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시간에 얽힌 기억들을 건져내는 낚시대이다.
타닥타닥 장작불 타는 소리와 구수한 밥냄새, 골목어귀까지 마중 나온 청국장 냄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감자......
맛에 대한 따뜻한 기억은 삶의 온기를 느끼게한다.
오늘은 영광의 굴비를 찾아간다. 영광(靈光) 법성포( 法聖浦)는 백제최초의 불교도래지로 전해지는 곳이다.
영광을 지나 19km를 더 가서 야트막한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는
둥그스럼한 법성포구를 만났다. 바다는 지금 조금 때라 파득이는 생선은 물때를 따라가고 게, 바지락등은 갯벌 밑에 숨어버렸다. 그러나 법성포는 갯벌 향을 맡으며 건조되는 굴비냄새로 가득하다.
영광 법성면 법성리 숲쟁이 공원 아래쪽에 있는 둥지식당( 061)356-6678)은 년륜이 묻어있는 장년의 모습이다. 입구에 세로로 쓰여진 둥지식당이라는 글씨가 고작이어 관심을 갖어야 보인다. 시설만으로 이곳을 찾는다면 실망할 것이다. 너무도 소박한(?) 이 집을 찾은 것은 잊혀져 가는 손맛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둥지식당에서의 주문은 간단하다. 조기백반정식(1인분 20,000원. 2인 이상)뿐이다. 식당을 시작한지 15년째 굴비정식만을 고집하는 안주인 김순희할머니에게 다른 식당과의 차이를 묻자 '덕자매운탕'을 내는 집은 이곳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 태풍에 떨어지고 없다는 간판 대신 유리창에 쓰여진' 덕자찜' '조기백반정식'이 보인다.
" 덕자라는 생선도 있어요?"라고 묻자 "돗병어를 여기서는 덕자라고 불러" 그러면서 덕자라는 이름의 내력을 이야기한다.
병어잡이 배가 잡은 비슷한 생선이 살이 많고 맛도 더 좋아 병어는 제쳐두고 이 생선을 잡았단다. 처음 잡는 생선이라 이름이 없어 선주의 딸 이름을 붙여 '덕자'라 했다한다. 덕(德)있는 생선이라?.
" 요즘은 살도, 알도 가장 맛날때니께 한번 먹어봐" 라고 권한다.
후덕한 인상의 젊은 아낙이 내온 상차림은 고추장굴비, 마른굴비, 물굴비(생조기)구이,쏙장, 묵은 김치, 깻잎찜 등으로 푸짐하다. 가운데 떡 버티고 있는 '덕자찌개' 외에는 모두 시간이 맛을 익힌 음식이다.
덕자(돗병어)는 은회색빛의 살이 통통한 병어과의 생선이다.
산란성기인 6월에 가장 맛이 오른다. 맛이 담백하고 끓여도 살이 부서지지 않아
국물을 넉넉히 부어 술국으로 먹어도 그만이란다.
덕자찌개에는 의례 들어가는 무나 야채가 별로 없다.
덕자의 '쌈빡한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한 조리법이라 한다.
'영광굴비'는 조선시대부터 임금님께 올리는 진상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굴비란 조기(助氣)를 말린 것이다. 맛 좋고 영양도 풍부하여 사람에게 '기운을 북돋워 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기는 '하늘이 아는 고기'라 하여 옛날부터 제사상에는 꼭 올라가는 고급생선이다. 비늘이 많고 맑은 노란빛이 흐르는 것이 좋다. 암조기는 배 부분이 축 늘어져 있고 수조기는 배가 훌쭉하고 몸이 전체적으로 길다. 곡우가 지나 알을 낳아버리면 스펀지처럼 퍼석퍼석해져 조기 맛이 없어진다고 한다.
'영광굴비'는 꼭 3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곡우 무렵 칠산 앞 바다에서 잡은 조기, 염산면의 3년 묵어 간수가 빠진 소금, 갯벌을 지나온 건듯 바람이 말려야 감칠맛 나는 굴비가 된다. 그리고 소금과 조기를 아는 사람이 간을 해야 맛이 좋다고 한다.
원래 전라도 사람들이 먹었던 영광굴비는 보름이상 잘 말려 북어처럼 북북 찢어지도록 말렸다. 이렇게 말린 굴비를 보리나 밀을 담은 항아리에 넣어두었다가 구워먹었는데 이것이 옛날식 '오사리굴비' 이다. 요즘은 굴비를 냉장고에다 넣어두니 굳이 바짝 말릴 필요가 없다. 또 말릴수록 굴비가 졸아들어 상인들은 제값을 못 받게 되니 바싹 말리지 않는다.
굴비는 때리면 텅텅 소리가 날 정도로 가실가실 잘 말려서,
머리부터 방망이로 잘근잘근 두들겨 살을 찢어 냉동실에 보관한다. 예전에는 말린 조기를 고추장 깊숙히 박아두었다가
손님상에서 찢어주었는데 요즘은 냉장 시설이 편리하니 보관한 것을 즉석에서 고추장양념으로 무쳐낸다고 한다.
바람과 시간이 말린 굴비에는 인스턴트음식이 흉내낼 수 없는 깊은 맛이 있다.
영광에 가면 염산면의 거대한 소금밭에 가보라. 소금밭은 바다의 눈물창고.
바다의 간간한 눈물이 모든 맛의 기본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