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호주 Sydney Morning Herald 2011-8-15 (번역) 크메르의 세계
총대신 전통무용으로 힘겨루기에 들어가는 태국과 캄보디아
Simple hand gesture has two countries up in a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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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onny Tam) 태국 전통 무용수의 모습. |
기사작성 : Lindsay Murdoch
'유네스코'(UNESCO)는 '찝'(jeeb)의 기원에 대해 검토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태국어 '찝'이란 무용에서 사용되는 손동작으로서, 엄지와 집게 손가락을 맞대고 다른 세 손가락은 펼치는 동작을 말한다.
새로 임명된 태국의 수꾸몬 쿤쁠른(Sukumol Khunploem, สุกุมล คุณปลื้ม, 사진)(역주1) 문화부장관이 이 찝의 소유권 문제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다.(방콕) ---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긴장이 완화되면서 '쁘레아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 주변에서는 군 병력들이 철수하고 있다. 하지만 양국의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는 새로운 촉매제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양국의 전통 무용과 그림자 인형극에 사용되는 우아한 손가락 동작의 원조 논쟁이다.
지난 2008년 '크메르 그림자 인형극'과 더불어 '캄보디아 로얄발레'(=크메르 고전무용)이 유네스코의 '대표적인 인류의 무형 문화유산 목록'(Representative List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 등재됐다. 이 목록에는 '찝'을 포함한 크메르(캄보디아) 스타일의 손동작들도 포함됐다.(역주2)
(역주1) 수꾸몬 쿤쁠른 문화부장관은 연립정권에 참여한 군소정당 '팔랑촌 당'(Palang chon party: 촌부리의 힘 당) 지명 장관이다. 손타야 쿤쁠른(Sonthaya Khunploem) 전 관광스포츠장관의 부인이기도 하다.
(역주2) 캄보디아 고전무용에서는 손동작들을 '끄밧'(kbach: 형식)이라고 부른다. 손동작 하나하나마다 상징하는 의미가 있어서, 마치 언어의 자모와 같은 의미전달의 매개체가 된다. |
수꾸몬 장관을 보좌하는 태국의 관리들은 태국고 찝 및 여타 그림자 인형극들을 유네스코 등재해야만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수꾸몬 장관은 방콕에서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일이 [나의] 첫번째 임무이며,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우리는 절차를 매우 서두르게 될 것이다. 그것들(손동작들)은 태국 문화유산의 일부이고, 따라서 타국이 그것들을 등록했다면 우리가 해결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
수꾸몬 장관은 찝이 태국 문화 증진을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면서, 만일 그것이 "캄보디아"의 것으로 브랜드화된다면 논란이 일 것이라고 말했다.(역주3)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태국이 유네스코의 '인류 무형 문화유산 보호 협약'(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 가입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한편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총리가 이끄는 6개 정당 연립정권이 지난주 출범한 이후, 쁘레아위히어 사원 주변에서의 긴장은 완화되고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는 최근 수년간 여러 차례 교전을 벌여온 국경분쟁을 논의하기 위한 위원회 개최에도 합의했다. 금년에 발생한 교전사태에서 사원 주변 지역의 양국 주민 수만명이 대피하기도 했다. 캄보디아의 훈센(Hun Sen) 총리와 태국의 잉락 총리 사이의 정상회담도 수주일 안에 열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역주3) 특히 궁중무용의 경우, 태국과 캄보디아 고전무용 중 어느쪽이 원조인가를 말하기란 용이하지 않다. 태국은 15세기에 크메르제국의 도성인 앙코르를 함락시킨 후, 그곳에서 무용수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적 자원들을 아유타야로 붙잡아갔고, 이것이 태국 궁중무용의 발전에도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다. 반면 캄보디아는 앙코르를 함락 당한 이후, 문화예술 분야에서 급격한 쇠퇴를 맛봤다. 하지만 왕자시절을 태국 왕실에서 보낸 19세기 캄보디아의 엉 두엉 국왕은, 태국에서 보다 발전시킨 궁중무용을 캄보디아 왕궁으로 역수입했다. 이후 시하누크 전임 국왕의 모친인 꼬써막 왕후의 시대에서, 왕후 개인의 뛰어난 연출능력에 힘입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유명한 '압사라' 무용이 완성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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