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포터'의 세로 토레 및 피츠로이 Speed S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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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Party of One - Potter goes it alone in Patagonia
출처: 클라이밍 지 2002
필자: Dean Potter
지난 2월 하순, 딘 포터가 (Dean Potter) 이제까지 보여온 그의 대담성을 훨씬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담대함을 보였다. 그가 피츠로이 프리 솔로 등반을 두 번 했는데, 처음에는
여섯 시간 반만에 '수퍼 클와르'를 경유하여 정상에 올랐고, 나중에는 2100 미터에 이르는
'캘리포니아 룰렛'을 경유하여 그 루트의 초등자가 되었다. 두 번 피츠로이를 오르는
그 사이에 세로 토레의 26 피치 짜리 '콤프레서 루트'를 여덟 시간 반만에 스피드 솔로로
올랐다. 다음에 나오는 글은 그의 탁월한 등반에 관한 딘 포터 자신의 일인칭 설명이다. -
기압이 오르고 있다; 맑은 하늘이 남쪽으로부터 다가오고 머리 위에는 별이 밝게 빛난다.
지금까지 파타고니아에 머문 지 3주가 조금 못 되었다. 피츠로이와 세로 토레를 솔로
등반함으로써, 스스로 기대했던 이상으로 등반하긴 했으나, 아직도 나는 이 산에서
무언가를 찾아보고자 한다.
애초의 나의 유일 무이한 목표는 피츠로이 '솔로'였다. 그 밑에 도착하여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삼 일간 기다렸다. 힘과 자신감을 비축하며 휴식을 취했고, "가벼운 것이
최선이다"라는 ("light is right") 생각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 등반 장비와 따듯한
옷들을 남겨 두고, '비박' 장비 없이 오직 물 한 병만을 갖고 갔다.
동트기 두 시간 전 나는 피츠로이의 수퍼 클와르 (일명 Super Canalata) (VI 5.10 WI 3+)
앞에 서게 되었는데, 그 1800 미터 페이스를 뚫어지게 쳐다보니, 발가벗은 느낌이 들었다.
전율이 파도처럼 내 몸 위로 용솟음쳤고 나는 단단히 결심을 다졌다. 실수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에 완전히 몰두하여, 너무 아이스 툴(ice tool)을 강하게 박다보니 내 자신의
피가 장갑을 흥건하게 적시고, 핏자국이 얼음에 남는 것조차 거의 알지 못했다. 피를 보고
나니, 침착하면서도 결의에 차고 살아 남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꿈속에서처럼
움직였고, 점점 얇아지는 얼음과 멋지게 갈라진 알파인 화강암 크랙을 통해 '프리 솔로'로
올라갔다. 여섯 시간 반이 조금 못되어, 나는 그 정상에서 꿈에서 깨어나, 울고, 웃고, 소리
질렀다. 수도 없이 "피츠 로이"라고 외쳤다.
닷새 후 어둠이 내린지 몇 시간 후, 나는 은박 코팅된 '서바이벌 블랭킷' 속에 고치 속의
누에처럼 누워 있었다. 장소는 '콜 어브 페이션스'였다. 이곳은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공포감을 주는 봉우리인 세토 토레 위로 300 미터 지점에 있다. 나는 방금 여섯 시간
반만에, 버섯 모양의 얼음으로 끝 부분이 덮여 있는 '콤프레서 루트'를 (VI 5.10 A2 WI 4)
스피드 솔로로 끝냈다.
네 명의 러시안 사람들과 이 비박 동굴을 같이 쓰게 되었는데, 이들이 심하게 코를 골면서
뒤엉켜서 자고 있었다. 이 러시아 사람들의 계획은 그 루트의 반 지점까지 올라가고 그들의
비박 장비를 내가 쓰도록 남겨두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이 내려올 때까지 내가
기다렸다가, 그들과 같이 빙하를 내가 안전하게 내려가게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갑작스런
폭풍 때문에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고, 그들은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현명한
생각이었다. 허나 그렇게 되자. 나는 오픈 비박을 하느냐 아니면 로프 매지 않은 채 빙하를
내려가느냐 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공포감에 사로 잡혀 내가 혼잣말을 한다. "발가락 잃고
싶진 않지, 딘?" ...... "혼자선 빙하 건널 수 없어, 그러다가 죽는 거야, 솔로이스트들이." ......
"크레바스는 네가 얼마나 등반 잘하는지 전혀 관심 없어" ...... "음식, 따스함, 잠." ..... "와,
추워 죽겠구만!"
아침 햇살 속에 여기서부터 등반을 시작했을 때의 그 따스함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시니컬'한 웃음을 금할 수 없다. (unthethered for the entire climb) '브리드웰 피치' 상의
'다이렉트 에이드' 구간을 빼고는, 전 구간에서 두려움에 굴하지 아니하고, 겨우 몇
밀리미터의 점착성 고무와 손가락 반 마디만 걸리는 홀드에만 의지하면서 자유 등반
방식으로 크럭스를 올라갔다. 내 마음의 눈에 유령처럼 자꾸 떠오른 것은 끝없이 뻗어 있는
마에스트리 볼트 라인에 이르렀을 때, 끓어오르는 폭풍 속으로 내가 갖고 있는 단 한 개의
'에트리어'가 (인공등반용 사다리) 두둥실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리는 이미지였다. 이제는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한다. 그 빙탑(氷塔)을 지나는 동안 계속적인 키킹(kicking)과
단 한 개의 어깨 슬링을 이용해서 수백 개의 볼트 위로 하이 스테핑(high stepping) 동작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폭풍이 이제 완전히 우리를 덮치자, 여기에 이르기 전 보다 훨씬 더 추위를 느끼게 되고,
나는 완전히 맛이 갔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기로 했다. 얼어붙은 장비들을 배낭에 넣고,
동트기 직전에 그 러시안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났다. 여러 차례 하강한 다음 바닥에
내려와서 걷기 시작했는데, 몇 발자국 못 가서 오른발이 빈 구멍에 푹 빠졌고, 속으로
더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쓴다.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여 주의하면서, 신중하게
빙하를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바람에 등을 밀려가면서, 드디어 커다란 바위 밑의 내
장비를 묻어둔 곳에 이르른 다음, 의식을 잃고 만다.
그로부터 디시 열흘 후, 지금 나는 다시 피츠로이에 와 있다. 많은 팀들이 시도했던, 눈에
잘 뜨이는 그 남서쪽의 등반선 바로 밑에서 내가 지금 등반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
속에서 죽은 네 사람의 일행 중의 한 명의 이름을 따라 Pippo Frasson Couloir라고 명명된
이 '클와르'는 수직으로 1500 미터를 지나 '캘리포니아 루트'로 연결되는데,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1970 년에 시도했으나, 정상에 도달하진 못한 곳이다.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세락'과 2130 미터 높이의 그 벽을 자세히 보니까, 어째서 아무도
그 루트의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나 보다 먼저 이곳을 간 모든
사람에게 강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고, 그들의 어깨 위에 내가 서있음을 알게 된다.
떠오르는 이런 저런 생각들을 모두 마음속에서 지워 버리고 그 산의 에너지를 향해 내
영혼을 열었다. 정말 무엇을 찾아 이 솔로 알파인 등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가에 관해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 전 날 밤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었으나 말로서 답할 수는
없었다. 죽음이라는 결과가 올 수 있기 때문에 내 잠재 에너지 수준 가까이 이르게 된다는
점까지는 적어도 깨달았다. 위로 움직이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면서 출발한다. 입을 열어
허공을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로 외친다. 그렇게 내뱉는 숨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무예인들이 생사를 다투는 싸움에서 사용하는 테크닉이다.
마음이 비워지고 한 점의 실수 없이, 크랙 시스템, '램프', 그리고 매끈한 슬랩으로 이루어진
1200 미터 위로, 나아간다. 낙석 가능성이 있는 '다이렉트 라인'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홀드가 없는 5.10+ 구간을 '스미어링'을 하며 지난다. 가죽 부츠와 크램폰으로 갈아
신는다. 길이 30 미터, 각도 90 도의 7.5 cm 두께의 얼음이 살짝 발라져 있는 곳을
조심스럽게 찍는 동안 주위가 수직 세계로 바뀐다. 얼음과 바위 사이로 녹은 물이
흐르고, 1, 2 분마다 싸락눈 돌풍 세례를 받는다. 아이스 툴을 박고 팔을 쭉 펴고 더 이상
떨어지는 것이 없을 때까지 매달려 있다가 그 단속적(斷續的)인 흐름 위로 침착하게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이탤리언 콜(Italian Col)까지 또 다시 330 미터 정도를 믹스
등반한다. 캘리포니아 루트의 출발 지점으로 트래버스 한 다음, 꼭 필요한 하강용 장비만을
- 6 mm 로프 100 m, 너트, 헥스, 아이스 스크루 한 개, V-thread, 세 개의 작은 캐머롯, 몇
개의 슬링 - 그리고 아이스 액스와 크램폰 한 세트만을 갖고 가면서, 계속 프리 솔로
등반을 한다.
정상 밑의 사면(斜面)에 이르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다.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아, 멈추고, 남아 있는 음식을 먹고, 물을 조금 마시고,
아스피린 세 알을 삼킨다. 거의 기다시피 하여, 정상에 도착하여, 캘리포니아 룰렛 (VI 5.0+
WI5) 루트 전체를 초등한다. 전 루트를 프리 솔로로 했고 9 시간 50 분 걸렸다.
한 시간 동안 정상에서 햇볕을 쪼이고, 정상 '릿쥐'의 낭떠러지까지 '다운 클라임' 한 다음,
하강하기 시작한다. 두 개의 빌레이 지점을 지난 후 로프를 당기는데, 햇볕 때문에 눈이 안
보이는데, 무언가가 떨어져 내려오는 소리만 들린다. 토스터 (toaster) 만한 크기의 돌덩이가
다리를 때리자, 온 세상이 깜깜해진다. 나 자신의 비명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다. 바지가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되고, 즉시 부어오르면서 다리가 뻣뻣해진다. 충격을 받았지만, 30 회의
하강을 하기 위해 "의족"을 만들고, 동쪽의 빙하를 쩔뚝거리며 건너고, 점프를 할 수 없으니
약하고, 녹고 있는 '아이스 브리지' 몇 개를 배를 대고 기어서 건넌다.
땅거미가 질 때 '파소 수피리어'의 설동에 도착하고, 거기에 누군가 있어서 나를 도와주기를
바랐으나, 모두 떠나고 없었다. 생존 본능에 사로잡혀, 몸에 온기가 돌 때까지 계속 얼마
동안 바닥에 누워 잠을 자다가, 추우면 다시 가고 또 다시 자는 식을 반복하면서, 새벽
네 시에 '캠프 리오 블랑코'에 도착한다. 출발한지 꼭 24 시간 만이다. 거기에 있는 통나무
오두막 중의 하나에서 잠들었는데, 얼마 있다가 친구들이 와서 깨워주고 보살펴 준다. 비록
다치기는 했으나, 살아있는 매 순간을 음미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음에 만족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을 갖는다.
shlee 抄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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