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K리그에서 뛰는 프로축구선수들은 축구계에서도 '축복받은 이들'이다. 어릴 때부터 아무리 축구를 열심히 했다 하더라도 프로 무대는 '바늘구멍'만큼 좁은 문이다.
연간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는 축구 선수는 1500여명 정도. 이중 K리그 근처라도 갈 수 있는 선수는 100여명 내외다. 지난해 말 2008년도 K리그 신인 드래프트의 문을 두드린 선수는 총 291명이었는데 실제 K리그 구단과 계약한 선수는 101명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나 대학교 졸업 이후 프로 구단에 입단해 치열한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앞에는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병역' 문제다. 병역은 납세, 교육, 근로와 함께 헌법에 '4대 의무'로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조재진(왼쪽)과 이동국이 2003년 광주 상무에서 함께 뛸 당시 경기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제공 | 광주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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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스포츠 선수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젊은 축구 선수들에게도 '군대'는 최대 고민이다. 보통 10대에 운동을 시작한 선수가 자신의 재능을 한창 꽃피울 시기는 20대다.
현역 군인으로 입대해 '스포츠 인생 황금기'의 2년 동안 철조망 앞에서 총을 들고 있으라는 건 운동을 포기하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들릴 수 있다. 2006 독일월드컵 이후 러시아 제니트로 입단할 무렵 김동진(26)은 "병역 문제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고백했다. 젊은 프로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생각이었다.
◇K리거, '절반 이상이 병역 문제 고민'
지난 3월초 K리그 등록 선수 517명 중 군 미필자는 267명에 이른다. 최소한 절반 이상의 K리거들이 군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다.
K리거 출신 중 광주 상무, 경찰청에서 복무 중인 선수들이 56명, 군필자가 92명, 군면제(제2국민역 포함)가 83명, 병역 특례 3명, 보충역 6명, 제2국민역 29명, 기타 10명으로 집계됐다.
면제 판정을 받은 이 가운데는 중학교를 중퇴한 뒤 곧바로 K리그로 뛰어든 선수들도 포함돼 있다. 중학교 중퇴 이하의 학력은 군 면제를 받는다.
병역법상 90년대 중반부터 일부 구단이 앞다퉈 어린 유망주들을 프로 무대에 조기 스카우트 하면서 이런 선수들이 늘어났다. 물론 폐해는 있다. 축구 선수로 성공하지 못하고 중도하차할 경우 당장 '먹고 사는 일'이 막막해질 수 있다.
정경호는 광주 상무 시절의 경험이 이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제공 | 광주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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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위 선양하고 병역 특례 받기 '하늘의 별따기'
병역법 시행령 제49조 '예술.체육요원의 특례대상' 규정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와 올림픽 3위(동메달) 이내 입상자의 병역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 4주 군사훈련과 34개월 동안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것으로 현역 복무를 대신할 수 있다. 병역 특례는 1973년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축구 종목에서 이 규정에 의해 병역 특례를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발탁되기도 어렵지만 메달을 딴다는 건 더욱 힘들어 보인다.
한국은 역대 올림픽에서 8강 진출이 가장 좋은 성적이다.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한 마지막 기억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은 병역 특례의 혜택을 받았지만 지난해 12월 28일 ▲올림픽경기 3위 이내 입상 ▲아시안게임 우승 ▲월드컵 축구대회 16강 이상 및 WBC 4강 이상 에 한해 병역특례를 인정하던 병역법 시행령이 ▲월드컵 축구대회 16강 이상 및 WBC 4강 이상을 제외하는 것으로 개정됐다. 비인기 아마추어 종목과 형평성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한일월드컵 이후 병역 특혜 혜택을 입은 축구 선수는 아무도 없다.
김동진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6년 독일월드컵과 도하 아시안게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연달아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병역 혜택이 좌절됐다.
2006년 독일월드컵과 도하 아시안게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나섰던 박주영도 다음 아시안게임에서 '와일드카드' 승선으로 '4수'를 노려야 할 처지다.
광주 상무 소속이던 이동국이 2004년 7월 K리그 올스타전 전야제에서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제공 | 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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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상무·경찰청 입대 '선택받은 이들의 혜택'
프로 축구 선수들이 경기력을 유지하면서 병역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광주 상무나 경찰청 축구단에 들어가는 것이다.
광주 상무는 K리그에 참가하고, 경찰청은 K리그 2군 무대에서 뛴다. 만약 1억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월급 약 10만원(병장 기준) 가량을 받는 광주 상무에 입대한다면 월급이 1.2%로 줄어드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지만 축구 선수로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보다 좋은 길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상무나 경찰청에 가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다는 점이다. 상무에 입대하는 축구 선수는 매년 20명 남짓(유동적)이다. 경찰청은 올해 11명의 선수를 선발할 계획이다. 대부분 K리거들을 뽑지만 경쟁률이 치열하다.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광주 상무에서 뛰었던
정경호는 "현역 축구 선수 중 군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축구를 그만 두는 주위 사람을 몇명 봤다. 그에 비하면 나는 혜택 받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경험자로서 말하자면 상무에서 기억은 좋은 경험이었다. 성실성을 기를 수 있었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K리그 소속팀에 있을때와는 다르다. 군인이기 때문에 경기할 때를 제외하곤 군인의 생활과 똑같다. 아침·저녁 점호도 받고, 불침번도 선다. 시즌이 끝나고 겨울에는 일주일씩 훈련도 받는다. 특히 화생방 교육은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최근 병역 특례 업체가 축구팀을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선수들은 병역 혜택을 받으며 좋아하는 축구도 할 수 있다. K3리그의 화성신우전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전북 현대의 김한원은 K리거 중 보기 드물게 해병대 출신이다. 제공 | 전북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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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을 다녀와도 축구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전북 현대의 김한원은 '현역' 출신 K리거다. 그것도 '귀신잡는 해병대'를 나왔다. 2002년 세경대를 졸업한 뒤 프로 러브콜을 받지 못한 김한원은 해병대에서 선수 공개 모집을 한다는 말을 듣고 지원했지만 해병대 축구팀의 창단이 백지화되면서 꼼짝없이 일반사병으로 2년동안 군복무를 했다.
포항 1사단에 머물며 온갖 해병대 특수 훈련을 모두 체험했다. 그는 당시를 기억하며 "사실상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했었다"고 말했다. 기회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포항으로 전지훈련을 왔던 내셔널리그 수원시청의 김창겸 감독이 훈련 파트너로 삼은 '해병대 연합팀'의 김한원이 실업 선수들을 상대로 연습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2004년 전역과 동시에 수원시청으로 '스카우트'된 김한원은 2005년 내셔널리그 전기리그 우승, 실업 선수권 대회 우승을 견인하며 '내셔널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여세를 몰아 그는 결국 2006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한동안 포기했던 'K리거'의 꿈을 이루게 됐다. 2007년부터는 전북 현대에서 활약 중이다.
김한원은 "어떻게 하다보니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와 K리그에서 뛰게 됐다. 군대에 있는 동안 주말마다 부대 내에서 축구를 하고, 평소 워낙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많이 해 제대후 적응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면서도 "주위에서 현역으로 군대를 가게 되는 바람에 운동을 포기하는 이들을 참 많이 봤다.
우리나라에서는 운동선수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하기 힘들지 않나. 군대를 다녀오면 배운 건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음식 배달이나 운전 기사가 아니면 할 일이 없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