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로 석장승
장승을 뒤로하고 백 여 미터를 가다보면 드디어 남장사 경내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일주문이 세속의 묵은 때를 모두 벗어 던지라는 듯 위풍당당한 자태로 호령하고 있는데, 남장사 일주문의 기둥은 1천년 된 칡뿌리라고도 하고 싸리나무라고도 한다. 일주문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일주문 현판에 의하면 19세기 말 이전이라 추측된다. 남장사 일주문은 조선후기 건축수법과 조각기법이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및 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맞은편에 이 절의 본전인 극락보전이 있고 그 왼쪽으로 난 운치 있는 돌계단을 쭉 따라 올라가면 원래 본전이었던 보광전이 나온다. 이 보광전이 남장사의 본전이었을 때는 무량전 이었으므로 아미타불을 모셨는데 새 본전으로 극락보전이 지어지면서 보광전으로 이름이 바뀌고 비로자나불을 모시게 된 것이라고. 남장사는 신라 흥덕왕 5년(830년)에 진감국사가 창건한 고찰로서 본디 이름은 장백사였으나 고려 명종 16년(1186년) 각원화상이 중건한 뒤로 남장사(南長寺)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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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사 극락보전
북장사, 갑장사 등과 더불어 상주지역 4장사 중의 하나인 이 남장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 때까지 번성하다가 조선초기에 들어와서 척불정책으로 인하여 사세가 수그러들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35년에 중창했다고 하는데 절 전체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 돼 온 사찰로 꼽을 수 있다. 남장사 종각 및 계단을 오르면 설법전을 비롯해 보광전, 진영각, 교남강당, 보현당, 금륜정, 역성당 등이 옹기종기 붙어 있고 스님들의 염불과 목탁소리는 청아하기만 하다. 본당에서 북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양지바른 산자락에는 비구니 승들이 정진하는 관음선원이 있고 극락보전 오른 편 개울을 건너 출렁다리를 지나면 절벽 위 영산전이 감탄사를 절로 토하게 한다. 남장사는 귀중한 문화재가 많이 소장되어 있다. 보물 제 990호인 비로자나 철불좌상과 이 불상 뒤에 새겨진 보물 제922호인 목각탱이 극락전 뒤편에 있는 보광전에 모셔져 있다. 이 절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철불 뒤에 있는 목각탱인데 흔히 있는 종이나 비단에 그린 것이 아니고 나무 위에 부처, 보살, 나한, 사천왕 등을 정교하게 양각하고 그 위에 화려하게 금분을 입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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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 전경
이 목각후불탱은 조선 숙종 20년(1694)에 조성된 것으로, 그 예가 드문 귀중한 자료이다. 장방형의 판목 가운데에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4보살, 2비구, 사천왕, 구름을 타고 모여드는 타방불 등이 고부조로 새겨진 아미타극락회상 목각탱이다. 이처럼 후불탱화가 목각으로 된 것은 흔히 볼 수 없는 것인데, 퍽 희귀하지만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문경 대승사, 예천 용문사, 남원 실상사 등에도 있다. 비로자나불은 14세기 고려 공민왕시절에 나옹화상이 조성했다고 하는데 비로자나불의 손 모양인 지권인은 대개 오른 손이 위로 가서 왼손의 검지손가락을 잡는 것이지만 이 불상은 그와 반대로 왼손이 오른손의 검지를 잡고 있는 것이 색다른 점이다. 상주를 일컬어 `3백(三白)의 고장'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흰 쌀, 은빛 누에고치. 하얀 곶감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장사 진입로의 남장마을은 곶감으로 이름난 고을이지만 영남의 명승지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남장사 일대는 늦가을 정취가 인상 깊은 명승지로서 `경북 8경'의 하나로 손꼽히기도 하다. 낙엽 깔린 계곡과 억새 밭 펼쳐진 오솔길은 연인과 함께라면 더없이 아늑한 운치에 젖어들 수 있을 듯 싶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갈아타고 여주를 지나면 중부내륙고속도로와 만나는 여주분기점이 나온다. 여기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접어들어 상주 나들목까지 간다. 이곳을 벗어나 25번 국도에서 우회전해 상주 시내를 지나 청주, 보은 방면으로 은행나무길을 계속 직진하면 남장사 이정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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