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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 : 1 - 8
성도로 부름 받고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해도 처음부터 믿음이 완전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년을 다녀도 믿음이 들지 않고 형식적으로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 믿음에 생기고 성도다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일흔 다섯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고향 친척을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가나안까지 와서 정착하고 살았지만 신앙적으로는 상당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아흔 아홉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너는 내 앞에서 ... 완전하라”(1)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브람이 그 동안 하나님 앞에 완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이 그동안 신앙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완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람은 25년 동안은 중생되지 못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흔 아홉이 되어서야 비로소 중생되어 성도다운 성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람도 신앙생활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보다 하나님을 염려스럽게만 했습니다. 신앙에 문제가 많았던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고쳐 바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브람이 자신의 잘못된 믿음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신앙회복을 시켜 주신 것으로 보아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중생하지 못하면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의 많은 성도들이 어정쩡한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살면서 주일이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 생활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큼의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자신도 알면서 계속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도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지만 믿음생활이 별로 자랑스럽지 못하였습니다.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곧 바로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2)라는 말씀을 믿고 벧엘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 섬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생활에 어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그 땅에 기근으로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 애굽으로 내려 갔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그와 그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그 땅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간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람의 첫 번째 실수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성도가 좋은 직장이 생긴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접고 교회를 떠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실수는 남을 속이는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갈 때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젊고 아리따운 미인이였기에 애굽 사람들이 아내를 보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 것 같아 아내를 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애굽에 도착했을 때 애굽 사람들이 아내를 보고 아리따움이 모두 놀라는 것입니다. 바로의 고관들이 아브람의 아내를 보고 바로 왕에게 보고하여 바로 왕의 아내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바로 왕으로부터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받았습니다. 바로 왕에게 아내를 주고 많은 재물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아브람으로서 엄청난 큰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에게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를 바로 왕에게 빼앗기고 그 댓가로 양과 소 몇 마리를 받았습니다. 거짓말은 한 번 하게 되면 계속하여 더 큰 어려움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고 거짓말을 한 번 한 것이 되돌릴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돕지 않았더라면 아내를 바로 왕에게 빼앗겼을 것입니다.
세 번째 아브람의 실수는 첩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이것 역시 아브람으로서 작은 실수가 아닙니다. 물론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10년을 기다려도 아들을 낳지 못한 것입니다. 아브람보다 아내 사래가 아들을 낳지 못하니까 더 답답했던가 봅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17:2)고 하니까 아내의 말을 듣고 사래의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람이나 사래의 실수가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라는 말입니다. 기다리다 지쳐서 했는 말이라고 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생각 한 것입니다. 이것은 큰 실수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엉뚱한 결과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결과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대적을 낳게 한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형편에 따라 해석하므로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드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브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고 약 25년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므로 해서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떠나신 것은 아니였습니다. 아브람이 실수하고 잘못하여도 언제나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에 빠져들었을 땐 하나님께서 구해 주셨습니다. 마치 못난 아들이 다니면서 재를 저지르면 따라 다니며 물어주고 변상하는 아버지와 같습니다. 아브람은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어려움에 빠져들면 하나님이 구해 주셨습니다.
가나안에 기근으로 애굽에 갔을 때도 하나님은 아브람을 다시 가나안으로 되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아내를 바로 왕에게 빼앗겼을 때도 하나님은 바로 왕과 그 집에 재앙을 내림으로 아내를 되돌려 찾았습니다.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음으로 가정에 불화가 일어났지만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게 하여 가정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아브람은 일을 저지르고 하나님을 따라 다니며 일을 정리하고 어려움에서 빼 내주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할 때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타이르듯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14:14,15)고 말씀하심으로 가나안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환상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셔서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브람은 “주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나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15:1,2)라고 반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 아브람은 하나님과 상당한 말다툼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하시고 밖으로 이끌고 나가 하늘의 뭇 별들을 보게 하고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라고 말씀하시며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 말씀을 믿을 수가 없어 ‘내가 무엇으로 알리이까’(15:8)라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정도면 아브람의 신앙상태가 어느 정도였던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시고 믿을 수 있도록 가르치시기도 하셨지만 아브람은 감동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아내의 말을 듣고 하갈과 동침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상태는 한 마디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기 중심이였습니다.
이러한 상태로 계속 내 버려두지 않으시고 이제 하나님은 친히 아브람을 찾아오셨습니다. 그 때가 아브람의 나이 구십구 세였습니다. 아브람을 하나님이 찾아오셨을 때 아브람의 가정은 어떠했습니까? 한 마디로 가장 불행한 때였습니다. 하갈이 잉태되었다는 것을 알고 종이 주인을 멸시하고 학대하는 일로 가정이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그러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가정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하갈을 내 쫓게 하여 하갈이 도망하여 나간 후였습니다. 마치 태풍이 쓸고 지나간 후처럼 두 늙은이만 남아 허전함과 허무함을 느끼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1)라는 말씀에 하나님이 어떤 모양으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난날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르시되”(12:1, 14:14)와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15:1)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나타나서”(12:7, 17:1)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그네로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시기(18:2)도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아브람에게 가르치셨던 것과 환상중에 가르쳤던 것과 다르게 친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의미는 지난날 보다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타나셨다는 것은 어쩌면 천사나 사람으로 변하여 친히 나타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친히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다”(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8:1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브람이 완전하여 질 때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습니다. 타락한 아브람이 완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을 때 축복하시겠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동안 아브람의 잘못된 것에 대해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과거가 어떠했던 그것은 전혀 관여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아브람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알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아주 부드럽게라도 ‘아브람아 그때 그런 것은 하지 말아야지’, ‘왜 그렇게 하였느냐’ 이런 정도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지난날에 잘못했던 것에 대해 전혀 묻거나 책망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했든, 전혀 묻지 않습니다. 가볍게 책망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동안 아브람이 실수한 것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 한 것도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도 아브람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한 것에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었더라면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라는 말씀입니다. 과거야 어떻게 살았던 이제부터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선민답게 완전하게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다운 성도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아브람에게 맺었던 언약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 열국의 아비라고 사래를 열국의 어미라는 ‘사라’로 새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부터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중생한 것입니다.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제 지난날에 그 모든 잘못되었던 것은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믿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렇게 새롭게 거듭났을 때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16),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출산하리요”(17)라고 말하며 믿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제 후로는 아브라함은 전보다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는 말씀대로 완전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큰 민족을 이루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믿음 없었던 지난날의 잘못을 하나님은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중생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성도다운 성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행하여 성도다운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될 수 없다는 것도 해 낼 수 있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전능하신 능력으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