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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오바고 천정근 11.13
김기석
오늘 천정근 목사를 처음 뵈었다. 저 위에 효창교회가 있는데, 한종호 목사가 협력목사로 활동하면서 꽃자리 출판사를 운영한다. 거기서 청년들 독서모임이 운영되고 있고, 나는 저자와의 대화에 초청받기도 했다. 그 모임에서 천정근 목사가 초대되었다고도 하는데, 조현 기자도 그렇고, 들어본 강좌 중 베스트였다고 추천하더라.
이 책을 샀을 때, 러시아 문학 이야기가 많을 줄 알았다. 책에 나오는 내용은 도스토옢스키 정도고 나머지는 간간히 들려주었다. 한국교계에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있다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치열하게 공부를 해온 사람이다.
이후 언급될지도 모르겠지만 19세기 러시아 이해가 세계문학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옢스키 등등 대가들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19세기 문학사를 다뤄야 하는데, 당시는 러시아 문학이 당시 압도적인 영향을 가진 때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의 소회를 얘기하자면, 때때로 문장이 거칠다고 생각했다. 글 속에 묘한 힘이 있더라. 거친듯하면서도 힘있는 글이었다. 문장을 끌고가고 사상을 끌고가는 힘이 길다고 느꼈다. 그러다 문득 문체가 독일 문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몰라도, 러시아 대가의 문체와 비슷한 대목이 많더라. 그래서 우리나라 작가에서 받을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비평글을 쓸 시간이 있다면, 천 목사의 문체의 특성을 분석해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연민이 없다는 것>이라는 산문집을 읽고 모였다.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달라. 동역자를 위해 글을 나눠주시면 도움이 될 거다.
천정근
지난 번 강의가 좋았다고 해서, 오늘도 그걸 할 걸, 그런 생각이 든다. 하여튼 27세에 유학중에 교회에서 처음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 이래로 청년모임에서 설교를 해왔다. 어디든 초대되어서 말하게 될 때, 긴장이 많이 된다. 더구나 목사들을 상대로 설교를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요즘 신문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세상에 보탤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제일 곤혹스럽지 않나 싶다. 그런데 나한테 몇 마디 말을 해달라고 했을 때 왜 수락을 했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지 않나. 어쩔 수 없이 수락을 해놓고, 여기뿐 아니라 몇 군데서 요청이 왔다. 효창교회 한종호 목사, 유학시절 아는 사이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가기 전에 후회를 많이 했다, 매번. 내가 뭐, 러시아 문학을 열심히 제대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또 세상에 대해 얘기할 걸 갖고 있는 게 아닌데. 누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아무 일하지 않고 살수는 없는 거고. 사람들과 교류르 해야 되지 않겠는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거리낌도 없이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자리에 나오지 않았을 거다.
제일 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은,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즐겁게 사는 것이다. 콘테이너 박스같은 집 있으면, 경치 좋고 햇빛 잘드는 곳에서 말이다. 언젠가는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그렇게 살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할 말이 없는데 해야 하기 때문에 정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정직한 말에 대해서 여러분들께서 공감을 해주시고 소통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통은, 단순히 남을 이해한다는 게 아니라 자기를 초월하는 게 아닌가. 나를 초월해야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지 않나.
두서 없이 얘기해서 잘 풀리면 다음번에도 용기를 낼 것 같고. 아닐지도 모르겠다.
최근 읽은 소설에 “어떤 인간이 가장 지독한 인간?”이란 질문에 담배 끊은 사람도 술 끊은 사람도 아니라 하더라. 원고 마감에 한번도 쫓기지 않은 작가라더라. 이걸 읽으면서 하나 보탠다면, 최상급으로 말하자면 담배도 끊고 원고 마감도 늦지 않은 사람이 가장 지독한 인간이다.
쫓기는 노예, 푸시킨. 그런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빛보다 빠른 사람이고 시간을 초월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 칼 융 전집을 연구하고 있다. 거기서 깨닫는 한 가지는, 인간의 모든 현상적 노이로제는 언어적 기호라는 것이다. 기호는, 하나의 표식인데, 기표, 기의, 이런 얘기하는데, 인간의 신경증 현상은 개성적인 인격이 갖고 있는 기표로서의 기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기의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의 고통이라는 현상에 집중하게 되면, 나는 왜 아플까? 이정도다. 이런 생각만 하면서도 내가 왜 아픈지, 아픔이 무얼 가리키는 것인지 깨닫지 못한 상태로 괴로워만 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고통에 매몰되다 보니, 자신의 병에 대한 원인이나 힌트를 가질 수 없다. 그러니 소용이 닿지 않는 치료법에 매달릴 것이다. 그러니 비관적 견해, 운명론, 뒤틀린 신앙이 나타날 것이다. 개인의 노이로제로 국한하지 않고, 사회 국가 교회 집단에도 적용된다는 게 주목적이었다.
안양에서 목회하면서 용인의 양지라는 시골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3딸과 살고 있다. 주로 하는 일은 책읽고 설교하고, 몇 교인이랑 밥먹고 수다떠는 일이다. 글쓰기라는 일은 순전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어떤 일중에서도 내 생활전체를 보장해주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경제적인 성공을 이뤘다는 장인에 의지하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 중에 8할은 자립을 하지 못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1주에 한번 씩 안성 처갓집에 가서 식사를 한다. 하나의 의식처럼 장을 본다. 답답하고 한숨이 나오고 괴로운 시간이다. 어쩌다 이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괴롭다. 주님과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30대까지는 생각했다. 40대에는 애들 크고 돈이 부족하니 자기 합리화가 아닌가 해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 괴로움을 끝까지 괴로워해보자. 이 괴로움이란 뭔가. 목회를 하면서 이 괴로움을 하나님과 나는 어떻게 통과를 하 ㄹ것인가. 나조차도 궁금하다.
다행인 것은, 장인어른께서 의미 있는 삶을 산다고 나를 대견스럽게 여겨준다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다행인 것은, 그들에게 아들이 없고 내 아내가 장녀라는 점이다. 한편으론 이게 부담스럽다. 고통, 고민이라는 것에 대해 도망가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온전한 나의 삶으로 붙들고. 나아가자는 거다. “돈을 사랑한다”라는 에세이에 그런 고백이 담긴 거다.
칼 융과 노이로제 얘기를 다시 하자. 귀에 이명이 생겨 고생하고 있다. 잔 질병들이 많다. 그런 체질이다. 하나님이 왜 이런 고통을 주는가 생각한다. 기도도 많이 했다. 기적 같은 치료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물론 사도바울처럼 “네 은혜가 족하다”, 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뭔가 체계 있게,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꿈이 하나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시를 하나 써내는 것이었다. 시인이 되는 거였다. 한번 시인이 될 수 있었던 적이 있었다. 유학마칠 때, 문학잡지에 시들을 투고해봤다. 응모를 처음 해봤었다. 원고를 보내면서 내가 만일 시인 당선되면, 문학의 길을 계속가고. 시인이 되지 못한다면 신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방학이 돼서 한국 가는 편에 아내에게 원고 접수를 부탁했다. 헌데 겉봉에다 이름도 주소도 쓰지 않고, 속에 원고만 써서 보낸 거다. 나는 탈락된 줄 알았다. 한참 후에, 그 잡지를 보니 내 시에 대한 평이 실려 있더라. 이름도 주소도 밝히지 않은 원고 잘읽었다면서 말이다. 그 끝에 있는 마음. 끝에 서있는 마음 버리지 말고, 시를 써주길 바란다고 하더라. 이름을 썼다면 당선되었을 거라 확신은 없다. 의지의 문제다. 시인 같은 걸로 등단하기에 관심없는 사람으로 판단했을 거다. 운명론적인 생각이 하나 들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구나. 고통당하면서 쓴 시를 누가 읽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왜 나한테 이런 길을 주시는 것인가, 아무리 질문해도 대답이 없는 질문이다. 오직 고통과 고뇌가 나의 직업이고 운명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스크바 공보처에서 책이나 잡지를 빌려보던 때가 있었다. 한번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빌리게 되었다. 어려서 신지학회라는 곳에서 메시아, 세계의 스승으로 간택된 사람이다. 나중에 그는 스스로 자기를 교주로 받드는 모임을 해체시켜버린다. 진리라는 것은 유일한 통로가 없는, 하나의 편협한 통로가 없는 인간 해방의 방식이다.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악마들이 슬퍼했단다. “저 사람이 진리를 깨달았으니 우리는 망했다.” 그때 연륜 있는 마귀가 이렇게 말했단다. “괜찮다. 저 사람에게 조직을 만들게 하면 된다.”
명상이라는 것은 의식에 대한 과학적 성찰. 의식의 흐름을 파악하는 의식의 가능성이다. 한 가지 생각, 거기에 이르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밝혀준 것이다. 수 천년 동안 전수 전례되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공헌은, 인류 보편의 어떤 정신적인 것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교리 자체를 해방시켜 준 것이다. 본회퍼의 <윤리>에 따르면, 원죄의 결과는 인류의 보편적인 자아의 분열 상태와 같다. 자기 분열이 곧 낙원의 몰락이다. 이것과 똑같은 내용인 것이다. 원죄, 무지, 이민의 아편 등등. 기표는 다양하지만 기의는 한 가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1999년 어떤 겨울 밤이었을 거다. 매일 2시간식 기도했다. 딸이 와서 울지 말라고 하던 기억이 난다. 기도하지 않고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문학을 전공했던 나는 인도 명상 같은 책을 읽지 않았다. 문학은 초월을 다룰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종교적 언술들이 현실을 설명하는 데,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인과 문학인은 서로를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학인들이 종교인들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좀 다르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뜬금없는 초월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예컨대 상가집에서 삶과 긍정을 얘기하는 것과 같다. 종교인들은 이걸 잘 한다. 문학인들은 비웃고 찔러대야 한다. 그래야 종교의 본령인, 위선과 허영과 벗어난 뭔가를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명상을 했는데, 놀라운 경험을 했다. 그동안 읽은 성경이나 문학, 심리학 등등 이런데서 받은 스트레스, 괴로움, 그런 것들이 나의 의식이라는 것 안에서 종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의식 안에 들어있구나, 모든 것이. 이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 원인과 결과. 출처와 지향. 동기와 욕망. 이런 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놀라우면서도 슬펐다. 그러면서도 자유로워졌다.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나를 억압했던 것이고, 발견하면서 그게 풀어지는 거다.
노이로제라는 기표가 해석되기 시작했다. 기표와 같은 현상에 그런 괴로움에 매달려서. 그런데서 해방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세계는 자아의 오류나 착각을 벗어나게 되면, 근본적으로 안정되어있고, 아무 고통도 유발하지 않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 세계가 없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시고.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본래 평화로운 건데, 그 평화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사탄의 세계, 무지(프로이트), 구조(소시오), 인민의 아편(맑스), 이렇게 표현된 거다.
그러니 명상이 재미있어 졌다. 명상만 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와서, 애기 기저귀를 빨아서 너는데, 갑자기 기저귀를 너는 동작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행위가 신비롭다는 희열감이 들면서,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을 사는가?> 천사 등장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당시 톨스토이 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톨스토이가 다르게 느껴졌다. 일반적인 평가와는 다르게 말이다. 논문이란 새로운 말을 보태고, 다른 것과 연결시켜서, 그에 대한 지식의 목록을 넓혀가는 것이다. 일반적인 평가로, 톨스토이의 특성은 3가지다. 단순함, 선함, 아름다움. 결국 이것들은 하나다. 위선적인 지식이 발견되기 이전의 민중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아주 전통적인 러시아 시골 농부 정신세계에는 이것들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자기가 죽는데도 괴로워하지 않는, 죽고 사는 것에도 초월해있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우리도 전통적인 노인들 보면, 삶과 죽음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오늘날 병원은 죽음을 괴로워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지만. 자연과 합치된 삶의 태도로서, 자연과 마찬가지로 존재하고 있는, 교훈이 아니라 경이로운 깨달음의 세계다. 톨스토이는 도덕가나 설교자가 아니다. 영성가다. 기독교라는 것과 갈등 없이 모든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대개 기독교인들은 장로교 배경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랐는데, 장로교는 전통이 아니라고 모든 것을 배격하고 배제하는 신앙이다. 그날 이후 타자배제의 편협한 정신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개인적인 노이로제든 가족들이나 주변 사회의 모습들 속에서 보이지 않은 것들이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단선적인 이해가 아니라 복합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 속에 애정과 연민이 생기더라.
회피, 죄책감, 욕망, 질투심, 그런 것들이 발견된다는 것은 정직인데, 그 정직이라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는 정직이다. 나에게서 발견되었다면 죄책은 괴로울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 하나님의 진리라는 것은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책도 쓴 사람인데,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라는 제목으로. 그는 톨스토이를 자기모순에 빠진, 도덕에 미쳤으나,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괴팍한 미치광이 늙은이로 소개하더라. 톨스토이 하면, 거론되는 게, 성욕에 대해 말년에 비판적인 글을 썼다는 대목이다. 젊은 시절 톨스토이는 하녀를 건드려서 아이를 낳았다. 이런 사실을 오늘날 우리 도덕 윤리 틀에다 맞추다보니, 그 사람 내부의 움직임을 전혀 포착하지 못했더라. 톨스토이에 대한 오해는 당시나 지금이나 내용이 동일하다. 존경하고 숭배하면서도 종교의 세계에 들어가 버렸다고 아쉬워한다. 뜨르니게트는 편지로 톨스토이에게 설교자 흉내 그만내라고 썼다. 톨스토이는 죽을 때, 유언으로, “진리를 사랑한다. 사람은 왜?” 다 말을 못 마쳤단다. 표현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고. 사람들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톨스토이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 똑같다. 문제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다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해가 추상성 속에 들어있다. 진실한 영성에 가닿지 못하고, 기표, 기호에 붙들려서 율법, 교리, 교의에 붙들려서, 본질에 가닿지 못한다. 구원받는다는 것에 대해 설명을 잘 못한다. 깊이 파고들어서 실체가 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추상적인 세계 속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요6:63을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은 무익하다”고 한다.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영이곧 생명이라는 건데, 이걸 파고든다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기서 생명, 영, 본질이라는 것이지 않나. 본질이 사람을 살리지, 껍데기가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다.
톨스토이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 어머니는 톨스토이의 동생을 낳다 죽었고, 아버지는 톨스토이가 4세일 때, 4세에 강도에게 살해당한다. 4명의 형제들은 20대에 폐결핵으로 다 죽는다. 평생을 자기도 금방 죽을 거라는 괴로움에 살았다. 대귀족으로, 많은 영지 물려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각하라 불리고, 아무도 반말을 하지 않았다. 성인 때는 누구든지 ‘그라프 톨스토이’라고 불렸다. 톨스토이 백작.
그렇지만 톨스토이 자신의 위기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 일기를 쓰고, 작가가 되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불후의 대작이다. <전쟁과 평화>는 등장인물만 1000명이 넘는데, 거기에는 서로 모순되거나 충돌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토지>에서의 대적을 살펴보니, 충돌하는 게 많더라. 작가도 헛갈리는 거다. 톨스토이는 그게 없다. 왕성한 정신력으로, 그 힘으로 세계의 스승이 된 것이다.
유력한 사람이었으니까. 또 하나의 짜루. 뚤라에 앉아서. 상주하는 기자만 200여명 되었다고 한다. 한 마디 하면 다음날, 전유럽에 신문에 실리는 거다. 오늘날도 상상불가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게 되나. <참회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실패로 규정한다. 대작들을 쓰레기로 자평하기도 한다. 위기에 몸부림치고, 자살충동을 느끼고. 그러면서 찾아간 게 단순한 신앙의 세계다. 그러다 농민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단순함, 선함,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교회를 찾아가는데, 현실의 교회는 다르더라. 충돌이 있었다. 타락상 등을 직면한다. 그러던 중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한다. 교회의 종교재판에 답하는 글을 통해서, 파문에 대해 괴롭지 않다고, <신의 나라는 그대 가슴에 있다>라는 책을 파문에 대한 답으로 썼다.
그 이후, 절필을 하고, 문학을 쓰지 않다가, 마지막에 쓴 게 <부활>이다. 헌데, 이 제목은 번역이 잘못되었다. 원제는 ‘갱생’이다. 러시아 그 낱말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 책에서 하고자하는 말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니라, 사람이 거듭난다는 얘기다. 갱생이 맞는 번역이다.
<부활>을 쓰기 전에, 절필하고 쓴 게 ‘우화’였다. 옛날이야기. 당시 재정 러시아의 영적인 상황이 들어있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영토는 얼마나 필요한가? 재정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꼬집는 것이다. 해질 때까지 달려가면 그 땅을 너에게 주겠다는 것은, 전 세계를 장악하려는 자기확장을 뜻한다. <바보 이반>도 이 때 탄생했다.
그러고 나서 몇 중편을 썼는데,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나타, 주인과 악마, 신부 셀귀,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등. <부활>로까지 가는 중편 소설들이 내 논문의 주제였다. 종교 윤리적 관점으로 말이다. 톨스토이는 자기의 괴로움을 러시아 전체로 확대/심화해나갔다. 내적 괴로움으로. 전 세계로 확대했다.
러시아 문학을 읽어보면, 톨스토이는 특이한 데가 있다. 도스토옢스키 등은 러시아 계보를 따른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적이기보다는 세계적이다. 공통적인 느낌이 있다. 이게 톨스토이의 위대함이다. 이게 당시 톨스토이가 존경을 받을지언정 배격을 당한 이유다. 슬라브주의, 대러시아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이 톨스토이와 도스토옢스키의 변별점이다. 예컨대, 병역거부, 징집거부, 전쟁거부, 오늘날 무정부주의자 면모를 보인다. 국가가 선거 할 필요 없단다, 토지 국유론, 조직이 개인을 압살하는 것을 모두 타락으로 봤다. 여기서 해방하려면 모든 인간이 자기갱신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전 세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공산주의, 혁명으로 파국이 오게 된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현상적인 고통이라는 기표를 이해해서, 그리스도가 말한 영적 본질까지 다가가면 이뤄지고, 그렇지 않으면 미증유의 재앙이라는 혁명만 일어날 것이라고 한 거다. 혁명가들은 왜 자기들을 도와줄 것 같으면서도 돕지 않냐고 질타했고, 슬라브주의 입장에서는 정교회문명을 세계화시키려는 중차대한 경로에 저 톨스토이라는 늙은이가 헛소리한다고 질책했다. 대표적인 게 도스토옢스키다. 그는 슬라브주의에 열렬한 찬성자였다. 전쟁을 통해서까지 말이다. 러시아적인 기독교 복음에는 모두 동의를 했는데, 그 방식에 있어서 도스토옢스키는 ‘피압박’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도스토옢스키의 글이 다성악적 본문으로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와 같은 정치지형에서 도스토옢스키 같은 인물이 실천적인 발언을 했다면, 극우 꼴통의 말을 했을 것이다.
톨스토이를 공부하면서, 영감 얻으면서 고민이 생겼다. 남보다 잘 안다고 대학선생으로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식인이 되는 것만으로는 내 인생을 만족할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지 이것을 실천하는 삶의 방식으로 하지 않으면 만족 못할 것이다. 좀더 자세히 공부/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나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갔다. 2002. 그때 마침, 민주정부 2기 들어와서, 낙관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증거 왜 없겠는가.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안불렀으면 차라리 좋았을 걸, 이런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더라. 나 자신에 대해서는 징집받은 사람이 아니라, 자원병이라고 생각이 든다. 여기에 묘한 자존감이 있다. 의무병으로서의 자존감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자존감. 징집된 자가 갖지 않은 어떤 게 있는 거다. 스스로 왔기 때문에 갈때도 나 가고 싶을 때 스스로 갈 수 있다. 이런 여지를 스스로 주고 싶은 거다. 대체로 이래야지만 만족하는 데가 있는 것 같다.
신학교에 갈 때, 나는 소설책이나 실컷 읽어야지 싶었다. 유학시절 너무 괴로워서. 읽기는 읽었으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신학교얘기라 읽었는데, 신학생으로 공감이 되더라. 신학적인 모든 내용들이 역사가 깊고 심오한 건 이해하겠는데, 어디에 써먹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더라. 발설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동료들은 꽉 막혀서 타협의 여지가 없다. 모두가 다 배우는, 보수적인 게 심해, 전통적인 그 말에 갇혀있다. 가령, 강도사 고시에, 논문을 쓸 때, 누구누구를 언급하면 붙고, 그 외의 인물을 인용하면 떨어지더라. 거의 김일성 유일체제 하에서 모든 것을 위대한 수령에 대한 충성, 하나의 코드로 세계를 파악하는 것과 똑같다. 숨 막히는 도그마. 그거 하나로 세계를 파악하니까. 인간의 다양함, 역독성, 다양성, 무시된다. 있지도 않고. 그러한 생각의 최대의 피해자는 자기 자신 아닌가. 거기서 신학적 도그마 속에서 3년 동안 고뇌하면서, 짜증내면서 싸우면서 조롱하면서 보냈다. 그러나 신학교 후회하지 않은 것은, 두 분의 스승을 만난 건데, 박영선 목사, 설교학을 가르쳤는데, 자신의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가르쳐주셨다. 김성주 교수, 구약신학자. 몸이 않좋으려서 음낮이가 없는데, 그분한테서는 말씀의 심오함, 신학의 위대함, 말씀 속에 성령이 있음, 우리의 의식속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현상인데, 제일 아름다운, 살아있는 시와 같은 감동적인 수업이었다. 그분들 있어서 그나마 신학적으로 재미없고 논쟁하는 데서도 버틸 수 있었다.
나의 목회적 스타일은 3학년 정도 때 확립되었다. 그때부터 교회개척을 생각했다. 체질상. 목회를 어떻게 할지 스타일을 확립시켰다. 장준 김재준 박사가 “신앙은 보수, 신학은 자유”라 했다. 나는 반대로 적용해보았다. 신학은 보수, 신앙은 자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보수적인/근본적인 태도를 가져야 하고, 그걸 표현하는 삶의 국면에는 자유로운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 깨달을 게, 복음은 편만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은 복음을 드러내는 데 전혀 제재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진리를 배우고자 하면 어디든 가능하다는 거다. 이걸 목회에 적용했다.
그것에 대한 나의 입장의 정리로서 글쓰기르 하게 되었다. 그때 그때 글을 정리해내는 글쓰기를 했다.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조회수가 20이 안된다. 많이 읽히지 않는다.
이세상의 오만과편견에 대한 적절한 말, 지적질을 하는 표현법을 찾아내는 게 숙제인 것 같다.
동료들과 산행을 가서도, 세월호 토론을 하다가 주먹질 직전까지 갔다. 집에 와서 후회했다. 잘 고쳐지지 않더라. 자신의 정확한 입장을 가지고 자립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흠모하는 마음도. 그런데 꽉 막혀서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착하다는 게 더 문제일 수 있더라. 어느 정도는 소통이 되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서로 얘기가 되지 않는다. 악인이라든가, 악한 모습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 안에 들어 있는 단절, 고치기 어렵다.
나는 나의 목회 방식을 ‘방목’으로 부른다. 우리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되뇌어주는 공동체 규율이 있다. 전통적인 교회가 아니라, 낯선 사람들이라 가능했다. 첫째,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말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정중한 경계를 잃어버리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남을 의지하지 말고 자립해나가라고 한다. 하나님과 맞대면 하라고. 목회자에게 너무 괴로움을 토로하지 말라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고민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것,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 속에 복음이 들어 잇는 것이다. 남이 간섭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말이 안된다. 본인 의지로 쟁취해야 한다, 이런 걸 강조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전혀 교인들의 괴로움에 무관심한 건 아니다.
지금까지 읽은 책과 사상, 그런 것을 나눈다면, 나의 책 분류법은 6가지이다, 첫째는, 문학 잡품, 시, 소설, 비평 등.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어설프지 않은 거다. 어설픔은 정리가 안된 것을 뜻한다. 완성된 것을 읽기를 선호하는데, 19세기 작품을 좋아한다. 현대 작품들은 ‘진위’ 대해 평가할 수 없으니까. 19세기는 근대로부터 우리가 나온 거니까, 오늘을 잘 이해하려면 근대를 잘이해해야한다.
둘짼, 영성을 일깨워주는, 철학, 명상 서적들이다. 작은 민족들에게서 나온 경험이라든가. 기독교는 물론 힌두교, 유교 등, 진실된 것이라면 좋아한다.
셋째는, 나만의 특별한 관심인데,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인간의 죽음>, 죽음에 대한 서적을 모아서 읽고 있다. 죽음학이라고 해서 최근에는 학문으로 정립이 되어가고 있다. 이 주제, 죽음을 수용하는 성숙의 5단계, 부정, 부인, 타협, 수용. 이걸로 신학교 졸업논문을 썼다.
넷째는, 이타고. 원중남. 왕양명. 루쉰. 동아시아 근대사상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정통 지배철학이 아니라 지배철학을 뒤집는, 결국은 승리하는 담론이 되는 것이다. 이타고 같은 양반은 수천년동안 공자의 박제된 명분을 뒤집어 읽는다. 공자를 떠받들어서, 요순시대를 이상시대로 설정해서 그걸 숭배하는 것으로 지배이데올로기로 삼자는, 현실은 굶어죽고 있는데 말이다. 근대사상의 배경을 알 수 있는, 원중남은 이타고의 제자인데, 시인이다. 명나라 말기, 중기 이후의 짧은 42세의 삶을 살았다. 그의 시가 방대하다. 재미난 게, 당시 동아시아 베스트셀러였다. 조선에서도 알려질 정도였다. 정조 대왕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한 걸 문제 삼아 금서로 만들었다. 옛날 시는 의고문이라고 해서 이전의 시를 소개하는 시를 최고를 꼽았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다 원중남의 작품을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원중남을 언급한 조선인이 없다. 굉장한 영향을 끼쳤지만, 발설할 수는 없었던 거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 않나. 금서로 정하고 언급을 못해도, 그 영향을 다 받은 거다.
다섯째로 톨스토이를 하나의 장르로 생각한다. 그는 나의 책읽기와 사유의 내용을 가지고, 세상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주로 톨스토이 얘기를 하면, 환기시켜주는 게, 톨스토이에 관한 얘기, 문학얘기는 의미가 없다. 그 사람이 평생 얘기한 것에 의하면. 그렇게 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점을 환기시켜 주려한다.
그다음, 프로이트와 칼융, 심리학 서적을 읽는다.
사회과학이나 경제학 서적은 잘 읽지 않는다. 그런 책들은 사람을 속이는 것 같다. 욕망과 이데올로기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을 담은 신학서적들을 읽는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들을 종합하는 의미에서 필요했다. 특히. 최근 현대 복음에 대해서는 르네 지라르의 글에 감동을 받았다. 그걸로 설교를 하기로 했다. 기독교의 재발견을 통해 인간해방이라는 세계주제에 대해서, 기독교 복음은 여전히 유일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통 기독교에 배척받는데, 그는 교회를 살려주고 있다.
세상에 살면서 이런 공부를 구현해내려면 거꾸로 해야 한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쓰기를 한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글쓰기, 의미 없는 글들 많지 않나. 아름답고 도덕적이지만 생명력이 없는 글들 말이다. 성철 스님의 “산시수 수시수”(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말은 부정을 통과해 긍정이 나오는 것. 글쓰기 자체에 긍정과 부정의 치열의 변증법이 들어있지 않나. 그게 현실 삶에 정직한 모습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글을 쓸때, “나는”으로 시작되는 글을 쓰려고 한다. 잘못되면 관심종자가 되는 것이다. 잘 쓰면, 좋지만. 글을 쓰면 부끄러워서 내 글을 잘 안 읽게 되는데, 그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글을 고친다는 것은 삶을 고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감정과잉, 너무 앞서가는 글,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게 보인다. 반성을 하면서 자기 고백적 글을 쓰려고 했다. 자기고백에 치열한 논거를 제시해서 완성된 걸 만들어 내고 싶은 거다. 그것이 나의 삶으로서의 나날의 투쟁이고, 제대로 되면 성공적인 것이고. 그러나 글쓰기, 글을 잘쓰는게 목표가 아니다. 나의 해방. 자유를 완성하는 것이다. 확대하자면, 전체 인류의 해방에 기여하는 것이다. 내가 성공한 만큼. 일시적인 파행, 오류, 실패, 이런 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해방에 대한 일종의 도구이고.
그런 면에서 동일하게 한국교회에 대해 얘기할 때, 마찬가지로 사랑함과 동시에 냉정함과 무관심함을 가지고 있다. 경멸하고 경시할 때도 있다. 갱신, 개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어느 순간에는 구체적으로 개혁할 가치가 잇는가, 하는 대목도 있다. 그냥 버리면 되는 걸. 냉정하게 무시하면서 사랑한다. 모순이겠지만 목표를 추구하고 지향하는데, 한국교회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무지 도덕에, 착한 척하는 것으로 구원될 수 없다. 내가 느끼는 한 가지 제일 큰 괴로움은, 내가 얼치기라는 사실이다.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족함이 많다. 47세인데, 아주 늦게 깨달은 거다. 요즘 들어 심경에 변화가 생기는 걸 보면, 성장소설을 다 쓴 기분이 든다. 한편으로는 부끄럽더라. 성장소설을 마무리해가는 느낌이다. 일생에 한번만 쓸 수 있는 소설 아닌가. 성장소설 한번 데뷔작으로 끝나기도 하고.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어느 시점에 졸업하고, 나의 이 문제, 이 탐구를 어떻게 졸업하면서 나갈 것인가. 이미 그렇게 살고 계신 분들에게서는, 나의 길이 아니지 않는가. 흉내낼 수도 없고. 모색의 과정 중에 있다.
종교의 세계로 도피하거나 관념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한정된 울타리에 눌러앉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교회 밖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다가 ‘목사스럽게 말한다’는 말을 듣는데. 더 이상 뭐가 들어갈 게 없는 거다. 그 길을 거꾸로 가봐야겠다. 톨스토이가 다시 교회로부터 세상으로 나가기까지의 과정, <부활>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간 것 아닌가. 다시 갱생한다는 것이 뭐냐, 오늘날 한국교회는 세상을 향해 부활하라고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 속에서 갱생해야 할 것이 뭔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예비해야 한다. 포스트 기독교 세계, 여전히 유효할 기독교가 나에게 있고, 남들에게 공감하게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기석.
<연민이 없다는 것>을 읽었는데, 천 목사께서 또 하나의 책을 가지고 와서 풍요롭게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 이야기를 시작부터 지금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정리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습성 같은 것도 있었고. 읽고 나눌 게 많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하다. 소감들 나눠달라.
목사.
목사된지 얼마 안되었다. 늘 첫 마음 가지려고 노력한다. 회개 아닌 회개를 했다. 뭔가 거룩해 보여야 하고, 뭔가 주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목회자가 정직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보여주어야 하지 않나. 영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했다.
목사.
고통에 대한 공감공부. 복음, 어떻게 해야 할까?
천정근.
복음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구절은 요한복음 3장 이야기다. 니고데모가 찾아와서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냐” 묻는다. “바람... 영으로 난 이들은 다 이와 같다. .. 거듭남” wordplay인데, 바람도 영도 프뉴마다, 프뉴마로 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바람은 알지 못하지만, 확실히 바람이 불고 있음을 인지한다는 점이다. 다른 풀이도 있겠지만, 인간 심리의 역동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 중에 “누가 바람을 보았나?”라는 물음이 있지 않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아는 주체, 바람이 없거나 필요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바람을 바람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각성, 영성. 욕망이라는 바람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과 그걸 자기화한 사람과,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 이런 차이가 있는 거다. 영적으로 변한다는 것이야말로 거듭남의 비밀이고, 말로 몇 마디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움직일 수 있는 생각의 변화. 생각하는 방식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문학, 도덕에서는 파편적으로만 이해했다면, 예수는 그걸 종합적으로 제시해준 건데, 기독교인은 그걸 다시 장르화해서 종교인들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문학, 철학, 심리학보다도 일천한 지경에 빠지지 않았는가.
김기석.
나도 관심이 많다. 예수께서 많은 비유를 사용 했는데. 예수의 말 중에는 종교적 언어가 하나도 없다. 전통/종교적 언어가 없어도 심오한 사건이 일어난다. 오늘날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종교적 언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상투화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익숙해졌다는 거다.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걸 타격하는 언어들이 나와야 한다. 예언자들의 언어가 충격을 가했던 것처럼. 언어가 어떤 걸 가지고 해볼 수 있을까. 천정근 목사는 문학이라는 틀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는 사회과학의 언어가 있는 거다.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중요한 것은 상투성을 깨야한다는 점이다. 설교본문이 있고, 설교 시작으로 한 마디만 하면 교인들이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안다. 일상언어로 조교적 담론을 번역해나가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목사.
융. 자기개성화. 인간이 가장 성화된 단계가, 선악을 통합하는 개성화 과정. 파편적인 것을 신학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는가?
천정근.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완성이라는 것을 각자 다른 입장에서 채워나가면, 그것은 영성이라는 것은, 어떤 현실의 구체적인 태로 나타나게 될 때는, 완전한 일치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전체주의가 아니다다. 개성이란 것도 신적인 부르심일 것이다. 그것을 극대화시키는데, 영성의 원리, 인간을 해방시키는, 그것을 공유하는 것은 모두 같다는 것이다.
얼마나 후회를 하려고 떠드는지 모르겠다.
김기석.
1888년 빈센트 반 고흐가. 전도사 생활하다 그만 둔다. 좌절을 느끼는데, 그러고 화가의 길로 접어든다. 그러면서 <씨뿌리는 사람>이 첫 작품이다. 황금빛 태양, 머리 위에 후광처럼 태양광이 있다. 그가 굉장히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다가 넘어간 것인데, 고흐는 그 그림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종교인의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를 표현하는 화가로서의 길이 분리되지 않는다, 이걸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사람은 경계선을 만들어 놓고, 넘는 걸 두려워한다. 이게 기독교를 편협하게 만들었다. C. S. Song, 그는 예수의 활동을 한 마디로 요약하더라. crossing the border. 경계선 가로지르기. 세상이 만든 경계선 넘나드는 것. 넘나드는 주체들이 너무나 없다. 그 속에 갇혀지낸다. 경계선 부수는 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목사.
사회과학 10년 공부해서 산문이 어려웠다. 읽어내려 갈수록 관통한다는 느낌이 많았다. 단편의 생각들이 모였는데, 어떻게 관통할 수 있을까 물어보고 싶었다. 순간순간 정리하려 했던 습관들 때문에 한 흐름이 있었던 것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뭔가 가지고 있었던 학문적 틀이, 또 다른 렌즈로 변화될지 고민되는 순간이 많다. 문학적으로 고뇌한 게 성경적으로 버무러지는 게 부러웠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버무를 수 있을까?
천정근.
관통이라는 것, 아내에게 설교지적당하는 게, 서론이 너무 길다고 한다. 전제를 얘기하다가 사람들이 지친거다. 우리가 말한 천국, 기독교인다움은 어떤 전제 위에서 출발한 것인데, 전제도 모르면서 기독교인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기는 애기한테 뛰라는 거다.
전체를 통찰해내는 것. 그래야 나한테서 가능성이 생긴다. 전모를 파악을 못하면, 좌충우돌 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 젊음인들에게 안타까운 것은, 글로벌/비전 이런 얘기, 공허하다. 안됐다고 생각된다.
중형교회 전도사 부목사를 했었는데, 그 때 아이들의 페이스북 통해 보면 천불이 난다. 운명성이 있는 것 같다. 자각된 생각을 갖게 되고, 구조 속의 부품으로. 거기에 충실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으로 갖고 있는 게. 전체를 보라고 아무리 얘기해줘도 그러지 않더라.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어디에도 속하지 말라는 것이다. 회사에 다니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나는 단체에 가입하는 것을 꺼린다. 세월호, 태안 유출 사고, 그런 데 가긴 한다. 교회차원으로 움직이지 않고 개인적으로 간다.
교회가 일체의 조직으로서의 욕망을 내비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인으로서의 자기.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속하지 않았으면서도, 기독교인으로서 존재할 수 잇는가, 여기에 도전을 던지고 싶다.
김기석.
천 목사는 주체화가 되어 있다. 자기 질문을 가지고 살고 있다.
주체가 발생하는 것은 타자체험인데. 압도적인 타자 앞에서 자기를 반성하고 부족한 것 알게 되는데. 젊은이들은 타자체험을 할 상황이 없다. 부모들이 다 해결해주니까. 주체가 발생이 안된다. 30세 되어도 주체가 없어서 떠밀려 간다. 현실에 의해서. 주체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청소년 시절부터 고통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애들을 나줄 수 있는 용기가 부모들에게 있는가? 놔둬도 애들 서는데.
천정근.
근본적인 신뢰가 없는 거다.
김기석.
할 얘기가 많지만, 여기서 마치겠다.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