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 "개포우성"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인수(45·주부)씨는 요즘 집 바로 옆 입주가 한창인 주상복합아파트 ‘타워팰리스’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개포우성아파트는 지은 지 19년 된 ‘낡은’아파트지만 이씨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베란다 밖으로는 멀리 대모산까지 보일 만큼 전망이 좋다”며 “내부도 3년 전 인테리어를 다시 해 새 아파트 못지 않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창문을 열면 단지 앞 양재천 바람이 방안 구석구석까지 들어오는 것에 이씨는 큰 매력을 느낀다.
강남의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타워팰리스(1차분 1267가구) 입주가 시작됐지만, 인근의 개포우성·선경·미도 아파트 가운데 상당수의 집값(전용면적 기준)이 타워팰리스와 비슷하고 또 더 높은 곳도 있어 부동산 시장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록 일부 평형이긴 하지만, 20년된 ‘낡은’ 아파트 값이 갓 완공된 아파트보다 높은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특히 두 단지의 움직임은 향후 주택 시장에서 아파트가 계속 주도권을 쥘지, ‘주상복합’이 그 자리를 뺏을지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전망이다.
◆ ‘만만찮은’기존 고가 아파트 = 13일 시세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개포우성·선경·미도 아파트는 전용 면적 기준으로 ‘타워팰리스’와 거의 대등한 시세를 형성한 가운데 일부 평형에선 매매가가 더 높게 형성되고 있다. 예컨대 대치동 개포우성 아파트 45평형(전용 면적 38.6평)은 9억6000만~12억원의 매매가를 형성, 전용 면적이 더 넓은 타워팰리스 57평형(전용 면적 41.5평)의 8억5000만~10억원보다 더 시세가 높았다. 또 인근의 선경아파트 45평형(전용면적 38.6평)은 9억~11억5000만원을 기록, 역시 7억~9억8000만원인 타워팰리스 50평형 (전용면적 36.6평)보다 평당 가격이 더 비쌌다. 미도 아파트 역시 지난달 타워팰리스 입주 시작 이후에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아, 최근 보름 사이 0.21% 하락한 서울 강남구 아파트 시세와 대조를 이뤘다. 대치동 우성부동산 심선애 사장은 “우성·선경·미도는 10년 넘게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매물도 흔치 않은 지역”이라고 말했다.
◆ 20년간 살아본 아파트 = 전문가들은 기존 아파트의 강세에 대해 입지·쾌적성 등 거주지로서의 가치가 어느 정도 검증됐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세중코리아 한광호 실장은 “기존 아파트 단지는 대부분 입지가 좋은 곳에 있고, 상대적으로 저층으로 지어져 인구밀도도 낮다”고 말했다. 예컨대 개포우성·선경·미도의 경우 양재천을 낀 주택용지에 15층 정도로 지어져 상대적으로 쾌적하다는 것이다. 또 단지 내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등 교육 기반도 갖춰져 있다는 평가다. 인근 선경아파트 57평형에 사는 문모(52) 주부는 “아파트가 낡았지만 대신에 아파트 층이 그리 높지 않고 동(棟)간 거리도 넓어 번잡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월드컵공인’ 한윤수 사장은 “주민들 사이의, 언젠가는 재건축 등을 통해 지금의 입지에 더 좋은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도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파트가 오래돼 낡았고, 저녁 무렵 주차난이 심각한 것 등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 ‘편의성’과 "관리" 내세운 타워팰리스 = 반면 타워팰리스는 건물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원스톱 시스템’과 ‘체계적인 관리’가 강점이다. 아파트 내에 헬스클럽·수영장·편의점 등이 다 갖춰져 있어 편리하다. 또 첨단 시스템과 전문 경비업체를 동원, 외부 잡상인을 통제하고 무분별한 광고전단까지 걸러준다. 최근 입주한 타워팰리스 주민 등도 일단 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지난달 말 입주한 김모(여·48)씨는 “이전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헬스클럽을 비롯, 모든 게 건물 안에서 해결돼 너무 편리하다”며 “오히려 자동차 이용할 일이 줄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유광석 전무는 “타워팰리스는 기존 낡은 아파트와는 달리 보안·설비·시스템 등에서 ‘관리되는’ 아파트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주민 만족도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동산114 김희선 상무는 “대규모 인구 밀집에 따른 교통 체증이나 집안 환기 문제 등은 아직 검증이 안 됐다”고 말했다. 보유세(재산세·종합토지세) 부담도 타워팰리스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 국내 주거문화의 주도권은? = 전문가들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놓고 맞닿아 있는 두 단지를 전통의 주거(아파트) 대 신흥주거(주상복합)라는 대결 구도로까지 보고 있다. 특히 강남의 ‘타워팰리스’뿐 아니라 최근 분당의 ‘파크뷰’, 여의도의 ‘트럼프월드’, 송파구 잠실동의 ‘롯데캐슬’ 등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주상복합아파트가 잇따라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양대 도시공학과 최막중 교수는 “주상복합은 생활편의성이 높고 도심과의 거리도 가까운 편이어서 조만간 아파트를 위협하는 새 주거 형태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는 “주상복합아파트는 상업용지에 지어지는 과밀도 주택이라는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며 “주거지로서의 가치는 최소한 앞으로 6개월은 지나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