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소산봉수대에서 봉홧불이 올랐다.
경주 남산봉수대에서 소산만 조빠지라 바라보던 卒이
에그머니나..하면서 반월성 내에 첨성대에서 상근 대기중인 卒에게
다시 봉홧불을 피운다.
첨성대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卒이 저거 將한테..
將이 달려나와 남산 봉홧불을 보고 조지빠지게 놀라 뒤로 자빠졌다.
그리고 첨성대 생기고는 처음인듯 북을 죽어라 쳐댄다.
큰일났다고 왕에게 알리는 북소리인것이다.
신라 개국후 이토록 위급한 때가 있었든가?
급보....
그것은 최정예를 자랑하던 관군의 패배를 알리는 소식이었다.
달구벌, 즉 대구에서 쿠테타군에게 왕창 깨졌다는 소식..
말 두마리가 이끄는 경전차..
즉 변기를 타고 쳐들어 오는 김 우징..
그 옆에는 김 유신장군과 버금갔다는 명장 김 양장군..
그리고 설명이 필요없는 장보고 하비조지 세명이 군사를 이끌고
갱주 왕성으로 쳐 내려 오고 잇다는 급보였던것이다.
도리가 없는것이다 토낄수밖에..
그 급보를 최종적으로 왕에게 알게 해준
즉 남산을 바라보는 첨성대는 전국 각지에 흩어진 봉수대의 최종 기착지였다.
남쪽, 즉 왜구의 침입을 알려준 울산 치술령 봉수대..
백제나 중화족의 침입을 알게 해준 영천 소산봉수대..
그리고 동해쪽으로 쳐 들어올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한 형산봉수대..
그렇게 올라오는 봉홧불은 남산봉수대에서 상근 근무자가 채취하여
첨성대로 알려 왕에게 보고한 최종적 핫라인이었다.
첨성대 윗쪽에 빼꼼 뚫린 구멍으로 바라보면 남산 봉수대가 보인다.
빼도 박도 못하는 정남쪽이다.
남산 봉수대에서 첨성대를 바라보면 역시 정통으로 보인다.
이것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소식을 남산에서 중계하여
첨성대로 전달하기 위한 방향 설정이라 보면 된다.
첨성대를 쌓아올린 벽돌 갯수를 놓고 의미를 曆的 의미를 부여하여
동양 최고의 천문대라 말한다든가
역대 선대 왕들에게 제사를 올린곳이라든가 학설이 분분하지만
외적의 노림이 가장 심했던 때 즉 선덕여왕때 축조한 이 첨성대는
건너편에 있는 황룡사와 더불어 안보적 축조물이었다.
첨성대는 실제로 당시 사용된 봉홧불의 최종기착지로 사용되었고
쪼매 옆에 세워진 황룡사는 주위를 둘러싼 13개국의 침입을 불력으로 막기 위한 민심 수습용으로 건립된 절이었었다.
막대한 돈을 들여 황룡사를 만든 선덕여왕때 만들어진
첨성대의 역활을 간접적으로 통밥 때릴수가 있다.
몇년전부터 첨성대에 조명등을 더러 켠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역시 조명빨 거대 고분들과 멋지게 어울린다.
국가의 위급함을 알려준 첨성대가 지금 기울어져 가고 있다고 한다.
봉홧불 대신 기울어짐으로서 나라의 기울어짐을 간접적으로
후손들에게 알려주는것이 아닌지..
첨성대 앞 도로는 차가 안 다닌다.
암수가 손잡고 걷다보면 상호간에 마음이 싱송생송해진다.
그럴때는 우측을 신경쓰자..
왜내하면 우측에 으슥한곳이 많기 때문이다.
전부 잔디밭이라 폭신하다.
호미 뒷축걸어 넘긴뒤 들이대어 치대면 끝난다.
호주머니에 휴지가 없을때는 우짜느냐고?
난닝구 벗어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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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트에 이곳 출신의 해박한 지식의소유자이자 문화재 해설가(?)이신분의 재미있게 풀어 쓴 첨성대에 관한글을
줸장 허락없이 몰래 옮겨온 글입니다.
추후 반응이 좋으면 계속 훔쳐와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줸장허락을 받으려니 연락처를 몰라서 ...........
첫댓글 첨성대와 봉화대 재미있는 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