 그 뿌리까지 완전히 파내기 위해, 스승께서 우리의 망상을 두들겨 패고 갈기갈기 찢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하면서 귀의합니다.
- 금강승 가르침의 주목적은 청청하지 않은 견해를 청정지견으로 변형시키는 법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 결정적으로 가능한 빨리 버려야 하는 것은 "스승에 대해 우리가 품고 있는 모든 청정하지 않은 견해"입니다.
. 스승이 하품을 하고 잠을 자고 쇼핑에 지나치게 물두하거나 기이한 행위를 할 때, 지금 보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내린 해석이며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바꾸어야 하는 것임을 그 즉시 일깨우십시요.
- 견고하고 분별적인 마음을 바꾸려면 ...
. 수행할 때 여러분은 스승을 관상해야 하고, 그가 구루린뽀체나 지금강불의 형상으로 자신의 앞쪽 허공에 계신다고 상상해야 합니다. 스승을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관상하다 보면 스승에 대해 청정하지 않은 견해를 가지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동료 정도로 인식하는 습관을 지속시킬 뿐입니다. 그래서는 스승이 그 무엇과도 '비길 데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이를 수 없습니다.
ㅁ 귀의 : 수행 (p.175)
- 귀의는 진정한 귀의의 대상에게 해야 하며, 귀의 대상은 반드시 지혜와 연민, 그리고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 귀의를 함으로써 우리는 불법을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귀의 대상으로서 자질을 구족한 지혜와 연민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정말로' 존재한다고 믿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분들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 (귀의경을 관상할 때) 세부 사항에 관해 지나치게 염려하지 마십시오. 대신 구루린포체나 지금강불께서 모든 불보살들께 위요되신 채 여러분 앞에 생생하고 활기차게 살아 계신다는 확신을 일으키는 데 집중하십시요.
- "관상한다"는 것이 마음에 귀의경이라는 그림을 그리라는 말이 아님을 반드시 강조하고자 합니다. 관상이란, 이생에서 자신과 매우 가까이 있는 사람, 이를테면 어머니 같은 분을 생각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 마음에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느낌을 일으켰을 것이고, 그것이 진짜 그녀라고 완전하게 믿을 게 틀림없습니다. 귀의의 대상들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떠올려야 합니다. 따라서, 관상속에서 "스스로 느끼는 확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여러분을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만드는 사람들을 영광의 자리에 두고 관상하고 보리심을 일으키면서 그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빌어 주십시오. ... 그들에게 모든 행복을 빌어 주고 그들의 모든 고통을 자신이 떠맡기를 염원하는 데 집중하십시오. 불법을 수행하는 이들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관계가 수행하는 데 가장 풍요로운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십시오.
- 우리는 일상에서도 수행에 정진해야 합니다.
. 전화벨 소리를 들을 때 그것을 보리심을 일깨우는 신호로 사용하는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일깨워줄 수 있는 신호를 계속 바꾸어 감으로써 수행을 언제나 새롭고 생기 있게 유지해 가십시오.
- 불법수행은 "피부의 막"을 벗겨내는 일과 같습니다.
. 처음에 여러분은 선택의 여지없이 표층의 막을 벗겨 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너무 많은 혼란과 의심에 사로잡히게 되어서 수행법 그 자체가 의심스러원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의심이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의심은 '분별심'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비판적 분석이 도움이 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 만약 여러분이 오랫동안 받아들여 온 진리들이 정말로 참인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다르마가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표시일 것입니다.
. 분별을 더 잘하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 신호라 할지라도, 자신의 비판적 분석에 깊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의 막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머잖아 벗겨 내야 할 또다른 막이 생길 것입니다. 그 해결책은 또 하나의 막을 다시 벗겨 내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진전과 난관'이라는 겹겹의 막이 완전히 제거될 때 우리는 비로소 수행 길의 끝에 다다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