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사진편지 제3056호 ('25/3/16/일) [한사모' 공식 카페] - '한밤의 사진편지 romantic walking' < cafe.daum.net/hansamo9988 >
한사모 제 699회 "선릉~문정왕후릉~정릉 걷기 후기"
* 글,안내 : 류연수 한사모 사진위원장 * 사진 : 류연수, 안태숙(한사모 부회장) 이규선 한사모 사진홍보위원장 [참석 인원 : 총 20명] ⦁1팀 : 김정희, 이창조, 황금철, 한숙이(4명) ⦁2팀 : 권영춘, 김동식, 박동진, 이석용(4명) ⦁3팀 : 김재옥, 이규석, 이영례, 황인복(4명) ⦁4팀 : 박찬도, 최경숙(2명) ⦁5팀 : 김용만, 류연수, 안태숙, 이규선, 이경환, 윤삼가(6명) 며칠 포근하다 못해 덥기까지 해서 내복을 훌훌 벗어 던지게 하던 날씨가 갑작스럽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제699회 주말걷기를 하는 25년 3월 16일에는 바람이 7m/초로 불고 빗방울이 날릴 것으로 예보되어 걷기를 주관해야 하는 입장에서 난감하고 심란하기만 했었다. 걷기 당일에는 바람을 피하고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옷을 단단히 입고 걷기에 나오길 단톡방에 공지도하고... 다행히 오후에는 날이 개고 해도 나오고...바람이 적은 곳에서는 취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심심 풀이로 AI에게 70세가 넘은 사람들의 ‘꽃샘추위’로 시를 한편 부탁해봤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꽃샘추위의 속삭임>
"봄이 오는 길목, 따스한 햇살 아래 산수유 노란 꽃잎, 복수초 황금빛 눈망울, 능수버들 연두 잎새가 손짓하네. 그러나 바람은 속삭이듯 찬 기운을 품고,
아침 창가에 스며드는 서늘한 공기, 마음속 깊이 파고드는 꽃샘 추위. 젊은 날의 기억처럼 따스했던 봄 날, 그리움 속에 잠시 머물다 사라질 것만 같아.
나이 든 나무처럼, 몸은 무거워지고 마음은 여전히 여린 새싹처럼 떨고 있네. 그래도 봄은 다시 찾아와 꽃을 피우듯, 우리 마음에도 다시금 따스함이 깃들겠지.
찬바람 불어도, 꽃샘 추위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은 조용히 자라나고 있으니, 우리는 그저 기다리면 되는 것을. 봄은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올 테니까."
약속한 대로 선릉역 10번 출구에서 회원님들을 만나고, 준비한 간식을 나누고... 날씨가 좀 불편한 날인데도 20명이나 참석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리고 걷기에 나섰다. 몇몇 회원께서는 9호선 선정릉역에서 내리시는 바람에 좀 힘들게 오기도 하고... 선정릉 부근에 2호선과 수원분당선이 지나는 선릉역, 9호선이 지나는 선정릉역이 있는데, 선정릉역 정문에서 가까운 곳은 선릉역이고, 선정릉역에서는 도보로 20여분 거리나 된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선·정릉’은 조선의 9대 임금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무덤인 ‘선릉(宣陵)’과 그의 아들 11대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을 일컫는다. 1979년 서울시에서는 이 일대를 공원으로 지정, 능이 3개 있다 하여 ‘삼릉공원’이란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지금도 ‘삼릉공원’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빼곡한 빌딩 숲 가운데에 있어서 일반인들은 신기하게 바라보고 이 땅이 개발되었더라면... 하고 이야기 하는데 이 지역은 서울이 확장되기 전에는 경기도 광주에 속해 있었다. 빌딩 숲 사이 에서 숨통을 틔워주고 역사를 간직해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고 있다.
조선 왕릉은 519년 동안 유지된 조선 왕조의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총 42기가 있다.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 2기가 있으며, 나머지 40기는 경기도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조선 왕릉은 풍수지리 사상에 입각해 능지를 선정했고, 도성 10리 밖에서 100리 이내에 자리 잡았다. 유네스코에서는 유교 사상이 투영된 조상 숭배의 전통, 풍수지리 사상에 근거한 자연 경관과 공간 배치, 왕릉 내 석물 등의 조형 예술적 가치 등을 높게 평가하고 조선 왕릉의 조성 과정과 관리, 제례의식 등을 기록한 산릉도감의궤 등을 통해 과거 능을 조성하고 관리했던 모습들을 높이 평가했다. 2009년 6월, 북한 개성에 있는 2기의 왕릉을 제외하고 40기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경위다.
매표소 입구를 들어서기 전에 안내 모형을 살펴보며 오늘의 걷기 코스를 다시 안내하고 걷기가 불편하신 회원들은 선릉까지만 돌아보고 매표소 앞에서 17시에 만나기로 했다. 입구에서 직원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고 경로 우대로 무료 입장...경로 아닌 회원은 입장료 1000원.
입구를 지나 좌측으로 돌아가니 울타리 부근에 노오란 산수유가 꽃망울을 틔우고 있다. 꽃샘 추위 속에서도 봄은 어김 없이 우리 옆에 와 있었다. 지난 주 사전 답사를 왔을 때만 해도 노랗고, 푸른 것은 복수초 뿐이었는데...
편안하고 부드러운 흙길을 걸어 낮은 언덕 위의 재실로 들어섰다. 전통한옥 형태의 ‘재실’은 왕릉의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으로, 능을 관리하는 ‘능참봉’이 상주하던 집이다. 재실 입구 좌측에 노거수로 지정된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500년이 넘은 긴 세월 동안 왕조의 이야기를 듣고 지켜 보아온 ‘나무 능참봉’이랄까...
능참봉은 조선시대 벼슬 중 가장 낮은 종9품이었다. 미관말직이지만 벼슬은 벼슬이어서 동네에서 양반 행세하는 진사나 생원과는 격이 달랐다고 한다. 죽은 뒤 신위에 학생부군(學生府君) 대신 '능참봉'이라는 벼슬을 명기했었다니 그 차이는 상당히 컸었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겸재 정선, 남명 조식 등도 다른 곳이지만 능참봉을 했었다고 한다. 언젠가 선정릉 답사 때 백사 이항복 대감이 이곳에서 능참봉을 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인터넷 등에서 확인하진 못했다.
재실을 지나 내려오면 ‘역사문화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성종과 중종의 생애, 왕가의 계보도, 왕릉이 만들어진 방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특히 왕릉은 사전 배경지식을 가지고 둘러보면 훨씬 많은 것이 보인다.
문화관에 게시된 자료들을 살피면서 성종의 후궁이 12명이래..... 두런두런 이야기들 하고.. 성종은 1457년에 태어나서 13살인 1470년에 임금이 되고, 495년에 향년 37세로 사망했다고 한다. 성종은 재위기간 25년 동안 경국대전(법전) 반포, 홍문관 설치,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편찬, 창경궁 창건 등 조선을 태평성대로 이끌었다.
문화관에 전시된 성종과 중종의 가계도, 조선 왕릉 배치도 등을 살펴보고 선릉으로 향했다.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인인 선릉은 홍살문과 정자각을 가운데 두고, 서쪽 언덕에는 성종의 능이, 동쪽 언덕 위에는 정현왕후의 능이 있다. 왕릉은 조성된 모양에 따라 단릉, 쌍릉, 합장릉 등으로 구분하는데 선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 같은 능역(陵域)에 있으면서 언덕을 달리하고 있는 이른바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다. 동원이강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봉분과 상설을 조성한 것을 칭한다. 세조 광릉이 최초며 예종 창릉, 성종 선릉 등 7기가 있다. 우리 걷기 회원들은 선릉 홍살문을 지나 신로와 어로를 살펴보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물론 어로에 줄 맞춰 서서... 정자각으로 오를 수 있는 어계로 올라가서 제례를 지내는 모습들을 살펴보고 선릉으로 향했다.
선릉에는 탐방객의 관람 편의를 위한 비탈길이 능 옆으로 설치되어 있다. 덕분에 봉분과 병풍석, 난간석, 문·무인석, 망주석 등 왕릉의 모든 것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 오르는 길가 주변의 소나무들이 능과 함께 살아온 세월을 느끼게 한다.
성종대왕의 능 건너편에 있는 정현왕후 능도 계단을 오르면 능의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다. 능으로 오르는 계단 좌측에 망주석 하나가 팽개쳐 있는 듯 방치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훼손되고 벼려진 것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그 당시의 아픔을 보여주려는 뜻이라고 한다.
정현왕후 능을 돌아보고 작은 고개를 넘어 나무 데크 계단길을 내려가면 멀리 언덕 위에 ‘정릉’이 보인다. 릉으로 가는 길은 오래된 소나무, 산벚나무, 참나무, 산수유, 능수버들 등의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이다. 잠시나마 도심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여유로움을 맛볼 수 있는 산책로다. 꽃샘 추위를 걱정했던 출발 때의 걱정은 벌써 훌쩍 버리고 녹색 물기를 뿜어 올리고 있는 능수버들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하늘을 향해 더 멋진 2025년이 되길 손짓해주는 듯...
중종의 무덤인 ‘정릉’은 당초에는 장경왕후의 능과 함께 고양시 원당리에 있었으나, 제 2계비인 문정왕후가 ‘자신이 죽으면 중종과 함께 묻혀야겠다’는 욕심에서, 1562년 이곳으로 옮기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홍수가 날 때면 홍살문이 한강 물에 잠기는 피해가 계속되자 그녀의 아들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를 ‘태릉’에 안장한다. ‘악행(惡行)의 업보(業報)’인가, 결국 문정왕후는 중종과 함께 묻히지 못하였고, 중종의 능 또한 ‘단릉’이 되어 지금까지 쓸쓸하게 홀로 남아있다. 정릉은 능 쪽으로 올라가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멀리서만 바라보고 홍살문을 거쳐 매표소 입구로 향한다.
회원님들이 강남 빌딩 숲속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선정릉의 울창한 나무와 잘 정돈된 산책로를 걸으며 잠시라도 마음의 평안과 휴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기를... 소망하면서 오늘의 저녁식사 장소인 ‘오봉집 선릉점’으로 향했다. 우 리 ‘한사모’가... 어느새 황혼을 담아 비추는 빌딩 거리를 바라보며 선릉역으로 들어가 이제는 각자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바람 불고 힘든 걷기를 함께 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회원들의 다양한 모습을 열심히 촬영해준 이규선 회원님께 깊은 감사 말씀을 드린다.
우리 다음 주 걷기에서 또 봐유...
<제 700회 주말 걷기 안내>
*만나는 날 : 2025년 3월 23일 낮 3시 *모이는 곳 : 신대방역(2호선) '노인쉼터' (1번 출구 밖 → 왼쪽으로 10m → 화장실 (끝) → 왼쪽으로 10m ) *걷는 곳 : 도림천 벚나무길 ~ 보라매공원 ~도림천변 *거리와 시간 : 약 4km / 약 2시간 *집으로 가는 길 : 2호선 신림역 이용(7호선, 1호선, 9호선 연결) *식당 연락처 : 지리산삼계탕 / 02-885-2015
<클릭하세요>
https://youtu.be/ETHagI7ERb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