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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가 2011년 7월11일자로 공개한 캄보디아와 관련된 미국 대사관 외교전문 약 800건 중에서, <프놈펜포스트>가 권력투쟁 및 암살사건 의혹 관련 정보만 발췌하여 분석한 것이다. [크세] |
(보도) Phnom Penh Post 2011-7-13 (번역) 크메르의 세계
위키리크스 캄보디아 : 권력투쟁 및 암살사건 의혹들
Intrigue in ruling CPP detailed
기사작성 : 프놈펜포스트 직원 (Post Staff)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대사관 외교전문들은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 내에서 있었던 폭발직전의 긴장상태를 폭로하고,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악명높았던 정치적 살해사건들 중 일부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오래된 의혹을 새삼스레 부각시켰다.

(사진: Pha Lina) 훈센 총리가 2011년 4월에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외교전문들은 CPP 내에 존재한다고 회자되던 분파주의에 대해 반복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분은 훈센(Hun Sen: [역주] 당서열 2위) 총리 캠프와 사켕(Sar Kheng: [역주] 당서열 4위이자 찌어 심의 처남) 내무부장관 및 찌어 심(Chea Sim: [역주] 당서열 1위) 상원의장 캠프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회자되어 왔는데, 캄보디아 정부는 오랜 기간 이러한 내용을 부인해왔다.
1994년에 전송된 한 외교전문은, 훈센이 1980년대 중반부터 떠돌기 시작한 파벌싸움 소문에 대해 "그때도 사실이 아니었지만, 지금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보고들이 존재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의 전통문들은 CPP 내부에 잠재적인 균열이 있음을 드러냈다.
1995년에 작성된 한 외교전문에 따르면, 1994년에 내각의 각료였던 노로돔 짜끄라뽕(Norodom Chakrapong) 왕자와 신 송(Sin Song)이 쿠테타를 시도했다고 전해진 후, 찌어 심(Chea Sim)은 "지난(1994) 여름 말 무렵에 호 남홍(Hor Namhong) 외무부장관을 조용히 불러, 훈센이 쿠테타 기도자들을 벌하지 않도록 부탁해달라고 당부했지만, 호 남홍은 이 말을 [훈센에게] 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5년의 또 다른 외교전문에 따르면, 훈센은 이어진 해에 "자신의 신변안전에 대해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 전문에서, 훈센은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사건 조사를 [공동 내무부장관들 중] CPP 지명의 사 켕(Sar Kheng) [공동] 내무부장관에게 지시하지 않고, '푼신펙당'(Funcinpec)이 지명한 요우 홋끄리(You Hockry) [공동] 내무부장관에게 조사토록 지시했다는 보고들이 있었다고 한다.
2006년 3월에 작성된 한 외교전문은 푼신펙당의 한 고위 당료의 말을 인용하여, '1994년 쿠테타 미수사건'을 압박하기 위해 현직 푼신펙당 사무총장인 넥 분 처이(Nhek Bun Chhay) 부총리의 조력을 받았다고 전했다. 보고된 관료들의 주장에 따르면, 훈센은 "푼신펙당과 '삼랑시당'(SRP)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기 위해 찌어 심 및 사 켕 파벌에 합류할 계획"이라는 소문에 대응하는 가운데, 푼신펙당 일에 대해 보다 공세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망명 중이던 야당 총재 삼 랑시(Sam Rainsy)의 귀국도 허락했다고 한다.
삼랑시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훈센 총리가 이러한 의혹들에도 불구하고, 2006년 초에 삼 랑시 총재에게 "다양한 부처들에 대해 광범위한 권위를 발휘할 수도 있는" 부총리 직을 제안했다는 보고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소식통들은 "삼 랑시 총재는 훈센 총리에게 그러한 일이 야당의 지도자에게는 '정치적 자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분명하게 거부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들은 "대신 그(삼 랑시)는 훈센에게 보류된 법안에 따라 설치될 예정이었던 '부패방지 위원회'를 자신이 이끌 수 있도록 하게 해달라는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한 외교전문에 따르면, 훈센은 심지어 2009년까지도 찌어 심 계파에 대해 우려를 했었다고 한다. 이 외교전문은 2009년에 있었던 정치적 연설에 관한 단속들이, 부분적으로는 훈센이 집권당 내에 찌어 심 상원의장 및 헹 삼린(Heng Samrin) 국회의장의 '보수파들'을 달래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분석했다.
이 외교전문은 그 해에 진행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부분적으로는 총선 이후의 단속흐름을 탄 것으로 보면서, 이에 대해 개탄했다. 이 문서를 작성한 캐롤 로들리(Carol Rodley) 미국대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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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집권당 내부에서는, 다수 대중들과 젊은이들 사이에서 실업율이 증가하고 여타 기회들이 봉쇄된 데서 발생하는 범죄의 증가에 대해, 정말로 두려워하는 분위기기 있다."
"우리(미국)는 캄보디아의 새로운 현실을 이해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캄보디아 지도부가 우려하는 것에 대해 귀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신뢰관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
외교전문들에 따르면, 프놈펜 광역경찰청장이었던 헹 뽀우(Heng Pov)는 2006년에 구속되어, 갈취와 납치, 살인 등의 혐의로 2009년에 총 90년이 넘는 징역형을 언도받았는데, 이 일이 집권당 내부의 긴장을 더욱 표출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미국의 외교관들은 헹 뽀우의 몰락이 부분적으로는 혹 룬디(Hok Lundy) 경찰청장과의 라이벌 관계 때문이었다고 보았다.
헹 뽀우는 캄보디아를 탈출하여 싱가포르에서 몇 달 동안 체포를 피하고 있었다. 그는 이 기간 중에 캄보디아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에 대해 공개적인 폭로를 했다. 이 폭로내용에는 마약거래, '1997년 3월 야당집회 수류탄 투척사건'의 계획, 1999년에 발생한 여배우 삐셋 삘리까(Piseth Pilika) 암살의 악명높은 사건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2006년에 작성된 미 대사관의 한 외교전문은, 그의 주장들이 "기껏해야 별것 아닌 정도로서, 소식통들은 헹 뽀우의 고발들이 이미 대부분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외교전문들은 2006년 12월에 체포된 헹 뽀우가 일시적이나마 국외로 탈출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해, 훈센이 혹 룬디에게 진노했었다는 보고들이 있다고 덧붙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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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들에 대한 조사가 어떻게 결론이 나든, 캄보디아 정부는 여전히 나쁘게 비춰진다. 그들의 최고위급 경찰 관리들이 심각한 고발전을 전개하고 있고, 서로간에 10년 이상이나 해묵은 사건들에 대해 맞고소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한 무능하고 비전문적인 경찰력을 갖고 있고 여러 해 동안 이러한 일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리 잘 보아도 [캄보디아 정부가] 나쁜 일이다." |
또한 외교전문들은 2004년에 발생했던 '캄보디아 자유노조'(Free Trade Union: FTU) 지도자 찌어 위찌어(Chea Vichea)에 대한 악명높은 암살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찌어 위찌어 암살사건은 2년 연속으로 FTU 소속 운동가 2명이 살해당한 데 이어 터진 사건으로, 현재까지도 미제로 남아 있는 사건이다.
2006년에 작성된 한 외교전문은 "찌어 위찌어가 살해당한지 2년이 지났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의문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적은 후, 대부분의 인권단체들이 맨 처음 범인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남성들이 조작된 것으로 믿고 있으며, 캄보디아 정부가 "정치적으로 폭발성이 강한 이 고도의 감정적인 사건을 다시금 공개적으로 다루길 달가와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2007년에 작성된 한 전문은, 2007년 2월에 발생한 FTU 지도자 히 우티(Hy Vuthy) 암살사건 및 인기 여가수 뽀우 빤하 삣(Pov Panhapich) 암살사건이 "이제까지 미제로 남아 있던 과거의 폭력적 범죄들에 대한 기억을 냉각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적었다.
이 외교전문은 히 우티 살인사건이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은 총잡이가 체포에 대한 별다른 두려움 없이 희생자를 향해 총격을 가한 이전의 익숙한 패턴들을 좇아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전문은 또한 "FTU 의장인 찌어 모니(Chea Mony: [역주] 사망한 찌어 위찌어 의장의 동생)는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노조에 의혹을 제기했지만, 그들이 이 범죄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하고, 찌어 위찌어의 사망사건 및 여타 미해결 살인사건들을 "캄보디아에서 지속되고 있는 면책특권 문화를 조용하게 상키시켜주는 일들"이라고 불렀다.
당시 미국대사였던 조셉 무소멜리(Joseph Mussomeli)는 뽀우 빤하삣에 대한 공격은 1999년의 삐셋 삘리까 암살, 2000년의 땃 마리나(Tat Marina), 2003년의 또웃 스라이 닛(Touch Srey Nich)에 대한 공격사건 등, 여타 여가수들에 대한 일련의 공격사건에 이어진 것이었다고 적었다. 무소멜리 대사는 뽀우 빤하삣 살인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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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들에 따르면, 이 연예인이 고위급 정부관료와 치정에 얽힌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혹 룬디 경찰청장이 이러한 애정관련 이해관계자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 사건이] 실제로 고위급 관리 1인을 포함하고 있을 수도 있다. 총리실의 한 자문위원은 이 저격사건에 대해 우리에게 금요일 아침에 말해주기를, 자신이 부상당한 연예인을 베트남으로 긴급호송하도록 직접 요청했었다고 말했다." |
이 모든 내용들에도 불구하고, 외교전문들 중에는 훈센 총리가 캄보디아의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면책 문화에 대해 대응책을 강구할 필요성을 약간은 느끼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하지만 훈센은 정치적 현실에 얽매여 [실패했다고] 한다.
2006년 4월에 작성된 한 외교전문은 한 미국인이 야당 지도자 삼 랑시를 만났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삼 랑시 총재는 "훈센 총리도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신의 권력기반을 유지시켜주는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고 부정부패를 막을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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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늘 해오던 얘기지만...
<훈센 정권이 망하지 않는 한, 캄보디아 국민들의 행복은 없다!!>..
이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내용이네요...
훈센은 일국의 정보를 정점에서 다루다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심각한지를 잘 알겁니다..
마치 이명박 씨가 대통령 3년 해보니,
길 잘못 들었엇구나.. 후회해도 소용없는거랑 같다고나 할 수 있죠,.,.
하여간 훈센 씨는...
그래서 좀 상황을 개선도 해보고 싶겠죠.
하지만 좀 세게 개선을 시키려다간, 자기 목숨조차 위태로와지죠.
게다가 여배우들 암살사건 중, 최소 1건은 바로 자기 마누라가 저지른 일이다 보니...
누가.. 누구를. 탓하겠냐.. 이 말이죠..
한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