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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으로 보이는 소백산 주릉은 잔잔한 물결 일렁이는 바다처럼 제2연화봉, 제1연화봉, 비로봉, 국망봉까지 한달음에 뻗어있다.
'백두대간 종주를 주저하는 이가 남한 백두대간의 허리께를 장식하는 저 부드러운 소백산 주릉을 본다면 단박에 종주를 시작할 용기를 내겠군" 하고 생각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배점리로 꺾어든다.
소한을 즈음해 몰아닥친 강추위는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눈이라도 오면 마음이라도 푸근해질텐데 살갗을 에이는 바람이 그저 자라목처럼 웅크리고 제 앞만 쳐다보게 만드는 메마른 겨울날이다.
죽계구곡은 동면 상태였다.
고려말 안축의 죽계별곡의 탄생 무대이자 풍기군수를 지내고 자연과 벗하길 좋아했던 주세붕과 이황 선생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죽계구곡.
하지만 이 한겨울에 어디 그 수려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죽계구곡은 3년 전 여름 장마철 폭우에 한번 휩쓸린 후부터 본래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는 게 동행한 영주 주재 임진태기자(44세·소백산악 대표)의 얘기다.
초암사로 가고 있는 취재진은 임진태기자, 소백산악회원이며 영주 영광고산악부OB인 조경식씨(34세·세계일보 영주지사 모니터), 서준영기자 이렇게 4명이다.
흔히 초암사는 국망봉 산행의 들머리이지만 오늘은 비로봉으로 곧장 오르는 월전계곡으로 산행할 예정이다.
사실 소백산 발굴 산행을 해보자는 제안에 소백산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아는 임기자도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
면적으로 말하면 소백산이 국립공원 가운데서도 지리산, 설악산 다음 가는 크기지만 등산로는 한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빤했기 때문이었다.
회방사에서 구인사까지 19킬로미터에 달해 간만에 작정하고 소백산을 찾은 산꾼이라면 단연 이 멋진 종주 코스를 택할 것은 당연했다.
그러니 새로운 등산로가 생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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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암사에서 국망봉으로 오르는 석륜암계곡 말고 왼쪽으로 월전계곡이라고 있습니다. 전에 우연히 비로봉에서 그리 내려와 본 적이 있는데 어의계곡보다 훨씬 좋더군요. 사람들도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라서 계곡도 깨끗하고요."
국망봉에서 비로봉 구간이 1월 중순까지 산불 경방기간 통제 구역으로 묶여 있고 겨울 해가 짧은 것을 감안하면 당일에 비로봉을 다녀올 수 있는 최단 발굴코스로 괜찮을 성싶었다.
그러나 발굴코스라는 것보다 기자에게 흥미를 던져준 것은 '월전(月田)'이란 이름이었다.
월전계곡 월전동으로 올라 비로사쪽 삼가동 달밭골로 내려오기로 했으니 비로봉을 사이에 둔 두 개의 달밭골을 잇는 산행인 것이었다.
"달밭골은 어떻게 해서 붙여졌을까요? 분명 달과 관련 있는 것 같은데…. 천상 월전동에 가서 물어봐야겠네요."
달밭재 넘어 왕래하던 두 달밭골
"으∼! 이거 장난이 아니군!" "이런 날 절을 찾는 신도는 대단한 불자일거야!"
비로봉과 국망봉 사이 골짜기에 자리한 초암사는 골을 타고 불어닥치는 매서운 바람을 피할 재간이 없는 곳이다. 경내 부도 한 쌍과 3층석탑 앞에 선 안내판에 고려시대 때 조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이 절의 나이를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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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망봉 오르는 이정표 역할 외에 크게 보잘 것 없었다는 이 초암사는 몇 년 전 보원스님이 주지로 오면서부터 불사를 시작해 대적광전도 지난해 새로 짓게 되었다고 한다.
대적광전 앞 '국망봉 5.7Km'라 쓰여진 푯말이 가리키는 곳으로 들어서니 숲길이다.
숲길을 따른 지 잠시 '국망봉 5.3Km'라 적힌 이정표가 하나 더 나타나고 곧이어 계곡이 갈리는 지점에 섰다.
오른쪽은 석륜암 계곡이니 일행은 왼쪽 계곡길을 따라 월전동으로 향한다.
길은 산책로처럼 편안하고 넓다.
더러 빨간 표지기가 눈에 띄고 계곡 오른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는 잠시 계곡과 멀어지더니 솔잎이 폭신하게 깔린 전나무숲길로 이어졌다.
계곡은 정지화면이다.
흐르다 갑자기 멈춘 듯 허옇게 얼어버렸고 언 계곡 위로 조심스레 한 번 건너 몇 발자국을 더 가자 운치 있는 나무다리가 일행을 반긴다.
월전계곡에 들어선 지 20분만이다.
긴 통나무를 묶어 발판을 만들도 허리께 높이에서 잡히도록 손잡이까지 정성 들여 만든 예쁜 통나무다리였다.
다리를 건너서니 왼쪽 등성이에 전봇대가 있다.
사람이 산다는 증거였다. "저기 전봇대가 서 있는 쪽이 달밭재로 넘어가는 길입니다."
등성이 너머 누가 사는지 궁금했지만 어차피 월전동을 거쳐갈 것이므로 일행은 이 갈림길을 무시하고 계곡 왼쪽길을 계속 따라갔다.
다리에서 백여미터를 올라 다시 계곡 오른쪽으로 건너간 임기자는 "이곳은 과거에 산판하던 곳이었어요. 이 전나무들도 그때 전부 다시 심은 거지요" 라며 숲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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