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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Achille Debussy(1862 생 제르맹 앙 레-1918 파리)
프랑스의 작곡가.
별로 유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마누엘 아실 드뷔시 Manuel Achille D.와 어머니 빅토린 조제핀 소피 마누리 VictorineJose´phine Sophie Manoury는 생 제르맹 앙 레의 팽가 38번지에서 도기상을 하고 있었다. 대부인 아실 아로자 Achille Arosa는 은행가이면서 미술 수집가이기도 했는데 칸느에 살고 있었다. 몇 번인가 그곳에 묵었을 때 소년 드뷔시는 체루티 Cerrutti라는 이름의 남자로부터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또한 처음으로 그 시대의 그림을 보게 되었고(아로자는 코로, 용킨트 및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었다), 또한 바다와 그 변화가 많은 색채를 알게 된 것도 그곳에서였다.
드뷔시의 부모는 그에게 정식의 일반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그의 음악적 재능을 참다운 의미에서 발견하고 가꾸어 준 것에 대한 공적은 쇼팽의 제자인 모테 드 플뢰르빌 Maut de Fleureville 부인에게 돌려야 한다. 그녀의 교육은 아주 훌륭하였다. 1872년 말에 드뷔시는 파리 음악원의 입학이 인정되어 마르몽텔과 라비냐크의 클래스에 들어갔다. 그가 여기서 보낸 12년간은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져 있지만 견실한 전문교육을 받았다.
1879년 마르몽텔은 드뷔시와 사이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메크 Nadejda von Meck 부인에게 추천했다. 러시아인 그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차이코프스키를 한번도 만자지 않는 후원자였다. 드비시는 그녀의 자녀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동시에 처음 가져온 악보를 보고 잘 칠 수 있는 초견 피아니스트의 가정 교사로 임용되었다. 그는 폰 메크 부인을 따라 러시아에 세 차례나 체류했고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도 발길을 뻗쳤다. 이들 여행은 드뷔시에게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교양을 쌓았고 음악가들을 만나 위대한 작품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그동안 드뷔시는 파리 음악원에서 기로의 제자가 되었다. 기로의 지도로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적 안목과 작곡 기법을 세련시켜 나갔다. 그는 드뷔시에게는 정말 적합한 스승이었으며, 그는 이 스승과 참다운 우정으로 맺어졌다. 1883년 로마 대상 콩쿠르의 참가가 인정되었으나 칸타타 <투우사 Le Gladiateur>(악보 분실)로 2등상을 얻는 데 그쳤다. 드뷔시는 이듬해 <방탕한 아들>로 수상한다. 수상이 알려졌을 때 "남들이 믿건 말건 나는 모든 기쁨이 시들어 버렸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정해주는 주제가 필연적으로 가져다주는 번잡과 혼란스러움을 나는 분명히 경험하였다. 게다가 이제 부터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다."라고 말하였다. 이 상을 수상함으로서 그는 로마에 일년간 머물러야 했다. 그는 로마 체류를 고통스럽게 느꼈다.
모색의 시대
로마의 메디치 장에서 묵을 때 인습적이고 딱딱한 그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 드뷔시는 로마 체류를 단축시키고, 1887년에 파리의 런던가 42번지에 최종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초라한 수입으로 두 사람의 생활을 꾸려온 개비라는 애칭을 가진 아름다운 가브리엘 뒤퐁 Gabrielle Dupont을 사랑하였다. 이 당시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유명한 <화요회>에 참가하여 말라르메를 알게 되고 그와 친하게 된다. 1888년에는 첫 바이로이트 여행에 나선다. 이듬해인 1889년에도 다시 바이로이트를 찾아가서 <열광적인 바그너 주의자>가 되어 돌아온다. 후에 그는 이때 받은 감동 만큼 격렬하게 바그너를 부인하게 된다. 1889년에는 또 만국 박람회에서 극동의 음악에 접한다. 같은 해 그는 생상이 러시아에서 가지고 돌아온 보리스 고두노프의 악보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이 그에게 영향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그의 음악이 드비시의 마음에 호응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적 생활의 변천
1894년 12월 22일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앙코르를 받기도 했다). 그것은 모색의 시대의 끝남을 알리는 동시에 심적 고통과 논쟁으로 가득찬 공적 생활의 시작의 시작이었다. 공적생활은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상드>의 초연으로 절정을 맞이한다. 마테를링크의 희곡의 발견과 1902년에 물의를 빚은 이 오페라의 초연 사이의 10년간 많은 걸작을 쓴다. (피에르 루이스 Pierre Lou?ys의 시에 의한 <빌리티스의 3개의 노래>[1897-98], <녹턴>[1897-99], <피아노를 위하여> [1896-1901] 등). 이 동안은 또한 물질적인 면으로나 여자관계에서 어려움이 많은 시기였다. 양복점에서 일하는 아가씨 개비(부부 싸음으로 권총 자살을 시도한다)의 친구 릴리 텍시에 Lily Texier가 1899년 10월 19일 드뷔시의 아내가 되었다. 녹턴은 1900년 12월 9일 콩세르 라무뢰에서 연주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드뷔시는 주목받게 되어 고급 카페에 드나들고 레옹 도데 Le?on Daudet, 레이날도 안 툴레 PaulJean Toulet,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등과도 교제하게 되었다. 르뷔 블랑슈 Revue blanche지에의 기고로 경제적 여건도 다소 개선되었다. 드뷔시가 쓴 기사를 모은 반대자 크로슈씨는 그의 절대적인 비순응주의, 정열, 가차없는 기질의 증언이기도 하다. 그동안 펠레아스는 오페라 코미크 극장의 상연 목록으로 받아들여져 1902년에 상연되었다. 이 때 작곡가와 마테를링크의 유명한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마테를링크는 멜리상드 역을 자기의 아내이며 가수인 조르제트 르블랑 Georgette Leblanc에게 맡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드뷔시는 스코틀랜드 태생의 나이어린 메어리 가든의 노래를 듣고 그녀에게 바로 이 역을 주어 버렸던 것이다. 드비시는 "영혼의 밑바닥에서 들은 것과 똑같은 감미로운 목소리였다"고 말했다. 마테를링크는 작품의 상연 허가를 취하하고 법원으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이 소송에서는 드뷔시가 이겼다. 작품은 마테를링크와 그 친구들이 조직한 음모단이 빚어내는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1902년 4월 30일에 겨우 상연되었다. 막간에는 드뷔시 지지자와 적대자 간에 싸움이 벌어져 경찰이 개입할 정도였다. 끝까지 작품을 상연할 수 있었던 것은 지휘자 메사제의 침착하고 냉정한 태도의 덕분이었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전체적인 이해 부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두 번째의 상연은 대성공을 거두어 펠레아스는 3개월 동안 대만원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후 드뷔시는 유명한 작곡가가 되었다.
창작의 시대
1903년에 드뷔시는 아름답고 총명하며 음악가이기도 한 여인 엠마 바르다크 Emma Bardac(구성 무와즈 Moyse)와 알게 된다. 그는 1904년 아내를 버리고 푸르빌에서 그녀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날 개비가 그랬던 것처럼 릴리가 자살을 꾀하자 추문이 퍼지고 신문과 대중은 버려진 아내의 편을 들었다. 드뷔시는 세상과 교제를 끊고 저지 섬, 이어 디에프로 피하여 거기서 바다를 완성했다. 이중의 이혼 후 드뷔시와 엠마는 1905년에 결혼했다. 그들은 부아 드 불로뉴 광장에 멋진 저택을 마련하고 거기서 1905년 10월 30일 바다를 초연했으며, 그 2주 후 딸 클로드 엠마 ClaudEmma(애칭 슈슈)가 태어났다. 이후 드뷔시는 쾌적하고 은둔적인, 일에만 열중하는 생활을 보내는데 그의 명성은 온 세계에 퍼지고 펠레아스는 브뤼셀, 베를린, 로마, 밀라노 및 뉴욕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902년부터 1908년 사이에 드뷔시는 피아노 작품(프랑스 음악에서는 포레 이후 가장 방대한) 중에서도 주요한 작품을 작곡했다. 판화(1903), 마스크와 <기쁨의 섬>(1904), <영상 제1집>과 <제2집>(1905-08), 어린이 세계(1906-08) 등이 그것이다. 중요한 성악작품도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프랑스의 3개의 노래>[1904], <화려한 잔치>[1904], <두 연인의 산책길>[완성 1910] 등).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그밖에도 오케스트라를 위한 영상(190712)이 있고 이 곡 중 지그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카플레 A. Caplet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에드가 앨런 포우 Edgar Allan Poe의 원작에 의한 2개의 오페라 <종루의 악마> Le Diable dans le beffroi와 <어셔가의 붕괴> La Chute de la maison Usher에 관한 계획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 후자의 완성 부분 및 최근 후안 알렌데 블린 Juan Allende Blin에 의해서 완성된 초고에는 오페라의 혁신면에서 펠레아스보다 더 앞선 창조적 의도가 나타나 있다.
1910년에 드뷔시는 디아길레프로부터 다눈치오 Gabriele D'Annunzio와의 협력을 권고받았다. 그의 요청은 이다 루빈스타인 Ida Rubinstein을 주인공으로 하는, 성 세바스티앙을 주제로 한 작품을 쓰라는 것이었다. 성 세바스티앙의 순교는 3개월 뒤 완성되어 러시아 발레단에 의해 1911년 3월 샤틀레 극장에서 상연되었으나 불확실한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디아길레프는 또 드뷔시에게 발레음악 유희의 작곡을 의뢰했는데 이 작품은 니진스키 Vatslav Nizhinskii의 안무로 1913년 5월 15일 봄의 제전의 떠들썩한 초연 2주일 전에 상연되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작품이 무관심과 망각 속으로 밀려나 제2차 세계대전 후까지 돌보아지지 않은 것은 이 스트라빈스키의 사건 때문도, 3인이 벌이는 은근한 에로틱 유희 장면 때문도 아니다.
1914년의 전쟁은 드뷔시의 마음에 격한 애국적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위험한 인물>이라고까지 부른 쇤베르크에 대한 적대감의 원인의 하나를 이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기에 그는 자기의 작품에 <클로드 드뷔시, 프랑스의 음악가>라고 서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첼로와 피아노, 플루트와 비올라와 하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소나타(191517)에 그렇게 적었다. 1915년에는 피아노를 위한 12개의 연습곡과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백과 흑으로와 같은 마지막 걸작이 만들어졌다. 1917년 드뷔시는 이미 중병에 걸려 있었으나 가스통 풀레 Gaston Poulet와의 공연으로 소나타 제3번을 연주했다. 이것이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낸 마지막 기회였다.
근대성과 대담성
최근 드뷔시의 작품의 근대성은 더욱 깊이 연구되고 있다. 그는 음악적 현상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의 관계를 재고찰하고 그것들 사이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계층적 질서를 만들었으며, 개개의 작품을 위하여 전혀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 그의 음악어법은 당시 성했던 전통적인 분석적 접근 방법의 완고함을 고발하고 있다. 그의 음악어법은 이러한 방법이나 기성의 장르, 형식의 규범적 범주, 혹은 기성의 명백한 형식은 물론이고 계열의 법칙에서 생기는 역사의 여러 범주로 환원하기가 어렵다. 할 수 없다. 그 결과 드뷔시는 직접적인 선행자나 후계자 없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의 선구자는 프랑크가 아니라 몬테베르디이며, 그의 음악을 잇는 사람들은 아류들이 아니라 바레즈, 메시앙, 불레즈 등이다. 그의 궤적은 두드러진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목신>에서 드뷔시는 단번에, 그리고 충분히 자신의 음악적 세계를 확립한다. 그 대담성 때문에 오랫동안 정당한 이해를 받지 못했던 <연습곡>이나 <백과 흑으로> 같은 만년의 작품은 죽기 직전까지 환영을 보며 지낸 작곡자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궤적은 고독이며, 그의 동시대인인 예술가는 문학(말라르메)과 그림(睡蓮) (모네)에서 밖에는 찾아 볼 수 없다.
드뷔시가 그의 음악을 형성하기 위해 받은 영향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드뷔시가 과연 러시아에 체류했을 때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을 들었다는 사실을 확인되기 어렵고, 파리에서 읽은 보리스 고두노프의 악보가 그에게 불러일으킨 반향에 대해서 그는 거의 말한 바가 없다. 아마도 그는 무소르그스키의 <기묘하고 야만적인 예술> 속에서 화성의 독립성, 즉 변하기 쉽고 순간적인 기능을 가진 자립한 화음이란 개념의 싹을 찾아내고, 후에 그것들을 자신의 음악어법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삼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선율면에서는 반대로 분명히 그 두 음악가의 성악적 어법은 모두 <선율적 레치타티보>를 출발점으로 삼고는 있으나 그 구상면에서는 서로 다르다. 무소르그스키의 레치타티보는 슬라브적 운율법을 따르고 펠레아스의 레치타티보에 비교해 볼 때 노래에 더 가까운 것이다.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해도 이 러시아 음악가가 한창 자라고 있던 젊은 드뷔시의 감성에 적어도 계시를 주는 역할을 한 것은 틀림이 없다. 한편, 바그너와의 관계로 말하면 문제는 더욱 애매하다. 드뷔시가 무소르그스키의 음악보다 후에 바그너의 음악에 대하여 가진 관심은 화성적, 주제적, 연극적 측면이다. 화성의 영역에서는 매혹되면서도 동시에 거부하는 현상이 보이는데, 그것은 특히 트리스탄의 영향을 받은 보들레르의 5개의 시에서 두드러진다. 주제의 영역에서는 바그너와의 만남의 흔적이 분명하며 라이트모티브의 원리에 관한 드뷔시의 의도적인 공격성 자체가 그 증거가 된다. 드뷔시 자신의 다음의 말이 단서가될 것이다. "그 이후 바그너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그너를 넘어서는 것을 추구해야 했다." 이 말은 역사상 두 음악가의 서로 다른 위치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드뷔시와 사티의 만남은 그보다 훨씬 미미한 것이며 거의 삽화적인 것이다. 아르쾨이유 태생의 이 음악가가 아무리 주장한들, 오늘날에는 그가 준 영향은 드뷔시의 음악에서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에 비하여 극동의 여러 음악에 접한 것은 더 주목할 만한 일이며 이러한 음악을 1889년에 듣게 된 드뷔시는 <목신>에 이미 명확하게 나타나 있는, 리듬과 음색에 대한 개념(리듬의 넘칠 것 같은 풍요로움, 음색 구조상의 우위성)에서 확신을 얻었다.
드뷔시에 있어서의 음악적 시간
화성면에서 드뷔시는 단번에 혁신자가 된다. 그는 쇤베르크처럼 의식적으로 조성을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집합체의 울림 그 자체의 기능에 의하여 조성적 기능이 저절로 그 힘을 잃어 버리는데 맡기고 있다. 그는 화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화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디로 가는가? 그것을 아는 것은 절대로 필요한 일인가? 들으시오, 그것으로 충분하오." 그의 만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조성적 기능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단순한 잔존이며 차츰 불명확해져 가는 장(場)에 준거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다. 아직 파리 음악원에 있을 때 그는 기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음조를 흐리게 함으로써 언제나 길을 돌아가지 않고도 바라는 곳으로 갈 수 있고 좋아하는 문으로 드나들 수 있다." <확장된> 화성은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조성 특유의 성격을 강화하기를 그만두고 울림의 덩어리만을 표현할 뿐이다. 그리고 이들 음벽돌의 기능은 음색의 영역으로 옮겨가 옛 범주에서 이들 덩어리가 지각되고 유효하게 설명되는 것이다. 음벽돌에 포함되는 음의 강도는 음높이와 마찬가지로 그 음벽돌의 전체적인 성격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드뷔시가 그토록 정확하게 셈여림과 뉘앙스를 지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즉, 그는 표현적인 역할과 마찬가지로 음색의 구성에서의 그들의 기능을 배려하고 있다. 드뷔시의 음악어법 중에서 음색은 가장 중요한 차원의 하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음색이 울림 현상에서의 강도와 리듬 분배의 기능이건 혹은 여러 가지 악기의 치밀하고 선례가 없는 편성의 결과이건, 색채는 너무나 풍부하고 더구나 변화에 차있으며 단순한 치장, 혹은 음악구조의 부수적인 성질이 아니라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전개를 맡을 수 있다. 정당한 권리를 가진 구성상의 일차원인 것이다. 드뷔시에게 있어서 지속의 종류와 구조는 그 당시까지의 모든 유럽 음악에 유래가 없는 풍부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세로줄의 박절 기능은 무너져 버리려 하고 있다. 지속은 다듬어진 박자에 담겨질 수 없는 것이 되어 자유롭게 발전하고 증식한다. 리듬의 <기본 단위>는 여기서는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다양하게 창조되며, 대칭성의 모든 구속을 받지 않고 구조 그 자체와 혼합된다. 이러한 생각은 드뷔시의 작품에 매우 일찍부터 나타나 유희와 연습곡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이 리듬의 유연성에 불규칙 분할, 이른바 불합리한 음가(3잇단음표, 5잇단음표)와 템포의 무한한 변화가 끼어 들어 드뷔시에게 있어서의 음악적 시간의 본질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현대에 있어서의 리듬의 탐구는 거기에서 직접 힌트를 얻고 있다.
독자적 어법의 확립
베를렌느의 시에 의한 <화려한 잔치> 제1집(1881-82)을 드뷔시의 독자적 작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가곡 중에 '만돌린'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곡에는 화성면에서 드뷔시적 어법의 싹이 나타나 있다(화음의 병행진행, 음정의 중첩). 로세티 Dante Gabriel Rossetti의 시에 의한 <선택된 소녀>(1887-88)는 로마 시대의 가장 좋은 작품이다. 이 곡에는 성부가 빚어내는 섬세하고도 단단한 선율의 선, 겹치고 포개어진 화성, 파스텔화와 같은 색조를 띤 관현악의 색채와 함께 레치타티보라기보다는 차라리 노래와 같은 낭창의 몇 가지 수법이 나타나며 펠레아스를 예고하고 있다. 베를렌느의 시에 곡을 붙인 <잊혀진 노래>(1887-88)에는 드뷔시의 개성이 강하게 나타나 있지만, <보들레르의 5개의 시>에는 바그너에 대한 집착이 역설적으로 두드러진다. 그리고 <분수>에서 그 정점에 이르는 바그너에 대한 투쟁에서 드뷔시 작품의 긴장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현악4중주>(1893)에서 드뷔시는 이 영향에서 벗어나지만 이 작품에서 보게 되는 것은 오히려 프랑크에 대한 무의식적 기억이다. 여기서 더욱 중요하고 독자적인 것은 능변이며 변화에 찬 드뷔시의 음조이고, 이것이 현악4중주의 형식적 측면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또 하나의 중심이 되는 주제가 고전적인 4개의 악장 전체를 통하여 나타나 통일성을 주고 있다.
드뷔시의 최초의 걸작은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1892-94)이다. 그에게 악상을 준 말라르메처럼 드뷔시는 이 작품에서 음악에 있어서 현대적 시인으로서의 모습, 고유의 음률, 구문(構文), 수사, 고유 형식의 창조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평적 혹은 수직적 측면에서 고찰된 화성의 끊임없는 변동, 풍부한 리듬, 악구의 부드럽고 자유로운 구분 등에 의하여 단숨에 음악에서의 새로운 표현 방법을 창조하였다. 관현악법은 비길 데 없는 세련되고 절묘하다. 형식은 완만한 전통적 도식(제시부 발전부 재현부 코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실제로 곡을 들으면 하나의 연속성이 느껴질 뿐이다. 주제의 재현은 반복으로서가 아니라 환기, 변형된 회상으로 이루어진다. 폴 뒤카스는 이 작품이 초연된 이튿날 관념이 형식을 낳는다고 썼는데, 이 말에는 드뷔시 작품의 특징 중 하나가 요약되어 있다.
피에르 루이스의 텍스트를 따른 3개의 <빌리티스의 노래>(1897-98)는 <판의 피리 La Flute de Pan>, <머리카락 La Chevelure>, <나이아드의 무덤 Le Tombeau des naiades> 등 3개의 가곡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노래의 선율선에는 레치타티보와 순수한 노래 사이에 매우 교묘한 솜씨의 유희가 모습을 나타내어 운율법의 지배와 순수한 가곡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펠레아스의 작품에 이어지고 있다. 후에 드뷔시는 이들 시로써 또 하나의 부수음악을 작곡했는데, 1913년에는 그것을 피아노 연탄곡 6개의 고대의 에피그라프(후에 이 작품은 에르네스트 앙세르메에 의하여 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편곡되었다)로 개작하였다. 3곡의 녹턴(1897-99)은 휘슬러의 그림에서 악상을 얻은 것으로 <구름>, <축제>, <사이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의 조곡에는 대 오케스트라에 <a>(전체가 노래함)의 보칼리즈에 의한 여성합창이 덧붙여져 있다. 형식, 화성, 색채는 눈부신 균질성과 깊은 독창성을 가진 전체를 이루고 있으며, <구름>에서 무소르그스키적 여운을 울리고 있을 때조차도 그것이 순수하게 드뷔시적인 수법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에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이 3개의 제목은 하나의 프로그램을 따라 나열된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음악과 그림의 보기드문 접근이며, 그것에 대하여 드뷔시 자신은 하나의 중요한 텍스트, 아마도 연주회의 소개를 위해서 씌어진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녹턴이라는 제목은 여기서는 보다 일반적이고 형해(形骸)와 같은 의미를 띠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녹턴>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이 말이 포함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인상과 독특한 빛의 섬세함이 문제인 것이다. <구름>은 하늘의 불변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거기에는 희미한 흰 빛을 띤 잿빛의 단말마 속에서 종식하는 구름의 느리고 우울한 걸음걸이가 있다. <축제>는 움직임과 대기의 춤추는 듯한 리듬이고 갑작스런 빛의 작렬, ... 전체의 리듬에 끼어드는 빛의 입자이다." 인상, 빛의 입자, 전체의 리듬 등은 조형적인 것이건 음악적인 것이건 모두 한 시대의 가장 새로운 창조를 푸는 열쇠가 되는 말들이다.
펠레아스와 멜리상드:모델도 없고, 참다운 의미에서의 후계자도 없는 작품
펠레아스와 멜리상드는 드뷔시의 다른 모든 작품이 음악사 속에서 고립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대 오페라의 역사 속에서 고립된 작품이다. 작곡자는 여기에서 선율적 레치타티보를 사용하고 있다. 드뷔시의 레치타티보는 가창보다도 옛 시대의 레치타티보(르네상스, 바로크)에 가깝고, 가장 높은 인도자인 말에 의거하고 있다. "음악극 속에서는 너무 노래를 많이 하고 있다"고 드뷔시는 1889년 이후로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 기로에게 말한 적이 있다. "필요하다면 노래도 불러야 하지만 감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표현상의 에너지에도 변화를 주어야 한다. 때로는 단색으로, 그리고 그리자이유(회색의 짙고 얕음)로 만족할 필요도 있다.... 극의 진행을 늦추는 것이 있어서는안 된다. 말이 요구하지 않는 모든 음악적 전개는 잘못이다...." 여기에 <펠레아스>의 미학이 모두 정의되고 있다.
드뷔시는 마테를링크의 텍스트를 고치지 않았다. 그가 여기서 몇 개의 장면을 삭제한 것은 결국 전통적인 극의 전개를 개정하기에는 이르지 못했다. 여기서는 그 목적을 위해서 선택된 더구나 잘 선택된, 희곡의 대사가 충분히 '음악화' 된 것을 볼 수 있다. 이 희곡은 드뷔시의 미학과 창작의 주제에 합치되고 있으며 두루 존재하는 물과 머리칼과 같은 그에게 친숙한 여러 상징까지 제공한다. 이 극은 5막으로 되어 있고, 그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언제인지도 모르고 어딘지도 모르는 어떤 나라에서 아르켈 왕의 손자 골로는 숲속에서 길을 잃은 멜리상드를 발견한다. "나는 그녀의 나이도 모르고,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윽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그러나 그의 동생 펠레아스가 멜리상드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도 이에 응한다. 골로는 질투의 장면에서 펠레아스를 살해하고 멜리상드를 탓하며 '진실'을 알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멜리상드도 죽어 그녀와 함께 그 비밀도 묻히고 만다.
<펠레아스>의 음악적 특징은 막(혹은 장)과 등장인물이라는 두 가지 면에서 나타나 있다. 등장인물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브에 가깝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주제의 유형으로 성격지워져 있다. 이 주제는 한없이 불안정하다. 그리고 이야기는 덧없는 날개짓에 흔들리는 맥락 속에 용해된다. 그러나 막(幕) 혹은 장(場)에서의 음악적 특징은 명확하고 강하며 의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작품의 극적 힘의 본질적 요인의 하나이다. 고유의 음악적 성질, 관현악의 색채, 화성, 템포에 의해 각각의 막은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이 작품은 극적의 생동력 없는 상징주의와 음악의 레치타티보의 원리만이 그 특징으로서 강조되었다. 작품이 그 양면에서 잘 이해되고 해석되게 된 오늘날, 우리는 음악 속에서야말로 그 극적 힘의 참다운 유일무이한 원천을 찾아내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펠레아스>를 다시없는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음악적 구조-성악적인 그리고 기악적인-가 충분히 그 책임을 다하여 무대를 받쳐주기 때문이다.
다른 걸작들
1903년에 착수하여 1905년에 완성한 <바다>는 드뷔시의 걸작의 하나이다. 이 교향시는 <바다 위에서 새벽에서 정오까지 De l'aube a midi sur la mer>, <파도의 장난 Jeux de vagues>, <바람과 바다의 대화 Dialogue du vent et de la mer>의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들 제목은 역시 광경에 의거하고 있지만 묘사적 의도에서는 동떨어져 있다. 제목이 음악을 설명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제1곡은 전진, 즉 음악적 조명의 점진적 증가를 표출하고 있으며, 변화가 많고 서서히 긴장이 더해가는 여러 관계 속에 놓인 어법의 모든 요소음색, 리듬, 강도, 화음 연결가 한 덩어리가 되어 그 전진에 협력하고 있다. 제2곡 물결의 희롱은 모든 형식상의 표시를 없애버렸다. 제목은 명확하다. 열려진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모든 긴장으로부터 풀려난 어떤 시간의 영역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음색은 본원적인 차원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음악적 시간의 구조화와 진전을 맡고 있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옮겨지는 관현악의 색채인 것이다. 이 곡은 작곡가의 가장 대담한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힌다. 제3곡은 하나의 주제에 지배되고 있다. 그러면서 고전적인 전개로부터는 떨어져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주제가 소재로서가 아니라 확고부동한 기준으로서 파악되고 있으며 끊임없는 대립으로 가득 찬 세계가 그것과의 관련에서 정리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바다는 드뷔시의 가장 환영적(幻影的)인 작품일 것이다. 세평이 어떻든 몇 가지 점에서 유희보다도 더욱 앞선 작품이다. 드뷔시가 그의 천재성 고유의 특징인 달아나버리는 순간의 시학(詩學)을 그 정점으로까지 높이는 것은 이 바다에 있어서이다.
영상(제3집, 190512)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드뷔시의 의도로는 지그를 스코틀랜드에, 봄의 론도를 프랑스에, 이베리아(3곡)를 스페인에 각각 바치고 있다. 이베리아를 제외하면 민속적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봄의 론도 속의 우리는 이제 숲에 가지 않는다 Nous n'irons plus au bois라는 샹송도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고 있다). 물결의 희롱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관현악의 색채는 더없이 높은 형성 요소인데, 특히 이베리아 중 제2곡,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할 밤의 향기 Les Parfums de la nuit에서 현저하다. 색채 구조의 밀접한 얽힘에 의한 전개는 역설적으로 음악적 시간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빚어내고 있다. 여기에 드뷔시 음악의 가장 숨겨진 특징의 하나가 있다. 그리고 작곡가가 이 희미한 빛의 세계에서 나와 대조로 가득 찬 제3곡의 격렬한 리듬으로 들어가는 것은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려한 잔치 제2집은 1904년에 작곡되었는데 베를렌의 시에 바탕을 둔 소박한 사람들, 목신(牧神), 감상적인 대화를 포함하고 있다. 하프와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성스러운 춤곡과 세속의 춤곡도 마찬가지로 1904년의 작품이다. 색소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190111)는 이 악기를 연주하는 어느 미국 여성으로부터 의뢰받은 것인데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드뷔시는 의뢰를 받아 제작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드뷔시의 초고를 바탕으로 로제 뒤카스가 이 작품을 보필 및 관현악화하였다. 프랑스의 3개의 노래도 성스러운 춤곡과 세속의 춤곡과 같은 무렵의 작품이며 비슷하게 고풍스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후 연작가곡 두 연인의 산책길(190410)이 작곡되었는데 트리스탄 레르미트 Tristan L'Hermite의 시에 의한 정교한 걸작이지만 거의 연주되는 일이 없다. 이 작품을 펠레아스의 후주곡으로 볼 수도 있다. 프랑스어의 운율법에 대한 놀라운 감각을 살린 텍스트에의 해석력을 발휘하여 드뷔시는 거기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움을 지닌 순수한 노래를 만들었다.
피아노의 세계
드뷔시의 피아노 작품은 그 대부분이 1903년 이후에 만들어져 매우 혁신적인 구상을 가지고 있다. 젊었을 때의 작품 가운데는 2개의 아라베스크(188891), 유명한 달빛 Clair de lune을 포함하고 있는 베르가마스크 모음곡(18901905), 피아노를 위하여[전주곡, 사라방드, 토카타](18961901) 등을 들 수 있다. 판화[탑, 그라나다의 저녁, 비오는 정원](1903)에서 건반은 상상력의 어떠한 작은 억양에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드뷔시는 회화적 혹은 환기적인 의도를 초월하여 기쁨의 섬(1904)에 의해 시작되는 새로운 음향적 세계로 그를 이끄는 피아노 서법에는 아직 완전히 이르지 않고 있었다. 기쁨의 섬에는 화음상의 7도와 11도의 유희, 미세한 입자로 부서진 물질의 무지개빛 반짝임, 빛무리(光暈)와 같은 것이 표현되어 있다. 물에 비치는 그림자, 라모를 찬양하여, 움직임으로 된 피아노를 위한 영상 제1집(1905)은 악음(樂音) note보다는 오히려 음 그 자체 sons에 의한 서법이라는 개념에 더욱 밀접하게 의거하고 있다. 여기서는 음색이 가장 중요한 소재이며, 주제적 전개는 그 중요성 여하에 상관없이 음색과 떼어 놓을 수 없다. 물에 비치는 그림자의 유동성은 시간에의 하모니와 반향의 매우 미세하고 율동적인 미립자화에 의해 얻어지고 있다. 영상 제2집(1908) 잎새를 스치는 종소리,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 금빛 고기에서는 확실히 울림의 서법이 더욱 교묘하고 철저하다. 음색이 그 변용에 의하여 여러 형식의 전체를 이어주며, 복잡한 화성, 강도, 리듬은 그것의 동인이고, 특히 최초의 곡에서 그것들은 겹쳐지는 몇 개의 층이 되어 늘어서고 개별화된 구성분자가 된다. 수직적인 음의 집적(集積)에서 서로 다른 강도의 중첩에 관해서는 제2곡의 마지막 화음이 그 특징적인 예이고 슈톡하우젠의 서법을 예고하고 있다. 제3곡 금빛 고기는 이들의 혁신에 대한 모든 것을 멋지게 통합한 것이다.
어린이 세계(190608)는 6개의 소품으로 되어 있다. 이 모음곡에 의해서 드뷔시는 성격적 소품으로 회기한다. 여기서 보게 되는 것은 탐구나 편안함, 회화적 추상성의 한계에서의 모험이라기보다는 회화적 환기이고 요컨대 애정이 가득한 몸짓이다. 이 작품은 딸 슈슈에게 증정되었다. 피아노 서법은 그때까지의 작품만큼은 추진되지 않았지만 더 적은 수법에 의해서 같은 정도의 효과를 내고 있다. 대담한 음향적 탐구가 순화되어 있는 영상과 어린이 세계의 두 개의 서로 다른 양식 사이에서 전주곡집(제1권 190910, 제2권 191012)은 그야말로 중용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악상은 매우 풍부한 피아노의 수법으로 환기되어 이 작품에 성격적 작품으로서의 성격을 주고 있다. 제목은 곡의 마지막에 제시되어 환기시키려 하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도 음악이 제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며 그 반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각 전주곡의 주제는 일화적이었다가 아니었다가 하는 등 제각기 다르다. 이 구상파 회화와 비구상파 회화 사이의 유희에서야말로 착상의 독창성과 그 실현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제1권에서 돛, 들을 지나는 바람, 혹은 서풍이 본 것 등의 전주곡은 다름아닌 색채에 관한 시도이며 구상적 요소가 총칭으로서 거기에 나타나 있다. 한편 중단된 세레나데, 퓌크의 춤 혹은 음유시인에서는 일화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 주제적 요소가 강조되고 있다. 제2권은 특히 안개, 달빛 쏟아지는 테라스 또는 물의 요정 등에서 보듯이 보다 추상성으로 향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불꽃은 경이적인 화음의 대담성을 가지며 뒤에 올 불레즈의 피아노곡의 스타일을 먼 저쪽에서 더구나 아주 분명하게 예언하고 있다. 게다가 바뀌어지는 3도는 3도의 음정에 관한 순수한 고찰이며 연습곡의 스타일을 예고하고 있다.
성악곡으로의 회귀
파리 음악원의 시험을 위해서 작곡한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190910)는 매우 우아한 서법과 경쾌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발레음악 캄마(1912)는 영국의 여성 무용가 모드 알렌 Maud Allen의 의뢰로 작곡(미완성)한 것인데 그 의뢰자와 마찬가지로 작곡자 자신도 경솔하게 다룬 작품이다. Ch. 쾨클랭에 의해 관현악화되었으나 초연된 것은 1947년이 되어서였다. 이들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작품 다음에 드뷔시는 성 세바스티앙의 순교(1911)를 기점으로 성악곡의 분야로 돌아온다. 이 작품은 오라토리오와 부수음악의 중간에 위치하며 러시아 발레단의 의뢰로 다눈치오의 텍스트에 의해 씌어진 것이다. 생략없이 실제로 무대에서 연주하면 약 4시간, 음악만으로는 약 1시간이 소요되는 이 작품은 3개월 동안에 작곡되었다. 드뷔시가 썼듯이 아도니스 숭배가 (여기서는) 그리스도 숭배와 이어져 있다. 이 작품이 파리의 대주교에 의하여 상연이 금지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춤, 말, 노래로 구성된 이 신비극은 잡다한 종류의 구상과 형식 때문에 통일성을 잃고 있다. 드뷔시는 이것을 고쳐쓸 생각이었으나 곧 관심을 잃어버렸다. 이 작품에서 작곡자는 약간 후퇴하여 고풍스런 선법을 사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풍자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자연스러움을 제외한다면 선택받은 소녀와 같은 스타일인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놀라운 오해는 아주 위대한 예술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때문에 그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거인적 존재의 중요성인 것이다. 말라르메의 3개의 시와 거의 같은 시대의 유희가 드뷔시의 능력이 쇠퇴하였다는 일반의 견해를 단숨에 부정해 버린다. 이 견해는 드뷔시의 현대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다. 말라르메의 시에 의한 한숨, 조그만 소원, 부채는 아마 드뷔시의 가장 아름다운 가곡일 것이며, 이들 작품에서 그는 조성에 관해서 가장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다. 라벨은 같은 해 이들 시 중에서 2편을 소프라노와 기악 합주를 위한 곡으로 작곡했다. 이것은 쇤베르크가 달의 피에로에서 사용한 것과 거의 같은 기악합주이다. 또한 스트라빈스키도 마찬가지로 1912년부터 1913년에 걸쳐서 유사한 편성을 위하여 3개의 일본 서정시를 작곡했다. 물론 아주 다른 점도 있지만 모두 쇤베르크가 조성의 중단을 의식하는 시점에서 씌어진 이들 4개의 작품을 관련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드뷔시의 작품은 쇤베르크에게서 직접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작품보다 월등한 힘과 드뷔시 고유의 어법을 사용한 그의 작품은 이 역사적 시기에 조성의 위기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발레음악
유희(191213)는 봄의 제전과 같은 시기의 작품이며 그 초연은 스트라빈스키의 작품보다 겨우 2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제전이 당시 폭력적이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그 현대성을 강조했다면 유희는 보다 덜 호전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제전에 비하여 더 솜씨가 교묘하고 아주 똑같을 정도로 현대적이었는데도, 초연 때부터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무관심의 벽은 깰 수가 없었다. 어쨌든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유럽에서 태어난 3개의 주요 작품달의 피에로, 유희, 제전은 20세기의 후반과 같은 시간적 순서로 재현하여 20세기 후반에 있어서 음악적 탐구를 자극했던 것이다. 피에로가 먼저 무조주의를 선도한 다음에 제전이 12음주의 시대에는 잠들어 있었던 리듬의 탐구에 자극을 주었으며, 마지막으로 유희가 음악이 그 수사(修辭)와 형식으로의 기울어짐을 나타냈을 때 경탄할 선례로서 재현했다. 유희는 순간적으로 스스로를 새로운 것으로 바꾸면서 마찬가지로 순간적인 음악의 듣는 법을 암시하는 하나의 음악적 형식의 출현을 보여준다(불레즈). 그러나 이 세대 작곡가들의 뜨거운 증언은 오늘날 보충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널리 친숙해진 작품에는 그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시간적 거리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유희 속에서 주목되는 현대적 특질, 즉 분할된 반복진행의 비연속성, 형식의 전체적인 비대칭성, 다양한 음색간의 복잡한 대화, 음색 선율 Klangfarbenmelodie의 예고가 되는 요소들은 바다의 제2곡, 물결의 희롱과 같은 대표적인 작품 속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고전적인 음악의 수사학에서 보자면 아주 똑같을 만큼 동적이고 보다 파괴적이기까지 한 디스쿠르를 구조화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들 요소는 거기에서는 파악하기 어렵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물결의 희롱은 끊임없는 유동성 이외에는 어떠한 참조도, 또 어떠한 형식적 제약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유희는 발레음악이고 발레음악으로서 구상되고 작곡된 것이다. 유희에서는 주제의 종류가 줄거리의 여러 국면을(가볍고 항상 새로운 모양이기는 하지만) 참조할 뿐만 아니라 그 구조 또한 음으로 양으로 춤의 구조를 참조하고 있는 것이다. 분할된 반복진행은 그것들이 박자를 잡고 있는 형식의 비대칭성을 비연속성에 의해서 일깨우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이 낳는 것을 의도하여, 그 받침이 되는 것을 의도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무도의 장면을 분석이 아닌 귀로 들음으로써 알도록 지시하고 있다. 그리고 비교적 단순화된 춤의 기능상의 율동성이 여기 저기에서 출현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찰이 유희의 의의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겠지만, 이 작품을 드뷔시가 걸어온 행정 속에, 또 우리의 이해의 진전 속에 바로 놓는 데 도움은 될 것이다.
12개의 연습곡:환영적 작품
피아노를 위한 연습곡 2권(1915. 6. 9)은 피아노를 위한 예술 작품의 절정의 하나이다. 이들 곡은 쇼팽에게 그의 24개의 연습곡에 헌정되었다. 엄격한 제약에 묶여 있다고 생각되는 이 교육적 장르는 이들 두 사람의 작곡가에게 환영적인 작품의 출발점을 제공했던 것이다. 6개의 연습곡으로 된 제1권은 그 제목이 명시하는 피아노의 과제를 다루고 있다(5개의 손가락을 위하여 Pour les cinq doigts, 3도를 위하여 Pour les tierces, 4도를 위하여 Pour les quartes, 6도를 위하여 Pour les sixtes, 8도를 위하여 Pour les octaves, 8개의 손가락을 위하여 Pour les huit doigts). 제2권은 그 표제명(반음계를 위하여 Pour les degrés chromatiques, 꾸밈음을 위하여 Pour les agréments, 반복음을 위하여 Pour les notes répétées, 대비적인 울림을 위하여 Pour les sonorités opposées, 조립된 아르페지오를 위하여 Pour les arpeges composés, X화음을 위하여 Pour les accords)에 의해 보다 분명하게 음의 울림과 연주에 대한 문제에 관련되고 있다. 연습곡이 순수한 기술적 단련에 관계없이 이런 종류의 문제를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은 거의 예를 볼 수 없다. 이 12개의 연습곡에서 기술적 요구는 매우 높은 수준에 놓여 있어서 건반을 지배하는 완벽한 솜씨가 필요하다. 그러나 매우 독창적이고 요구가 많은 교육적 측면 이상으로 각각의 작품에는 현대성과 아름다움이 두드러져 있다. 소우주적인 수준에서 대우주적인 수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또 세포의 수준에서 구조나 형식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연습곡은 모든 것을 창출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어떤 기준도 무시하고 또 스스로도 기준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드뷔시가 교의도 유파도 만들지 않은 이유가 연습곡에서 밝혀져 있다. 형식은 미리 확립된 어떠한 도식과도 관계가 없다(몇 개의 3부에 의한 배치는 이 원칙의 예외이다). 피아노 서법은 각각의 연습곡의 기술적 제약을 초월하여 가장 추상적인 음악적 사변을 구현하고 있다. 5개의 손가락을 위하여, 3도를 위하여, 8도를 위하여는 형식 전체에까지 일반화된 추상적인 여러 주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그들 추상적인 주제는 형상(形象)의 수준에서의 모든 주제적 제약으로부터 음악가를 해방시키고 있다. 이리하여 형상은 도치(倒置), 거울, 균형이 결여된 변주와 같은 상상력의 어떠한 곡절이나 정신의 어떠한 유희에도 따를 수 있게 된다. 5개의 손가락을 위하여는 드뷔시의 조성에 구애되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조성은 강조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파괴되는 일도 있다. 4도를 위하여는 세분화된 구조의 두드러진 예를 제공하고 있다. 8개의 손가락을 위하여는 음색을 위한 연습곡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매우 많은 음색의 변화를 단 하나의 음으로써 들을 수가 있다. 꾸밈음을 위하여에서는 수직 또는 수평의 음벽돌의 작성과 강도의 내적인 분할이 시도되고 있다. 또한 대비적인 울림을 위하여에서는 드뷔시가 다양한 음색이 형성하는 폴리포니에 몰두함으로써 음역, 강도, 어택이 음악적 공간 속에 매우 참신한 방식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 패러미터의 음열화의 싹, 적어도 폴리포니의 직물 속에 패러미터를 자립적, 합리적으로 배치하는 최초의 시도를 이 곡에서 볼 수 있다. 메시앙이 음가와 강도의 모드를 쓸 때 이 곡에서 착상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후의 위대한 작품들
백과 흑으로(1915 여름)는 연습곡과 같은 시기의 작품으로 여기서도 만년의 드뷔시에게 특징적인 분할된 반복진행의 기법이 지배적이다. 제1곡 X정열을 가지고 Avec emportement에서는 특히 날카로운 어택과 매우 빠른 음가 그룹의 교체가 주목된다. 마지막 곡도 똑같은 악상 아래 만들어졌는데 전체적인 뼈대는 보다 연속적이고 변화가 많다. 두 번째 곡은 세 곡 중에서 가장 주목할 작품이며 거의 무조적인 하모니 속에 엷은 여러 가지 색채의 파레트를 보여주고 있다. 우중충한 색채가 지배적이고 금속적인 울림을 가진 짧은 악구가 그 위에 떠오른다. 드뷔시는 이들 곡은 마치 벨라스케스의 회색처럼 그 색채와 감정을 단 한 대의 피아노에서 끌어내려 하고 있다라고 썼다. 여기서도 역시 드뷔시는 음색을 중심으로 한 현대의 계층화된 패러미터를 명시하고 있다. 더욱이 단색적이라고 하는 악기를 사용하여 오케스트라의 음악적인 풍성함을 배제하고 있다. 멀리 울리는 팡파레에 의해서 이 두 번째 곡이 1915년 3월 3일 전선에서 죽은 샤를로 J. Charlot에게 바쳐진 사실이 상기된다.
3개의 소나타(191517)는 드뷔시의 마지막 위대한 작품이다. 애국적 감정이 고조된 작곡가의 최초의 계획은 라모의 콘서트를 본떠서 여러 가지 악기를 위하여 6개의 소나타를 쓰는 것으로, 그는 거기에 클로드 드뷔시, 프랑스의 음악가라고 서명할 생각이었다. 18세기에 이러한 참조는 자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드뷔시가 위험에 처하여 해체하려고 해오던 전통적인 형식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작품 그 자체 내에 나타나 있다. 작곡한 3개의 소나타 중 첫번째 것은 d단조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며 연주될 기회가 가장 적지만 가장 자유롭고 환상적이다. 특히 제2악장에서는 만년의 드뷔시의 세분화되고 단편화되어 갑자기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디스쿠르가 이어진다. 음악가는 이 작품에 달을 보고 화를 내는 피에로 Pierrot faché avec la lune라는 제목을 붙일 생각이었다. 적지 않은 점에서 적이라고 생각되었던 쇤베르크에 대한 비아냥의 화살을 거기에서 보아야 할 것인가? 두 번째 소나타는 플루트, 비올라, 하프를 위한 F장조의 작품(1915)으로, 고전적인 편성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제는 쓰이지 않게 된 앙상블을 사용하고 있으며 세련된 울림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이 작품은 3개 중 그 형식면에서 볼 때, 가장 완성되고 대비적인 표현에 있어서 가장 치밀하며 색채적으로 가장 잘 갈고 닦여져 있다. 세 번째의 소나타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g단조의 작품이며(191617),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해진 가장 투명한 곡이기도 하지만 이미 병마에 시달리고 있던 작곡가에게 가장 많은 노력을 강요한 작품이었다. 바이올린 주자 아르트만 Hartmann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드뷔시는 제3악장을 위해서 방금 찾아낸 세포적인 생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처음 2개의 악장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소. 이러한 표현은 형식의 한복판에서 악상의 고전성과 거기에 침입하여 오는 훨씬 대담한 생각과의 싸움을 나타내는 것일까? 어쨌든 고전적인 정신과 통일에의 의지(제1악장의 주제가 다시 나타나고 끝악장이 시작된다) 속에서 작품은 1917년에 완성된다. 그것은 작곡가의 최후의 작품이며 비참한 육체적 고통 속에 씌어진 것이지만, 이 드뷔시라는 꿈과 환상적인 시의 건축가 특유의 경묘한 터치와 구조의 불가시성(不可視性)(슈트로벨)을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주요 작품
[피아노 음악]
▶교향곡 b단조[1악장, 연탄곡](1880)
▶집시의 춤 Danse bohémienne(1880)
▶2개의 아라베스크 Deux Arabesques(1888-89)
▶작은 조곡 Petite Suite[연탄곡](1888-89)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Suite bergamasque(1890-1905)
▶춤곡 "스티리풍 타란텔라 Tarantelle styrienne"(1890, 라벨에 의한 관현악판 1923)
▶녹턴(1890)
▶마주르카(1891)
▶낭만적인 춤곡 Valse romantique(1890)
▶발라드(1890)
▶꿈 Rêverie(1890)
▶스코틀랜드 행진곡 Marche écossaise[연탄곡](1891, 관현악판 1908)
▶린다라하 Lindaraja[2대의 피아노를 위한](1901)
▶피아노를 위하여 Pour le piano(1896-1901)
▶스케치북에서 D'un cahier d'esquisses(1903)
▶판화 Estampes(1903)
▶가면 Masques(1904)
▶기쁨의 섬 L'Isle joyeuse(1904)
▶영상 1집 ImagesⅠ[<물에 비치는 그림자 Reflets dans l'eau>, <라모 예찬 Hommage à Rameau>, <움직임 Movement>](1905)
▶어린이 세계 Children's Corner[<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박사 Doctor Gradus ad Parnassum>, <코끼리의 자장가 Jimbo's Lullaby>, <인형의 세레나데 Serenade for the Doll>, <눈이 춤춘다 The snow is dancing>, <어린 양치기 The little Shepherd>, <골리워크의 케이크워크 Golliwog's Cakewalk>](1906-08)
▶영상 2집 ImagesⅡ[<잎새를 스치는 종소리 Cloches à travers les feuilles>,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 Et la lune descend sur le temple qui fuit>, <금빛 고기 Poissons d'or>](1907-08)
▶하이든 예찬 Hommage à Haydn(1909)
▶렌트보다 느리게 La Plus que lente(1910)
▶전주곡집 제1권 Premier Livre de Préludes[<델포이의 무희 Danseuses de Delphes>, <돛/면사 Voiles>, <들을 지나는 바람 Le Vent dans la plaine>, <소리와 향기는 저녁의 대기 속을 감돌고 Les Sons et les parfums tournent dans l'air du soir>, <아나카프리의 언덕 Les Collines d'Anacapri>, <눈위의 발자국 Des pas sur la neige>, <서풍이 본 것 Ce qu'a vu le vent d'ouest>, <아마빛 머리카락의 아가씨 La fille aux cheveux de lin>, <중단된 세레나데 La Sérénade interrompue>, <가라앉은 사원 La Cathédrale engloutie>, <퓌크의 춤 La Danse de Puck>, <음유시인 Minstrels>](1909-10)
▶전주곡 제2집 Deuxième Livre de préludes[<안개 Brouillards>, <고엽 Feuilles mortes>, <비뇨의 문 La Puerta del Viño>, <요정들은 어여쁜 무희 Les fées sont d'exquises danseuses>, <히스가 무성한 황야 Bruyéres>, <괴짜 라빈 장군 General Lavin eeccentric>, <달빛 쏟아지는 테라스 La Terrase des audiences au clair de lune>, <물의 요정 Ondine>, <S. 피크워크 경 예찬 Hommage à S. Pickwick Esq., P. P. M. P. C.>, <카노프 Canope>, <바뀌어지는 3도 Les Tierce alternées>, <불꽃 Feux d'artifice>](1910-12)
▶영웅의 자장가 Berceuse héroique(1914, 관현악판 있음)
▶6개의 고대의 에피그라프 Six Épigraphes antiques[연탄곡](1914)
▶백과 흑으로 En blanc et noir[2대의 피아노를 위한](1915)
▶12개의 연습곡 Douze Études(2권, 1915)
[실내악곡]
▶현악4중주곡(1893)
▶성스러운 춤곡과 세속춤곡 Dance sacrée et danse profane[하프와 현악기를 위한](1904)
▶목신의 피리 Syrinx[무반주 플루트를 위한](1913)
▶소나타 제1번[첼로와 피아노를 위한](1915)
▶소나타 제2번[플루트, 비올라, 하프를 위한](1915)
▶소나타 제3번[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1916-17)
[관현악곡]
▶봄 Printemps(1887)
▶환상곡[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1889-90)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Prélude à l'arprés-midi d'un faune(1892-94)
▶녹턴[구름 Nuages, 축제 Fêtes, 사이렌 Sirènes[여성 보칼리즈 딸림]](1897-99)
▶랩소디[알토 색소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1901-11 미완)
▶바다 La Mer(1903-05)
▶영상 Images[<지그 Gigues>, <이베리아 Iberia>, <봄의 론도 Rondes de printemps>](1905-12)
▶소품[클라리넷,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1910)
▶랩소디[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1909-10)
▶짐노페디[E. 사티의 동명의 두 작품의 관현악용 편곡]
[성악곡]
▶봄이여 안녕 Salut Printemps[여성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1882, 미간)
▶기도 Invocation[남성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1883, 미간)
▶방탕한 아들 L'Enfant prodigue[칸타타, 서정극](1884)
▶선택받은 소녀 La Damoiselle élue[칸타타, 서정시](1887-88)
▶샤를르 도를레앙의 3개의 노래 Trois Chansons de Charles d'Orléans[무반주합창곡](1908)
▶프랑스에의 송가 Ode à la France[독창,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1916 미완, 1928 M. F. 가이야르에 의해 완성)
◇피아노 반주가 딸린 가곡
▶아름다운 저녁 Beau Soir(1880)
▶별이 반짝이는 밤 Nuit d'etoiles(1880)
▶보리꽃 Fleur des blés(1880)
▶만돌린 Mandoline(1880-83)
▶판토마임 Pantomime(1882-84)
▶유령 Apparition(1882-84)
▶피에로 Pierrot(1881경)
▶서풍 Zéphir(1881)
▶잠자는 숲속의 미녀 La Belle au bois dormant(1880-83)
▶봄이 왔다 Voici que le printemps(1880-83)
▶감상적인 풍경 Paysage sentimental(1880-83)
▶론도 Rondeau(1882)
▶잊혀진 노래 Ariettes oubliées[가사 베를렌느 : <황홀경 C'est l'extase>, <거리에 비가 내리듯이 Il pleure dans mon cæur>, <나무그늘에서 L'Ombre des arbres>, <목마 Chevaux de bois>, <초록 Green>, <우울 Spleen>](1887)
▶보들레르의 5개의 시 Cinq Poèmes de Baudelaire[<발코니 Le Balcon>, <저녁의 조화 Harmonie do soir>, <분수 Le Jet D'eau>, <묵상 Recueillement>, <연인들의 죽음 La Mort des amants>](1887-89)
▶3개의 가곡[가사 베를렌느](1891)
▶기도시간을 알리는 종 Les Angélus(1891)
▶정원에서 Dans le jardin(1891)
▶2개의 로망스 Deux Romances[<로망스 Romance>, <종 Les Cloches>](1891)
▶화려한 잔치 제1집 Fêtes galantesⅠ[가사 베를렌느:<은밀하게 뚜 sourdine>, <꼭둑가시 Fantoches>, <달빛 Clair de lune>](1891-92)
▶서정적 산문 Proces lyriques[가사 드뷔시, 4곡의 가곡](1892-93)
▶빌리티스의 노래 Chansons de Bilitis[가사 피에르 루이스](1897-98)
▶화려한 잔치 제2집 Fêtes galantesⅡ[가사 베를렌느:<소박한 사람들 Les Ingénus>, <목신(牧神) Le Faune>, <감상적인 대화 Colloque sentimental>](1904)
▶프랑스의 3개의 노래 Trois Chansons de France[가사 Ch. 도를레앙/트리스탄 레르미트:<겨울은 망토를 남겨놓고 Le temps a laissé son manteau>, <동굴 La Grotte>, <즐거움이 죽음일 줄은 Pour ce que plaisanse est morte>](1904)
▶두 연인의 산책길 Le Promenoir des deux amants[가사 트리스탄 레르미트:<어두컴컴한 동굴 근처에 Auprès de cette grotte sombre>, <나의 충고를 들어주오, 사랑스런 클레멘이여 Crois mon conseil, chère Clymène>, <그대의 얼굴을 보면 나는 떨린다 Je tremble en voyant ton visage>](1904-10)
▶F. 비용의 3개의 발라드 Trois Balades de F. Villon[<연인에게 바친 비용의 발라드 Ballade de villon à s'amye>, <성모에의 기도를 위해 어머니의 부탁으로 지은 발라드 Ballade que feit Villon à la requeste de sa mère pour prier Nostre Dame>, <파링 여인의 발라드 Ballade des femmes de Paris>](1910, 관현악 반주판 있음)
▶스테판 말라르메의 3개의 시 Trois Poèmes de Stéphane Mallarmé[<한숨 Soupir>, <공허한 소망 Placet futile>, <부채 Éventail>](1913)
▶집없는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Noel des enfants qui n'ont pas de maison(1915)
[극장음악]
▶펠레아스와 멜리상드 Pelléas et Mélisande[오페라(불완전한 오케스트레이션에 의한 초고 1839.5-1895 여름; 재판과 개정판 1898-1901; 1902.4 27 총연습 직전에 추가된 간주곡을 포함한 최종곡)]
▶리어 왕 Le Roi Lear[부수음악](1904-06 미완)
▶성 세바스티앙의 순교 Le Martyre de saint sébastien[독창,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G. 다눈치오에 의한 신비극](1911)
▶유희 Jeux[발레](1912-13)
▶캄마 Khamma[발레, Ch. 쾨클랭에 의해서 관현악화](1912)
▶장난감 상자 La Boite à joujoux[발레, A. 카플레에 의하여 오케스트레이션 완성](1913)
◇미완의 오페라
▶로드리그와 시멘느 Rodrigue et Chimène(1890-92)
[저서]
▶다수의 논설[<<르뷔 블랑슈 La Revue blanche>>, <<메르퀴르 드 프랑스 Mercure de France>> 등에 게재]
▶반애호가(反愛好家) 크로슈씨 M. Croche antidilettante[논설집](1921 파리, 재판 1971 갈리마르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