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감자와 토란을 조금 늦게 심었습니다.
감자는 싹이 일찍 나와서 하얀꽃이 지고 아직 초록잎 입니다.
잎에는 빛고운 딱정벌레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습니다.
감자가 알이 여물면 줄기가 연한 황토색으로 변하지요.
장마가 진다고 하니 장마가 끝나면 캐려고 합니다.
토란은 왜 그리 늦게 나오는지 심은지 한달 보름도 넘어 싹이 나왔습니다.
토란은 이른봄에 심어도 보리타작 할 때 싹이 나온다고 어머님이 말씀하십니다.
싹을 보니 추석에 먹기 힘들겠다고 어머님이 걱정을 하십니다.
저는 토란이 빨리 자라도록 토란 주위의 흙을 득득 긁어 호미로 북을 주고
조금 간격을 두고 복합비료를 한주먹씩 주었습니다.
작년 추석 전날이었습니다.
토란을 미리 못캔 용중님과 아들은 작은안골로 토란을 캐러갔습니다.
때 마침 큰비가 쏟아져서 집에서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한참 후에 부자(父子)는 비를 쪼르륵 맞고 흙범벅이 되어 토란을 캐왔습니다.
저는 어쩔줄을 모르며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 어떻게 토란을 캤니? 비가 쏟아지는데."
" 아냐 엄마, 아빠가 나는 차에 있으라고 하고 아빠가 다 캐셨어요. 나는 거들어 드리기만 했어요."
모처럼 데리고 간 아들에게 일을 시키지도 못하고 그 비를 다 맞았을 용중 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토란은 항아리에 담아 장화를 신고 발로 짓이기면 껍질이 반 이상 벗겨집니다.
갓 캐낸 토란껍질은 연해서 잘 벗겨집니다.
석재는 머리에서 부터 흘러내리는 빗물을 손으로 훔치면서 세 항아리의 토란을 쏟아내었습니다.
비는 계속 왔지만 내일이 추석이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토란 까기는 남자들의 몫입니다.
여자들은 송편 만들기에 바쁘니까요.
작년엔 셋째서방님이 늦게까지 토란을 까 주었습니다.
저는 시집와서 토란국을 처음 먹어보았는데 미끈덩 하고 맛이 이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꾸 먹다 보니 부드럽고 맛있어졌습니다.
애들 고모부들도 처갓집에서 처음 먹어본 토란국들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애들도 잘 먹고 온 가족들이 토란국을 좋아하다 보니 추석땐 큰 솥으로
세 번을 끓이게 됩니다. 우리집에서 끓인 토란국이 제일 맛있다고 하니까
저는 신이 나서 토란국이 더 맛있도록 상등급 등심이나 사태를 사서
다시마를 넣고 맛있는 육수를 냅니다.
토란은 특이한 게 끓는물에 데쳐내야 합니다.
끓는 물에 넣은 토란에서 소의 침 같은 끈끈한 성분이 우러나오면 건져서 냉수에 깨끗이 헹구어 냅니다.
육수가 끓으면 데쳐낸 토란을 넣고 마늘, 파를 송송 썰어 넣으면 담백한 토란국이 끓여집니다.
토란잎에 물방울이 데구르르 굴러 다니다가 잎 가운데에서 빛납니다.
토란잎은 무슨힘으로 물방울을 흩트러지지 않게 모아 주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버님이 편찮으셨을 때 우리 동기간들은 모두 힘을 합쳐 아버님을 모셨습니다.
여름이면 바람을 쏘여 드린다고 온가족이 날짜를 맞추어 3박4일로 피서를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홍천강, 주천강, 문막,충주댐을 다녀왔습니다.
트럭으로 하나 가득 짐을 싣고 물가로 놀러가서 텐트를 치고
아이들과 튜브를 타며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막내고모부가 투망으로 잡은 물고기로 물고기 튀김, 매운탕을 해먹고
닭백숙을 먹은후에는 남은 국물로 닭죽을 끓였습니다.
선선해진 저녁에 돌을 달구어 고기를 구우면 아이들이 먹기에 바빠
어른들은 양보를 하느라고 입안에 군침이 고였습니다.
아버님이 똥을 싸셔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재빨리 씻겨드렸습니다.
토란잎을 이리저리 흔들어 봅니다.
물방울은 서로를 붙들고 뭉쳐 있습니다.
감자를 캐서 손수레에 싣고 지나가시던 강흥순 형님이 부릅니다.
" 혜영아 감자 좀 줄께, 파가 잘 안났대며? 와서 파 도 가져가."
감자를 반 자루나 담아 주십니다. 잘 자란 모종용 파 도 한아름 안고 왔습니다.
이의동은 저의 홈그라운드 입니다.