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마을의 봄
"위아래 찬찬이 보세요. 위에는 점차 색이 흐려지고 아래는 점차 선명해 지거든요." 산수유 마을 입구에서 만난 소년의 말이다.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이어서 "산수유 축제 때가 꽃색깔이 가장 예뻐요. 이제 축제기간이 지났고 색이 점차 옅어져요. 그러나 개나리가 예쁘게 피고 있어요." 아하!, 소년은 마을 입구 오르막 길가 산수유 아래 노랗게 핀 개나리 꽃과 산수유의 어우러짐을 함께 느끼라는 이야기 이다.
자연과 함께 살아 온 시골 소년의 맑고 고운 마음이다. 자연을 읽을 줄 안다. 도시 소년들에게서 읽을 수 없는 마음이다. 아니, 도시인에게서 느낄 수 없는 향기이다. 내가 여행하며 현지인과 자주 대화를 하려는 이유가 도시인에게서 느낄 수 없는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대화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답사한 산수유 마을지도
산수유 마을이라 하면 산동면 상위리와 하위리 마을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오다보니 산동면 전체가 산수유로 뒤덥혔다. 참고로 구례에서 산수유 마을 상위리까지는 하루 4차례 버스가 운행된다. 온천장까지는 수시로 버스가 있으나 온천장에서 상위리까지 직선거리가 약 3km에 이른다.
활짝 핀 산수유가 봄을 노래한다.
가을에 열매맺은 산수유
동토, 칼바람을 이겨내고 핀 산수유는
봄날에는 생동감, 신선한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여름날에는 선선한 그늘을 선물하고
가을에는 무르익어 또다른 아름다움과
인간에게 유용한 약재가 되어주며 한 해를 마감한다.
인간에게 수많은 메세지를 던져준다.
시골길을 여행하다 보면 길을 물어야 할 때가 있다.
보통 "저리 가면 된다" 또는 "저기요~"식이다.
여기서 저기란 km 개념이다. 십수분 거리이다.
도시인의 몇백m 개념이 아니다. 몇분 개념이 아니다.
오늘도 예외가 아니다.
대형 주자장에는 노점상하는 아주머님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산수유 마을을 물으니 저리 돌아가면 된다는 예외없는 시골식 답변이다.
그러나 나는 산동면 일대를 모두 돌아보기로 작정한 만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방향만 정확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온천단지 중동초등학교를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교량 부근에서 마주치는 정경이다.
홀로 서있는 벚꽃나무가 애처롭다.
길을 걸으며 연신 셔터를 누른다.
배낭의 무개도 느끼지 못한다.
무릎아래 근육통도 잊었다.
산수유 사이로 밭이 보인다.
밭돼기는 얼마되지 않는다.
하기사 이곳은 산수유 재배가 주업인 것을 잊었다.
산수유 사이 간간이 보이는 매화와
마른색의 무엇이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싱겁지 않게 해준다.
보기드문 보리밭 뒤로 산수유 속에 마을이 한가롭다.
푸른 밭이 오늘은 유난히 돋보인다.
매화와 산수유의 어울림
섬진강 매화마을 축제가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이곳의 매화는 활짝폈다. 마을 주변에서 간간이 발견된다.
산동면 일대 이곳저곳 걷다보니 벌꿀을 채집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나무아래 한적하고 양지바른 곳에 벌집통이 늘어서 있다.
산수유 사이사이 고로쇠 나무마다 물을 채취하고 있다.
고로쇠물 채취모습을 처음 본다.
꼼꼼이 살피며 사진 찍을 위치를 잡으려다
발목이 물구덩에 빠지기도 했다.
경치에 취해 무작정 길따라 걷다가
농장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말았다.
시야 확보가 안되어 어디로 헤치고 나아갈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할 수 없이 길을 되돌아 나와 방향을 살핀 후
논두렁을 걸었다.
길이 아니면 헤치고 나아가라.
그리하면 길을 만나리라.
산우유 마을 상위리 쪽을 향하여 헤쳐 나아간다.
개나리와 산수유
온천장에서 부터 계속 오르막길 이지만 반월교 부터는 경사가 높아진다.
"반월교"를 지나면서 학교에서 홀로 돌아오는 소년을 만났다.
소년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소년은 다소 기진하여 가방을 둘러메고 있다.
"오늘 토요일인데 학교 다녀오니?"
"네, 오늘은 학교 가는 날 이예요."
"학교가 멀리인가 보다."
"3km 정도 되요."
"어째서 걸어와?"
"평일에는 공동으로 통학용 택시가 있는데, 토요일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해요."
"이곳이 고향이니?"
"우리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해요."
"마을에 가면 식당은 있니?"
"축제가 끝나서 대부분 떠났지만, 전망대 주변에 아직 있을거예요."
"전망대까지는 둘러 보세요."
나의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 끝에 소년이 먼저 말을 한다.
"위아래 찬찬이 보세요. 위에는 점차 색이 흐려지고 아래는 점차 선명해 지거든요." 소년의 말이다.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이어서 "산수유 축제 때가 꽃색깔이 가장 예뻐요. 이제 축제기간이 지났고 색이 점차 옅어져요. 그러나 개나리가 예쁘게 피고 있어요."
"그렇구나. 산수유와 어우러지니 더욱 예쁜 것 같구나."
"축제가 끝났으면 가을에나 단풍 구경하러 사람들이 많이 오겠구나. 가을에도 멋지겠는걸......"
"우리 동네에는 사람들이 많이와요."
"봄에는 산수유 구경하러 오구요."
"여름에는 계곡물이 시원해서 많이 와요. 우리 집 앞 계곡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해요."
"또 가을에는 단풍구경, 산수유 열매 사러 많이와요."
"이제 집에 다 왔어요."
소년은 버스 타는 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소년과 이야기 나누며 하위마을에 다다랐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상위마을, 하위마을로 나뉜다.
"가실 때 버스는 저기서 타세요. 나가는 버스가 2시 예요. 버스 놓치면 오후 늦게나 있어요."
집 앞 골목길로 들어서며 소년은 손을 흔든다.
"안녕히 가세요!'
"그래 고맙다. 안녕!" 하며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소년과 헤어진 후, 도로를 벗어나 계곡 옆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만났다.
산책로로 접어들어 계곡아래 펼쳐지는 풍경을 살피지만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고
배낭의 무게도 느껴진다.
상위마을 전망대까지 오가며 산수유 사이를 누볐다.
다리의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
상위마을 이모저모
오늘은 산수유 마을을 다녀와 구례에서 섬진강 따라 하동방면으로 헤질녘까지 걸어 갈 예정이었다.
걷다가 만나는 숙소에서 멈추고 내일 계속 섬진강 따라 걸어서 남하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왼발 무릎아래 근육통으로 일정을 수정했다.
구례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주민에게 섬진강옆 19번 국도와 861번 지방도 양측 어느 방면의 경치가 좋을지 물어 보았으나 시원스런 답을 얻을 수 없다. 하여 다리의 피로도 풀겸 버스편으로 하동으로 이동하며 주변 여건을 살피기로 했다.
버스로 이동하며 필요한 메모를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하동 벚꽃축제가 어제 금요일 부터 일요일까지 라서 그런지 구례를 떠난 버스는 19번 도로를 벗어나 간전교를 건너 861 지방도로 우회한다. 버스기사 예상대로 861번 도로에서 건너다 본 19번 도로는 주차장이다. 섬진강변 19번, 861번 도로는 벚꽃길 임에도 불구하고 금년 봄은 일기가 순탄치 않아 아직까지 벗꽃이 몽우리졌을 뿐이다. 주민들 말에 의하면 벚꽃 만개가 예년보다 3~4일 늦다고 한 말이 실감난다.
하동에 도착하니 걷기조차 힘들다. 자전거포를 찾아 목적을 설명하고 대여를 요청하니 대여를 하지 않는다.
일단 오늘은 여장을 풀고 상황을 보아 어떤 방법으로 구례로 거슬러 올라갈지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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