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다른데서는 먹을 수가 없어요."
"이건 고흥에서만 만들어 먹는단다."
엄마의 김치, 거슬러 외할머니의 김치를 담기 위해
파란 열무를 두어 단 사왔지.
"깨끗이 씻어서 제 몸에 밴 간으로 먹을 수 있도록
소금에 적당히 절여야 해."
아기 목욕 시키듯 깨끗이 씻기고,
적당히 소금을 뿌리며 싱겁지도 짜지도 않게
남은 시간, 나도 그처럼 살았으면 좋겠네.
"고춧가루는 쓰지 않아. 젓갈도 쓰지 말고.
생고추와 마늘, 양념을 갈아 넣고,
밥을 한그릇 갈아 넣어 버무려야 제 맛이 나는거야."
지금껏 살아온 길에는
살아온 방식대로만 고집하던 고지식한 내가
붉은 고춧가루와 젓갈에 버무려진 채 엎드려 있었다.
시키는대로 했는데 정말 엄마 김치 맛이 날까?
"익기 시작하면 빨리 먹어야 해.
이 김치는 익는 속도가 빨라서 익기 시작하면 금방이거든."
적당히 맛있게 익은 엄마의 김치 너머로
어렸을 때 외할머니의 열무김치가 생각나네.
학교에서 돌아와 그늘에 매달아 둔 망에서 보리밥을 꺼내고,
익을대로 익고 시어서 누렇게 된 열무김치 한 보시기
함께 먹고 나면 부러울 것 하나 없었지.
'요즘은 냉장고가 좋아서 그 맛을 낼 수도 없겠어.'
기억 속의 어린 소녀 하나, 엄마 보다 나이 먹은
그리운 얼굴로 지금, 파란 열무를 버무리고 있네.
첫댓글 우리 인생도 열무김치 익듯이 빠르게 가고 있는데... 고향과 어머님과 추억이 그대로 담겨 있네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