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위에 예술을 더하다, 함창 아트로드
상주 함창은 예부터 비단을 많이 생산하던 지역이다. 지금도 뽕나무를 길러 누에를 치는 농가가 있고, 비단을 짜는 직물공장이 있으며, 명주박물관 앞에서 명주페스티벌이 열린다.
비단의 고장 함창에서 진행된 마을미술프로젝트가 ‘함창 예고을-금·상·첨·화’다.
‘좋은 일에 또 좋은 일을 더하다’는 의미로 쓰는 금상첨화의 ‘화’는 꽃 ‘화(花)’자인데 마을미술프로젝트에서는 그림 ‘화(畵)’자를 써서 ‘비단 위에 예술을 더하다’는 의미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예술 작품이 함창 읍내 여러 곳에 펼쳐져 있어 이를 찾아가는 아트로드 탐방을 즐길 수 있다.
함창역에서 시작하는 함창 아트로드 탐방
무인 기차역이 예술창고로
함창역 천장을 장식한 물레 /
경북선의 주요 기점이었으나 현재 무인역사가 된 함창역
함창 아트로드 탐방 지도 /
아트로드를 따라 하얀 실선 작업이 진행 중이다.
아트로드 탐방의 시작점은 함창역이다. 김천과 영주를 잇는 경북선이 지나가는 함창역은 지금도 하루에 서너 번 기차가 선다. 하지만 이용객이 많지 않아 근무자가 없는 무인역사로 운영 중이다.
역사 내부엔 기차시각표뿐 아무것도 없다. 대신 마을미술프로젝트에서 진행한 ‘함창 예고을-금·상·첨·화’에 관한 설명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발길이 뜸했던 무인 기차역이 예술창고로 거듭나면서 찾는 이가 조금씩 늘고 있다.
‘함창 예고을-금·상·첨·화’는 함창 읍내 4개 지역을 ‘금·상·첨·화’로 선정했다. 함창역이 비단을 주제로 한 ‘금’이 되고, 옛이야기가 전해지는 전고령가야왕릉이 있는 징그래미마을이 ‘상’, 함창전통시장 일대를 ‘첨’, 옛 술도가가 있던 자리를 ‘화’로 정해 각 주제에 맞는 작품들로 꾸몄다.
4곳을 찾아가다 보면 함창 읍내를 한 바퀴 돌아보게 돼 함창 아트로드라고 부른다. 이정표를 드문드문 세워놓아 길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최근 명주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바닥에 하얀 선을 긋는 작업을 하고 있다.
12월 안에 마무리될 예정으로 이후 실만 따라 걸으면 훨씬 수월하게 아트로드를 탐방할 수 있게 된다. ‘금’에 해당하는 함창역은 비단을 주제로 했다. 역사 내부 천장에 빼곡하게 매달아놓은 것은 물레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을 때 쓰던 물레 수십 개를 모아 만든 작품이다. 역사 바깥에는 누에고치를 저장하던 창고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작품 ‘터’가 있다.
주민들의 참여가 돋보이는 작품
징그래미마을 풍경을 담은 엽전 모양 작품 /
전고령가야왕릉
왕릉과 왕비릉을 재해석한 ‘가야의 혼’ /
작가와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완성한 커뮤니티아트하우스 ‘Zip in 집’
‘상’은 옛날을 주제로 해서 전고령가야왕릉이 있는 징그래미마을을 무대로 펼쳐진다. 이 마을엔 일반인의 묘라고 하기엔 규모가 큰 능이 있다. 옛 왕릉일 것이라는 얘기가 전해오다 묘비가 발견되면서 고령가야의 왕릉과 왕비릉으로 밝혀졌다.
마을 일대의 풍경을 풍속화처럼 묘사해 엽전 모양의 조형물로 완성한 ‘거룩한 풍경’이라는 작품이 마을 입구에서 맞아준다.
벽에 봉황 한 쌍을 타일로 붙여 표현한 ‘왕의 동산’, 폐가 마당에 세운 누에고치 조형물 ‘Cocoon Garden’, 마을의 옛 우물터에 왕릉과 왕비릉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세운‘가야의 혼’, 빈집 안에 마을 사람들의 삶을 응축시켜 보여주는 커뮤니티아트하우스 ‘Zip in 집’, 6개의 금색 구슬이 누에고치 모양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숨’등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작품은 커뮤니티아트하우스 ‘Zip in 집’이다. 빈방에 마을 주민들의 물건과 사진, 골동품을 채워넣기도 하고, 주민들이 직접 자기 이름을 수놓아 벽을 꾸미기도 했다.
소중히 간직해온 추억의 사진들을 문틀에 빼곡하게 붙여놓아 그들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작가들이 기획하고 준비한 작품에 마을 주민들이 적극 참여해 함께 완성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정겨운 골목길을 따라 마을을 산책하듯 작품들을 보고, 왕릉과 왕비릉도 둘러보면서 옛이야기와 오늘날의 삶을 함께 감상하는 것도 좋다.
오일장이 서는 함창전통시장 / 시
장 입구를 장식한 벽화 ‘씨름’
함창전통시장 공중화장실 벽면에 그려진 ‘명주이야기’
‘첨’에 해당하는 곳은 함창전통시장이다. 물건 살 때 주는 덤을 ‘첨’으로 해석한 것이다. 1951년에 개설된 함창전통시장은 지금도 끝자리가 1일, 6일로 끝나는 날 오일장이 선다. 장날이면 주변에서 장꾼들이 모여들어 흥겨운 분위기를 만든다.
시장 입구에는 씨름하는 장면을 담은 벽화가 있고, 장터 안 공중화장실 벽면을 빙 돌아가며 베 짜는 여인, 누에 키우는 가족, 다듬이질하는 아낙 등을 고운 선으로 그려낸 벽화가 눈길을 끈다.
시장 아케이드 천장에는 나비, 누에 등을 형상화한 작품이 매달려 있다. 오일장과 예술시장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예술을 빚는 양조장
세창도가 입구의 ‘가야별곡’ /
함창 최대의 양조장이었던 세창도가 입구
만화 ‘금상천화’의 주요 캐릭터 /
라온섬유갤러리 내부의 작품
함창의 중심인 구향리에는 함창 지역에서 가장 큰 양조장이었던 세창도가 건물이 남아 있다. 옛 술도가의 창고와 공장 등을 예술이 가득한 곳으로 재탄생시켰는데, 바로 아트로드 탐방의 마지막 코스인 ‘화’의 공간이다.
먼저 양조장 입구에 자리한 작은 건물에는 함창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로 전해 듣는 ‘함창감음’과 전고령가야왕릉의 유물을 형상화한‘가야별곡’이 있다. 입구를 지나 골목처럼 이어진 길로 들어가면 왼편에 베 짜는 장인의 아들과 직녀가 만나는 이야기를 만화로 엮은‘금상천화’가 전시돼 있다.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 라온섬유갤러리라고 적힌 표시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명주를 소재로 한 원피스와 모자․조각보 등이 있고, 비단 제작 과정을 닥종이 인형으로 보여준다.
1층에 자리한 ‘술, 시간갤러리’에는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으면 공기가 들어가 조형물이 부풀어오르는 작품, 막걸리와 주막을 이미지화한 작품, 누룩건조장 위에 실을 늘어뜨려 공간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작품 등 독특한 작품이 여럿 있다.
누룩건조장이 예술 작품의 무대로 변신했다 /
막걸리와 양조장의 이미지를 살린 ‘술, 시간을 깨우다’
독특한 드로잉으로 가득한 요아킴·추이아갤러리 /
양조장 창고였던 아트카페 술도가
요아킴·추이아갤러리는 버려진 건물의 벽면이나 자연석, 우물 뚜껑 위를 얼굴 형태의 개성적인 그림으로 채웠다. 벽 중간의 뻥 뚫린 창문을 종이로 막아놨는데 그 위까지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 재미있다.
아트로드 탐방의 마지막은 아트카페로 쓰이는 술도가다. 양조장 창고로 쓰던 건물인데 높은 천장에 누에꼬치 모양의 조명이 걸려 있고 소품들도 전시돼 있다. ‘함창 예고을-금·상·첨·화’의 작품들이 모두 담긴 책자와 이전에 실시됐던 마을미술프로젝트에 관한 책자도 볼 수 있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깎고 있다. /
달콤하게 맛이 들어가는 상주곶감
요즘 상주를 여행하다 보면 곶감 말리는 덕장을 흔히 보게 된다. 남장사 들어가는 길가에 자리한 남장마을이 대표적인 곶감마을이지만 함창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곶감 덕장에는 대부분 창고도 같이 있어 현장에서 곶감 말리는 풍경도 구경하고 구입도 할 수 있다. 달콤하게 익어가는 곶감을 맛보며 함창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도 좋겠다.
여행정보
주변 음식점
- 할매손두부집 : 두부요리 / 상주시 함창읍 함창중앙로 100-6 / 054-541-0437
- 명주식당(함창뽕잎한우) : 한우구이 / 상주시 함창읍 무운로 1633 / 054-541-8588
- 테마촌 : 버섯전골 / 상주시 함창읍 무운로 1633 / 054-541-5358
숙소
- 팔레스모텔 : 상주시 복룡냉림길 16 / 054-536-2700
- 성주봉자연휴양림 : 상주시 은척면 성주봉로 3 / 054-541-6512
- 백두대간숲생태원 : 상주시 공성면 웅산로 705 / 054-536-0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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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관광공사ㆍ글,사진: 김숙현(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